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전지부터 차세대 배터리까지

[테크월드=김경한 기자]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핸드폰, 노트북, 진공청소기, 전기드릴에는 배터리가 장착되며, 최근에는 차세대 이동수단으로 각광받는 전기자동차에도 배터리가 장착된다. 특히 AI, IoT, 스마트워치, 웨어러블 기기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집약된 기기가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가볍고 에너지 효율이 높은 배터리의 장착이 필수다. 전자제품에 반도체가 기본으로 들어가듯이, 모바일·와이어리스·웨어러블 등의 트렌드로 인해 이제 거의 모든 전자제품에 기본으로 탑재되기 시작한 배터리는 ‘제2의 반도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2의 반도체’로 각광받는 배터리에 대해 알아보자. 

배터리의 작동 원리
배터리의 기본 구성요소로는 양극, 음극, 전해질이 있다. 양극은 배터리의 용량과 전압을 결정한다. 충전 시에 양 이온(+)과 전자(-)를 각각 전해질과 도선을 통해 음극으로 내보내고, 방전 시에는 음극의 전자(-)와 양 이온(+)을 같은 경로로 받아들인다. 음극은 양극에서 나온 양 이온(+)과 전자(-)를 저장하며, 방전 시에는 양 이온(+)과 전자(-)를 각각 전해질과 도선을 통해 양극으로 내보내면서 전기를 발생시킨다. 전해질은 양극과 음극 사이에 양 이온(+)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한다. 

배터리의 원리 * 출처: 삼성SDI

리튬이온 배터리는 여기에 더해 분리막이라는 물질이 추가된다. 분리막은 리튬 산화물인 양극재와 탄소화합물인 음극재가 직접 접촉하면 폭발할 위험이 있으므로 이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필름 형태의 막이다. 분리막은 미세한 기공으로 구성돼 있어 리튬 이온(+)이 충전과 방전 시에 이동하는 통로 역할도 한다. 

 

2000년 전 바그다드 전지가 시초?
인류 최초의 배터리는 무려 2000년 전 이집트 바그다드에서 개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바그다드 전지 * 출처: BATTCO(Battery Company)

1936년 독일 고고학자였던 빌헬름 쾨니히(Wilhelm Konig)는 이라크 바그다드 인근에 위치한 파르티아 왕조기 유직지에서 14cm 높이의 항아리를 발굴했다. 이 항아리는 내부에 구리원통과 철심이 박혀 있고 위쪽은 아스팔트로 밀봉돼 있었다. 빌헬름 쾨니히가 항아리 내부를 자세히 조사해 보고는 철심이 산에 의해 녹은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이 산이 전해질 역할을 하고, 구리와 철심이 양극과 음극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하며 ‘바그다드 전지’로 명명했다.

이후 여러 연구가들은 바그다드 전지와 유사한 형태의 모형을 만들고 실험을 통해 이것이 전지로 쓰였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도 했다. 다만 이 배터리가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금을 다른 물질에 전기도금하는 데 사용했다는 의견도 있고, 종교의식에서 경외심을 느끼게 한다거나 통증치료를 하는 등 전기자극에 활용했다는 의견도 있다. 

배터리가 최초로 사용된 시기는 2000년 전일지 모르지만, 고고학자에게 발견돼 세상에 알려졌을 정도로 고대의 배터리 기술은 오늘날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실질적으로 현대인에게 배터리의 개념이 소개된 건 약 220년 전이다.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루이지 갈바니(Luigi Galvani) 해부학 교수는 1780년 해부한 개구리를 철봉에 매단 채 개구리 다리에 황동 철사를 댔다가 경련이 일어나는 현상을 발견했다. 그는 동물의 신경 속에 전기가 숨겨져 있다고 여기곤 이를 ‘동물전기’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알렉산드로 볼타는 이를 믿지 않았고 오히려 전기가 통하는 금속 사이에 개구리가 있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1800년 이를 증명하기 위해 실험하다가, 오늘날의 배터리의 근간이 되는 ‘볼타 전지’를 발명했다. 이 전지는 구리 원판, 산 용액에 적신 헝겊, 아연 원판 순으로 층층이 쌓아 올려 만든 장치다. 

 

한 번 쓰고 버리는 1차 전지
배터리는 재활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1차 전지와 2차 전지로 나뉜다. 

1차 전지(Disposable Battery)는 한 번 사용하면 폐기하는 전지를 말한다. 대표적으로는 망간전지, 알카리전지, 산화은전지가 있으며,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AA건전지, AAA건전지, 손목시계 건전지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망간전지는 아산화망간(MnO2)을 양극 활물질로, 아연(Zn)을 음극 활물질로, 염화암모늄(NH4CI)이나 염화아연(ZnCI2)을 전해액으로 사용하는 전지다. 전압은 1.5V이며, 최대 출력 전류는 1A 이하 수준으로 낮다. 값은 싸지만 용량이 적고, 큰 전류로 방전하면 급격히 전압이 낮아져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고온에서는 자기 방전이 촉진되고, 저온에서는 전지의 성능이 현저히 저하된다. 이런 단점 때문에 대형 유통매장에서는 대부분 판매되지 않고, 장난감이나 리모컨을 구입할 때 기본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알칼리·망간전지(알칼리전지)는 양극과 음극 활물질은 망간전지와 동일하게 아산화망간과 아연을 사용하지만, 전해액은 알칼리성 수용액인 수산화칼륨(KOH)을 사용하는 전지다. 전압은 1.5V로 망간전지와 동일해 호환해서 사용할 수 있다. 에너지 밀도는 망간전지의 2~3배 수준이며, -20℃에서도 전해액이 동결되지 않지만 -10~45℃ 온도에서 사용하는 것이 좋다. 최근 시중에서 파는 건전지 대부분은 알칼리전지다. 

산화은전지는 환경오염 문제로 수은전지가 전면 금지되면서 대체된 전지다. 산화은(Ag2O)이나 과산화은(AgO)을 양극 활물질로, 아연(Zn)을 음극 활물질로, 알칼리 금속 수산화물(KOH 또는 NaOH)의 수용액을 전해액으로 활용한다. 단위 중량과 부피당 에너지 밀도가 높고, 사용할 수 있는 온도 범위가 -30~60℃로 넓다. 자기 방전율은 1년에 5% 정도로 매우 낮다. 이런 장점을 살려 시계, 계산기, 의료기기 등의 소형 정밀 기기에 사용된다. 

 

충전해서 재사용하는 2차 전지
2차 전지는 방전 후에도 충전으로 재사용할 수 있는 전지를 말한다. 대표적으로는 납축전지와 리튬이온 전지가 있다. 

납축전지는 이산화납(PbO2)을 양극 활물질로, 납(Pb)을 음극 활물질로, 묽은 황산을 전해질로 활용한다. 1860년 프랑스의 물리학자인 가스통 플랑테(Gaston Plante)에 의해 발명됐다. 비교적 균형 잡힌 성능을 갖췄으나, 무게가 무겁고 저장 밀도가 높지 않은 단점이 있다. 내연기관차의 배터리, 군용장비, 잠수함 등에 폭넓게 사용된다. 

납축 전지

납축전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개발된 배터리가 리튬이온 배터리다. 이 배터리는 리튬 산화물을 양극 활물질로, 흑연을 음극 활물질로, 리튬염을 전해질로 활용한다. 여기에 더해 리튬이온 전지는 ‘분리막’이라는 미세한 기공을 지닌 필름 형태의 얇은 막도 있다. 분리막은 리튬 산화물과 흑연이 직접 접촉해 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기공 사이로 리튬 이온(+)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한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전기차, ESS, 스마트폰 등 최신 전자장비에 쓰이고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는 리터당 300Ah 이상 수준까지 실용화됐지만, 전문가들은 에너지 밀도를 끌어올림에 있어 어느 정도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 배터리는 자가 방전율이 낮은 편으로 한 달에 10% 이하 수준으로 자가 방전된다. 하지만 기온이 낮아지면 충전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분리막이 파손되면 내부에 높은 전류가 발생해 폭발하는 단점이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주 원재료인 리튬은 매장량이 적고 추출이 어려운 희토류 물질이다. 리튬의 전 세계 매장량 가운데 75%가 칠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등 남미 3개국의 소금호수에 치중돼 있다. 포스코는 최근 미래 배터리 산업의 주도권 확보를 위해 리튬의 해외 광권을 확보했다. 2018년 8월 27일 아르헨티나의 북서부에 위치한 옴브레 무에르토(Hombre Muerto)의 리튬 소금호수 광권을 인수했고, 2021년부터 연간 5만 5000톤의 리튬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차세대 배터리 개발 현황
2차 전지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음극 소재인 흑연이 용량에 한계가 있고,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면 전해액이 기화하고 팽창해 화제가 발생하는 등 안정성 문제가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와 안정성 문제를 해결하는 차세대 배터리로 각광받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현재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액체로 구성된 전해질을 고체로 대체하는 배터리다. 고체 전해질은 외부 충격이나 온도 변화에도 폭발 위험이 없기 때문에 안정적이다. 하지만 충방전 시 리튬 이온의 이동성이 떨어지고, 리튬 금속과 전해질의 계면저항이 높아 수명이 짧은 단점이 있다. 

차세대 배터리 연구로는 2017년 11월 삼성전자가 획기적인 발표로 업계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이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충전 용량이 45% 향상되고, 충전속도가 5배 이상 빠른 배터리 소재 ‘그래핀 볼’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삼성전자 연구진은 강도와 전도도가 높은 그래핀을 배터리에 적용하는 방법을 찾다가, 저렴한 실리카(SiO2)를 이용해 그래핀을 마치 팝콘과 같은 3차원 입체 형태로 대량 합성하는 매커니즘을 규명했다. 이때 ‘그래핀 볼’을 리튬이온 배터리의 양극 보호막과 음극 소재로 활용했더니, 충전용량이 늘어나고 충전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물론 고온 안정성까지 만족하는 결과를 얻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2020년이나 2021년쯤에는 그래핀 배터리를 장착한 스마트폰을 출시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최근에는 몸에 부착하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웨어러블 기기가 각광받으면서, 전력소모가 적으면서도 크기는 작고 무게는 가벼운 플렉서블(Flexible) 배터리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삼성전자가 갤럭시 폴드를 출시한지 하루만에 완판했을 정도로 인기를 끌게 되자 플렉서블 배터리에 대한 관심은 더욱더 높아지고 있다.

LG화학은 2014년에 이미 웨어러블 기기에 탑재할 수 있는 케이블형 플렉서블 배터리를 개발했다. 케이블처럼 가늘고 쉽게 구부릴 수 있는 배터리의 개발은 할로우 앤 스파이럴(Hollow & Spiral) 구조를 만드는 독자기술이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 구조는 음극, 와이어, 분리막, 양극을 스프링과 같이 감은 후 비어있는 중심부에 전해액을 넣는 구조다.

LG화학 케이블형 플렉서블 배터리 * 출처: LG화학 유튜브

삼성SDI는 2014년 인터배터리 전시회에서 둘둘 말 수 있는 플렉서블 배터리를 선보였다. 이 배터리는 종이컵 수준의 곡률 범위 내에서 수만 번의 굽힘 테스트 후에도 정상 작동한다. 리베트스(LIBEST)라는 국내 스타트업 업체는 2017년 전 구간 플렉서블 리튬 폴리머 배터리를 공개했다. 이 배터리는 가죽처럼 자유롭게 구부러지면서도 중간 부분을 절단해도 폭발하지 않으며, 기존 제품(45mAh) 대비 10배(500mAh) 이상의 배터리 용량을 갖췄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다양한 웨어러블 기기와 스마트 기기가 발달하면서, 배터리 산업에서는 에너지밀도, 안정성, 충전속도, 수명을 높이면서도 무게와 크기는 획기적으로 줄이는 차세대 배터리에 대한 연구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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