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으로 인한 정치 변수 외 한파와 지진 등 환경적 악재까지
업계의 막연한 불안감 속 애플리케이션별 수요 모두 증가 중

[테크월드뉴스=박지성 기자] 전쟁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전투가 막바지로 치닫는 순간, 결연한 표정의 군인이 옆의 전우에게 말한다.

“이게 마지막 탄창이야.”

이 현상이 지금 우리 산업 현장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 등 여러 동시다발적 변수로 인해 반도체 수급 체계가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차량용 반도체를 중심으로 공급 부족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연내에는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는 낙관론과 “최소 내년 길게는 수년이 이어질 수 있는 구조적 변화”라는 비관론이 충돌하고 있다.

이에 금번 한장 TECH는 글로벌 반도체 부족 현상의 원인과 전망에 대해 심층적으로 알아보기로 한다.

“이게 마지막 반도체야”

라는 말은 생산현장에서 나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반도체 재고 있는 회사들이 요즘 제일 부럽습니다.”

전자부품 유통기업 관계자가 하소연했다. 코로나 이후 차량용 반도체는 물론이고, 산업 전반에서 반도체 부족 현상이 심화되며, 반도체를 찾는 고객들의 전화는 잦아지고, 목소리는 점점 커져가고 있다. 

 

ㅇ 복합적 변수로 인한 공급 부족, 그래서 풀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반도체 수급 부족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최근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 Boston Consulting Group)의 발표에 따르면 반도체 수급 부족 문제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특히 차량용 반도체의 공급 부족은 2021년 내내 지속돼 글로벌 자동차 생산량은 최소 400만 대에서 최대 600만 대 가까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최근의 반도체 수급 문제는 단순히 산업 내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글로벌 정치, 환경적 요인 등이 복잡하게 작용하며 그 폭과 깊이 그리고 길이가 모두 확대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전 영역에서 반도체 수요 증가 중

가장 먼저 부각되는 요인은 코로나 이후 글로벌 반도체 수요의 변화다. 2020년 하반기부터 거의 모든 수요산업에서 반도체 요구량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BCG와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emiconductor Industry Association)의 분석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0년 중반까지 글로벌 반도체 수요는 2018년 대비 오히려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이었다. [그림 1]과 같이 2019년 초반에는 거의 전 영역에서 2018년 대비 판매량이 감소했고 2019년 하반기 클라우드와 AI센터 등에 대한 투자가 이뤄져 간신히 역성장해서 소폭 반등을 이뤘다.

▲  [그림 1]  2020년 하반기, 모든 애플리케이션 수요가 폭증 중이다. (자료 = BCG 제공, 테크월드 뉴스 재가공)
▲ [그림 1] 2020년 하반기, 모든 애플리케이션 수요가 폭증 중이다. (자료 = BCG 제공, 테크월드 뉴스 재가공)

 

그러던 중 2020년 초반 코로나19가 창궐했다. 경기가 위축되며 일반 소비재, 스마트폰 수요가 줄었고 외부 활동이 감소하면서 오토모티브 수요 역시 큰 하락을 경험했다. 이 시기에는 재택 근무를 위한 PC와 IT 인프라 확충 수요가 그나마 반도체 산업의 버팀목 역할을 담당했다. 즉, 일부 산업별 편차는 있었겠으나 2020년 중반까지 반도체 산업은 2018년 대비 낮은 수준의 수요를 보였다.

하지만 2020년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급격하게 변화한다. PC와 IT 인프라에 대한 강한 수요가 유지되고 있는 가운데 5G 통신네트워크와 스마트폰 수요가 코로나 이후를 대비하면서 빠르게 회복됐고 여기에 차량용 반도체 역시 수요가 증가했다.

이처럼 수요는 가파르게 회복·증가하고 있지만 공급은 이를 쫓아가기가 버겁다. BCG의 분석에 따르면 2020년 하반기 반도체 수요량은 2018년 대비 최대 15%까지 상승했지만, 생산설비 확충은 4% 성장에 불과해 늘어난 수요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이 4%의 생산설비 확장도 그나마 기존의 계획 6% 대비 낮은 수치다. BCG의 예측에 따르면 2021년에 예상되는 반도체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반도체 생산설비 라인이 무려 90% 이상의 가동률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 수치는 2010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뿐만 아니라 대단위 투자를 요하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 상 이런 수요-공급의 불균형은 단기간 내에 해결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② 미중 갈등, 중국 기업들의 재고 비축 이어진다

가뜩이나 수요 대비 부족한 공급인데, 이 수요에는 ‘실질적’ 필요 외에 ‘심리적’ 요소도 진하게 묻어 있다. 바로 미중 패권 다툼으로 인한, 중국 기업들의 패닉바잉(Panic Buying)이다.

글로벌 반도체 생산 1위 기업인 대만의 TSMC 마크 리우 회장은 지난 3월 기자회견을 통해 “코로나 19가 반도체 공급에 영향을 미친 것은 맞지만, 이 외에도 미국과 중국의 무역 긴장이 반도체 쇼크를 초래했다”며 지금의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이 단순한 산업적 요인만은 아님을 지적했다[그림 2].

▲  [그림 2] TSMC마크리우 회장(Mark Liu Chairman) (자료 = 디지타임즈)

실제로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정조준하고 있는 중국 IT 업체 화웨이의 쉬즈쥔 부회장은 지난 3월 12일 ‘글로벌 애널리스트 서밋’에서  “기존에는 중국 기업들이 효율적 기업 운영을 위해 재고 제로를 추구했으나 현재는 최소 3개월에서 6개월 또는 1년 이상 재고 확보에 매달리고 있다.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기업들의 이런 재고 확보 움직임이 반도체 공급 부족을 가속화하고 있다”며 미국의 중국 때리기가 결국은 글로벌 공급망 전체에 부담을 주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화웨이는 통상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5~6% 수요를 차지하는 기업으로 화웨이의 반도체 재고분 확충을 위한 노력은 반도체 시장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실제로 미국의 견제가 본격화하자 화웨이는 작년 10월에는 전세기까지 동원해서 대만에서 반도체를 소위 ‘영끌’하며 재고를 비축하기 위해 나선 바 있다.

그 결과, 중국 반도체 수입금액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으며, 2021년 3월 반도체 수입 규모 589억 개, 금액은 359억 달러로 해당 집계 이래 월간 최고치를 경신하기도 했다. 특히 1분기 중국 반도체 수입 규모는 1556억 개, 금액 936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3.6%, 30% 증가했다.

여기에 더 나아가 화웨이 쉬즈쥔 부회장에 따르면 중국의 반도체 기업 SMIC 등은 향후에 부족해질 반도체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 일본의 중고 반도체 생산장비를 대량으로 구입하고 있다.

거대한 중국 시장이 반도체 수요의 ‘블랙홀’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③ 예상 못한 환경적 변수들, 한파와 지진

반도체 공급에는 사람이 하는 일 외에도 악재가 또 터졌다. 올해 2월 미국 텍사스에 유례없는 최강 한파가 찾아오며 전력이 부족해져 오스틴에 밀집해 있는 삼성전자, 인피니언, NXP의 생산설비가 멈춰섰다. 

미국에서만 일이 생긴 건 아니다. 같은 달 13일 일본 후쿠시마현 앞 바다에서 진도 7.3의 강진이 발생하며 글로벌 반도체 기업인 르네사스의 이바라키현 나카시 공장 운영이 중단됐다. 지진 이후에 공장의 피해 규모를 확인하고 정비를 해 다시 생산을 재개하긴 했지만, 설상가상으로 다음달인 3월 19일에는 같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무려 1달 가까이 다시 생산라인을 멈춰야만 했다[그림 3]

▲ [그림 3] 지진과 화재로 올 들어 두번이나 가동을 멈춘 르네사스 (자료 = 르네사스)

 

공급 악재는 쉼없이 터졌다. 대만에서는 지난 4월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생산업체인 TSMC가 생산을 중단했다. 이는 TSMC의 공장이 입주해 있는 산업 단지 내 송전 케이블이 공사로 끊어지면서 발생한 사고에 기인한다. 불과 6시간 만에 빠른 속도로 공장 가동은 재개됐지만, 나노 단위의 공정이 정밀하게 이뤄져야 하는 반도체의 특성상 잠깐의 정전도 웨이퍼 폐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 사태는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반도체 공급에 부담을 가중시켰다.

이처럼 현재의 반도체 수급 부족은 특정 영역의 개별 이슈에 의해 촉발된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영역의 복합적 이슈가 상호작용하며 나타나고 있어 단기간 내에 해결이 어려워 보인다. 관련해서 글로벌 3위의 파운드리 업체인 글로벌 파운드리즈 톰 콤필드 CEO는 “향후 5년간 반도체 수요는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현재의 반도체 부족은 일시적 이슈가 아닌 구조적 현상”이라고 언급했으며 대만의 류양웨이 폭스콘 회장 역시 반도체 부족은 갈수록 심해져 2022년 내내 지속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이와 관련해 최근 글로벌 반도체 부족과 오토모티브 산업의 영향을 분석한 '반도체 공급부족 - 자동차산업 전망 보고서’를 발표한 김민지 BCG 코리아 MD 파트너(매니징 디렉터 파트너)는 “차량 제조사 및 주요 부품사는 내년까지 이 위기상황이 지속된다고 보고 안전장치를 시급히 확보해야 한다”며 금번 사태에 대한 업계의 중장기적 대응을 조언했다.

- 해당 기사는 <월간 전자부품(EPNC)> 2021년 7월호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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