팹리스 강국 미국, 파운드리 강국 대만, 비상 준비하는 한국

[테크월드=김경한 기자] 우리나라는 대량생산에 특화된 대기업 위주로 1970~80년대 경제성장을 한 덕분에(비록 이로 인한 폐단으로 IMF라는 어려움도 겪었지만), 소품종 대량생산에 적합한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선 초일류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기업과 정부는 이제 그보다 파이가 3배 가까이 더 큰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 적극적으로 다가서고 있다. 그렇다면, 시스템 반도체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이 분야 시장 현황이 어떤지를 살펴봄으로써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우수한 설계 기술이 필수인 시스템 반도체

시스템 반도체는 두뇌 역할을 하는 칩으로, 주로 정보의 연산, 처리, 제어, 가공 기능을 담당한다. 정보의 저장 기능을 담당하는 메모리 반도체와 대비해 비메모리 반도체로도 불린다. 

품목만 수만 가지로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제작되는 시스템 반도체는 칩 구조가 복잡해 우수한 설계 인력과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고가의 설계와 검증 툴, 반도체 설계자산(IP) 확보 등 기술 인프라가 필요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지난 4월 22일에는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가 글로벌 반도체 설계 기업인 Arm을 ‘자상한 기업’으로 지정하고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를 통해 시스템 반도체 분야의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이 Arm이 제공하는 검증된 설계 패키지인 플렉시블 액세스(Flexible Access)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자상한 기업은 대기업이 가진 기술과 인프라를 중소기업과 공유하고 자발적으로 상생 협력하는 기업을 말한다. 이번 협약식에는 서울대학교와 벤처기업협회가 업무협약식에 참여해 앞으로 이들 단체가 성장 잠재력이 있는 유망 기업을 발굴해서 기술개발부터 사업화까지 전주기를 지원할 예정이다.

중소기업벤처부, Arm, 서울대학교, 벤처기업협회가 온라인 업무협약식을 진행하는 모습

시스템 반도체는 누가 먼저 칩을 개발하고 시장에 출시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되기 때문에 검증된 IP를 사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동안 IP에 대한 비용 부담은 시스템 반도체 분야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에게 혁신적인 도전을 꺼리게 하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했다. 이에 중기부는 Arm과 개발지원 프로그램(플렉시블 액세스) 사용 계약을 체결했다. 

 

시스템 반도체의 종류와 시장현황

시스템 반도체는 마이크로컴포넌트(Micro Component), IC, SoC(System on Chip)가 있으며, 그 외 이미지센서로 대표되는 광개별소자가 비메모리 반도체로서 여기에 포함되기도 한다. 

마이크로 컴포넌트는 주로 연산과 제어 기능을 담당하는 초소형 반도체로, MPU(Micro Processor Unit)와 MCU(Micro Controller Unit)가 여기에 해당된다. MPU는 컴퓨터의 기억, 연산, 제어 기능을 수행하며, 중앙처리장치인 CPU가 대표적이다. MCU는 특정 시스템을 제어하기 위한 전용 프로세서로, 냉장고나 세탁기와 같은 대부분의 전자제품에서 두뇌역할을 하는 반도체다. 

IC는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전기회로 구성을 위해 반도체 소자를 하나의 칩에 구현 한 것이다. 동작 신호에 따라 로직 IC(Logic IC)와 아날로그 IC(Analog IC)로 나뉜다. 로직 IC는 NOT, OR, AND 등의 논리회로로 구성된 반도체로, 컴퓨터가 인식할 수 있는 디지털 신호에 대해 연산, 기억, 전송, 변환 기능을 수행한다. 모바일 통신 기기에서 연산과 제어 기능을 담당하는 AP(Application Processor)가 대표적이다. 아날로그 IC는 소리, 빛 등의 각종 아날로그 신호를 컴퓨터가 인식할 수 있는 디지털 신호로 바꿔주는 반도체로, 디지털 기기의 입출력 인터페이스, 전력관리, 신호 감지·증폭 등에 사용된다. 

삼성전자는 자체 스마트폰을 위한 AP인 엑시노스(Exynos)를 2011년부터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최신 버전은 ‘엑시노스 980’으로 5G 통신 모뎀과 고성능 모바일 AP를 하나로 통합한 5G 모바일 프로세서다. 삼성전자는 아우디 신형차량인 A4에 탑재한 ‘엑시노스 오토 8890’, 100m 이내 단거리 데이터 통신에 최적화된 IoT 프로세서인 ‘엑시노스 I T100’을 선보이는 등 엑시노스의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 
SoC는 여러 시스템을 하나의 칩에 집적시킨 단일 칩 시스템이다. 비디오, 오디오, 모뎀 등의 각종 멀티미디어 부품과 마이크로프로세서, D램 등의 반도체를 하나로 통합해, 연산 기능과 데이터의 저장·기억, 아날로그와 디지털 신호 변화를 하나의 칩으로 해결할 수 있다. 자동차의 ECU(Electronic Control Unit)와 PMIC가 여기에 속한다. 

개별소자는 트랜지스터, 다이오드, 콘덴서와 같이 단일 기능을 하는 반도체 소자로, 광 신호를 전기 신호로 변화시키는 CMOS 이미지 센서(CIS)가 대표적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12일 0.8µm 크기의 픽셀로 1억 800만 화소를 갖춘 모바일 이미지 센서인 ‘아이소셀 브라이트 HM1’을 출시했다. 이 이미지 센서는 최대 8K(7680Ⅹ4320) 해상도로 초당 24프레임으로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업구조에 따른 업계 현황

시스템 반도체는 워낙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보니 사업구조가 각 공정별로 분업화돼 있으며, 대표적으로 팹리스(Fabless), 파운드리(Foundry), 종합반도체기업(IDM)이 있다. 

팹리스 업체는 반도체 생산시설(Fab) 없이 설계와 개발만 담당하는 회사로, 대표적으로는 브로드컴, 퀄컴, 엔비디아가 있다. 

IC 인사이츠(IC Insights)에 따르면, 2019년의 시장점유율은 브로트컴(미국)이 172억 4600만 달러로 1위, 퀄컴(미국)이 145억 1800만 달러로 2위, 엔비디아(미국)가 101억 2500만 달러로 3위, 미디어텍(대만)이 79억 6200만 달러로 4위, AMD가 67억 3100만 달러로 5위를 기록했다. 퀄컴의 경우, 2세대 이동통신인 CDMA 원천 기술 특허를 가지고 있는 기업으로, 우리나라로서는 애증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이 2G 당시 검증도 안 됐던 CDMA 기술을 ETRI와 함께 공동개발하고 상용화해 망해가던 퀄컴을 살려놨는데, 이후 퀄컴 측이 기기당 대량의 로열티를 요구하며 갑질을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국내 기업 중에는 2018년 팹리스 분야에서 실리콘웍스가 19위에 들었을 정도로 그 존재감은 미비한 수준이다. 

파운드리 업체는 팹리스가 설계한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며, 대표적으로 TSMC와 삼성전자가 있다. 트렌드포스(TendForce)에 따르면, 올해 1분기의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TSMC(대만)가 54.1%(100억 2000만 달러), 삼성전자가 15.9%(29억 9600억 달러)였다. 이는 TSMC와 삼성전자가 지난해 1분기의 시장점유율이 각각 48.7%, 19.1%였던 것과 비교해 더 많이 벌어진 수치다. 

TSMC는 7nm 공정에 대해 고객사가 사전 예약해 수주 물량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어 일부 웨이퍼에 대한 조정을 시작되더라도 고객의 주문이 이 부분의 간격을 채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TSMC는 지난해 1월 반도체 공장 오염으로 최대 9만 장의 불량 웨이퍼가 발생한 바 있다.  

삼성전자의 평택캠퍼스 항공 사진

삼성전자는 5G SoC CAP, 고해상도 CIS, OLED-DDIC, HPC 제품의 생산 능력을 지속적으로 늘리는 동시에 EUV 적용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21일 경기도 평택캠퍼스(평택사업장)에 극자외선(EUV) 파운드리 생산라인 구축에 나선다고 밝혔다. 이는 2019년 4월 발표한 ‘반도체 비전 2030’ 관련 후속 조치의 일환으로, 삼성전자가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글로벌 1위를 달성하기 위한 세부 전략 중 하나다. 삼성전자는 2019년 화성 S3 라인에서 업계 최초로 EUV 기반 7nm 양산을 시작한 이후, 2020년 V1 라인을 통해 초미세 공정 생산 규모를 확대해 왔다. 여기에 2021년 평택 라인을 가동하면 7nm 이하 초미세 공정 기반 제품의 생산 규모는 더욱 가파르게 증가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평택 파운드리 라인을 2021년 하반기부터 본격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의 이번 평택 EUV 파운드리 생산라인 구축은 반도체 분야에서 메모리 반도체의 의존도를 낮추고 파운드리 사업을 중심으로 한 시스템 반도체의 비중을 늘리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기도 하다. 

종합반도체기업은 칩 설계부터 제조와 테스트까지 시스템 반도체의 전 과정을 수행하는 기업으로, 인텔(미국), 도시바(일본), 삼성전자 등이 여기에 속한다. 

2019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점유율(출처: IC 인사이츠)

IC 인사이츠에 따르면, 2019년 IDM 매출의 51%, 팹리스 매출의 65%를 점유한 미국 기업이 전체 IC 시장에서 55%를 차지했다. 그 뒤로 IDM 매출의 29%, 팹리스 1%를 차지한 한국 기업이 21%로 2위를 차지했다. 주목할 점은 한국 기업이 단지 1%의 점유율을 차지한 팹리스 시장에서 대만(17%)과 중국(15%) 기업이 10% 중후반대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가 팹리스 강국인 미국의 영향력을 벗어나고자 중국 팹리스 업체를 육성하며 두 국가의 팹리스가 동시 성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중국은 자체적으로도 파운드리 사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TSMC가 화웨이와 협력하지 못하게 압박하는 등 화웨이에 대한 제재가 갈수록 심해지자 시스템 반도체의 자체 생산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해외 매체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22억 5000만 달러를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SMIC에 지원하기로 했다. SMIC는 화웨이로부터 14nm급 AP 기린 710A 주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린 710A는 TSMC가 생산하는 화웨이 기린 710의 대체품이다. 

 

정부-학계-기업의 반도체 연합전선

최근 우리나라 정부는 2019년 일본 정부의 반도체 핵심소재 제재로 겪은 국내 반도체 기업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반도체 산업 지원에 힘을 쏟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가 지난 1월 23일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를 위한 ‘소재·부품·장비산업 특별조치법’ 시행령 전부 개정령을 입법예고했다. 이 법안의 골자는 핵심전략기술을 선정하고 100대 특화선도기업과 강소기업을 선정해 공급망 안정성 강화와 기업군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국내에 반도체 인재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일었던 만큼, 최근에는 학계와 업계의 인재 육성 움직임도 활발하다. 연세대학교와 삼성전자, 고려대학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2021학년도 입시부터 반도체학과 신입생을 모집한다. 삼성전자는 100 채용조건, SK하이닉스는 학비 전액과 보조금 지원을 내세웠다. 

다만 이 같은 정부, 학계, 기업의 연합 움직임이 시스템 반도체에 대한 갈급함과 소재 독립을 외치는 사회적 이슈로 인한 일시적인 정책과 지원책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 이 글은 테크월드가 발행하는 월간 EPNC 2020년 6월 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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