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20으로 돌아본 모빌리티 산업의 진화 방향성

[테크월드=이건한 기자] 전 세계 IT인들의 축제, CES 2020이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됐다. 요즘 CES에서 가장 주목받는 카테고리는 단연 자동차와 모빌리티 플랫폼이다. 올해도 많은 기업이 자사의 모빌리티 제품을 전시하며 혁신성을 강조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깊은 인상을 새겨준 기업은 메르세데스 벤츠와 토요타, 그리고 현대자동차다.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담은 이들의 이번 발표를 돌아보며, 모빌리티 산업의 다음 목적지를 체크해본다.

자료=테크월드, 월간<EMBEDDED> 2월호 中

인간과 결합한 친환경 차의 미래, 메르세데스-벤츠

이번 CES 2020에서 메르세데스-벤츠는 ‘아바타 카’라는 별칭의 신비로운 콘셉트카 ‘비전 AVTR’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이 모델은 실제 영화 ‘아바타’ 제작팀과의 협업으로 만들어졌는데, 외형만큼이나 내부 인터페이스 또한 독특하다. 특히 인간과 차량의 유기적인 연결을 강조한 요소들이 여럿 눈에 띈다.

CES 2020에서 벤츠가 공개한 콘셉카 ‘비전 AVTR’

참조 - Mercedes-Benz VISION AVTR: The Vision of Tomorrow’s Next Big Thing

올라 칼레니우스(Ola Källenius) 벤츠 AG 이사회 의장은 “비전 AVTR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쇼카다. 사람과 기계의 자연스러운 인터페이스, 연결을 위해 플라스틱 손잡이나 스티어링 휠이 없는 방식을 택했다”고 밝혔다. 실제 비전 AVTR의 내부는 유선형 의자와 대형 디스플레이, 원형 컨트롤러 같은 생소한 요소들로 가득찬 모습이다.

탑승객이 컨트롤러에 손바닥을 대면 심박수를 측정하고, 그에 맞춰 차량이 진동하는 기능은 진짜 차량과 연결되는 듯한 효과를 노렸으며, 동시에 심박수는 그 자체로 탑승자의 건강 상태를 측정할 수 있는 기초 지표다. 또한 이 컨트롤러는 다양한 차량 기능을 제어하거나 탑승객들의 감정 상태를 체크하는 역할로도 사용된다. 아울러 차량 후면에 탑재된 33개의 바이오닉 플립은, 마치 비늘과 같은 형태로 다양하게 움직이며 외부와의 소통을 담당한다. 전반적으로 차가운 기계의 느낌보단 살아있는 유기체의 느낌을 내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다.

심박 측정과 차량 제어에 활용되는 터치 콘솔

벤츠는 무엇보다 AVTR이 미래 친환경 자동차란 점을 강조했다. 칼레니우스는 의장은 CES 2020에서 “미래 모빌리티 부문 성장에 따른 자원 소비량이 증가하겠지만, 벤츠는 새로운 접근 방식을 택해 양적 성장에 따른 자원 낭비를 최소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비전 AVTR은 니켈이나 코발트 같은 재료를 쓰지 않고, 유기적인 셀 화학 기술을 적용해 완전한 재활용이 가능한 배터리를 탑재했으며, 차체를 이루는 대부분의 요소에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를 적용했다. 칼레니우스 의장은 이를 ‘지속 가능한 모던 럭셔리’로 정의하며 2030년까지 차량을 1대 생산하는 데 필요한 물을 현재의 3분의 1로 줄이고, 폐기물을 40% 이하로 줄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금처럼 고급스러운 차를 생산하되, 환경 보호의 책무를 잊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비전 AVTR의 주행 컨셉

현재의 하이테크 산업은 대체로 희토류와 같은 희귀 자원 소비가 큰 편이다. 그러나 기업은 대체로 기술 구현에 우선순위를 두기 때문에 환경 문제는 늘 뒷전으로 밀리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 늦었지만 기술 발전과 함께 환경 파괴와 자원 낭비가 가속되고 있는 지구 환경에 대한 보호를 강조한 벤츠의 메시지는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아 보인다.  

 

차세대 모빌리티 기술은 곧 미래 도시가 된다, 토요타

모빌리티 기업이 시야를 넓히면,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토요타는 이번 CES 2020에서 ‘우븐 시티(Woven City)란 스케일 방대한 컨셉으로 주목받은 기업이다. 토요타는 올해 말 폐쇄 예정인 토요타 동부 후지 공장 부지를 이용해 70만 8000제곱미터에 이르는 커넥티드 시티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거미줄처럼 연결된 도시’란 뜻의 우븐 시티는 자율주행차와 퍼스널 모빌리티, 인공지능, 로봇 등이 결합된 미래형 도시다. 토요타는 이 도시에 토요타가 지닌 기술적 자원을 총동원해 MaaS(Mobility as a Service) 기반의 스마트시티 실현 가능성을 점쳐볼 예정이다.

토요타 우든 시티 전망도

참조 - 토요타, Woven City image video (long ver)

이곳엔 우선 토요타의 다변화 자율주행 콘셉트카인 e팔레트(e-Palette) 같은 친환경 자동차들이 주행하는 도로가 구성된다. e팔레트는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용도 변환할 수 있는 박스형 자동차다. 내부 구성에 따라 이동하는 음식점이 될 수도, 쇼윈도나 상점이 될 수도 있으며, 그 자체로 사람이나 물건을 실어 나르는 물류 수단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

토요타는 도시 내부에 다량의 e팔레트를 도입함으로써 무인화와 자동화, 서비스로서의 모빌리티가 갖는 이점을 최대한 구현하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도시 내 모든 차량은 수소연료전지 같은 친환경 연료를 사용해 그 수가 많아져도 오염 물질을 배출하지 않는다.

토요타 e팔레트의 다양한 사용 컨셉

이와 함께 일반 보행자와 개인용 모빌리티가 공존하는 도로와 공원 산책로가 만들어지며, 머리 위로는 드론이 날아다니며 물건을 실어 나른다. 인도와 도로가 구분돼 있긴 하지만, 우븐 시티 내에선 자동차를 비롯한 모든 이동체가 자율주행 기술을 탑재하게 된다. 이를 통해 사람과 이동체가 사고 없이 어우러질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지향한다.

거리의 주요 건물은 탄소 중립성 목재로 만들어지며 옥상에는 태양광 발전 시설이 설치돼 자원 낭비와 환경 오염을 최소화할 예정이다. 또한 실내에는 일상 활동을 돕고 건강을 체크하는 서비스형 로봇이 비치된다.

다양한 모빌리티 혁신이 어우러진 우븐 시티 일상 상상도

우븐 시티 프로젝트가 기대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 단순한 컨셉이 아니라 실제 구현을 목표로 한 실제 프로젝트란 점 때문이다.  토요타에 따르면 우븐 시티에는 우선 토요타 직원과 관계자, 지역민들을 중심으로 2000여 명의 주민이 입주하게 될 예정이다.

그동안 상상 속에서만 존재해오던 미래 도시가 현재 기술로 구현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지 등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우븐시티의 등장은 자율주행, 커넥티드, 자동화 등의 기술을 발전시키는 중인 첨단 모빌리티 기업들의 시야가 앞으로는 단순히 자동차 내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란 점을 암시한다.

 

도심과 하늘을 이어 만든 인간 중심의 모빌리티, 현대차

현대자동차도 이번 CES 2020에서 지상을 넘어 하늘을 포함한 인간 중심의 모빌리티 환경 구현을 발표했다. 현대차의 비전은 크게 UAM(도심 항공 모빌리티), PBV(목적 기반 모빌리티), Hub(모빌리티 환승 거점)으로 나뉜다.

UAM은 소형 항공 기체를 활용해 하늘길을 뚫는 프로젝트다. 현대차는 2028년까지 UAM을 통해 지상의 교통 정체로부터 해방된 삶을 만들려 한다. 우선 실제 도심 환경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체가 필수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앞서 도심 항공 택시 프로젝트 등을 준비 중인 우버와 손잡고 S-A1이라는 PAV(개인 자율 항공기)를 개발해 CES 2020 현장에 전시했다. S-A1은 최대 5명이 탑승 가능한 소형 항공체로, 자율주행과 수직 이착륙을 지원해 활주로가 필요 없다. 최고 290km 속도로 100km 정도를 비행할 수 있는 S-A1은 도심 내 빠른 이동성을 보장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차와 우버가 손잡고 만든 UAM S-A1

참조 - 현대차, CES 2020 Hyundai Press Video

한편 플라잉카에 대한 가장 큰 우려로 꼽히는 추락 같은 안전사고에 대해 현대차는 프로펠러 이상에 대비한 비상 착륙 시스템과 낙하산 전개 시스템을 등을 갖춰 위험을 최소화했다고 밝혔다. 또한 높은 가격 경쟁력을 갖춰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되도록 하겠단 포부를 함께 밝혔다.

UAM이 하늘이라면, PBV는 지상에서의 이동 경험 변화를 담당한다. 개인화 설계를 반영한 PBV는 토요타 e팔레트처럼 이동 중 다양한 서비스를 탑승객에게 제공할 수 있다. 도심 내 셔틀 기능을 비롯해 식당, 카페, 호텔 같은 공간은 물론이고, 병원이나 약국 같은 의료 시설까지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이 현대차의 설명이다.

상단 분리, 차체 길이 변화가 가능한 현대차의 PBV

또한 다양성 극대화를 위해 고정형 차체 대신 4~6m 사이로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가변형 차체와 완전한 상단 분리가 가능한 형태로 설계됐다. 안락한 이동을 위한 자율주행 기능은 물론이다. 여기에 다수의 자율주행차가 서로 연결돼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군집주행’ 시스템을 도입해 이동 효율을 높이고 물류 수단으로써도 유용하게 활용될 전망이다.

UAM과 PBV는 별개가 아니다. 이를 잇는 하나의 거점인 허브(Hub)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톱니바퀴 모양으로 생긴 허브는 원형의 각 터미널을 통해 여러 PBV가 주행 후 복귀 시 대기와 충전을 담당하는 정류소 역할을 하며, 옥상에는 UAM의 이착륙장을 갖추고 있다.

UAM, PBV를 잇는 정류장, 허브(HUB)

무엇보다 현대차는 다수의 허브를 도심 내에 구축함으로써 그 자체를 하나의 새로운 복합 공간으로 탈바꿈한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다용도로 활용 가능한 PBV가 모인 허브는 그 자체로 여가 공간이나 의료 단지 같은 다양한 컨셉의 소공간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이런 허브가 모이면 그 자체로 작은 마을 내지 문화공간이 만들어진다는 구상도 그리 허황된 것만은 아니다. 현대차는 이런 개념을 실제화하기 위해 심리, 도시, 건축, 디자인, 정치 등 각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단의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인문학적인 기술 사회의 도래

이처럼 올해 CES 2020의 모빌리티 카테고리는 단순히 차량 그 자체만이 아닌 이동성의 진화와 확장, 나아가 그를 기반으로 한 라이프스타일의 완전한 변화가 일어나는 미래상을 제시했다.

또한 지금까지는 주로 기계 중심의 혁신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환경을 보전함과 동시에 인간 중심의 인문학적 관점이 보다 크게 대두되기 시작했다는 점이 인상 깊은 변화다. 기계 중심의 진화는 잠깐의 탄성을 부를 뿐이지만, 인간을 포함한 기술의 진화는 인간의 라이프스타일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시대 변화의 시작점이다.

테크월드 - 월간 <EMBEDDED> 2월 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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