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강대원 박사

[테크월드=김경한 기자] 강대원 박사(Dawon David Kahng)는 MOSFET과 플로팅 게이트(Floating Gate)를 발명한 인물로, 2009년 미국의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이 상은 에디슨, 라이트 형제 등 인류의 산업발전에 기여한 발명가들에 주어지는 상이다. 하지만 그의 고국인 한국에서는 유독 그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 그의 주요 활동무대가 미국이었던 탓도 있다. 그래서 한국의 반도체 석학들은 그의 업적을 기리고자 지난 2017년부터 한국반도체학술대회에서 ‘강대원상’을 제정해 매년 시상자들을 선정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갑자기 사망하지만 않았으면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도 탔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강대원 박사의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故 강대원 박사

 

반도체 대량생산의 길을 열다

강대원 박사는 1931 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한국전쟁 중에 통역장교로 해병대에 복무했다. 그는 해병대 복무를 마친 후 서울대학교에 복학했으며 1955년 졸업했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길을 떠나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전자공학과에서 1956년 석사, 1959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는 ‘성장하는 산화층을 통과하는 실리콘으로의 불순물 확산’에 관해 연구했다. 

1959년에는 벨 전화 연구소(현 노키아 벨 연구소)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반도체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연구를 진행했다. 이 연구소는 1947년에 트랜지스터를 발명했고 이 연구의 주역이었던 존 바딘(John Bardeen), 윌리엄 쇼클리(William Bradford Shockley), 월터 브래튼(Walter Houser Brattain)이 1956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해 과학계에서 한창 주목받던 곳이다. 

강대원 박사가 미국 특허청에 게재한 MOSFET 모식도 (출처: 한국반도체학술대회)

벨 연구소에서 강 박사는 마틴 아탈라(Martin Mohammed John Atalla) 박사와 공동으로 MOSFET을 개발했다. 당시 나이 29세로 채 서른살이 되기 전에 이룬 업적이었다. 윌리엄 쇼클리 등이 개발했던 트랜지스터는 전력소비가 크고 집적화가 어려워 크기가 크기 때문에 대량생산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이를 해결한 소자가 강대원 박사의 MOSFET이다. 

MOSFET은 전력소모가 적고, 크기가 작아 집적화가 가능했다. 소형화할 수 있는 반도체 소자, 즉 MOSFET의 개발은 대량생산에 어려움을 겪던 반도체가 상용화의 길로 진입하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만약 MOSFET 발명이 없었다면, 현재 흔히 사용하는 컴퓨터 한 대를 작동시키기 위해서 핵발전소 1기에 해당하는 1GW의 전력을 소모해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MOSFET은 CPU(중앙처리장치)와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등 거의 모든 반도체의 기반 기술로 쓰이고 있다. 

 

한국의 주종목, NAND 플래시 기술을 개발하다

강대원 박사의 업적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1967년에는 비휘발성 메모리의 기본 원리인 플로팅게이트를 개발했다. 이 전에는 반도체의 전원이 꺼지면 데이터가 사라지는 문제가 있었다. 강대원 박사는 동료와 치즈케이크를 먹던 중 절연체 사이에 게이트를 쌓아 올리는 방식을 생각해냈다. 이에 그는 사이먼 지(Simon M. Sze)와 함께 MOSFET 위에 산화물 박막과 게이트를 교차시켜 쌓아놓는 형태의 플로팅 게이트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메모리 반도체는 캐시 메모리에서 받은 데이터를 반영구적으로 저장할 수 있도록 플로팅 게이트에 전자를 가둬놓을 수 있다. 플로팅 게이트 내의 전하를 제거하기 전까지는 데이터가 저장된다. 이 기술 덕분에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살아있는 비휘발성 메모리 반도체인 NAND 플래시를 개발할 수 있었고, 오늘날 DSLR과 스마트폰 등 다양한 전자부품이 생산될 수 있게 됐다. 

강대원 박사가 미국 특허청에 게재한 플로팅 게이트 모식도 (출처: 한국반도체학술대회)

그는 1988년에 벨 연구소에서 은퇴한 후, 미국 NEC연구소의 초대 소장을 역임했다. 이 연구소는 컴퓨터와 커뮤니케이션 기술에 대한 장기적인 기초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곳이다. 그는 1992년 5월 학술대회를 마치고 뉴저지로 돌아가던 중, 갑작스럽게 대동맥류 파열로 공항에서 쓰러졌다. 뉴저지주 피터스 병원(Peter’s Hospital)으로 옮겨진 그는 대동맥 파열로 인한 응급 수술을 받은 이후 합병증이 발생해 향년 6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영희 씨와 5명의 자녀, 1명의 손자가 있다.

 

에디슨도 받았던 ‘발명가 명예의 전당’ 헌액

한국인 최초로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 회원이었던 강대원 박사는 한국보다는 세계 과학계에서 더 높이 평가되는 인물이다. 1975년에는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스티븐 호킹 등이 수상했던 프랭클린 연구소의 ‘스튜어트 밸런타인 메달’을 수상했다. 180여 년의 전통을 가진 플랭클린 연구소 상은 2000여 명의 수상자 중 105명이 107개의 노벨상을 받았을 정도로 명성이 자자한 상이다. 2009년에는 MOSFET 발명의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상무부 산하 특허청으로부터 ‘발명가 명예의 전당(National Investors Hall of Fame)’에 헌액됐다. 발명가 명예의 전당은 인류의 사회와 경제 진화에 기여한 발명자를 기리기 위해 1973년에 설립됐으며, 토머스 에디슨과 라이트 형제, 노벨 등이 헌액됐다. 강 박사는 그간의 업적으로 고위직에 안착할 수도 있었지만 현장에서 연구하기롤 고수했다고 알려졌다. 그는 살아 생전 학술저서 3권, 연구논문 35편, 특허등록 22건을 남겼다. 

국내외 과학자들은 강대원 박사가 갑작스럽게 사망하지만 않았다면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했으리라고 입을 모은다. 1959년 IC(집적회로)를 개발해 2000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잭 킬비(Jack St. Clair Kilby)는 노벨상 수상 공적서에 강대원 박사의 연구가 없었다면 자신의 연구도 없었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서 메모리 반도체 강국으로 발돋움한 데에도 강대원 박사의 연구가 뒷받침이 되지 않았다면 힘든 일이었다. 1960~1970년대에는 국내에서 각종 세미나에 참석해 반도체 기술을 전수해 한국물리학회의 평생회원 자격을 얻었으며, LG전자 고문을 맡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 반도체 석학과 실무자들이 모여 만든 한국반도체학술대회에서는 지난 2017년부터 ‘강대원 상’을 제정해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다. 한국반도체학술대회 상임위원회 측은 “반도체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긴 국내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 MOSFET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트랜지스터의 미세화와 대량생산에 공헌했고, NAND 플래시에 사용되는 플로팅 게이트 기술을 개발한 강대원 박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강대원 (논문)상’을 제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강대원상의 첫 수상(2017년)의 영광은 소자·공정 분야에서 서울대 전기공학부 박병국 교수, 회로·시스템 분야에서 삼성전자 노형동 책임연구원에게 주어졌다. 제2회(2018년) 수상자로는 소자·공정 분야에서 서울대학교 황철성 교수, 회로·시스템 분야에서 삼성전자 강세현 박사와 KAIST 박인철 교수가 선정됐고, 제3회(2019년) 수상자로는 소자·공정 분야에서 포항공과대학교 황현상 교수, 회로·시스템 분야에서 KAIST 이귀로 교수와 부산대학교 남일구 교수가 선정됐다. 제4회 강대원 상 수상자는 오는 2월 12일부터 15일까지 강원도 대명 비발디 파크에서 열리는 ‘제24회 한국반도체학술대회’에서 나올 예정이다. 

회원가입 후 이용바랍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저작권자 © 테크월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와 관련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