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국 제재, 미국에게도 상처 뿐인 영광될 가능성 높아…

[테크월드=박지성 기자] (편집자주: 한장TECH는 테크월드 기자들이 주요 뉴스를 한 장의 슬라이드로 제작하여 제공하는 테크월드만의 차별화된 독자 콘텐츠입니다.)

 

2018년 12월 1일
 

장면1. 중국 굴지의 전자기업인 화웨이의 부회장 겸 최고재무담당자(CFO)인 멍완저우가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캐나다에서 체포됐다. 멍완저우는 단순한 임원이 아니라 화웨이의 창업자인 런정페이 회장의 딸이었기에 이 구속 사실은 중국은 물론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줬다.

 

장면2. 노벨상 수상자 후보로 거론되던 스탠포드 대학교의 물리학자이자 기업가인 장서우청 박사가 자살했다. 장 박사는 교수이기도 했지만 중국 정부에게 자금지원을 받던 실리콘 밸리의 투자회사 디지털호라이즌캐피털(DHVC)의 소유주였다.

 

장면3. 글로벌 반도체 장비회사인 ASML의 창고에서 불이 나 2000억 원이 넘는 가격의 EUV(극자외선광각기)가 소실됐다. 해당 장비는 10nm 이하의 반도체 생산의 핵심기계인데, 불에 탄 EUV는 중국 반도체 회사가 발주해, 2019년 초에 인도될 예정이었다.

 

위의 3가지 사건은 모두 2018년 12월 1일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호사가들은 위의 3가지 사건이 하루에 일어난 것이 과연 우연이겠냐며,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고 미국의 기술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공작이라는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 3가지 사건의 연관성에 대해 객관적으로 밝혀진 바는 아직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객관적 발표가 없더라도,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날이 갈수록 매우 노골적이고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부인할 수 없다. 최근 G2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 이번 한장 TECH는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 시나리오를 분석해 본다.

 

ㅇ 지키려는 미국, 뺏으려는 중국… 격화되는 반도체 전쟁

미국은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48%를 장악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반도체 선도 국가이다. 물론 메모리 반도체 영역에서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를 비롯한 국 내 기업들의 존재감이 두드러지지만, 시스템 반도체를 포함한 전체 산업을 보게 되면 미국의 입지는 견고하다.

 

중국도 반도체 산업에 욕심을 내고 있다. 소위 ‘반도체 굴기’라 불리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에 중국은 국가 주도로 현재까지 약 60조 원에 해당하는 천문학적 펀드를 조성하고 산업 육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2018년 4월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의 생산현장을 방문해 “반도체는 사람의 심장과 같다. 심장이 약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라고 말하며 반도체 산업이 가지는 전략적 의미를 강조했다. 이런 노력은 중국의 산업 경쟁력을 비약적으로 올리기 위한 ‘중국제조 2025’라는 마스터 플랜과 결합하며 속도를 올려 나가고 있다.

 

미국은 이런 중국의 움직임이 불편하다. 그리고 그런 심기를 매우 공공연하게 표출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마이크 폼페이오 美 국무장관은 세계 유일의 EUV 제조업체인 ASML을 방문해, 해당 기기를 중국에 판매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5월 15일에 미국 상무부는 더 강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제3국의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미국 기술을 부분적으로 활용했다면 화웨이에 제품을 판매할 때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였다. 앞서 언급했지만 세계 시장의 48%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 반도체 산업의 위상을 생각하면, 사실상 화웨이는 반도체 수급 자체가 어려워졌다.
 

중국에 대한 ‘공격’ 외에도 미국은 ‘방어’에도 힘을 쏟고 있다. 지난6월 미국 상원은 ‘CHIPS’(Creating Helpful Incentives to Produce Semiconductors) 법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반도체 연구에 70억 달러, 반도체 제조연구소 신설에 30억 달러, 반도체 제조공장의 미국 유치에 100억 달러, 2024년까지 반도체 관련 법인세 40% 공제 등을 제공함으로써 미국의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도모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를 둘러싼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지난 3월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BCG(보스턴 컨설팅 그룹)는 미국 반도체 산업협회 SIA(Semiconductor Industry Association)의 의뢰를 받아, 이런 미중 충돌이 미국 반도체 산업에 어떤 영향을 야기할 것인지에 대한 결과를 예측, 분석한 바 있다

 

그림1. 한장 TECH (자료=BCG, 테크월드 재가공)
▲ 미중 반도체 전쟁이 격화될 경우, 미국 역시 피해를 감수할 수 밖에 없다.

 

ㅇ 비교적 평화로웠던 시기 2018년, 시나리오의 베이스라인

 

시나리오 분석(베이스라인)은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싸움이 노골화되기 이전인 2018년의 상황을 출발점으로 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은 2018년 현재, 전체 반도체 시장의 48%를 차지하며 글로벌 총 매출액은 2조 2600억 달러, 한화로 2665조 원을 벌어 들였다. 미국 반도체 산업의 이런 강력한 경쟁력은 밀도 높은 R&D 투자에 기반한다. 미국은 2018년 전체 매출액의 약 17.6%에 달하는 400억 달러를 반도체 R&D에 투자하며 세계 시장에서 기술 우위를 지켜왔다. 반도체 관련 기술 개발은 장비는 물론 인력 양성 측면에서 대단위 투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미국은 대규모 매출 창출 à 대단위 R&D à 압도적 기술 경쟁력 확보 à 글로벌 선도 지위 강화 à 매출 확대와 같은 선순환을 통해 효과적으로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ㅇ 시나리오 A: 중국이 원하던 상황, 중국제조 2025와 반도체 굴기의 성공

그러나 이 와중에 미국의 반도체 패권에 중국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시나리오 A는 ‘중국제조 2025’의 마스터 플랜과 ‘반도체 굴기’가 중국의 뜻대로 긍정적으로 진행될 경우를 가정한다. 물론 최근 미국의 중국 견제가 노골화되며, 해당 시나리오가 실현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다. 하지만, 최초 미국 정부가 이런 중국의 계획을 경계하며 제재를 가했다는 점을 상기할 때, 중국의 반도체 산업이 성장할 경우 미국의 위상이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다.

 

우선 중국의 마스터플랜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경우, 중국 기업들은 지금 현재 14% 수준에 불과한 반도체 자체수급 역량을 지속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BCG는 이로 인해 향후 5년간 미국 반도체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최소 15%에서 최대 40%의 점유율을 상실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은 2018년의48%에서 약 43~46%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더불어, 시장 점유율 감소는 3~5%에 불과해도, 제품 가격 상승 등으로 인한 매출액 감소는 최소 -3%에서 -9%에 달해 약 2000억 달러, 한화로 235조 원에 가까운 매출 감소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의 반도체 경쟁력 강화는 분명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입지를 축소시킬 수 있는 요인이다. 그러나 해당 시나리오를 분석해 보면, 미국의 입지가 ‘다소’ 약화되기는 하더라도 여전히 미국의 글로벌 선도 입지를 위협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림2. 한장 TECH 2019년 12월 (자료=테크월드)
▲ 지난 19년 1월 테크월드 뉴스가 분석했던 미중 무역갈등에 따른 한국 경제의 파급효과. 고래 싸움에 터지지 않는 새우 등은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ㅇ 시나리오 B: 강력한 미국의 압박… 뾰족한 수를 못 찾는 중국

 

시나리오 B는 현재와 같은 미국의 강력한 압박이 지속되는 가운데 중국 업계도 뚜렷한 대응 방향을 찾지 못하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현재 중국에 대해 강력한 압박을 진행 중인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미국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중국이 ‘백기 투항’을 하는 본 시나리오를 가장 이상적으로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경우 미국 역시 상당한 피해를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단 세계 최대규모의 반도체 시장인 중국에서 미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향후 2~3년 동안 약 55% 가까운 시장을 상실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나리오 A가 중국 업계의 자급력 향상에 기인한 점유율 하락이라면, 이 경우에는 미국 정부의 제재 활동으로 인한 제도적 위축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 시장에서의 입지 감소는 필연적으로 글로벌 전체 시장에서의 점유율 하락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이 경우 미국 기업들의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의 점유율이 40%로 하락하고 이런 업계의 위축으로 인해 R&D 투자 여력은 최대 300억 달러 수준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이런 긴장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세계 1위의 반도체 선도 국가 지위는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역시 피해를 입기는 하겠지만, 강력한 제재를 통해 중국을 극도로 압박하고 확실한 우열관계를 정립할 수 있는 시나리오인 것이다.

 

ㅇ 시나리오 C: 미중의 완벽한 단절.. 오히려 중국 자립으로 미국 패권 상실

 

가장 마지막 시나리오는 미국과 중국의 테크놀로지 디커플링(Technology Decoupling) 상황이다. 미국 정부의 보다 강력한 제재로, 중국에 대한 반도체 판매를 전면 금지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여파는 제재 조치가 시행되면 매우 즉시적인 효과를 보일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 제재는 미국 기업들에게도 엄청난 파국으로 작동할 것으로 분석됐다. 일단 제재가 발동하게 되면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모두 소실될 것이고 그 여파로 인해 미국의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30%로 내려앉게 될 전망이다.

 

단순히 점유율과 매출액 하락만 문제가 아니다. BCG의 분석에 따르면 이 경우, 미국의 시장 점유율은 2018년 베이스라인 대비 18%p감소하고 매출액은 이의 두 배인 37%P 감소하는데, 이런 매출액 감소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R&D 투자는 변동폭이 훨씬 더 커 최소 30%에서 최대 60%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 경우 미국 기업들의 R&D 투자에 대한 여력은 급감해 투자금은 2018년의 1/4 수준인 100억 달러로 위축되고, 고도로 숙련된 반도체 인력 1만 5000명에서 4만 명이 손실을 입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수한 인력이 해외로 나갈 수 있는 리스크까지 감수해야 한다고 BCG는 경고했다.

 

더불어 해당 시나리오대로 현실이 진행될 경우, 미국은 글로벌 반도체 선도 국가로서의 입지를 상실할 것으로 예상됐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한국이 향후 몇 년 내 미국을 추월하고 글로벌 반도체 리더 국가로 도약할 것으로 예상됐는데 이는 비메모리 분야 최강 국가로서의 위치, 그리고 최근 시스템 반도체에 대한 대대적 투자가 평가요소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중장기적으로 미국과의 기술 디커플링을 극복한 중국이 내수 시장을 통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고 BCG는 전망했다. 반면 미국은 글로벌 리더 자리를 잃으며, 기존의 성공 방정식이었던 업계의 선순환을 계속 만들어 내지 못하고, 낮아지는 매출 à 위축된 기술개발 à 기술경쟁력 후퇴 à 시장 지위 축소의 악순환 구조로 전환될 수 있다고 경계했다.

 

ㅇ 안일한 정치적 제스쳐인가, 생사결단의 경제적 전쟁인가?

▲ 검도에서 상대방에게 허리치기를 성공 시키기 위해선, 자신의 머리를 고스란히 내어줘야만 한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그 전선이 무한히 확장되고 있다. 관세를 필두로 한 경제에서, 반도체를 둘러싼 기술 패권, 남중국해와 대만을 둘러싼 군사적 갈등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미국은 전방위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글로벌 기술 패권을 두고 G2가 다투는데 충격파가 작을 수 없다. BCG의 분석처럼, 미국의 對 중국 압박은 단순히 중국에게만 위기가 아니라 미국의 자국 내 반도체 산업에도 상당한 수준의 출혈을 요구하거나 심한 경우 미국 스스로 반도체 선도국 지위를 내어주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최근 미국의 중국을 견제하는 일련의 활동들이 단순한 정치적 제스처이고, 중국 정부가 이런 견제 때문에 향후에 미국의 뜻대로 고분고분히 움직일 것이라는 다소 안일한 판단에 기인한 것이라면 미국은 이를 다시 한번 충분히 숙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 19, 대홍수 등의 문제로 사면초가에 있는 중국도 미국만큼이나 절박하기 때문이다.

 

‘Neck or Nothing’이라는 영어 표현이 있다. 그야말로 목을 걸고 싸운다는 의미로 우리 말로 표현하자면 ‘사생결단’과 의미가 닿는다. 싸울 때 가장 무서운 사람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과 상대하려면 나 역시도 목숨을 걸고 싸움에 임해야 한다. 중국과 반도체 전쟁을 진행하려는 미국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볼만한 표현이다.

 

- 해당 기사는 <월간 전자부품(EPNC)> 2020년 9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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