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연구원들이 말하는 양자 컴퓨팅의 현재와 미래

[테크월드=이건한 기자] 인공지능(AI) 기술에는 ‘특이점(Singularity)’이란 단계가 존재한다. 이는 AI의 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앞서게 되는 시점이다. 가깝게는 지난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 이후 'AI에 드디어 특이점이 온 것이냐'란 우려가 많았지만 이는 기우였다. 많은 전문가들이 바둑 같은 한정된 영역을 넘어 인간의 범용 지능을 앞서는 진짜 특이점의 발생까지는 아직도 넘어야 할 기술적 장벽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훨씬 가까운 곳에서 바로 지금, 새로운 특이점이 피어나고 있는 곳이 있는데, 그건 바로 컴퓨터다. 최근 구글이 마침내 달성했다고 발표한 양자우위(Quantum supremacy)에 대해 학계와 업계가 비상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사진=구글

복잡한 인간의 지능과 달리 우리가 컴퓨터에 기대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빠른 처리 속도. 즉, 연산력이다. 어떤 방법을 동원하든 일단 주어진 문제를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연산할 수 있는지가 컴퓨터의 가치를 가르는 주요한 지표 중 하나가 된다. 이점에서 이번에 양자우위에 접어든 양자 컴퓨팅 기술은 컴퓨터의 새로운 지평이 열게 된 기술적 특이점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현존하는 최고 성능의 슈퍼컴퓨터를 압도하는 연산 속도, 그리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양자역학 기반의 완전히 새로운 아키텍처가 도입된 점 등, 양자 컴퓨팅과 양자우위의 달성은 그 자체만으로 흥미와 기대를 불러 일으키는 매력이 있다.

하지만 양자 컴퓨팅은 일반인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기술이다. 그러다보니 처음 AI가 등장했을 때처럼 근거 없는 장밋빛 전망, 혹은 우려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에 구글이 기자들을 대상으로 양자 기술의 원리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설명에는 구글의 AI 퀀텀팀 하드웨어 부문 엔지니어인 제이미 야오(Jamie Yao)와 퀀텀 리서치 사이언티스트인 케빈 새칭거(Kevin Satzinger)가 화상회의를 통해 직접 구글의 양자 컴퓨팅과 양자우위 전반에 대해 설명하고 간단히 질의응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케빈 새칭거(좌), 제이미 야오(우)

양자 컴퓨터란?

양자역학의 원리를 이용해 연산을 수행하는 양자 컴퓨터는 보통 ‘컴퓨터’라고 부르긴 하지만 전통적인 컴퓨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구조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일반 컴퓨터의 최소 데이터 단위인 비트(Bit)와 양자 컴퓨터의 최소 단위인 큐비트(Qbit)의 차이다.

비트는 일종의 스위치다. 트랜지스터의 전기적 ON/OFF 작용에 따라 비트는 0이나 1 둘 중 하나를 자신의 값으로 가질 수 있다. 이는 컴퓨터 구조의 오래된 상식 중 하나다. 반면, 양자 컴퓨터는 이를 단호히 거부한다. 큐비트는 0과 1, 둘 중 하나일수도 있지만, 둘 다일 수도 있으며, 아예 0과 1이 겹친(중첩) 상태가 될 수도 있다. 다만 이 성질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려면 양자역학에 대한 깊은 공부가 필요한 만큼, 여기에서는 일단 큐비트가 이런 성질을 갖고 있다는 점만 알도록 하자.

이런 큐비트의 성질을 이용하면 비트보다 훨씬 다양한 경우의 수를 만들 수 있다. 만약 2개의 일반 비트가 있다고 치자. 한 비트는 0 또는 1을 표현할 수 있고, 다른 비트도 마찬가지로 0 또는 1을 표현하는 식으로 한 번에 두 가지 상태를 순차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반면 큐비트 2개는 0, 00, 1, 11뿐 아니라 두 큐비트가 중첩된 상태 등, 훨씬 다양한 값을 동시에 표현하고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조건의 일반 컴퓨터보다 훨씬 빠른 연산이 가능하다. 또 큐비트의 수가 증가할수록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작업의 숫자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큐비트 하나가 진짜 양자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양자란 물체의 최소 단위로 자연상에 늘 존재하는 것이지만 그 자체를 연구소에서 인위적으로 만들거나 붙들어 두긴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구글이 사용하는 큐비트도 사이즈가 0.2mm 정도로 실제 양자와 비교하기엔 무리다.

다만 큐비트가 온전히 양자역학적 성질을 가질 수 있는 특수한 환경을 조성한 뒤, 이를 통한 양자 연산을 컴퓨터에 적용하는 것이 현재의 양자 컴퓨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구글은 큐비트가 활동할 수 있는 극저온의 초전도 회로를 만들고, 그 안에서 전자 펄스를 이용해 큐비트를 제어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아래 이미지는 구글이 개발한 양자 컴퓨팅 프로세서인 시커모어 칩의 내부 구조다. 가장 아래에 큐비트를 처리하기 위한 회로가 있고, 중간에는 큐비트를 제어하기 위한 칩이 있으며, 두 부분을 접은 뒤 이를 붙여 완성한다. 폭은 약 2cm 정도로, 주변부를 다시 금속 패키징으로 덮어 양자 운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분진이나 전자기를 1차적으로 차단한다. 

구글의 양자 컴퓨터를 위한 시커모어 칩 내부 구조

그리고 초전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이 칩을 극저온 냉장고 한 가운데 장착된다. 칩이 장착되는 부분의 온도는 약 15밀리캘빈(Milikelvins)으로, 야오 연구원에 따르면 이는 우주 심연의 온도와 비교해도 약 100배 이상 더 추운 수준이라고 한다.

두 연구원은 향후 양자 컴퓨터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일반인들이 상상하듯 책상 위에 양자 컴퓨터를 올려놓고 쓴다는 생각은 당분간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다. 큐비트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절대 영도의 극저온, 초전도 상태를 유지하는 비용도 크지만, 그런 상태에서조차 극도로 미세한 진동이나 소리 같은 간섭으로 인해 큐비트의 양자적 특성이 무너져 오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자우위의 개념과 의미

그렇다면 구글은 어떻게 양자우위를 달성했다고 말하는 것일까? 이번 양자우위 달성에 사용된 큐비트의 수는 53개이며, 이는 이론상 2의 53제곱에 해당하는 천문학적인 숫자의 연산을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구글도 현재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IBM Summit)와 비교해 최소한의 양자우위를 달성하려면 이 정도의 큐비트가 필요하다고 봤다. 

양자우위 증명을 위해 구글 연구팀은 양자 컴퓨터와 슈퍼컴퓨터를 대상으로 무작위 양자 알고리즘을 실행하고 그 값을 얻는 과정을 추적했으며, 슈퍼컴퓨터가 양자 알고리즘을 직접 수행할 수는 없기에 슈퍼컴퓨터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주어진 양자 알고리즘을 풀도록 했다. 

이후 두 컴퓨터 사이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 몇 번의 알고리즘 최적화를 진행한 이후 진행된 실험에서 구글이 주장한대로 ‘주어진 문제를 푸는데 시커모어 양자 프로세서는 약 200초, 슈퍼컴퓨터는 1만년이 걸렸다’는 결과를 얻어냈다는 것이 이번 양자우위 달성의 주요 근거다. 그러나 이 주장에 대해서는 IBM의 반박을 비롯해, 구글 측에 유리한 실험이었다는 여러 의견이 제기됨에 따라 사실 구글의 주장만을 전부 수용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IBM의 반박대로라도 그 차이는 200초와 2.5일로, 여전히 구글의 양자 컴퓨터가 슈퍼컴퓨터보다 훨씬 빠른 속도를 나타냈다는 사실이 증명되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 기본적인 양자우위는 달성됐다고 보는 것이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구글 역시 성능의 차이버다는 양자우위 달성 그 자체에 초점을 두고 있다. 세칭거 연구원은 “양자우위의 의미는 컴퓨터공학적 측면에서 볼 때 양자 컴퓨터가 전통적인 컴퓨터와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르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현실에서 정의할 수 있는 모든 연산을 양자 컴퓨터로 새롭게 도전할 수 있게 된 것이 중요하다”며, 이번 실험을 라이트 형제의 동력 비행 실험에 비유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그 비행이 현재 항공산업의 시작점이었으며, 그 자체가 항공 기술이 성장할 수 있는 근본적인 계기를 마련했던 것처럼 양자우위 실험도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는 이야기다. 비슷한 주장으로 얼마 전 인텔에서는 이제부터는 ‘새로운 개념의 양자 컴퓨터가 기존 컴퓨터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인지(양자 실용성)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기고를 내기도 했다.

 

양자우위, 그 이후

그렇다면 이후의 컴퓨터는 이제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 저명한 물리학자 존 프레스킬(John Preskill)은 가까운 미래에 ‘NISQ(Noisy, Intermediate-Scale, Quantum)’ 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측했다. 에러율을 현재의 1%에서 0.001% 수준으로 낮추고, 50~1000개의 큐비트를 활용하는 중간 규모의 양자 컴퓨터가 개발될 것이며, 양자 컴퓨팅을 보다 실용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연구의 시대가 시작될 것이란 의미다. 

NISQ 개념

두 연구원도 우선 NISQ 디바이스를 갖고 해결할 수 있을 문제들을 찾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예를 들면 분자 시뮬레이션, 머신러닝 개선과 AI 최적화, 그 외에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여러 분야들에 대한 연구가 양자 컴퓨터 안에서 새롭게 가능해질 것으로 바라봤다. 

세칭거 연구원은 아인슈타인과 함께 금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로 손꼽히던 리처드 파인만 역시 “우리가 아는 자연의 상태는 전형적인 물리학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연에 대해 연구하고 싶다면 자연 그대로, 양자역학적으로 시뮬레이션해야만 옳은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며, 특히 자연 현상에 대한 보다 정확한 연구가 향후 양자 컴퓨터를 통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외에도 제약, 에너지, 소재 개발, 고효율 태양전지를 비롯한 배터리, 산업용 프로세서 개발 등 기존에 오랜 시간과 큰 연구비용이 따르던 영역도 양자 컴퓨팅을 통해 그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또 이를 위해 구글은 향후 10년 이내에 1000 큐비트까지 양자 컴퓨터의 성능을 개선하고, 장기적으로 100만 개의 큐비트 수준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구글, 양자 컴퓨팅 기술 독점하지 않겠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이 든다. 그 수준이야 어떻든 구글은 이번에 양자 컴퓨터가 현존하는 최고 수준의 슈퍼컴퓨터를 넘어설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냈고, 이를 지속해서 개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완전히 새로운 기술인 양자 컴퓨팅 기술의 혜택을 아마 지금의 컴퓨터처럼 모든 국가나 기업이 동일하게 누릴 수 있을 것 같진 않아 보인다. 또한 양자 컴퓨팅 기술이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특정 국가나 기업간의 넘을 수 없는 기술 격차가 발생하는 기술적 과도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 만약 그런 시기가 온다면 연구원들이 말하는 양자 컴퓨터의 긍정적인 미래 외에도, 어떤 부정적인 측면이나 악용 가능한 사례들이 발생할 수 있지 않을까? 

아쉽게도 이런 질문에 관해 두 연구원이 속시원한 답을 내놓진 않았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밝혔다. 구글이 지금 개발하는 양자 컴퓨팅 기술을 독점하진 않겠다는 점이다. 구글 역시 이번 양자우위가 굉장히 중요한 연구 결과라 생각하고 있으며, 이를 전 세계 연구자들이 최대한 자유롭게 이용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말이다. 또한 “이번에 양자우위를 달성한 건 양자 시대의 놀라운 이정표이자, 한 두명의 노력이 아닌 굉장히 많은 분들이 협력한 결과물이다. 이에 앞으로 더 많은 공동 연구와 협업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글의 양자 컴퓨터 개발 환경

양자 컴퓨팅, 현대 암호 체계에 당장 영향 없을 것

이 밖에도 일각에서는 가공할 속도를 지닌 양자 컴퓨터가 개발됨에 따라 이것이 현재의 암호 시스템을 무력화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두 연구원은 이 부분에 대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보안 업계에서도 이미 오래 전부터 현재 사용 중인 RSA 암호체계가 깨질 것에 대비한 여러 준비를 해왔으며, 현재도 포스트 RSA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현재의 양자 기술 발전 속도로도 RSA 암호를 무너뜨리는 것 역시 최소 1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점, 앞서 말한 것처럼 양자 컴퓨팅 연구 성과에 대해서는 논문 등을 통해 투명하게 밝히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응할 새로운 암호 체계는 그 때까지 분명히 준비될 것이란 설명이다. 

과연 양자 컴퓨팅 기술이 슈퍼컴퓨터로도 해결할 수 없던 인류의 난제들을 해결하고, 기술적으로 크게 진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낼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이전의 모든 혁신이 그랬듯 기술이 가져올 막대한 파급 효과에 대해 지금부터 함께 고민하고, 소유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간다면 적어도 신기술의 혜택이 소수만을 위한 권력으로 남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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