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적 위협요소인 중국과 국제 정세 경계해야

[테크월드=김경한 기자] 우리나라는 D램과 낸드 플래시(Nand Flash) 메모리에서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대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장치산업의 장점을 살려 원가절감으로 사업을 잘 이끌어 왔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표면적으로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지만, 언제 치고 나올 지 모르기 때문에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동아시아 4개국 중 우리나라가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IHS 마킷에 따르면, D램은 세계 시장에서 2018년 4분기에 삼성전자(한국)가 39.9%, SK하이닉스(한국)가 31.9%, 마이크론(미국)이 24.0%으로 3개 업체가 95.8%를 차지했다. 그 중 한국업체가 71.8%를 차지하며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며, 다른 동아시아 국가의 실적은 미비하다. 

D램뿐만 아니라 낸드 플래시 시장에서도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뛰어나다. 트렌드포스(TrendForce)에 따르면, 낸드 플래시 메모리는 2018년 4분기에 삼성전자(한국)가 30.4%, 도시바(일본)가 19.3%, 마이크론(미국)이 15.4%, WDC(미국)가 15.3%, SK하이닉스가 11.2%를 점유하고 있다. 동아시아 국가 중 한국 기업이 41.6%를 기록하며 시장을 선도하고, 일본기업이 19.3%로 선전하고 있다. 

두 컨설팅 업체의 조사결과에서 알 수 있듯 D램과 낸드 플래시로 대변되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한국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사업은 소품종 대량생산을 기반으로 한 대표적인 장치산업으로, 우리나라 대기업이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대규모 투자를 함으로써 성공적으로 시장에 진입·성공할 수 있었다. 

 

미국의 제재로 ‘반도체 굴기’가 통하지 않는 중국
중국은 2014년 ‘중국제조 2025’를 발표하며 2025년 반도체 자급률 75%를 목표로 반도체 굴기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218억 달러(약 25조 68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2017년까지 70개의 프로젝트에 투자할 계획이다. 2018년 4월에는 사진핑 주석이 ‘반도체 심장론’을 제시한 후 국가 집적회로 사업 투자펀드로 3000억 위안(약 51조 원) 규모의 반도체 산업 육성 펀드를 조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규모 투자에도 불구하고 중국 기업은 여전히 높은 원가와 낙후된 공정, 부족한 고급 인력으로 삼성전자와는 기술 격차가 3~5년까지 벌어져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낸드 플래시에서는 칭화유니 그룹의 자회사인 YMTC(양쯔강메모리)가 중국 내 선두주자다. 2018년에 64단 낸드 플래시 개발을 발표했으나, 경쟁 국가의 반도체 업계는 현재 100단에 가까운 낸드 플래시를 양산하고 있어 큰 기술격차가 존재한다. 이 회사는 2016년에 32단을 개발했으나 이마저도 경쟁사 대비 5배가 넘는 원가 때문에 양산을 포기했다. YMTC는 경쟁국 기업과의 기술격차 해소를 위해 64단에서 128단으로 직행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체별 3D 낸드 플래시 양산시점    * 출처: 삼성증권

중국의 D램 사업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푸젠진화(JHICC)와 허페이 창신(CXMT)이 D램 양산을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 양산 소식이 없다. 푸젠진화는 마이크론과의 특허소송에 휘말려 미국 상무부로부터 수출금지 조치를 받아 사업이 진전되지 않고 있다. 허페이 창신은 올해 25nm에 기반한 DDR4를 양산할 계획을 발표했으나 수율이 20% 수준에 그쳐 양산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에는 2021년까지 20nm 초반 수준의 개발과 양산 계획도 발표했으나 여전히 샘플이 지연되고 있다. 

중국은 부족한 기술력을 인수합병으로 따라잡으려 하고 있으나 미국의 견제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칭화유니그룹이 2015년에는 마이크론의 메모리 반도체 부분을 인수하려 했으나 미국 정부의 견제로 무산됐다. 2018년에는 유닉캐피탈매니지먼트가 미국 반도체 시험 장비업체인 액세라를 인수하려 했으나 미국 정부에 의해 무산됐다. 급기야 2018년에는 미국 정부가 D램 업체인 푸젠진화에 대해 자국산 장비, 부품, 기술의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중국의 화웨이가 대이란 제재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멍완저우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미국의 요청으로 캐나다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의 화웨이 제재조치를 비롯한 무역분쟁으로 중국 반도체 산업은 전반적으로 침체 분위기다. 이로 인해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는 우리나라 대비 D램은 최소 5년, 낸드 플래시는 최소 3년의 기술격차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메모리 반도체는 설계 못지 않게 중요한 게 양산이다. 예전에 우리나라가 일본을 따라잡을 1980년대에는 열심히 따라가면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처음부터 시작하기가 쉽지 않은 기술적 진보에 이르게 됐다”며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도전이 쉽지 않음을 암시했다. 시장에서 통용되려면 D램의 경우 10nm 대의 미세공정이 필요하고, 낸드 플래시는 100단 이상의 수준까지 요구되는데 후발주자가 처음부터 따라잡기에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은 내수라는 거대한 시장이 있고 기술적 역량이 있는 나라여서 쉽게 무시할 수 없어 항상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의 안기현 상무도 비슷하게 언급했다. 안 상무는 “중국이 올해부터 64단 낸드 플래시를 양산한다는데 실질적으로 외부에 드러난 것은 없다”며, “만약 시장에 나왔다면 아직은 성능이 떨어져서 일반 시장이 아닌 국가 차원의 특수한 분야에서만 쓰일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분석했다. 그러면서 “메모리 반도체는 제조기술 이슈가 워낙 커서 양산할 때까지의 기간이 굉장히 힘든 시기”라면서도 “양산을 시작하면 기술향상이 급속도로 빨라진다.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언제 치고 나올지 모르므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중국이 외국 기업의 매수가 어려워지자 해외 주요 반도체 업체의 엔지니어를 스카우트해 기술과 노하우를 흡수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는 점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XMC는 3D 낸드 플래시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 삼성전자의 엔지니어를 스카우트하거나 삼성전자에 납품하는 반도체 장비 재료업계의 엔지니어를 스카우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따라서 국내 메모리 반도체의 기술력 유출을 막기 위한 정부와 기업 차원의 다각도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메모리 반도체에서 존재감이 약해진 일본과 대만

일본은 1980년 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독주체제를 구축했었다. 당시 일본의 D램 업체들은 보증기간을 25년으로 설정할 정도로 과잉 품질에 집착했는데, 우리나라 기업이 1980년대 후반부터 수율과 생산성에 맞춘 D램을 내놓기 시작하자 차차 밀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2012년 2월에는 엘피다메모리가 미국 마이크론에 인수되면서 일본의 D램 사업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낸드 플래시 부문에서는 도시바가 삼성전자에 이어 세계 시장 2위를 달리고 있다. 도시바는 2017년 미국 원전사업에서 1조 엔 이상의 손실을 보면서 경영 위기에 빠졌고 2018년 6월에는 미국 베인캐피털을 주축으로 SK하이닉스, 호야 등의 한·미·일 연합에 의해 2조 3억 엔(약 192조 7000억 원)에 매각됐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웨스턴디지털(WD)은 일본 미에현 요카이치 공장에서 반도체 메모리를 공동 생산하는 협력사로서, 도시바 메모리 매각 중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양사가 공동투자와 조인트벤처 계약에 합의하면서 WD가 소송을 취하했다. 

이후로 도시바는 애플과 인텔을 주요 고객사로 확보해 안정적으로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지난 6월 정전 사태로 낸드 플래시의 생산거점인 요카이치 생산라인 일부가 가동 중단되면서 다시 한 번 위기를 겪기도 했다. 

대만의 경우에는 과거 D램 산업이 상당히 육성되다가 2000년대 후반에 치킨 게임을 이겨내지 못하고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시장점유율, 기술 개발, 투자 삼박자를 갖춘 한국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서는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 최고의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동안 메모리 시장 자체가 좋지 않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현재 낸드 플래시는 바닥을 찍었다고 판단되고 V자 반등을 하고 있는 상황이며 내년 상반기에는 경기가 괜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D램은 아직 바닥을 찍었는지 안 찍었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며 더 지켜봐야 함을 시사했다. 이런 예측에도 불구하고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의 수출규제 등으로 국제 정세가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어 예단하기는 쉽지 않다. 글로벌 경기가 좋아야 휴대폰도 사고 컴퓨터도 사면서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경기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낸드 플래시 신규 투자를 계속 늘리고 있다. 이미 웨이퍼 3만 장 규모의 중국 시안 2공장과 평택 2공장을 신규 건설 중이며, 10월 말에는 반도체 장비 발주를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10월 31일 열린 컨퍼런스콜에서 중국 시안 2공장을 올해 말까지 완공하고 2020년 초부터 가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단 평택 2공장은 양산 시점이 미정이며, 시장 수요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3세대 10nm급 D램을 개발하며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낸드 플래시 분야에서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6월 128단 4D 낸드 플래시의 개발에 성공하며 삼성전자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 전문가는 기술 개발과 고객확보는 다른 문제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SK하이닉스가 D램은 세계 시장에서 확실한 2위 사업자이고, 낸드 플래시는 4~5위권을 왔다갔다 한다”며, “낸드 플래시 부분에서 삼성전자나 도시바에 비해 원천기술에서 뒤쳐졌기 때문에 기술적인 부분을 갖춰놓고 승부를 보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은 장치산업인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서 대기업의 이점을 잘 활용해 지금까지 1위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 중국으로의 기술 핵심기술과 인력 유출을 경계하며 시의적절한 투자와 기술개발을 해나간다면 충분히 현 상황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제적 불안 요인을 주의깊게 살피고 정세에 따라 미리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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