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은 늦다, 대학에 선제적 투자 이뤄져야

[테크월드=선연수 기자] 한국은 산업화의 급물살에 올라타며, 누구보다도 빠르게 글로벌 선두국가에 합류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몇 차례의 고비를 겪어왔지만, 대기업 위주로 형성된 한국의 반도체 시장은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올해 전 세계적인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폭락과 일본과의 무역 분쟁으로 인해 꽤나 소란스러웠다. 1971년도에 대학의 문을 밟고 40년 넘게 반도체 분야에 임해 온 서울대학교 나노연구소 연구교수 겸 현재 지파랑 창업자로서 활동하고 있는 박영준 교수와 함께 2020년 국내 반도체 산업의 미래에 대해 조망해봤다.

 

서울대학교 나노연구소 연구교수 겸 지파랑 창업자 박영준 교수

 

Q. 지난 한 해 반도체 산업은 어떤 시기였나?

작년 반도체 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숨을 고르는 시기였다. 2018년이 성장 흐름과 달리, 데이터센터로 인한 예상치 못한 큰 수요가 발생해 과도한 호황기를 이뤘을 뿐이다. 2017년 초반에는 모두가 2018년의 산업 전망이 좋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2018년에 비해 성장에 큰 차이를 보일 뿐, 산업의 성장 흐름은 유지되고 있다. 지금의 어려움은 이르면 올해 2분기, 늦어도 4분기쯤엔 개선될 것으로 예상한다.

 

Q.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무어의 법칙’이 깨졌다는 말이 나온다. 게다가 작년 초 DRAM 시장 수축의 여파가 현재까지 회복되지 않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기술 시장의 전망은 어떠한가?

과거 20년간 시장을 이끌어오던 DRAM의 사이클이 없어진 건 사실이다. 메모리 반도체에서 무어의 법칙이란 더욱 작게 만들어 이익을 보는 것인데, 이제 공정 크기의 한계에 마주한 것이다. 그러나 공정의 세밀한 정도가 높아지면서 개발 속도가 둔화됐을 뿐이지, 무어의 법칙 자체가 깨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선두업체들은 지금도 계속 미세 공정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메모리 시장은 재고 문제와 함께 작년에는 몇 년 전부터 떠오르던 인공지능(AI) 시장도 한 풀 가라앉고, 비트코인의 화제성도 잦아들면서 비교적 좋지 않았을 뿐이다. 빅데이터 처리에 대한 수요가 지속되는 이상 메모리 시장은 개선될 것으로 예상한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볼 때 메모리 반도체는 사실상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려운 영역이다. DRAM은 후발주자들이 한국의 기술을 쫓아오기 힘들 것이며, NAND는 비교적 추월될 여지가 있다. DRAM의 경우 적어도 기술 개발에 10~20년을 투자해야 하며, 400~500개의 공정이 오케스트라처럼 완벽하게 융합돼야 한다. 더불어 당시 40~50대 한국인의 희생정신도 담겨있다. 우수 인재들의 집약적인 노력과 완벽한 공정·테스트 기술을 얻기란 어려울 것이다.

NAND 분야에서는 일본이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중국 또한 속도를 내는 상황이다. 젊은 인재들이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기술력을 계속 선제적으로 확보해 나가길 바란다.

 

Q. 작년 4월 삼성전자가 2030년을 목표로 시스템반도체 비전을 공표하고, 5월 정부가 관련 산업 육성 전략을 발표한 지 7개월이 지났다. 아직 성과를 기대하기는 이르나, 구체적인 로드맵이 불투명한 상황으로 보인다. 국내 시스템 반도체 산업의 성장 전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가의 목표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시스템 반도체 시장의 10%를 차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스템 IC’라는 용어 자체가 국내에서만 사용하는 용어다. 외국의 경우 TV에 들어가면 TV 시스템 IC, 통신에 들어가면 통신 IC, 스마트폰에 들어가면 모바일 시스템 IC 등 시스템 별로 이름을 붙여 말한다. 여기서부터 얼마나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지 알 수 있다.

시스템 반도체 산업은 크게 시스템 IC 칩 패키징 영역과 파운드리 비즈니스 두 가지로 나뉜다. 이번에 삼성이 발표한 것은 파운드리 비즈니스에 가까우며, 잘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문제는 파운드리가 아닌 칩 설계(팹리스) 산업이다. 정부는 지난 20~30년 동안 퀄컴과 같은 팹리스 기업, 시스템 IC 기업을 키우길 원했다. 미국, 중국에 비해 한국이 특히 약한 부분이 바로 이 분야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잘 되지는 않을 것이다. 국내에는 잘 만들고, 잘 팔고, 이 두 가지를 다 해내는 회사가 없다. 시스템 칩의 고객은 TV, 가상현실(VR), 스마트폰 등을 만드는 완성품 업체이며, 이들에게 납품하기 위해서는 제품 로드맵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완성품 업체들은 제품을 출시하기 몇 년 전부터 해당 애플리케이션 시스템 칩 분야에서 제일 잘하는 기업에게 시스템 IC를 의뢰하고 함께 제작해 나간다. 특히, 시스템 칩의 경우 가장 좋은 기술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국내 중소기업이 도중에 끼어들 틈은 전혀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박영준 교수는 "시스템 칩 시장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시장+’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Q. 그렇다면, 전략 방향을 어떻게 바꿔야 한다고 보는가?

시스템 칩 시장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시장+’ 전략이다. 중국이 ‘인터넷+’ 전략으로 모든 산업에 인터넷을 붙여 텐센트와 알리바바와 같은 거대 기업을 탄생시켰듯, 한국도 마케팅에 먼저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개발을 마친 뒤 제품을 들고 시장에 진출하는 건 잘못된 방식이다. 시작부터 업체와 연합해 함께 로드맵을 만들고 채워나가야 한다. 정부에서도 ‘시장 +’가 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중국은 외국 기업으로부터 긍정적인 투자가 들어오면, 이를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국내 대기업과의 협력이 어렵다면, 해외의 다양한 기업과의 협력의 기회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에겐 지금이 기회다. 반도체 시스템 산업의 구조가 급격히 바뀌고 있다. AWS,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구글, 알리바바 등이 데이터센터의 품질을 확보하기 위해 칩을 직접 개발하고 있다. 자동차 업체인 테슬라 또한 칩을 설계하고 있다. 이렇게 큰 기업들은 인텔이나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과의 협업보다는 자체 기술력 확보를 위해, 좋은 기술력을 가진 작은 기업이나 벤처들을 인수하고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이 시장의 트렌드를 좇아 제품을 만든다고 해도 글로벌 기업의 속도를 따라잡기는 힘들다. 오히려 우수한 대학 인재 몇몇이 모여 학회에서 기술 발표를 통해 스카우트되는 경우가 많다. 글로벌 기업이 학회에 참여해 원하는 기술 분야의 인재를 빠르게 데려가는 것이다. 시장의 발전 속도에 맞춰 대학에 대한 선제적인 투자가 이뤄지는 것이 기술도, 인재도 둘 다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Q.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해 국내 대기업이 부품 공급처를 전면 국산화하는 등 시장에 변화가 일었다. 그러나 다 잘할 수는 없는 고도화된 반도체 시장에서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 것으로 보는가?

과거 15년간 정부는 반도체 산업에 투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며, 실제적으로도 지원이 전무했다. 대기업들이 이미 잘하고 있으니 기업의 영역으로 두고서 미래를 내다보지 못했다. 올해 일본과의 수출규제로 인한 사태는 이 결과로 볼 수 있다. 어쩌면 이번 일은 반도체 산업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될 만한 반전을 제공했다는 의의를 둘 수 있겠다.

현재 양 국은 적대적인 상황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걸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한국은 구매 측이 대기업이지만, 일본의 경우 판매 기업이 소규모라 큰 고객을 잃으면 아예 문을 닫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번 사태로 인해 당분간은 정치적으로 연계한 이같은 공격을 다시 벌어진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이 모든 부분을 다 잘할 수는 없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부가가치가 높고 핵심이 되는 몇 가지 부품 사업을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 또한, 국제적으로 수입처를 다변화해 국가적인 위험성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정치력이 필요할 것이다.

 

Q. 작년 ‘차세대지능형반도체 기술개발사업’으로 ‘지능형반도체 포럼’이 설립됐다. 포럼의 진행 상황과 고문 위원으로서의 역할이 궁금하다.

‘지능형 반도체 포럼’은 지능형 반도체 분야에 10년간 1조를 투자하는 데 있어, 효율적으로 과제를 진행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운다. 기업을 포함해 총 600명의 전문가들이 모여, 지난 6개월간 계획은 마무리 지은 상황이다. 결과는 차후 정책에도 반영될 것이며, 오는 2~3월에는 이에 맞춰 산업단이 구성될 예정이다. 포럼은 계속적으로 자문, 리딩 해주는 역할을 하며, 포럼 내 고문 위원장으로서 발전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지원해 나갈 것이다.

인공지능에 대해 비관적인 사람은 이 호황의 수명을 10년 정도로 보고 있으나, 낙관적인 입장으로서 적어도 30년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IBM 컴퓨터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는 전 세계에 3대의 컴퓨터만 필요하다고 말하던 시절을 떠올려 보라. AI는 사람과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 이 글은 테크월드가 발행하는 월간 <EPNC 電子部品> 2020년 1월 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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