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상용화 가능한 제품을 개발하라, 더 넓은 영역으로

[테크월드=이건한 기자] 2014년, 딥러닝이 지금처럼 널리 주목받지 못했던 당시 ‘인공지능(AI)+의료’란 불모지로 과감히 뛰어든 엔지니어들이 있다. 그들도 처음부터 성공을 자신했던 건 아니다.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High Risk-High Return)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적어도 AI 음성인식 기술을 개발하며 체득한 딥러닝의 놀라운 잠재력만큼은 확신하던 터였다.

그들이 안정적인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설립한 스타트업은 현재 국내외에서 가장 주목받는 AI 스타트업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국내 1세대 의료 AI 솔루션 전문기업 ‘뷰노(VUNO)’의 이야기다.

뷰노의 강점은 약 5년에 걸친 풍부한 개발 경험과, 임상검증 과정에 이르는 실전 노하우에 있다. 현재 의료진단 보조도구 ‘뷰노메드(VUNO Med)’ 제품군을 중심으로 일선 의료진의 빠르고 정확한 질병 진단을 돕고 있다. 아울러 주요 병원들과 장기간 협력하며 실리적 사업 기반을 마련한 결과, 올해 상장을 앞두고 있을 만큼 안정적인 성장세에 있다. 4월 7일 논현동에 위치한 뷰노 본사에서 김현준 대표를 만나 뷰노가 이룬 성과와 의료 AI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김현준 뷰노 대표집행임원
뷰노는 최근 집행임원제도를 도입해 지배 구조를 개편했다.

Q. 의료 AI는 아직까지 선례가 많지 않은 개척 분야에 속한다. 그간 어떤 방식으로 성장해왔는가?

뷰노의 창업자 셋 모두 엔지니어 출신이므로 기술은 걱정하지 않았다. 다만 ‘기술만이 밥 먹여 주진 않는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상용화 가능한 제품 개발에 무게를 뒀고, 3년 차까진 기술 개발과 함께 정부 허가를 받기 위한 활동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뷰노 설립 당시만 해도 AI 의료기기 인허가에 대한 정부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동시에 병원 영업을 병행하며 의료계의 생리를 깨우쳤던 것들이 지금의 뷰노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Q. 조금 더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드린다.

한마디로, 학문적인 결과물에 그치지 않고 실제 현장에 필요한 기술을 찾아내 시장을 드라이브하는 것이 핵심이다. 최근 출시한 뷰노메드 펀더스 AI(망막 병변 검진 솔루션)가 좋은 예다. 망막 안저 영상 내에서 주요 안질환에 대한 12가지 소견을 수초 이내에 판단해 의사의 진단을 돕는 펀더스 AI 솔루션은 정확성과 사용성을 인정받아 국내 AI 의료기기 최초로 식약처의 3등급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현재 인허가가 완료된 제품들은 의료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아직 최근 코로나19 대응용 흉부 CT와 엑스레이 판독 보조 솔루션은 인허가를 받지 못했지만, 확진 환자 분석을 위한 연구 목적에 도움이 될 수 있어 얼마 전 뷰노매드 렁퀀트(흉부영상 분석) 솔루션을 무료로 배포하게 됐다.

인터뷰 직후 암실에서 뷰노메드 펀더스 AI를 실제로 체험해봤다. 평소 눈이 자주 피곤해 ‘혹시’했지만, 매우 건강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5초 정도.

Q. 사람의 장기는 모양이 비슷하고 나타나는 병변의 특징도 유사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에 반해 요즘 공개되는 진단용 AI들의 기능은 비슷한 것 같은데, 성능 차별화 지점은 어디에 있는 건가?

사람의 장기에는 생각보다 다채로운 변화가 나타난다. 폐 CT만 해도 들숨에 폐가 펴졌을 때의 모습을 찍는 것인데, 오늘과 내일의 모양이 다를 수 있다. 의료영상 촬영에는 늘 여러 예외가 발생한다. 그 안에서 정확하고 균일한 답을 찾아내는 것이 진단용 AI의 핵심이다.

또 데이터만 많다고 성능이 좋은 것도 아니다. 어떤 학습 방식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성능에 큰 차이가 발생하며, 그와 관련된 노하우야말로 각 회사의 경쟁력을 결정 짓는 지점이라고 본다. 우리 제품 중에는 경쟁사 대비 절반 이하의 데이터만 갖고도 더 좋은 결과를 내는 경우도 있다.

 

Q. 최근 AI의 진단 정확도는 의사보다 높게 나타나곤 한다. 그러나 한 번의 오진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AI로 인한 오진이나 의료사고, 문제없을까?

약간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인데, 현재 의료 AI는 ‘진단보조’ 도구로 명확히 정의돼 있다. 의료법상 AI가 질병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는 것은 금지된다. 결정권이 사람에게 있다는 얘기다.

만약 수술용 칼이 날카로워 개복 수술 중 환자의 간을 상하게 했다고 생각해보자. 그 경우 칼을 만든 회사에 잘못을 묻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현재 AI는 의사가 최대한 실수하지 않도록 ‘가이드’를 주는 수준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AI로 인한 도의적 사고 등이 발생하긴 어렵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현재 의료 AI의 성능은 전문의급이다. 우리가 입수한 어떤 진단 데이터에서는 8000건에 대해 모두 ‘정상’이란 판독을 받았지만, AI로 다시 검사해보니 약 200건에서 미세한 결절이 발견됐다. 당장 큰 문제는 없지만 나중에 실제 암으로 발전할 수도 있는 소견이다. 지금 의료 시스템 내 오진률이 2% 정도라면, AI의 역할은 그것을 최소화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고 보면 된다.

Q. AI는 결국 의사를 위한 충실한 어시스턴트란 이야기인가? 그렇다면, 향후 의료계에서 인공지능이 활약 가능한 영역은 어디까지 확대될까?

현재 의료 AI는 주로 영상진단에 집중돼 있는 상태다. 하지만 실제 진단에는 생체적인 데이터, 음성, 환자와의 대면 문진을 통해 수집한 데이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앞으로는 영상을 넘어 더욱 다양한 데이터가 AI를 통한 진단보조에 활용될 수 있으리라 보고 있다.

특히 제3세계, 오지에서처럼 인간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환경에선 의사를 도와 종합적인 판단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의료 AI의 등장이 더욱 절실해질 것이다. 뷰노 역시 더 넓은 진단 영역 확보를 위해 나아가는 중이다.

 

Q. 의료 AI가 지금보다 활성화되려면 건강보험의 ‘수가’를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단 얘기가 오래전부터 나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실현되지 않고 있다. 이유가 있을까?

AI 수가에 관한 문제를 처음 발의한 것도 뷰노다. 원래 수가를 인정받는 과정 자체가 쉽지 않은 길이다. 절차도 복잡하고, 안전성이나 효과 등의 요소를 대량으로 따져봐야 하는데 AI에는 아직 충분한 데이터가 쌓이지 않은 까닭도 있다. 그러나 업계의 꾸준한 요구를 받아들여 정부가 지난 12월 AI 의료 수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점은 고무적이다.

 

Q. 가이드라인이 나왔다면 곧 정식으로 수가를 인정받게 되는 것인가?

그보다 중요한 건 수가만이 의료 AI를 드라이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향후 몇 년 이내에 AI 수가에 관한 규정이 정식으로 제정된다면 그때부터 시작이 아닌, 이미 ‘다 큰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에 관해 병원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과거 병원들은 수가가 보장되지 않는 제품에 관심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걸 알고도 우리에게 견적을 요청한다. 오랫동안 굉장히 보수적이었던 병원들이 미래 인프라를 위한 투자를 시작했다는 말이다. 이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그동안 미비했던 문제들에 대한 개선 필요성을 병원들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진 촬영은 다소 어색해하던 김현준 대표.
하지만 수염이 잘 어울리고(!) 조리 있는 설명이 돋보이는 인물이었다.

Q. 뷰노는 올해 상장을 앞두고 있다고 들었다. 상장 과정에서 마련된 자본은 어디에 투자할 계획인가? 앞으로의 포부가 궁금하다.

우선, 앞서 말한 것처럼 실제 현장에 필요한 다양한 제품들을 적시에 만들고 싶다. 제3세계를 돕기 위한 적정기술 등에도 관심이 많다. 그리고 이것들을 구현하기 위한 파이프라인은 이미 다 마련해 뒀다. 그동안 영상의학을 제외하면 AI의 혜택을 받지 못한 영역들이 많다. 우리는 향후 AI의 적용 범위를 넓혀 최대한 많은 의료 분야에 혜택을 줄 수 있도록 성장하고자 한다.

세계진출도 미룰 수 없다. 요즘 AI 의료학회에 가보면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건 대부분 한국 회사다. 한국 AI에 대한 외국의 평가가 굉장히 높아졌다. 나는 그 답이 우리의 선진화된 의료 시스템과 인프라에 있다고 본다.

국내는 상대적으로 근거리에 Top 5 병원이 몰려 있어 기업과 병원의 협력이 수월하고 데이터의 폭과 질 또한 월등하다. 이를 기반으로 뷰노 역시 세계 시장 진출을 성공적으로 이뤄내고자 한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코로나19로 대구가 널리 알려진 탓인지 대구에서 사용된 우리 제품들에 대해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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