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기술을 재사용하는 플랫폼으로 반도체 글로벌 허브 노린다

[테크월드=선연수 기자] 무어의 법칙이 깨진 반도체 산업의 차세대 경쟁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이에 국내 스타트업 ‘세미파이브(SemiFive)’가 새 지평을 열기 위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세미파이브는 2018년 설립된 반도체 설계 플랫폼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으로, 작년 7월 시리즈 A 투자를 340억 원 규모로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놀라운 투자 규모로 주목받은 세미파이브를 이끄는 조명현 대표를 만나 비전을 물었다.

 

창업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

15~20년 전 소프트웨어 업체는 글로벌 기업이 몇천 명이 넘는 인력을 가지고 비용, 시간을 들여 소프트웨어를 개발·테스트하고 종이 상자에 담아 배송하는 시스템을 운영했다. 당시에는 이 과정들이 주는 부담이 상당해 소프트웨어 개발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2~3명만으로도 스마트폰에서 작동하는 간단한 게임이나 유용한 앱을 개발해 전 세계에 서비스할 수 있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반도체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40~50명의 인력이 필요하고, 투자 비용도 수십억 원에서 100억 원을 넘기기도 한다. 이렇게 1년 넘게 고생하면 칩 하나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삼성전자나 퀄컴과 같은 대기업조차도 아무리 혁신적인 아이디어라도 상품성이 확립되지 않으면 시도가 어렵다.

세미파이브를 창업할 때 목표로 삼은 단 하나의 미션이 ‘반도체를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자’였다. 소프트웨어 개발처럼 1~2명이 부담하기는 어렵겠지만, 아이디어를 가진 고객이 기술의 핵심이 되는 아이디어에 집중하고, 다른 부분을 세미파이브가 지원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자 한다. 이를 통해 더 적은 비용으로 더 쉽고 빠르게 제품을 제작할 수 있도록 혁신을 일으키는 것이다.

무어의 법칙에 따라 2년마다 공정에 혁신이 일어 같은 비용(심지어 더 저렴한)에 더 좋은 공정 기술을 이용할 수 있었으나, 미세공정 경쟁에 돌입하면서 설계 비용이 굉장히 높아졌다. 경제적으로는 무어의 법칙이 끝난 것이다. 이제 시스템 반도체의 본질은 제조, 공정에서 설계, 최적화(맞춤형) 방향으로 가고 있다.

애플, 테슬라,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의 기업은 반도체 설계 부문에 있어 이제 ‘기성복’이 아닌 ‘맞춤복’을 찾고 있다. 신규 공정이 본인들이 원하는 가치를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반도체 회사가 핵심이 되는 기술과 아이디어 등을 제공하고 반도체 설계 플랫폼이 이를 구현해주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세미파이브의 이념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Idea to Silicon’. 새로운 반도체 아이디어만 있다면 누구나 쉽게 반도체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플랫폼 회사가 되고 싶다.

 

세미파이브 조명현 대표이사

 

세미파이브 솔루션만의 차별점은?

불과 1년 전만 해도 반도체 설계 플랫폼 시장이 뚜렷하지 않았다. 현재는 세미파이브 외에도 베리실리콘, 패러데이, 마블 등 반도체 설계 플랫폼 개발에 나서는 곳이 국내외로 많다.

세미파이브만의 차별적 전략으로는 3가지를 꼽을 수 있다. 먼저, 반도체를 인테그레이션(Integration)하는 방법론이 재사용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활용해 여러 애플리케이션에서 구현되는 다른 버전의 반도체를 빠르게 인테그레이션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설계 효율을 높인다.

두 번째는 세미파이브가 반도체 설계에 대한 총체적인 역량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모바일 AP부터 임베디드에 이르기까지 어떤 애플리케이션이든 아키텍처 제작부터 패키지까지 모든 역량을 제공한다. 아이디어를 가진 고객이 핵심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부분 외의 나머지는 플랫폼이 지원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사용 사례에 있어서 강력한 네트워크와 파트너십을 갖추고 있다. 현재 20여 개의 IP 회사와 협력할 수 있는 기반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 고객 과제에 이를 활용하는 사례도 많이 늘고 있다. 단순히 국내 리소스와 역량으로 한국 고객만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단위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차별점이다. 주로 IP 벤더들과 협력하고 있으며, 혁신적인 반도체를 제작하는 수요는 리스크파이브(RISC-V)에 많이 집중돼 이와 관련된 업체와의 협력이 두드러진다. 세미파이브는 고객의 다양한 IP 수요를 만족할 수 있는 플랫폼 모델을 지향하고 있다.

 

근무 환경은 어떤가?

세미파이브 창업 시 3가지를 염두에 뒀다. 첫째는 앞서 말했듯 반도체를 만드는 일이 만만해져서 도전하는 사람이 많아지도록 하고 싶은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 현재 반 정도 달성한 것 같다.

둘째는 우리나라 스타트업이 외국에서도 알아볼 만한 글로벌 기업이 되는 사례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다. 글로벌 시장에 나서기 위한 이륙 준비를 이제 마친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일하고 싶은 국내 반도체 스타트업을 만들고 싶었다. 대학원 재학 당시 구글의 복지가 좋다는 말이 많았다. 근래엔 넷플릭스가 비슷하게 선망받는 기업인 것으로 안다. 이처럼 일해보고 싶은 반도체 기업을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세미파이브에는 2가지 원칙이 있다. 바로 ‘목적 지향’과 ‘완전 소통’이다.

목적 지향은 반도체 분야에서 혁신을 일으키겠다는 비전을 이루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반도체를 더 쉽고 싸고 빠르게 만들도록 하자는 말이다. 반대말이 ‘업무 지향’인데, A를 해야 한다고 지시받아도 회사의 목표에 합당한가에 대해 의구심이 들면 누구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게 두 번째 원칙인 완전 소통이다.

회사 레벨에서는 출퇴근 시간에 대한 규칙을 적용하지 않는다. 대면 작업이 필요한 업무라면 사무실에 시간 맞춰 출근해야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교통체증을 견디며 출퇴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재택근무 시스템은 코로나19 이전부터 활용하고 있었다.

또 하나는 직급으로 부르는 것을 금지하는 점이다. 이런 사내 문화는 소프트웨어 업체에는 일반적이지만 반도체 업체에서는 드문 일이다. 각자 영어 이름을 만들어 사용한다.

기업 원칙은 확고하지만, 목적에 맞게 잘 이행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숙제가 많다. 세미파이브 안에만 소프트웨어, 프론트엔드 설계, 백엔드 설계, 패키지,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영업 등 다양한 팀이 존재한다. 실적용에 있어서는 각 팀 리더들에게 많은 부분을 위임하고 있으며, 더 나은 환경과 효율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세미파이브 사무실 내부 모습

 

채용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

채용은 여러 경로를 통해 추천받고 있으며 신입 직원도 뽑고, 인재 육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활용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서 세미파이브의 비전에 공감하고 함께할 인재를 구하고 있다.

주로 전자공학, 반도체 공학 전공자가 많다. 플랫폼을 개발·운영해야 하는 업체라 컴퓨터 공학이나 소프트웨어 전공자들도 많은 상황이다.

국내 직원 수는 140~150명 정도이며, 파키스탄 쪽에서 25명 정도의 설계팀을 꾸려 과제에 본격적으로 함께하고 있다. 모두 합치면 인원은 160~170명 정도 되겠다.

 

시스템 반도체 시장을 어떻게 보는가?

전반적으로 반도체 업계에 대한 지원과 투자 상황은 좋아졌다. 그러나 국내 반도체 산업이 시스템 반도체 강국으로 가기 위한 청사진을 명확히 그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미국의 중견 반도체 기업처럼 반도체 대기업 중심으로 전략을 구성할 것인지, 이스라엘의 반도체 스타트업 성공 모델을 벤치마킹할 것인지 등 구체적인 방향과 비전을 공유하면 훨씬 효과적일 것으로 본다.

앞서 시스템 반도체 산업의 본질이 바뀌었다고 했으나, 애플리케이션마다 차이가 있다. 모바일 분야는 높은 비용을 들이더라도 신규 공정을 따라가며 국제적인 선두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을 IoT(사물인터넷)에 접목한 AIoT와 같은 새로운 사용 사례에서는 굉장히 도전적인 업체들과 투자자들이 나서줘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반도체 스타트업 사례처럼 말이다. 아직 AIoT 분야에서 세미파이브와 같은 플랫폼 업체와 IP 업체, EDA 툴 업체들의 협력 방안에 대해 정립해나가야 할 부분들도 많은 상황이다. 이런 협력 관계 형성이 필요하다.

1980년대에는 반도체 회사가 저마다의 팹(Fab)을 가지는 게 당연했고, 파운드리(Foundry)라는 개념이 없었다. 갈수록 팹 건설과 공정 개발에 드는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며, 이제는 기술 차별화 쟁점도 공정이 아닌 설계단으로 이동하고 있다. 퀄컴의 모뎀 기술, 엔비디아의 GPU 기술이 대표적이다. 이 속에서 TSMC는 팹을 플랫폼화해낸 것이다. 이런 일이 설계단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팹을 짓는 비용만큼은 아니지만, 아이디어만으로 혁신을 시도하려는 업체 입장에서는 비용과 리스크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제는 팹리스가 말처럼 가벼운 것이 아니다. 이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로 도전해 성공하거나, 실패하더라도 쌓은 경험에 기반해 다음 단계로 이동하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체제가 필요하다.

 

조 대표는 “국내 반도체 산업이 시스템 반도체 강국으로 가기 위한 청사진을 명확히 그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세미파이브의 다음 목표는?

플랫폼 회사는 고객사, IP사 등 다양한 스택홀더(StakeHolder)들과 함께 플랫폼의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기에 다른 기업에 인수되는 선택지가 아닌, IPO에 기반해 다음 단계로 레벨업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엔지니어링 리소스와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 세미파이브가 가진 시스템 반도체 발전 방향에 공감하는 업체들과 협력할 수 있는 기회는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시리즈 A로 유치한 투자에 기반해, 플랫폼을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영역에 맞춰 만들고 이를 전 세계에 공급할 수 있는 체제를 확립하는 중이다. 세미파이브가 만든 모멘텀에 힘을 합칠 회사들과의 협력을 위해 올해 하반기에는 다음 라운드 투자를 고민하게 될 것으로 본다.

 

- 이 글은 테크월드가 발행하는 월간 <EPNC 電子部品> 2021년 1월 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회원가입 후 이용바랍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저작권자 © 테크월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와 관련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