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경제 전쟁의 현황과 향방
상태바
한·일 경제 전쟁의 현황과 향방
  • TECHWORLD 편집팀
  • 승인 2019.09.06 0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팃포탯 전략보다는 상호 합의를 통한 상황 타개 필요

최근 한·일 간의 정치적인 대립이 경제 보복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양국 간의 신뢰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를 겨냥한 일본의 경제 보복에 우리나라는 아직 정부차원의 본격적인 대응은 자제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민간 차원의 불매운동 등이 이어지면서 상호간에 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메모리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를 생산하기 위한 소재 등이 대부분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기형적인 구조로 인해 일본의 수출 규제에 발목을 잡히게 됐다. 국내에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소재 공급선의 다변화 등을 꾀하고 있지만, 이는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일본의 대응에 따라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타격을 받게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일 경제 전쟁, 승부의 향방
최근 미디어를 통해 자주 소개되는 용어 중 ‘팃포탯(Tit for Tat)’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정치학이나 경제학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이후에는 생물학이나 진화론에까지 적용되고 있는 굉장히 광범위하게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이다.
팃포탯은 특히 ‘게임 이론(Theory of Games)’에서 반복되는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에서 가장 강력한 전략이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설명은 굉장히 거창하지만, 실제 전략은 굉장히 단순하고 명료하다. 우선 경기자는 처음에는 협력하고, 이후 배반에는 배반, 협력에는 협력으로 상대방의 전략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할 수도 있는 고전적인 전략이지만, 아직 이보다 효과적인 전략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팃포탯 전략은 상대방과의 승부에서 이기기 위한 효율적이고 입증된 전략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이 전략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상대방에게 승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은 서로 비협조적인 상대방과의 승부에서 아무도 전략을 수정하지 않는 균형상태를 의미하는 데, 이는 비협조적인 상태의 고착, 그리고 상호간 피해의 고착화를 의미할 수도 있으며, 다시 말해 최선책이 아닌 ‘차선책’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죄수의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팃포탯 전략이 아닌, 상호간 정보의 공유와 담합을 통해 서로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경제 전쟁에서 게임 이론의 주요 전략 중 하나인 팃포탯이 시도되고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경제 전쟁에서 게임 이론의 주요 전략 중 하나인 팃포탯이 시도되고 있다.

한·일 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경제 전쟁에 게임 이론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게임 이론은 상대방과 동등한 상태에서 동등한 카드를 들고 하는 것이지만, 실제 경제에서는 서로 다른 카드를 제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게임 이론은 단순화를 위해 주변 환경에 대한 고려가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실제 경제는 분쟁 당사국 2개 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특히 지금과 같이 전세계가 서로 복잡하게 얽힌 경제 구조에서는 주변국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으며, 한·일 관계의 경색을 틈타, 중국이나 대만 등의 경쟁 업체가 국내 반도체 업체들을 위협할 수도 있다.
물론 우리가 일본의 경제 보복에 단호히 대응해 규제 전면 철폐와 같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결과를 얻기까지는 우리 또한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또한, 경쟁 국가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승리가 아닌 조속한 사태의 해결일 것이다.
하지만 일이 항상 최선의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은 아니기에 최악의 상황에 대해서도 충분한 대비가 필요하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소재 국산화, 그리고 다른 하나는 수입선 다변화다.
해외로부터의 소재 수급이 어려워질 경우를 대비해 관련 소재를 국내에서 수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물론 좋은 방법이지만, 소재 생산을 위한 원자재 또한 수입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점, 그리고 글로벌 경쟁 시대에 효율성을 따지지 않고 국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다는 것은 자칫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반면 수입선 다변화 또한 반도체 소재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한 좋은 방법이다. 최근 한·일, 미·중 경제 마찰과 같은 복잡한 환경이 조성될 경우에는 위험 분산을 위해 다양한 경로로 소재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물론 국내 반도체 업체들도 이런 문제를 모르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일부 소재의 경우 절대적으로 일본이 우위를 보이고 있는 분야라는 점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품목 3가지 중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일본이 전세계 점유율 90%, 에칭 가스는 70%를 점유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다변화할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굉장히 제한적이다. 일본이 높은 점유율을 보이는 분야는 국내 수급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고, 그 외의 분야는 다변화하는 이원화된 방법을 취해야 할 것이다.

국내 반도체 산업은 일본의 소재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며 발전해 왔다.
국내 반도체 산업은 일본의 소재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며 발전해 왔다.

아직은 탐색전, 확전 이전에 해결책 찾아야
지금까지 한·일 양국은 본격적인 카드는 꺼내지 않고 서로 목소리만 높이고 있는 형세다.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 3개 중 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는 이제 삼성전자에서 도입이 이뤄지고 있는 EUV를 위한 것이기에 삼성전자도 양산보다는 시범 생산에 필요한 소재라고 보는 것이 옳으며, 이는 삼성전자의 주력 제품인 DRAM이나 NAND 플래시 생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소재가 아니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더욱 그렇다. 이 소재는 아직 양산조차 하지 않고 있는 폴더블 스마트폰을 위한 소재로 갤럭시 폴드가 9월 출시 예정이라고 하지만, 가격 등을 고려했을 때 초기부터 많은 물량이 판매될 것으로 예상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화이트 리스트 제외는 이와 달리 본격적인 칼을 뽑아든 것이라고 봐야 하지만,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만 했을 뿐 일본도, 우리나라도 어떤 품목을 제한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이는 경제적, 정치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대응해 나갈 것이라는 양국 정부의 판단 때문일 것이다.
이후에도 이런 팃포탯 전략은 양국에서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은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고 본격적인 개전은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어떤 계기로든 상대방이 칼을 꺼내는 것과 동시에 본격적인 팃포탯이 시작될 것이다.
다만 이런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상황을 해결하려는 양국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물론 한번 깨진 신뢰관계가 다시 형성되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한·일 모두에게 피해가 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피해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표 1] 일본의 제재와 한국의 대응 현황
[표 1] 일본의 제재와 한국의 대응 현황

한국의 반도체 업계가 일본의 소재에 의존하게 된 이유
1990년대부터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불황이 불어왔던 2000년 대 초반까지는 일본이 반도체 산업 대부분의 분야에서 한국보다 우수했다. 부품, 장비 등의 기술 산업의 기반이 되는 부분부터 최종 제품 단계까지 일본이 글로벌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폐쇄적인 내수 산업 구조로 인해 반도체, 디스플레이, 모바일과 같은 분야에서 한국에게 밀려나고 만다.
정부는 시기를 나눌 것 없이 꾸준히 반도체 부품 산업에 투자해 온 흔적이 보이나, 중소 부품 업체들 측에선 ‘허울뿐인 투자’라는 반응이 대다수다. 모바일 시장과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에 밀려 투자의 혜택을 받지 못한 부품 산업은 일본의 소재나 부품을 수입해 와 비교적 간단한 공정을 거친 후 국내 업체에 납품하는 방식의 산업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애초에 일본과 몇십 년의 기술 격차가 나 있던 국내 부품·장비 시장이 국가나 대기업의 부품 산업 살리기 식의 대대적인 투자도 없이 자가발전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일본은 이 분위기를 흘려보내지 않았다. 2000년 대 초 반도체 산업에서 쓴 맛을 본 후 부품·장비 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관련 제품의 관세를 대폭 줄이는 등 적극적으로 수출 시장을 형성한다. 국내의 반도체 공정 기업 입장에선 더 싸고 품질 좋은 일본 기업의 부품을 이용하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7월 2일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의하면 올해 5월까지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수입한 소재 ‘포토레지스트’의 91.9%가 일본 제품이다. 이외에도 스미토모, 신에츠, JSR 등의 반도체 부품·장비 시장에서는 일본이 글로벌 시장의 약 90%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 반도체 부품·장비 산업을 부흥해야 한다는 말만 20년째 이어오며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 배제 발표를 두고 무역갈등을 벌이고 있다.

반도체 업계가 전쟁의 주 전장이된 이유
일본은 한국 정부가 7개월간의 긴 대법원 판결 끝에 내린 ‘강제징용 해법’ 판결 건에 대한 거부 의사 표출과 함께, 한국을 대상으로 무역보복을 강행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부정기적으로 개최되던 한일 간 수출통제협의회가 지난 3년간 열리지 않음을 빌미로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한다는 입장이다.
반도체 산업에서는 소재를 한 번 수입해오면 최소 3개월 이상의 공정 기간을 거쳐 최종품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3개월마다 한 번씩 부품이 투입되는 것이 아니다. 반도체 공장은 높은 수율을 확보하기 위해 24시간 내내 가동된다. 즉, 7월 초 규제로 부품을 수입할 수 없게 된 이상, 하반기 국내 반도체 기업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일본이 전 세계 부품·장비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반도체 강국을 외치던 한국에 관련 품목 수출 규제를 두는 것은 최고의 수로 볼 수 있다. 당국은 일본에 대응해 국내 업체와의 계약 체결 지원, 일본 외 중국, 유럽 등과의 거래 물량 확보를 위해 힘쓰고 있으나, 국내의 반도체 기업들은 부품의 완성도 측면에서나 대량 공급 측면에서 모두 어려운 상황으로 보고 있다.
경기연구원이 8월 7일 발표한 ‘한일갈등의 역사적 기원과 정치적 쟁점’에 의하면 일본 아베 총리가 총선을 앞두고 변화하는 남·북간 관계와 북·미간 관계를 두고 한국의 경제 상황과 위안부 문제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며, 일본의 과거사 인정 없이는 한일의 갈등은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도체 소재 분야의 탈 일본
반도체 소재 분야에서 탈 일본이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전문가들은 “시간이 다소 걸릴 뿐, 유의미한 수준의 탈 일본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답변을 내놓고 있다. 이번 이슈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는 이미 오랫동안 일본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낮춰왔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대일본 수출입 지표다.
‘한국투자증권’이 8월 발행한 경제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상품 교역량 기준 1990년대 한국의 일본 수출과 수입 비중은 각 19.4%와 26.6%로 상당히 높은 의존도를 나타냈지만 이 수치는 2018년 수출 5%, 수입 10.2%로 절반 이상 크게 떨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수출입 지표를 현재 일본이 핵심 타깃으로 삼고 있는 소재부품으로 한정해도 수치는 비슷하다. 90년대 34% 수준이었던 소재부품 분야 일본 의존도는 2018년 16.3%로 역시 절반 정도 감소한 상황이다.
다만 수출입 불균형의 심화로 우리 측 무역 적자는 증가하게 됐는데, 향후 만약 우리가 수출까지 포함한 탈 일본을 준비하게 된다면 이점은 오히려 한국에 유리한 조건이 된다. 또 국가 경제는 성장한 반면 일본에 대한 수입 의존 비중이 크게 낮아졌다는 사실 역시 지속적인 국산화와 수입선 다변화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아울러 강력한 탈 일본 드라이브가 걸린 이 시점부터는 일본에 대한 경제·산업 분야의 자립 가속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당장 일본이 아니면 대체가 불가능한 품목들인데, 한국을 향한 일본의 3대 규제 품목인 고순도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중 포토레지스트를 제외한 두 가지는 현재도 어느 정도 대체가 가능한 품목이다. 순도와 품질 검증 문제가 남아 있지만 고순도 불화수소는 중국 업체나, 중국 내 일본 공장을 통해 어느 정도 조달할 수 있는 상태이며,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도 대만이란 대체 카드가 있다. 가장 까다로운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일본이 8월 7일과 13일, 2차에 걸쳐 임시 수출 허가를 내주며 급한 불은 꺼진 상황이다. 이번 수출 허가로 삼성전자는 약 6개월분 이상의 재고를 확보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아주 여유롭진 않지만 외국이나 국내 기업 등을 통해 대체품을 찾아볼 수 있는 시간이다.
또 중요한 건 대체가 쉽지 않다는 것이지 영원히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8월 5일 반도체와 부품 계열사 사장단을 소집해 “긴장은 하되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위기를 극복하자. 새로운 기회를 창출해 한 단계 더 도약한 미래를 맞을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자”란 말을 한 바 있다.
또 반도체 생산 공정에 들어가는 일본산 소재 상당수를 국산이나 제3국의 소재로 교체하기로 결정했다는 말도 들려온다.
즉, 중단기적인 손해를 보더라도 기업 스스로 약점의 싹을 잘라 내겠단 의지가 있다는 말이다. 삼성은 중소기업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잠시 주춤하더라도 결코 무너지진 않는다. 궁극적으로 이번 위기를 극복하고 일본에 가려져 있던 국내 강소기업에도 협력의 기회가 돌아간다면, 경제·산업 분야의 자립도를 높임과 함께 우리 경제에도 내수 성장의 새로운 발판이 마련되는 셈이다.

반도체 소재 분야의 탈 일본은 이미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지만, 이번 경제 전쟁의 여파로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소재 분야의 탈 일본은 이미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지만, 이번 경제 전쟁의 여파로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완전한 탈 일본의 시기
완전한 탈 일본의 시기를 아직 단언하긴 이르다. 그러나 기업뿐 아니라 정부의 의지도 강력하기에 그 시기는 생각보다 빠를 수 있다. 일본이 2차 수출 규제를 결정한 지난 8월 2일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우선 일본의 수출통제 대상물자 1194개 중 159개 품목을 식별해 관리 품목으로 지정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들 품목에 대해서는 대일 의존도와 파급 효과, 국내외 대체 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두고 맞춤형 대응을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또 수출 규제에 따른 2732억 원 규모의 추경을 조기 집행하고 대체 기술 R&D에 따른 세액 공제 혜택을 강화한다. 지금까지는 신규 개발 과정에 앞서 시험계획서를 제출하고, 장외영향평가와 위해관리 계획서를 별도로 승인받아야 했지만, 수출 규제와 관련된 대응물질 개발은 당분간 선(先) 제조를 인정하기로 결정했다. 7조 8000억 원 규모의 정부 주도 R&D 투자도 예정돼 있다.
일본 수출규제 품목과 관련한 국내 유망 기업들도 탈 일본을 가속할 유망주로 떠오르고 있다. 솔브레인은 고순도 불화수소(HF, 고순도 불화수소)를, 동진쎄미캠은 포토레지스트에서 대체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이녹스첨단소재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생산 기업으로 알려지며 영업익이 80% 이상 급증하기도 했다.
물론 정부 투자나 국내 기업이 이른 시기에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리라 기대하기만은 어렵다. 물리적으로도 수입 대체품에 대한 검증은 일러야 9월 중순 이후부터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이는 반도체의 경우 한번 공정에 들어가면 완제품 생산까지 통산 50일 정도가 소요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품질 검증에 통과하더라도 대량 생산 가능 여부와 기존 설비 구조 변경까지 감안하면 유의미한 수준의 자립은 올해를 훌쩍 넘길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결과적으로 탈 일본의 속도는 정부와 기업이 유기적인 협력, 전사적인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반도체 산업구조 변화
이번 경제 전쟁은 한국과 일본의 외교 선상에서 발생한 마찰이지만, 그 여파로 일본의 소재부품 생산 기업들은 대외적으로 신뢰를 잃게 됐다. 이번 경제 전쟁의 승패와 관계없이 장기적으로 일본 기업으로부터 국내 기업으로 무게추가 이동하는 리쇼어링(Reshoring) 발생이 예상된다. 또 향후 일본과의 관계가 정상화되더라도 일본 기업이 지금 같은 영향력과 지위를 다시는 누리지 못하리란 사실 역시 자명하다.
이 경우 장기적으로 타격을 받는 건 일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DRAM은 72.3%, NAND 플래시는 45.1%의 점유율을 지니고 있다. 만약 두 기업이 수입선을 완전히 대체한다면 일본의 관련 수출 업체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고객 두 곳을 영영 잃게 된다. 실제로 현재 일본에서는 한국에서 대체 가능한 품목을 다루고 있는 업체의 경우 주가에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데, 8월 13일 기준 대체 가능한 고순도 불화수소를 생산하는 일본 모리타 화학공업의 지주회사 모리타홀딩스의 주가는 한달 전보다 16.7% 하락했으며 쇼와덴코 역시 주가가 9% 하락했다. 반면 불화수소를 공급할 가능성이 있는 국내 업체 솔브레인의 주가는 30% 급등했다.
한일 반도체 산업구조의 향방은 앞서 언급한 대체품들의 품질 평가가 완료되는 9월 이후 명확해질 것으로 보인다.
만일 국내 기업이나 제3국의 제품이 현재 일본에서 공급되는 소재와 부품을 확실히 대체할 경우, 변경된 소재에 맞춰 설비를 최적화하는 과정이 최소 수개월 이상 소요되므로 일본 기업이 이를 다시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반대로 적절한 시기에 대체품이 발굴되지 않고 일본과의 외교 전쟁이 적절한 선에서 화해를 이룬다면 지금의 납품 구도는 크게 변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제조 기업 입장에서는 결국 최고의 품질과 효율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파트너와 일해야만 오랫동안 쌓아온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의 감정적 싸움은 원만하게 마무리하고 현실적인 부분에서 타협하자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학계와 증권가에서도 “단기간에 반도체 완전 국산화를 달성한다는 것은 낭만주의”란 분석이 잇따른다. 물론 일본과의 관계를 다시 개선한다면 당연히 재발 방지를 위한 여러 겹의 철저한 안전 대책이 요구된다.

현대의 제조업은 글로벌 공급 유통망을 통해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은 상호 보복이 아닌 협력적인 관계를 추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현대의 제조업은 글로벌 공급 유통망을 통해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은 상호 보복이 아닌 협력적인 관계를 추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일본의 도발은 언제까지?
일본의 이번 도발은 표면적으로 보면 한국의 위안부 합의 일방 파기와 일제 강제징용 배상권 판결에 따른 반발로 보이지만, 역사와 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그 뿌리가 얕지 않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 정권은 보수적이고 강한 일본을 내세우는 보수 우파로 분류되며, 아베 총리가 신봉하는 것으로 알려진 ‘요시다 쇼인(吉田 松陰)’ 역시 19세기 정한론(조선정복)을 주창하고 이토 히로부미를 키워낸 인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본 정권은 한국을 동등한 파트너로 바라보기 보다는 발아래의 협력자로 만들려는 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이 만약 이번 수출 규제를 다시 한번 한국의 머리 위로 서고자 꺼내든 카드라면 향후 경제적 정세와 관계없이 도발의 수위가 지속되거나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보다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한국과 일본이 서로의 자존심을 적당히 세워주며 출구 전략을 찾는 방향이다. 최근 일본이 두 차례에 걸쳐 포토레지스트 임시 수출 허가를 내준 것도, 문재인 대통령이 8.15 광복절 담화를 통해 ‘반일’보다 ‘극일’의 제스처를 취하며 한층 유화적인 모습을 보인 것도 양국 간 긴장 완화의 기미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여기에 한국이 지속적인 국산화, 수입 다변화 움직임을 보이며 일본의 예상과 달리 현 상황을 잘 이겨내는 모습을 보이며 일본 입장에서도 무작정적인 강공을 이어갈 명분이 부족한 입장이다.
외교에는 명분과 자존심, 그리고 시기가 필요하다. 일본이 실익 계산을 마치고 자존심을 지키며 도발을 종식할 대외적인 ‘판’이 필요할 경우 이르면 9월 17일부터 열리는 UN 총회를 통해, 가깝게는 11월 16일 칠레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 멀게는 2020년 7월 도쿄 올림픽이 다툼 종식의 기점이 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