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개발사 인수에 안드로이드·블랙베리용 시리 출시 무산

[테크월드=이혜진 기자] 애플의 음성인식 비서 서비스인 '시리(Siri)’. 많은 사람들이 시리를 애플에서 처음 개발한 ‘보이스유저 인터페이스(VUI·말하는 인터페이스)’로 오해한다. 그렇다면 시리를 최초로 개발한 곳은 어딜까. 

최근 서울 중구 위워크에서 열린 강연에서 박현아 LG유플러스 챗봇(채팅 로봇) 기획자는 “시리는 미국 국방부에서 진행한 미국 역사상 가장 큰 AI 프로젝트의 일부”라며 “개발진들이 ‘SRI 인터내셔널(구 스탠포드 연구소)’을 설립해 시리를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시리는 2007년 12월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의 프로젝트 ‘칼로(CALO·Cognitive Assistant that Learns and Organizes)’에서 ‘음성개인비서 연구부문’을 독립시켜 파생됐다. 병사들의 정보 습득을 돕기 위해 AI 기술을 확보하고자 아이폰이 나오기 4년 전인 2003년부터 개발했다. 

프로젝트에 5년간 투입된 연구비는 무려 2억달러(약 2214억원)에 달한다. SRI 인터내셔널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주요 대학교와 항공기 제작 업체 보잉 등 22곳의 연구원 300여명이 참여했다. 다그 키틀로스 비브 랩스 공동창업자의 주도 아래 개발된 아이폰 운영체제(iOS)용 시리 앱(응용 프로그램)은 2010년 애플 앱스토어에 등록됐다.

애플과 시리의 인연은 같은 해 3월 스티브 잡스로부터 걸려 온 한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됐다. 회사를 2000억원에 인수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잡스는 회사를 인수하기 위해 45일간 30번의 전화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그 키틀로스는 애플에 기술을 넘기면 널리 쓰이겠다는 판단에 결국 회사를 매각했다. 당시 인수로 안드로이드·블랙베리용 시리의 출시는 불발됐다. 

아이폰에서 시리 앱을 실행한 화면.

시리는 인수된지 1년 반 만인 2011년 10월 앱스토어에서 사라졌다. 이어 당해 출시된 아이폰4S의 기본 기능으로 탑재됐다. 다그 키틀로스는 시리의 발전 방향을 두고 애플 경영진과 의견을 좁히지 못한 채 애플에서 1년 반 만에 퇴사했다. 그가 2012년 설립한 AI 음성인식기술 업체 비브 랩스는 2016년 11월 삼성전자의 가족이 됐다. 

시리 인수로 음성개인비서 부문에서 주도권을 잡았던 애플은 요즘 과거만큼 영향력을 발휘하진 못하고 있다. 지난 8월 영국의 여론조사 회사 유고브(YouGov)는 스마트폰에서 쓸 수 있는 AI 비서 중 애플 시리와 구글 어시스턴트가 36%의 시장 점유율로 공동 1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앞서 2018년 미국 기술 분석 기업인 보이스봇의 조사에선 애플 시리와 구글 어시스턴트의 시장 점유율이 각각 46%, 29%였다. 

이에 대해 박현아 기획자는 “시리는 출시 직후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지만 잡스의 사망으로 구심점을 잃은 데다 폐쇄적인 정책으로 기능을 확장하기 어려웠다”고 분석했다. 

VUI를 스마트폰의 기능이 아닌 독립적인 서비스로 시장에서 증명해낸 기업도 있다. 바로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이다. 지난해 6월 독일 시장조사 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원통형 스피커인 아마존 ‘에코(Echo)’의 출하량은 전년 3200만대에서 올해 5390만대로 급증할 전망이다. 올해 초 미 시장조사 업체 이마케터는 AI 스피커를 보유한 미국 가정의 약 70%가 알렉사를 사용한다고 밝혔다. 

아마존 에코 3세대 모델.

이 같은 성공엔 2010년대 초반부터 준비해온 아마존의 노력이 바탕이 됐다. 미 경제 전문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의 완벽주의와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 여부에 대한 긴 내부 논쟁 때문에 에코는 시리가 출시된지 4년 뒤인 2014년에야 출시됐다. 

시리, 에코와 같은 음성 인터페이스 기술의 진화는 보고 만지는 인터페이스로부터 해방된 자유를 가져왔다. 예를 들어 출근 준비를 위해 옷을 갈아입으면서 “알렉사야, 오늘 날씨 어때?”라고 물어보는 식이다. 

이와 관련해 박현아 기획자는 “에코 출시 전까진 말하는 인터페이스를 단독 사용하는 것은 시각적인 기기의 보조가 없기 때문에 불완전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며 “(출시 후) 사람들은 오히려 정보에 접근하는 동안 주의력을 다른 곳에 분산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이프트(IFTTT·If This Then That)’를 이용하면 다양한 스마트 기기를 연동해 스마트 홈을 구성할 수도 있다. 이프트는 ‘만약 이 액션이 일어나면 이렇게 실행하라’는 뜻의 자동화 애플리케이션이다. 특정 상황을 직접 지정하면 이용자의 명령 없이 기기를 자동으로 실행하게 할 수 있다. 

다만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사용자 맞춤형 메뉴 화면)’의 보조가 필요할 때도 있다. 이용자가 메시지를 기억해야 하는데 정보가 많거나 기억 용량에 한계가 있는 경우다. VUI가 제공하는 음성 기반의 정보는 재생 후 메시지가 사라지는 문제가 있다. 

VUI보다 GUI에서 이용자가 신뢰감과 통제감을 더 많이 느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난 2017년개최된 CHI(Computer Human Interaction) 컨퍼런스에서 이스라엘의 연구자 미갈 루리아는 연구 참석자 가운데 “스크린은 가장 안전하고 신뢰감이 드는 방식”이라며 “항상 거기 있고 작동할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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