패키징 기술 개발, 글로벌 견제 주목, 지속적 정부 지원 필요
성균관대학교 반도체시스템공학과 한태희 교수

[테크월드=김경한 기자] 지난 5월 15일 미국 상무부는 해외 기업이 제조한 반도체라도 미국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제품을 중국 화웨이에 판매하려면 미국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국내 반도체 기업이 반사이익을 얻으리라는 분석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장기간 지속된다면 결국 우리 기업에도 타격이 가해질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비록 미국의 화웨이 제재가 해킹이라는 화두로 시작했지만,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성균관대학교 반도체시스템공학과 한태희 교수

이는 우리나라도 미국 경제에 위협이 된다면 얼마든지 제재 조치가 가해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의 국방비 분담을 두고 ‘부자나라 한국’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도 이제 장기적인 안목에서 각국의 보호무역주의와 시장점유율 확대라는 ‘양날의 검’을 감안하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에 이른 것이다. 성균관대학교 반도체시스템공학과 한태희 교수를 만나 국내 반도체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Q. 일각에서는 반도체 산업의 고용창출 효과가 크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반도체 산업을 육성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반도체 산업이 단기적으로는 고용창출 효과가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산업 전반의 생태계 조성에 따른 긍정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단편적인 면에서 본다면, 반도체의 고용창출효과는 크지 않다는 의견도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반도체 산업에 필요한 인력은 숙련된 고급 인력으로 제한적인 선에서 채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체의 고객은 퀄컴이나 애플과 같은 글로벌 기업이다 보니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와 같은 대기업 위주로 산업이 발전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면에서는 중소기업에게 혜택이 돌아오는 눈에 띄는 선순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장기적 안목에 살펴본다면 이는 틀린 말이다. 국내 반도체 관련 대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을 고객으로 유치해 오랜 기간 제품을 생산하다 보면, 조금 더 지리적으로 가까우며 가격이 싼 라인을 찾게 되면서 국내 중소기업도 반도체 제조에 참여하는 기회가 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국내에서 반도체 산업의 파이가 커지게 되고, 반도체 관련 생태계가 점점 좋아지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윈윈(Win-Win)하는 형태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Q. 국내 반도체 산업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기술은 무엇인가?

세간에서는 반도체 산업의 설계 기술이 강조되고 있지만, 최근 업계에서는 패키징과 같은 후공정 기술이 강화되는 추세다. 반도체는 미세공정을 진행하려면 EUV가 있어야 하는데, 이는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나는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경제성을 확보하려다 보니 반도체를 효율적으로 쌓아서 비용을 절감하고 용량을 늘릴 수 있는 패키징 기술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그 외에도 반도체 테스트, 어셈블리, 옵셋 업체와 같은 후공정 기술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의 ‘12단 3D-TSV’ 패키징 기술(자료=삼성전자 뉴스룸)

또한, 메모리 반도체와 관련해서는 컨트롤러를 내장한 제품의 중요성도 무시할 수 없다. 이는 예전 애플의 아이폰 신제품 출시에서 찾을 수 있다. 애플은 삼성전자와 같은 메모리 반도체 업체가 NAND 플래시를 팔 때보다 아이폰의 NAND 플래시 용량을 9GB부터 16GB, 32GB, 64GB까지 높이며 100달러씩 가격을 추가해서 판매해 왔다. 그 비밀은 NAND 플래시에 컨트롤러를 내장하는 것에 있다. 

하지만 그동안 메모리 반도체 업계가 컨트롤러 기술을 적용하지 못한 데에는 기술적 어려움에 있었다. 메모리 공정과 로직 공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메모리를 중심에 놓고 로직을 집적하는 컨트롤러 기술을 적용하다 보면, 수율이 떨어질 수 있고 수율이 떨어진다는 의미는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의미와도 같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기술력이 향상되면서 컨트롤러 관련 기술이 많이 연구되고 있다.

업계 간 헤게모니 싸움도 한몫했다. 인텔이나 퀄컴과 같은 로직 회사가 메모리 업체의 컨트롤러 개발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런 헤게모니 싸움도 메모리 반도체 업체가 몇 개 안 남으면서 이젠 어느 정도 용납되는 시대가 됐다. 

 

Q. 중국의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가 지난 4월 14일 128단 NAND 플래시의 테스트 성공 사실을 공개했다. 중국 정부는 4월 26일 예산 1조 위안(약 172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국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변수가 너무 많아서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어떤 이는 중국의 반도체 산업이 거품이 많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그렇지 않다고도 한다. 

사실 중국이 완전자본주의가 아니다. 중국 시장은 금리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정부가 보조금을 뿌리는 불공정한 관행이 만연한 국가다. 그럼에도 내수 시장이 어마어마하게 크므로 쉽게 무시할 수도 없다. 

하지만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중국의 D램 분야는 성장이 힘들다고 여겨지는 반면, NAND 플래시는 성장잠재력이 높다고 볼 수 있다. NAND 플래시는 설계보다는 공정의존도가 높아 비싼 장비를 가져다가 좋은 인력을 투입하면 얼마든지 갭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중국이 NAND 플래시를 생산하고 이를 내수 시장에 판매하더라도 자국 내 거대 공장들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수출은 필수불가결하다. 따라서 중국이 해외에 반도체를 수출하려 하지만 미국의 제재조치로 쉽지 않는 상황이다.

 

Q. 트렌드포스(TrendForce)에 따르면, TSMC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2019년 1분기 48.1%에서 올해 1분기 54.1% 증가했고, 삼성전자가 19.1%에서 15.9%로 감소하면서 격차가 더 벌어졌다.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가?

대만의 TSMC는 1980년대 중반부터 파운드리 사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3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분야만 집중적으로 투자해 왔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마케팅이나 고객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TSMC의 2020년 1분기 기술별 실적비중(자료=TSMC 홈페이지)

그에 비해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을 시작한지 수 년밖에 안 된다. 더군다나 파운드리 사업뿐 아니라 모바일, 가전제품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부분이 장점과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사 제품에 자사의 반도체 제품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애플이나 퀄컴 입장에서는 경쟁사에 제품 수주를 맡기는 것이 꺼림칙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부와 시스템 사업부를 분리해 파운드리 사업의 고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이에 더해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뿐만 아니라 모바일에 탑재되는 반도체에도 기술력을 집중하고 있으며, 이미지센서, AP, 모뎀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 세 분야가 모바일 반도체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이미 중요한 요소는 다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삼성전자의 사업 현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봤을 때, 파운드리 사업에서 TSMC를 따라잡는다며 10%나 20%씩 고속으로 성장하는 것보다는 2~3%씩 착실하게 기반을 다지며 시장을 늘려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또한 급격한 성장은 미국이나 다른 경쟁국이 우리나라를 견제하거나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 차원에서도 해당국가와 지속적으로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며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Q. 그렇다면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정부의 지원책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최근 정부 차원에서 반도체 분야에 많은 지원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 업계에서는 큰 불만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부의 반도체 R&D 과제는 GDP 규모 대비 세계 1, 2위급으로 진행되고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는 이제 막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예전처럼 무조건적으로 기업을 지원해준다면 WTO의 제소를 받을 수도 있다. 

다만 정부 지원책의 꾸준함은 필요하다고 본다. 대부분의 정부 지원이 초반에 반짝 진행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사업의 연속성이 끊길 수 있으므로 정부 정책의 꾸준함이 요구된다. 

반도체 업계에 요구되는 시급한 정부 지원책을 꼽자면, 우수한 인력을 양성하는 정책의 추진이다. 반도체 분야는 특정 분야에 치우치지 않는 폭 넓은 스펙트럼을 요구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반도체를 견인할 수 있는 인력의 확보가 필요하다. 우수한 인력의 확보는 반도체 산업의 기반을 다지고 생태계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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