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일이 필요한 지점, 재팬 스트라이크 존에 주목하라

[테크월드=박지성 기자] (편집자주: 한장TECH는 테크월드 기자들이 주요 뉴스를 한 장의 슬라이드로 제작하여 제공하는 테크월드만의 차별화된 독자 콘텐츠입니다.)

일본 산업 경쟁력을 논의할 때, 자주 언급되는 2가지 단어가 있다. 바로 1억명 이상의 인구를 지닌 ‘거대 내수시장’과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을 뜻하는 ‘모노즈쿠리’가 바로 그것이다. 안정적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최고 품질을 지향하는 일본 기업들은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 도약한다. 이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소위 ‘일본의 기업의 성장 방정식’이다.

그러나 이런 성장 방정식이 유효하다면, 본지가 지난 특집을 통해 살펴 본 바와 같이 한국은 어떻게 전자부품 산업에서 일본 기업들을 이길 수 있었던 걸까? 본지는 ‘한장 TECH’를 통해 국내 전자부품 업계의 극일의 방향성을 지속적으로 도출해 보고자 한다.

 

도쿄 타워와 동경의 야경 (자료=게티이미지)

ㅇ 성장 방정식의 선순환

거대 내수시장과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은 비단 한국 뿐만이 아니라 많은 국가와 기업들이 부러워 하는 일본만의 장점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일본의 장점이 매번 빛을 발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이 장점들이 선순환 구조로 이어지는 경우를 살펴보자.

선순환 구조 하에서 일본 기업들은 1억명 이상의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성장한다. 특유의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다수의 기업들이 까다로운 일본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내수시장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형성돼 있기 때문에 1위 기업만 살아남는 구조도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다수의 기업들이 각자의 개성을 바탕으로 특화된 경쟁력을 구축하며 발전한다.

이렇게 성장한 기업들은 이내 세계 시장에서 그 경쟁력을 인정받고 입지를 확보하게 된다. 이 후, 해당 기업들은 세계 시장의 새로운 피드백을 일본 국내 시장에 소개하며 일본 내수 시장을 더욱 확대 강화하며 선순환 구조를 이룬다. 이렇게 일본 기업들은 계속 성장할 수 있다.

ㅇ 성장 방정식의 오작동, 악순환의 작동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바로 악순환 구조의 형성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안정적 내수시장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일본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의 니즈와 기술 변화에 상대적으로 둔감하게 된다. 강력한 장인정신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작동한다. 유망 신기술의 선제적 도입보다는 기존 기술의 끊임없는 개량을 통해 대응하려는 쪽으로 기술 진화를 독려한다. 이 과정에서 위기 신호가 일부 발생하지만, 일본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 내수시장이 있기 때문에 일본의 기준과 규격에 대응하며 일정 수준의 매출은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일본 기업들은 점차 글로벌 시장에서 도태되고, 일본 특유의 틈새 시장에 부응하는 수준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 악순환의 전형적 사례가 앞서 “[긴급진단] 한국 전자부품 산업, 극일(克日)은 가능한가 ①”를 통해 살펴 본 반도체, 디스플레이, 휴대폰이다. 반도체 시장은 이미 대형 컴퓨터가 아니라 소형PC 중심의 DRAM으로 넘어 갔으나 일본은 이 추세에 맞추지 못했고, 디스플레이에서도 대형 디스플레이, OLED 트렌드에 뒤늦게 대응했으며, 스마트폰을 포기하고 일본 시장에만 맞춤화 된 피쳐폰에 집중했다. 그렇게 일본 전자기업들은 도태됐다.

 

ㅇ 일본 산업의 경쟁력 극단화에 주목

대체 어떤 차이와 환경이 동일한 성장 방정식에서 이렇게 다른 결과를 낳게 하는 것일까? 도쿄 이과대학의 와카바야시 히데키 교수는 이 결정적 차이를 “재팬 스트라이크 존”으로 설명한다.

시장 규모 측면에서 기기의 수가 1억대를 넘지 않고, 제품의 교체 사이클이 5년 이상 되는 산업 영역은 앞서 언급한 일본의 성장 방정식이 원활하게 작동한다. 그러나 그 이상의 시장 규모에 도달하는 경우 그리고 제품 혁신 속도가 5년 이하로 단축되는 경우 일본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도태되고 만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경제산업성이 발표한 자료를 포스코경영연구소가 분석한 결과, 이런 일본의 경쟁력 극단화는 매우 뚜렷하게 드러난다. 시장 규모가 10조엔 이상인 산업의 경우, 일본 기업들의 점유율은 주로 20%에 머물러 있는 반면 시장 규모가 1조엔 이하인 산업은 평균 점유율이 80%에 육박할 정도로 압도적 경쟁력을 보인다.

 

ㅇ 재팬 스트라이크 존을 허물어라

와카바야시 교수의 가설처럼, 한국 기업들이 극일을 달성한 반도체, 디스플레이, 휴대폰 등의 영역은 모두 거대 시장규모이며, 어떤 산업보다도 빠른 혁신을 자랑하고 있다. 해당 산업에서 부단히 노력한 한국 기업들의 성과를 폄하할 수는 없겠지만, 경쟁 관점에서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면 해당 영역은 소위 일본 기업들이 쉽게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전장(戰場)이었던 것이다.

이런 흐름을 이해하게 된다면, 현재 일각에서 외치고 있는 “일본을 이길 수 있다!”는 구호는 조금 냉정하게 바라 볼 필요가 있다. 극일의 경험과 자신감은 물론 우리의 소중한 재산이겠으나, 이는일본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승산 확보가 가능한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현재 우리가 일본 기업들을 극복해야 하는 소재와 부품 영역은 여전히 일본 기업들에게 유리한 전장이다. 따라서 해당 산업 전체에서 일본 기업들을 극복한다는 것은 달성 가능하지도 않고, 효율적이지도 못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의 영역은 존재한다. 현재는 재팬 스트라이크 존에 존재하지만, 빠른 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는 세부 시장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그동안 일본이 압도적 우위를 보여왔으나 삼성 등이 빠른 속도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이미지 센서 영역, 자동차의 전장화와 급격히 시장 규모가 확대되고 있는 MLCC(적층 세라믹 콘덴서) 등이 있다. 해당 산업들은 높은 성장세 그리고 빠른 혁신으로 재팬 스트라이크 존에서 벗어나고 있는 산업일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다른 접근법도 존재한다. 현재는 제품 혁신 주기도 더디고 시장 규모도 작지만, 국내 기업들의 파괴적 혁신을 통해 단기간 내 시장 규모를 확대하고 혁신을 가속화하는 전략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 전자부품 산업, 극일은 가능한가'는 다음주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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