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는 EUV, 그 EUV를 선점한 ASML

[테크월드=박지성 기자] (편집자주: 한장TECH는 테크월드 기자들이 주요 뉴스를 한 장의 슬라이드로 제작하여 제공하는 테크월드만의 차별화된 독자 콘텐츠입니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반도체 업계는 TSMC와 삼성전자 간의 미세공정 개발 소식으로 뜨거웠다. 시작은 TSMC였다. TSMC는 2018년 말 액침 불화아르곤(ArFi) 노광 방식을 통해 7나노 이하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고 애플, 하이실리콘, 퀄컴 등의 물량을 수주하며 해당 시장을 선점했다. 삼성은 반격에 나섰다. 2019년 기존 ArFi 방식이 아닌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도입해 7나노 개발 성공을 발표하고 연 이어 5나노 개발 소식도 잇따라 들려왔다. TSMC도 이에 뒤질세라 EUV를 도입해서 7나노를 양산하겠다는 발표와 함께 5나노 아니 더 나가 3나노 반도체 개발 계획을 언급했다.

 

ㅇ 대세는 EUV로 넘어 왔다

크기가 정해진 실리콘 웨이퍼 위에 회로도를 그리고 이를 제품화하는 것이 반도체다. 반도체 크기가 작을수록 동일한 웨이퍼 위에 보다 많은 제품을 만들 수 있어 더 높은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 반도체가 작다는 것은 이런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다양한 기능과 휴대성이 강조되는 디바이스를 위해 반도체는 ‘반드시’ 작아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회로 선폭이 작아질수록 전력 소모는 줄어들고 성능은 증대된다. 반도체 산업에 있어 ‘작다’는 것은 곧 ‘우월’하다와 같은 의미가 된다. 많은 반도체 회사들이 초미세공정에 사활을 걸고 있는 이유다.

 

그림1. 노광장비 시장의 진화와 ASML의 EUV 선점 전략

하지만 초미세공정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난관이 있다. 7나노까지는 기존의 불화아르곤(ArF) 광원을 기반으로 물을 활용한 빛의 굴절을 만들어내는 액침(Immersion) 불화아르곤으로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했다. TSMC가 활용한 ArFi가 바로 이 방식이다. 그러나 7나노 이하에서는 ArFi 가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 따라서 그림 1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글로벌 노광장비 시장의 주요 기술 방식이었던 ArFi는 2017년을 정점으로 급속히 그 위상을 잃을 것으로 예상된다.

ArFi의 뒤를 이을 차세대 기술은 바로 극자외선(Extreme Ultra Viloet: EUV)를 광원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EUV는 기존의 ArF 대비 빛의 파장이 14분의 1 수준인 13.5나노미터로 짧아 훨씬 더 정밀한 노광이 가능하다. EUV 노광 장비는 대당 1500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 초고가 장비인데, 현재 이 EUV 기기를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ASML이 유일하다. EUV 도입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과 TSMC가 모두 ASML만 간절하게 바라보고 있는 이유다.

 

ㅇ ASML의 EUV 선점 전략

사실 10나노 이하 공정에서 EUV만이 유일한 답은 아니다. 초고가 기술인 EUV에 대응하기 위한 대안 기술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나노 패턴을 직접 스탬프에 형상화하고 이를 웨이퍼 직접 찍는 방식인 NIL(Nano Imprint Lithography) 방식과 화학적 패터닝을 기반으로 하는 DSA(Directed Self Assembly)가 그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회사들은 EUV 대비 생산비용이 저렴한 NIL과 DAS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탐색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옵션들은 여전히 EUV의 대안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초미세공정 단계에서 가장 유효한 선택지가 EUV라는 점은 ASML 뿐만 아니라 업계의 경쟁자인 니콘과 캐논 역시 모르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ASML은 타 사들의 추격을 허락하지 않는 EUV에서의 초격차를 만들어 냈을까?

 

  1. 누구보다도 빠르게, 누구보다도 꾸준히…

2019년 현재 우리는 ASML의 압도적인 EUV 경쟁력을 보고 있다. 그러나 사실 ASML이 이런 시기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은 10년도 더 전에 일이다. 2019년 3월 대만에서 진행된 ASML의 IR에 자료에 따르면 ASML이 EUV와 관련된 연구를 시작한 것은 무려 2006년이었다. ArFi가 주류가 되기 이전부터 이미 ASML은 차차세대 노광장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 놀라운 점은 EUV에 대한 ASML의 뚝심이다. 2006년 최초로 개발된 EUV 장비의 생산성은 해당 기술에 관심을 기울이던 이들에게 회의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가동성(Availability)는 10% 미만이었고, 시간당 생산성은 1시간에 웨이퍼 1장 (1wph)이었으며 오버레이는 8나노미터로 초미세공정에 적합한 수준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SML은 EUV에 대한 연구와 투자를 지속함으로써 NXE:3100, NXE:3300B 등으로 제품 역량을 지속적으로 고도화 해 나갔다. 단기간 내 유의미한 사업 성과만을 추종하는 기업들에게선 기대할 수 없는 뚝심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 ASML의 10년이 넘는 EUV 개발의 역사 (자료=ASML)

 

  1.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한 외부역량의 적극적 흡수

제 아무리 글로벌 선도기업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잘 할 수는 없다. 특히나 그 영역이 차세대 기술일수록, 역량 있는 스타트업이나 기술 전문기업의 집적된 노하우를 단기간에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격차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 방법은 바로 다름아닌 M&A와 같은 외재적 성장 방안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다. 인수비용은 차치하고 인수기업과 피인수 기업간의 문화적 차이 등으로 인해 경영학에서 분석하는 M&A의 성공 확률은 50% 남짓에 불과하다. 기업의 경영진 입장에선 주저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SML은 과감한 투자 행보를 이어 나갔다. ArF가 아닌 EUV라는 전혀 다른 광원 영역에 진입하기 위해 미국의 광원 관련 전문기업인 Cymer를 2013년에 인수한 것이다. 그리고 2016년 렌즈 등 광학장비 부문의 기술력 제고를 위해 독일의 Zeiss의 지분을 대규모로 확보하며 전략적 관계를 구축해 나갔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바로 일본 경쟁사들과의 향방이 달라지게 된다. 일본 특유의 기업 문화 등으로 인해 외부와의 제휴에 소극적이었던 일본계 경쟁사들과 달리 ASML은 기술 격차를 더욱 벌리며 앞서 나갈 수 있었다.

 

  1. 기민한 의사결정 구조의 구축

사업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업의 아이템과 방향성도 중요하지만 이를 실행력 있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조직구조와 의사결정 시스템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교과서적인 내용은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내 정치 등의 복잡한 요소로 인해 이를 실제로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ASML은 이런 점에서도 EUV 사업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2018년 ASML의 연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ASML의 이사회 멤버(Board of Management)는 모두 6명으로 구성돼 있다. ASML의 사장이자 CEO인 피터 벤닌크(Peter Wennink) 등이 그 구성원인데 구성원의 면면을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6명 중 5명은 CTO, CFO, COO, CSO와 같은 CxO 즉 기능별 최고임원인데 반해, 1명은 사업부 임원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멤버가 바로 EUV 사업부 부사장인 크리스토프 후쿠아(Christophe Fouquet)이다. EUV 사업의 속도감 있는 전개를 위해서는 해당 사업부를 대표하는 인원이 전사 차원의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바로 해당 사업부의 임원을 예외적으로 이사회에 참여시킨 것이다.

 

ASML은 차세대 반도체 공정의 핵심이라 불리는 EUV를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언론들은 앞 다퉈 이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중요한 건, ASML이 어떻게 이런 지위를 구축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한국과 일본의 무역 갈등 속에서 보다 안정적인 반도체 생태계를 만드는 방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앞서 살펴본 ASML의 EUV 선점 전략은 우리 기업들에게 좋은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차세대 반도체의 운명을 쥔 기업, ASML은 다음주에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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