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인공지능을 구분하기 위한 AI의 조건

[테크월드=이건한 기자] 요즘 기업 홍보 문구에 빠지지 않는 키워드가 하나 있다. 바로 인공지능(AI)이다. '~AI를 접목했습니다'라는 설명은 이제 식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물론, AI가 대세인 만큼 이런 흐름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끔은 너무 과장됐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공상과학 기술로 여겨지던 AI를 너도나도 하고 있다니, 과연 그들이 말하는 AI를 모두 진짜 AI라고 할 수 있을까? 

 

2019년 인도에서는 ‘Engineer.ai’란 스타트업이 ‘AI로 모바일 앱 개발에 필요한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다'고 홍보하며 투자금 약 3000만 달러를 모았다. 우리 돈 350억 원 정도의 적지 않은 돈이다. 그런데 이후 드러난 놀라운 사실은 그들의 주장이 전부 거짓이었다는 점이다. 실제 Engineer.ai의 AI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 

같은 해 영국 벤처캐피털 MMC벤처스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AI 기업으로 분류된 유럽의 스타트업 중 40%는 실제 비즈니스를 수행함에 있어 AI를 중요하게 활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AI 기업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일반 소프트웨어 회사들보다 적게는 15%, 많게는 50%나 많은 투자금을 유치하고 있었다. 

이런 사례들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전 세계가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지금, 생각보다 많은 기업들의 가짜 AI 마케팅이 횡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 지금 우리 주변에도 말만 번지르르한 AI 기업이나 서비스들이 교묘히 섞여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물론 ‘모르고 쓰면’, 혹은 ‘모른 척 넘어가면’ 편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로 말미암아 찾아들 역풍이다. 별볼일 없는 가짜 AI가 늘어날수록 AI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는 낮아질 것이며, 나아가 AI 산업 전반에 대한 불신과 투자 위축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과거 인공지능이 몇 번의 혹독한 겨울을 맞이했던 이유도 당시 AI 기술 수준이 부풀려진 대중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거.. 인공지능? '때깔 고운 자동화'의 함정 카드

그러면 무엇을 진짜 AI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학계에선 인공지능을 크게 ‘강(强) 인공지능’과 ‘약(弱) 인공지능’으로 구분하고 있다. 강 인공지능은 인간에 비견되는 지성과 자유 의지를 지닌 AI이며, 약 인공지능은 일부 특화된 영역에서만 인간보다 나은 능력을 발휘하는 AI다. 그러나 현재 AI로 분류되는 것들은 모두 약 인공지능이다. 한때 강 인공지능의 도래를 예견케 했던 딥마인드의 바둑 AI '알파고'조차 결국 바둑 하나에서만 뛰어난 약 인공지능일 뿐이었다.

이세돌 9단과 세기의 대결을 펼쳤던 딥마인드의 바둑 AI 알파고

그런데 이렇듯 약 인공지능이 전부인 시대에, 이것만으로 AI를 구분하려고 하니 그 경계가 대단히 모호하게 느껴진다. 특히 정교하게 만들어진 최신 자동화 제품과 AI 융합 제품들은 겉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현재 AI 융합 제품들이 자랑하는 핵심 기능들도 대부분 스마트한 자동화 처리에 그 기반을 두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다 보니 포장만 잘하면 평범한 자동화 기술도 어느새 최신 유행을 선도하는 AI로 둔갑하는 일들이 어렵지 않게 일어날 수 있다.

 

진짜 인공지능의 근간은 ‘데이터’

현장의 최일선에서 AI를 다루는 이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진짜 AI 기업과 가짜 AI 기업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에 대해 한국인공지능협회 김현철 협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해당 기업이 목표로 삼은 시장 안에서 직접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는지, 그에 대한 명확한 학습 목표를 설정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또 수집한 데이터와 머신러닝을 활용해 그 결과를 제품에 녹여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참조 - 이상하게, 스타트업의 향기가 난다. ‘한국인공지능협회’

AI 면접 솔루션 ‘뷰인터’를 서비스하며 네이버 D2SF,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등의 투자를 유치한 제네시스랩 이영복 대표 역시 데이터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이 대표는 “AI 기업이라면 제품 개선에 필요한 데이터 수집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파이프라인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타사 API에 기대지 않는 자체 AI 기술의 확보 여부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당면한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과정에 AI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지도 살펴보라"고 말했다. 특히 기업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AI를 활용하고자 하는 의지의 중요성은 김현철 협회장도 함께 강조한 내용이다. 

참조 - ‘AI 면접’이 잠깐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을 이유

두 전문가의 말처럼 누군가 “우리는 AI 기업”이라고 말하려면 적어도 그들이 다루는 분야에 대한 충분한 데이터 확보 여부와, 그를 활용한 지속적인 제품 개선이 이뤄지고 있는지 증명할 필요가 있다.

생각해 보면 인간의 지능도 성장 과정 속에서 얻는 지식과 반복된 경험(데이터)을 토대로 더 나은 행동이 무엇인지를 학습하며, 이를 삶에 적용하는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조금씩 성숙해지는 과정을 밟는다. AI도 마찬가지다.

데이터 수집과 학습, 활용의 중요성이 진짜 AI와 가짜 AI를 가른다.

결국 진짜 AI 기업에 가까울수록 기능은 물론, 데이터의 중요성에도 많은 무게를 두게 된다. 반면, 가짜 AI 기업이나 AI를 겉핥는 기업이라면 그들은 자신들의 보유한 데이터의 품질이나 가공 능력에 대한 질문에 자신 있는 답을 내놓지 못할 것이다. 아울러 그런 측면에서 기업이 내부에 AI 기반 데이터를 관리하는 전문 인력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그것에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좋은 판단 기준이 될 것이다.

 

충분한 열매를 얻으려면 제때 잡초를 제거해야

현재 곳곳에 숨어 있는 가짜 AI 기업들은 전체 AI 산업의 성장을 방해하는 암적인 존재들이다. 이영복 대표는 “AI는 실제 데이터 검증과 고객 요구 실현 등에 많은 연구와 오랜 투자가 필요한 영역이다. 여기에 가짜 AI 기업들이 편승해 시장에 잘못된 인식을 만드는 일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김현철 협회장은 “기술과 별개로 전통적인 룰 베이스(Rule base) 방식의 챗봇 역시 인간과 상호작용한다는 인터페이스 측면에서는 대중이 문화적으로 익숙한 AI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다만, 아무리 AI 마케팅들 한다고 한들 그들의 기대만큼 기술이 함께 발전하지 못하면 그 산업은 곧 꺼져버리고 만다. 거짓말은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역시 과장된 AI 마케팅을 펼치는 기업들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지금의 인공지능은 긴 겨울을 보낸 끝에 이제야 지속 가능한 봄을 맞이한 새싹에 비유된다. 다만 그 싹이 튼튼히 뿌리내리고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양분을 탐내는 주변 잡초들에 대한 적절한 제초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다. 어렵게 찾아든 AI 붐에 올라타 그릇된 이득을 취하는 이들에 대한 보다 세밀한 검증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테크월드 - 월간<EMBEDDED> 2020년 3월호 TECH WAVE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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