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보적인 기술력으로 AR 광학계를 혁파한 ‘레티널’

[테크월드=이건한 기자] “증강현실(AR)에 킬러 앱이 필요하다는 말이 많은데, 이것이 등장하기 위한 대전제는 하드웨어다. AR 광학계의 난제를 해결한 우리 렌즈가 널리 사용된다면, AR 산업은 새롭게 개화할 수 있을 것이다.”

레티널(LetinAR)은 증강현실계의 주목되는 잠룡(潛龍)이다. 국내 스타트업이지만 해외에서 더 잘 알려져 있다. 국내보다 세계 시장을 타깃으로 설립된 까닭이다.

레티널을 상징하는 ‘핀미러(PinMR)’는 핀홀 효과(Pinhole effect)를 토대로 만들어진 AR 광학렌즈다. 독특한 구조적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기존 AR 구현 제품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성능 격차를 나타내는 ‘물건’이다. 핀미러를 앞세운 레티널은 작년 12월 글로벌 광학 분야의 최고 권위상인 프리즘 어워드(Prism Awards)에서 시각기술 부문 우승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단언컨대, 향후 수년 이내로 레티널의 이름을 알게 되는 사람들은 지금보다 매우 많아지리라 확신한다. 기자는 이들이 더 유명해지기 전에 얼른 만나보기로 했다. 인터뷰에는 레티널 공동 창업자인 김재혁 대표와 하정훈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참석했다.

레티널 김재혁 대표(좌), 하정훈 최고기술책임자(우)

말 그대로 ‘압도적인’ 핀미러

핀미러 렌즈는 외형부터 독특함이 물씬 풍긴다. 겉보기엔 일반 안경 같은데 잘 보면 렌즈 중심에 촘촘한 구멍들이 뚫려 있다. ‘이런 렌즈로 대체 어떻게 AR을 볼 수 있다는 거지?’란 생각이 들지만 막상 써보면 신세계가 펼쳐진다.

이상하게 느껴지던 구멍을 통해 최대 8K의 고해상도 증강현실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색상은 선명하고, 초점은 뚜렷하다. 주변을 둘러보는 데에도 지장이 없다. 기존 AR 글래스들이 낮은 해상도와 불완전한 초점 문제로 애를 먹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준이다.

핀미러 렌즈는 작은 구멍을 통과한 빛이 선명한 이미지를 만든다는 핀홀 이론을 기초로 한다.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 눈을 살짝 찡그리면 순간이나마 잘 보이게 되는 것도 핀홀 효과의 일종이다. 하정훈 CTO는 과거 창문을 통해 벽면에 비친 하늘을 보고, 이를 AR 구현에 응용할 수 있는 핀미러의 원리를 떠올렸다고 한다. 이어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프로토타입을 완성했고, 이를 CES 2019와 MWC 2019에 공개해 큰 호응을 얻었다.

핀미러 렌즈를 적용한 시제품

고정관념을 넘어, 유레카!

광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잘 아는 엔지니어라면, 핀미러 아이디어에 곧장 무릎을 친다고 한다. 기본 이론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얘기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레티널과 같은 시도가 없었던 걸까? 하 CTO는 이를 오래된 고정관념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눈앞에 화면을 띄우려면 디스플레이가 필요한데, 여기에 핀홀을 적용하면 어두워진다는 게 연구자들의 고정관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거울을 접목하는 새로운 발상으로 해당 문제를 극복했다. 처음에는 우리 아이디어에 많은 이들이 수긍했지만 실제 효용성 측면에서는 이견이 갈리기도 했다. 레티널은 지금껏 편견을 깨기 위한 도전을 이어왔고, 현재 핀미러는 업계에서 아이디어뿐 아니라 실용성 또한 입증받은 단계다.”

그의 말처럼, 레티널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 광학계 내에서는 이미 떠오르는 스타다. 누군가 비슷한 제품을 만들려고 하면 대번에 ‘그건 레티널 기술이잖아’라고 말할 정도다.

 

몇 번의 퀀텀점프, 외부에 공개된 기술은 2년 전 이야기

핀홀이 꽤 간단한 이론이라면 곧 경쟁자가 생기진 않을까? 이런 의문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할 것 같다. 두 사람은 레티널의 기술이 이미 몇 번의 퀀텀점프(Quantum jump, 대약진)를 거쳐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현재 외부에 공개된 것도 대략 2년 전 기술이라고 한다.

김재혁 대표는 “처음에는 기술 공개를 대단히 꺼렸다. 하지만 몇 차례의 기술적 퀀텀점프를 거치고 나니 이제 이전 것은 공개해도 좋겠다는 판단이 들더라. 이미 누구도 쉽게 따를 수 없는 격차를 달성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미 완성한 제품도 일부 다운그레이드(Downgrade)를 고려하고 있다. 시장에 내놓기엔 너무 오버 스펙(Over Sepc)인 만큼, 적당한 수준 조절을 통해 수율과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편”이라고 덧붙였다.

때는 무르익었다. 이제 곧 세상에 선보일 것!

핀미러는 완제품에 사용할 수 있는 렌즈 부품이다. 기존 AR 광학계와 달리 투명한 렌즈와 박막 등 저렴한 소자를 사용하며, 기존 공장에서도 제작할 수 있을 만큼 생산성이 뛰어나다. 레티널은 이를 “단순한 구조의 개혁”이자 “어려운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하려는 방식으로 접근한 덕분”이라고 표현한다.

아직 구체적으로 공개할 단계는 아니지만, 이미 정상급 기업들의 경쟁 아래 최상의 납품 계약을 위한 물밑 협상을 벌이는 중이라고 한다. 아마 이르면 1~2년 이내에 실제 핀미러 렌즈를 탑재한 AR 글래스를 만나게 될 것 같다.

시기 측면에서도 적절하다. 지난 몇 년간 디스플레이 재료 가격은 하락하고 퀄컴은 XR(확장현실)을 지원하는 칩을 내놓기 시작했다. 정체된 AR 시장을 개혁하기 위한 새로운 충격도 필요한 때다. 사람들은 ‘포켓몬 고’ 같은 킬러 앱이 부족해 AR 시장 발전이 더뎌진 것이라 생각했지만, 하정훈 CTO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하드웨어가 받쳐줘야 킬러 앱도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동안 AR 구현에 사용된 렌즈들의 기술적 한계로 실현할 수 있는 AR 콘텐츠의 범위도 한정적이었다면, 핀미러가 기존 하드웨어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AR 산업을 부흥시킬 수 있는 마중물이 되리란 생각이다.

레티널이 2019년 초에 공개한 데모 영상 中

김재혁 대표는 “우리가 표준(Standard)이자 시장을 만들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자 한다. AR은 인류가 현미경과 망원경에 이어 맞이한 세 번째 시각혁명이다. 이를 혁명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사람들이 더욱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현대판 백아와 종자기. 김재혁 대표, 하정훈 CTO

한편, 핀미러 만큼이나 두 창업자의 배경 이야기도 흥미롭게 들렸다. 김재혁 대표와 하정훈 CTO는 고교동창 출신이다. 보통 “친구와는 절대 동업하지 말라”는 옛말(?)이 있는 만큼, 처음엔 조금 의아했지만 이야기를 나눠본 뒤 생각이 달라졌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다. 인간적으로나, 사업적으로나 말이다.

하정훈 CTO에게 김재혁 대표는 자신을 가장 잘 알아주는 동료다. 그는 “원래 과학 방면에 관심이 많고 이런저런 공상을 많이 하는 편인데, 주변 친구들은 그런 내 이야기에 다들 ‘조용히 하라’며 면박을 주곤 했다. 그러나 재혁이만은 이를 잘 받아줬고, 여러 질문을 던져주는 친구였다. 원래 생각을 잘 공유하지 않는 편인데 이 친구와는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핀미러 아이디어도 그중 하나”라고 말했다.

물론 공적인 자리에서는 대표와 CTO로서 선을 지키는 두 사람이다.

김재혁 대표에게 하정훈 CTO는 기발하고 재미있는 친구이자, 능력 있는 발명가다. 그는 “정훈이는 원래 발상의 전환이나 관찰에 익숙한 친구였다. 덕분에 같이 재미있는 것도 많이 만들어봤다. 그중 핀미러는 진짜 ‘제대로 된 것’이란 생각이 들어 창업 제안을 받아들였다. 사실 제안이라기보단 오랫동안 만들어 온 신뢰를 기반으로 자연스레 이어진 창업이라고 생각한다”며 하 CTO를 향한 돈독한 믿음을 드러냈다.

사람은 자신을 진정으로 알아주는 사람과 함께할 때, 또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과 함께할 때 최고의 능력을 발휘한다. 고사성어에는 ‘知音(지음, 소리를 알아주다)’이나 ‘知己之友(지기지우,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친구)’ 같은 말이 있다.

기자의 눈엔 두 사람이 그렇게 보였다. 하정훈 CTO가 놀라운 기술을 만들어 오면, 김재혁 대표는 이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비즈니스에 녹여낼 수 있는 인물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를 믿고 최선을 다하는 두 사람이야말로 곧 새롭게 비상할 레티널의 양날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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