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재산업 혁신은 수출 아닌 제조산업의 리스크 줄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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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소재산업 혁신은 수출 아닌 제조산업의 리스크 줄이는 것”
  • 김경한 기자
  • 승인 2019.12.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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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반도체산업협회(KSIA) 안기현 상무

[테크월드=김경한 기자]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의 세계 메모리 시장 점유율은 63.7%에 달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시스템 반도체의 파운드리(제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팹리스(설계) 분야에서는 세계 시장의 3.1%만 차지할 정도로 미비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동안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으로 제조 분야는 빠르게 따라잡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한 설계 분야에서는 역량이 부족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일본 정부가 지난 7월부터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에 나서면서 반도체 산업에 대한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비록 최근에 3개 품목에 대한 수출을 허가했다고 해도 일본 정부가 자기 입맛에 따라 언제 또 다시 수출 문을 닫아 버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 시스템 반도체 팹리스와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육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안기현 상무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안기현 상무

시스템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보다 1.5배 큰 시장으로 특정산업의 호황이나 불황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안정적 시장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수요자의 요구사항에 맞춰 제품이 생산되는 주문형 방식이기 때문에 수요-공급 불일치에 따른 급격한 시황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시스템 반도체가 인공지능·IoT·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 실현을 위한 핵심부품으로 주목받으면서 지속적인 성장이 전망되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의 세계적 추세를 살펴보면, 미국은 시스템 반도체 팹리스의 세계 10대 기업 중 6개를 보유했으며 세계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을 정도로 이 분야에서 범접할 수 없는 기술 수준에 도달해 있다. 파운드리 분야 1위 국가인 대만의 미디어텍이 팹리스 분야에서 세계 3위에, 노바텍이 9위에 올라 있을 만큼 팹리스 시장에서도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그동안 반도체 시장에서는 맥을 못 추던 중국이 시스템과 메모리 반도체 동시 육성 전략과 거대 내수시장에 힘입어 세계 팹리스 시장에서 3위국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세계 팹리스 시장 점유율이 3.1%에 그치고 있으며, 세계 50위권 내에는 단 1개 기업만 존재할 정도로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맥을 못추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4월 30일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9개 정부 부처가 공동으로 ‘시스템반도체 비전과 전략’을 발표하고, 2030년까지 종합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5대 중점대책을 수립한다고 밝혔다.

더군다나 그동안 반도체 소재는 일본에서 사들이고 제조 분야에만 집중해 왔던 국내 반도체 산업은 지난 7월부터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가 지난 8월 포토레지스트, 지난 9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11월 불화수소까지 수출을 허가했지만 이는 WTO 분쟁에서 유리한 자리를 선점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며 불안요인은 상존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과기정통부와 산업부 등의 정부 부처는 지난 8월 27일 ‘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 투자전략 및 혁신대책’을 발표해 반도체 산업의 수출규제에 대응할 연구개발 중심의 근본적 해결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안기현 상무를 만나 시스템 반도체 팹리스와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혁신을 위한 정책을 추진할 경우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Q. 한국반도체산업협회(KSIA)가 한국반도체연구조합(COSAR)을 1991년 12월부터 통합 운영하는 것으로 안다. 두 단체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두 단체는 공통적으로 반도체산업 각 분야의 지속적이고 균형적인 육성발전을 위해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반도체 관련 업계의 유대를 강화하는 일을 진행한다. 이를 통해 반도체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는 동시에, 우리 국가와 국민 경제의 향상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두 단체는 인사와 회계 등 거의 모든 업무를 통합 운영하고 있지만, 태생적으로는 관계부처부터 사업성격까지 엄연히 다른 조직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산업통상자원부가 관계부처로 회원사의 공동 이익을 정부에 대변하고 공동의 의견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반도체연구조합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관계부처로 정부의 연구개발 사업을 돕는 연구개발수행평가단의 성격을 띠며, 기업이 연구개발 시에 의견을 수렴하고 수요조사를 실시해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Q. 두 기관이 수행하는 업무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반도체 장비·재료·부분품의 성능평가 사업을 지원한다. 국내 반도체 장비·재료·부분품 업체에서 개발한 제품은 수요기업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거나 생산라인 투입을 통해 수율과 내구성을 비교 평가하고 인증받아야 하는데 이런 사업을 지원하는 것이다. 

더불어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반도체 산업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해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상생협력을 지원하는 역할도 한다. 웨이퍼를 직접 생산하지 않는 소재·장비 개발 업체는 연구개발용으로 필요한 패턴 웨이퍼를 얻는 일이 쉽지 않다. 이럴 때 한국반도체산업협회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와 같은 웨이퍼 생산업체로부터 패턴 웨이퍼를 공급받아 소재·장비 업체에 전달해 연구개발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돕는다. 

상생협력 지원 개념도

한국반도체연구조합의 대표적인 사업은 ‘첨단센서 2025 포럼’ 운영이 있다. 이 포럼은 국내 센서산업의 취약성을 극복하고 센서산업을 국가핵심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산·학·연의 협력사업을 발굴하고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 정보를 공유하는 행사다. 최종적으로는 포럼에서 나온 의견을 모아 센서산업 활성화를 위한 지원정책과 규제개선안을 발굴하고 산·학·연 애로사항을 파악해 구체적인 해소방안을 마련한다. 

 

Q. 시스템 반도체 산업에서 팹리스는 미국이, 파운드리는 대만이 주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은 시스템 반도체 산업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 전자제품이 나올 때마다 새롭게 시스템 반도체를 개발해 왔다. 특히 시스템 반도체의 설계 분야는 메모리 반도체와는 다르게 ‘창의’를 발휘해야 하는 부분이 많은데, 세계에서 최고의 머리를 가진 석학들이 세계 1위 국가인 미국에 몰리다 보니 이를 쫓아 가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만은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 한 기업만으로도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 기업까지 합하면 60%를 넘어선다. 국내 파운드리 업체로는 삼성전자가 20%에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대만의 파운드리 발전은 미국의 반도체 정책에 기인한다. 미국의 기본적인 반도체 정책은 설계(팹리스)는 자국 내에서 하고 공장(파운드리)은 해외에 짓는다는 것인데, 미국이 파운드리 국가로 점 찍은 곳이 대만이었다. 그래서 대만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파운드리 공장을 지었으며 그 선점효과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년밖에 안 됐기에 TSMC가 앞서는 건 당연하다고 볼 수 있으며, 시간적 간극을 얼마나 줄여나가느냐가 승부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는 별도로 초미세공정과 같은 첨단 제조 기술에서는 TSMC와 대등한 경쟁을 벌인다는 점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하겠다. 

 

Q.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에 133조 원을 투자해 이 분야에서 글로벌 1위를 달성하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정부에서도 ‘시스템반도체 비전과 전략’을 통해 2030년까지 종합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5대 중점대책을 발표했다. 우리나라가 시스템 반도체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 선행돼야 하는가?

우리나라는 파운드리 분야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이루고 있으나, 설계 분야가 취약하므로 이 분야에 집중해서 정부의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 

먼저 설계 분야에서 기업이 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사실 근로시간 제한 문제에 있어서 팹리스, 즉 설계 분야는 연구개발이라는 업무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은 세계 각국의 최고들이 모이는 국가로, 날고 긴다는 최고 두뇌들이 반도체 설계 업무를 맡고 있다. 우리 기업이 세계 최고를 목표로 삼고 있는 만큼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없는 시간도 쪼개서 써야 하는 상황이다. 

설계를 위한 연구개발비 지원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반도체 설계 캐드 툴 하나만 보더라도 일반 캐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다. 현재는 대부분 대여해서 쓰는데, 제대로 갖추려면 30억 원 정도 들 정도로 상당한 비용이 든다. 이처럼 요소요소에 숨어 있는 연구개발비 지원이 절실하다. 

 

Q.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은 제조 쪽으로 기술이 편중돼 있는데,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서 알 수 있듯이 핵심소재에 대한 연구개발도 필요해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 것으로 여겨지는가?

지난 8월 28일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할 연구개발 중심의 근본적 혁신방안을 골자로 하는 ‘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 투자전략 및 혁신대책’을 발표했다. 

소재·부품·장비 혁신대책 추진전략
소재·부품·장비 혁신대책 추진전략

여기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은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 혁신대책을 내놓은 이유는 산업의 리스크가 커졌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로 우리 반도체 산업의 발목을 잡으면서 과거에는 아무 불안요소가 없던 곳에서 균열이 일어났다. 우리의 반도체 제조산업이 해외 소재·부품·장비 기업에 의존하다 보니 이런 리스크가 발생한 것이다. 결국 이번 대책안은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육성이 아닌 반도체 제조산업의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 최종 목적이다. 그러므로 정부가 연구개발 업체를 선정할 때 이 목적에 부합하는 기업을 선별하고 지원해 나가야 한다. 진행과정에서도 최종 결과물이 수출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제조산업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의 근본적인 규제개혁도 이뤄져야 한다. 최근에는 불화수소 업체의 성장을 위해 규제를 완화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법은 그대로 유지한 채 패스트트랙으로 절차를 간소화했을 뿐이다. 기업이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법 자체의 변경이 요구된다. 이처럼 기업의 경영환경, 근로, 안전이 유지되면서도 기업이 경쟁력 있게 성장할 수 있는 균형있는 정책이 추진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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