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적극 지원 나서야

[테크월드뉴스=이혜진 기자] 글로벌 자동차 제작사의 전기차용 배터리 내재화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앞서 테슬라가 전기차용 배터리의 내재화를 선언한데 이어 최근에는 폭스바겐과 포드도 이를 선언했다. 다른 글로벌 자동차 제작사는 아직 관망하는 중이다. 자동차 제작사의 입장에서는 전기차 가격의 약 40%를 차지하는 배터리를 외부에서 공급받는 점은 그동안의 수직·하청구조적인 측면에서 가장 큰 난제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용 배터리의 내재화는 생산시기의 조절이나 경제적인 논리 등 여러 면에서 자체 생산보다 매우 불리하다. 지난 130여년 동안 ‘슈퍼 갑’의 위치에 있던 글로벌 자동차 제작사의 입장에서는 현재 전기차의 급격한 흐름이 그리 달갑지 않을 것이다. 수직·하청 구조가 수평·동등 구조로 바뀌고 있는 점과 자동차가 기존의 단순한 이동수단에서 융합적인 미래형 모빌리티로 변모하는 점은 자동차 제작사가 갖고 있던 ‘슈퍼 갑’의 위치가 흔들리고 주도권마저 빼앗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배터리는 전기차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만큼 자체적인 내재화가 중요하다. 그러나 배터리 내재화가 쉬운 것만은 아니다. 워낙 하이테크 기술이 모인 만큼 내재화를 선언해도 자체적인 양산 모델이 출시되기까지 온갖 고통과 비용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현대차 그룹이 굳이 처음부터 무리하게 전기차용 배터리의 내재화를 선언할 이유는 없다. 아직은 명분도 없다. 실리를 추구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 현상 계속될 것

그렇다면 전기차 배터리 내재화의 변수는 무엇일까. 바로 차량용 반도체의 부족 현상이다. 이미 작년 말부터 시작된 차량용 반도체 부족 현상으로 글로벌 제작사들이 자동차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그 동안 어느 정도 여유가 있던 현대차그룹도 공장 운영 중지와 차량 생산 감소라는 문제에 직면하고 말았다. 최근에는 인기 차종을 중심으로 이른바 마이너 옵션이라고 해서 차량용 반도체를 옵션으로 변경하는 신차를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에도 차량용 반도체의 부족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차량용 반도체는 내연기관차보다 전기차에서 2~3배 더 소요되는 핵심 부품이다. 현재 내연기관차는 차 1대당 100여 개, 전기차는 200~300개의 차량용 반도체가 소요된다. 그러나 차량용 반도체는 다품종 소량 생산의 방식으로 제작되고 공정이 복잡하며, 내구성과 신뢰성을 기본으로 하는 특성이 있어 반도체 회사들이 대량 생산하려는 품목은 아니다. 문제는 이렇게 단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차량용 반도체가 미래 모빌리티 생산에 가장 핵심적인 부품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선 코로나 백신 부족 현상과 마찬가지로 누가 더 많이 확보하는 가가 중요하다. 설령 차량용 반도체의 부족 현상이 빨리 해결된다고 해도 올해 가을까지는 이런 사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어느 때보다 비상 체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국내 경제 양대 축 중의 하나인 자동차 산업의 먹거리 확보 차원에서 이 같은 대비책은 더욱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 현상의 원인

차량용 반도체 부족 현상은 작년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으로 유럽과 미국 시장의 자동차 판매가 반토막이 나면서 차량용 반도체의 주문을 반으로 줄이는 현상이 생기며 나타나기 시작했다. 차량용 반도체의 주문이 반으로 줄어든 가운데 이를 생산하는 업체들은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가전 제품이나 모바일 제품의 반도체 생산을 늘렸다. 이후 작년 말부터 글로벌 자동차 제작사의 반도체 주문 증가 요청이 있었으나, 이미 반도체 제작사들의 마음이 돌아선 뒤였다. 여기에 세계 최대 차량용 반도체 회사인 NXP의 미국 공장이 텍사스 한파로 인해 가동이 중지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동시에 세계 3위 업체인 일본 르네사스도 공장에서 불이 나 차량용 반도체의 생산을 중단하며 공급이 더 줄어들었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이 경제 패권을 두고 서로 치열하게 싸우는 가운데 차량용 반도체를 사재기한 것도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모든 관련 업체가 세계 최대의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의 TSMC로 달려가 차량용 반도체 주문을 사정하고 있을 정도다. 

현대차그룹은 작년 내수를 기반으로 다른 해외 제작사 대비 괜찮은 실적을 기록해 차량용 반도체의 주문을 줄이지 않았다. 작년 초기 차량용 전선 뭉치인 와이어링 하네스의 공급 부족으로 인해 국내 공장의 가동을 중지하며 부품 공급의 중요성을 인식한 현대차그룹은 그 때의 학습 효과로 차량용 반도체를 미리 준비했다. 그러나 수개월의 여유분이 소진되면서 현재 차량용 반도체의 부족 현상이 현실화됐다. 그러면서 차종별 생산 중단이라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GM도 차량용 반도체 부족 현상으로 공장 운영을 수시로 중단했다. 르노삼성은 반도체 부족도 문제지만 자사 제품의 판매량이 급감하면서 생산하는 차종 수도 적어졌다. 쌍용차는 법정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로 반도체 부족 현상을 고민할 상황이 못 된다. 

차량용 반도체, 국가 차원에서 준비해야

차량용 반도체 확보는 국가·지역별 전략적인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등은 차량용 반도체 확보를 전략적인 문제로 접근하면서 자체적인 내재화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자동차 생산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국가 차원의 준비를 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하면 우리나라도 지금 이 시점이 자동차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판단할 수 있다.

최근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에 진출한 삼성전자와 대만 TSMC 등 주요 반도체 회사들을 참가시키는 전략 회의를 개최하며 자국 우선주의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는 이들 기업에 미국에 반도체 투자를 조속히 시행하라는 뜻과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하라는 주문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의 입장에서는 기술적인 난이도와 수익률이 낮으면서 높은 신뢰성과 복잡한 공정과정 등 의 문제를 갖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의 생산에 대해 고민이 많아질 상황이다. 이 같은 점을 의식해서인지 미국 정부는 차량용 반도체 생산의 경우 보조금 등을 지원해 관련 산업을 활성화하려 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미국 경제의 5%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고용 창출 측면에서도 핵심 산업인 만큼 차량용 반도체의 내재화는 미국 경제에 중요한 과제다.  

우리나라도 대통령 주관 하에 확대경제회의를 열며 현대차그룹, 삼성전자 등 관련 수장이 모인 가운데 반도체 대책 회의를 개최했다. 차량용 반도체 등 관련 산업을 제대로 챙기지 않는다면 앞으로 미국 등 각국의 내재화를 통한 산업 재편이 이뤄져 반도체의 주도권을 뺏길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오갔지만 앞으로는 세부적으로 산·학·연·관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핵심 전략과 지원이 요구된다. 유럽연합도 내재화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반도체 기업의 각자도생을 진행하고 있다. 

올 가을까지 쓸 수 있는 차량용 반도체 확보해야

이와 관련해 이해관계자들은 크게 두 가지를 고민해야 한다. 우선 올 가을까지 차량용 반도체를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에선 차량용 반도체를 자체적으로 일부 생산하는 비상 체제에 들어간 모습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정부를 중심으로 산·학·연·관의 일체된 노력을 통해 최대한의 물량을 확보해야 한다. 정부에서도 비상 체계를 마련하고 미래 반도체 산업을 이끌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지만 차량용 반도체를 메울 수 있는 뾰족한 대안은 없는 실정이다. 코로나로 인한 백신 부족 현상으로 모든 국가가 백신 확보에 매달리는 것과 같이 공급량이 확실히 보장되기 전까지는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 차량용 반도체 확보에 나서야 한다. 현대차그룹과 같은 자동차 회사도 인기가 떨어지고 오래된 차종보다는 인기 차종을 중심으로 차량을 제조해야 한다. 다만 전기차는 현재 주목받는 차종인 만큼 만전을 기해 제작해야 한다. 

두 번째로 국내에서도 차량용 반도체의 내재화를 고민해야 한다. 차량용 반도체는 생산성 등 단점이 많은 부품이지만 앞으로 전략 물자로서 역할이 커지는 만큼 내재화를 외면해선 안 된다. 차량용 반도체가 한두 가지만 없어도 차량 생산이 불가능한 심각한 사태가 발생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 차량용 반도체는 다품종 소량 생산, 낮은 수익률, 복잡한 공정 준비, 안전을 보장하는 내구성 등이 특징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국내 반도체 설계와 생산성을 확보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수준과 비교해 차량용 반도체 제작사의 기술 수준은 아직 낮은데다 수익성도 떨어져 기업의 입장에서는 차량용 반도체에 집중하는 것이 그리 바람직한 방향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차량용 반도체가 전략 물자로 떠오른 만큼 높은 수준의 차량용 반도체는 삼성전자 등의 기업이 생산을 일부 담당하고 낮은 수준의 제품은 국내 여러 중견 반도체 회사가 담당하면서 유기적인 생산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현대차그룹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 더욱 체계적으로 준비된 차량용 반도체 생산 체제가 구축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더욱이 전기차 등 우리가 미래 먹거리로 주도권을 쥐려고 하고 있는 미래형 모빌리티는 더 많은 기술 집약적인 차량용 반도체가 소요돼야 하는 만큼 자체적인 생산 시스템을 미리 구축해야 한다. 반도체가 차량용은 물론 다양한 전자 제품에 더욱 필수적인 부품으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도 더 높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주도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도 물론 중요하지만 차량용 등 비메모리 반도체의 영역은 전략화된 소자로 부각되고 있는 만큼 지금은 이를 대비하기 위한 중요한 시기다. 

다시 한번 강조하면 지금 당장 투 트랙으로 차량 반도체의 공급 전략을 진행해 향후 재발할 수 있는 공급 부족 현상에 대비해야 한다. 정부에서는 차량용 반도체 생산의 수익률이 떨어지는 만큼 세제 혜택 등 각종 인센티브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앞으로 차량용 반도체 내재화 문제 이외에 더 많은 문제가 등장할 수 있는 만큼 냉정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이 구축되길 바란다. 특히 길게 봐서 미래 반도체 산업 자체가 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국가적인 역량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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