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적도 기술에서, 데이터 용처별 기술 전략 수립 절실

[테크월드뉴스=박지성 기자] 편집자주: 한장TECH는 테크월드 기자들이 주요 뉴스를 한 장의 슬라이드로 제작하여 제공하는 테크월드만의 차별화된 독자 콘텐츠입니다.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 반도체 업계를 지배한 패러다임이 있었다. 인텔의 공동 창립자이자 명예회장인 고든 무어(Gordon Moore)의 이름을 딴 ‘무어의 법칙(Moore’s Law)’이 바로 그것이다. 반도체의 집적회로 성능은 2년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이 법칙은 1960년대 중반 이래로 반도체 산업을 지배해 왔다. 사실, 제품 개발의 트렌드이니 ‘법칙’이라는 명칭을 붙이기에는 다소 무리한 감이 없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엔지니어들의 피와 땀 혹은 ‘공밀레’를 통해 이 법칙은 지켜져 왔고 이를 통해 IT 산업은 빠른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작아질 대로 작아진 반도체 공정으로 무어의 법칙은 그 유효성에 한계가 도래했다. 이와 함께 ‘대단위 투자 à 반도체의 집적도 향상 à 시장에서의 우위 점유 à 대단위 투자’로 이어지는 기존의 성공 방정식도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한장 TECH는 달라지는 데이터 패러다임 속에서 반도체 기업들은 어떻게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할지 알아본다.

 

ㅇ 무어의 법칙이 무너지고 있다.

숨 가쁘게 달려왔던 지난 오십여 년이었다. 진공관에서 시작해서 트랜지스터를 거쳐, 집적회로를 사용하고 이마저도 모자라 양자역학까지 끌어다 쓸 정도로 반도체 산업은 ‘더 작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왔다.

 

2년 혹은 18개월마다 반도체의 집적도는 2배가 된다는 무어의 법칙. 통상 일반적으로 법칙은 어떤 현상이 발생하는 원리를 설명하거나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반도체 업계에서 무어의 법칙은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생존을 위해 반드시 달성해야만 하는 하나의 ‘규칙’이었다.

 

‘참’이어서 법칙이 아니라, 업계의 노력을 통해 ‘법칙’을 참으로 만들어 왔던 것이다 [그림 1]. 

[그림 1] ▲ 1970년 이래로 출시된 주요 반도체의 출시 연도와 집적된 트랜지스터 회로의 수. 무어의 법칙을 고수하기 위한 반도체 업계의 노력이 엿보인다.  (자료=아워월드인 데이터)

그러나 견고했던 이 법칙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2016년, 인텔은 무어의 법칙 달성을 위해 기존에 고수해왔던 2년 주기의 틱톡 개발 전략(TICK-TOCK: 기존 설계의 고도화를 통한 기능 개선과 완전히 새로운 설계를 교차시키는 개발 방식)을 폐기하고 3년 단계의 개발 사이클을 추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무어의 법칙의 출발점과도 같았던 인텔의 이런 선언은 업계에 사실 상 무어의 법칙의 사망선고로 받아들여졌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견고했던 무어의 법칙의 아성을 흔드는 원인은 무엇일까? 결론은 간단하다. 바로 ‘돈’이다. 보다 집적된 반도체를 만들어서 벌 수 있는 수익이 이를 만들기 위해 드는 비용보다 적기 때문이다.

[그림 2]  ▲ 반도체 공정 미세화에 따른 설계·생산 비용 추이. 10nm 이하의 영역으로 진입하면서 차세대 반도체 생산을 위한 비용은 그야말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자료=테크월드뉴스 한장TECH 1월호)

 

반도체 업계는 무진한 ‘집적화’ 노력을 기울였고, 이제 반도체의 공정은5nm(10억 분의 1m) 이하로까지 접어 들었다. 이런 극단적 미세화는 기존 공정 기술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경지로, 결국 EUV(극자외선) 공정 기기와 같은 천문학적 투자를 수반하게 됐다.

 

그 결과,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의 분석에 따르면 5nm 공정의 반도체를 설계하기 위한 비용은 65nm 칩 대비 약 20여 배, 생산 비용은 13배 가까이 증가하게 됐다. 바로 전 세대인 7nm 반도체와 비교해도 2배 가까운 비용 상승이 발생한다. 비용이 상승해도, 그만큼 제품 가격이 상승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반도체 가격은 집적도가 높아졌다고 가격이 이에 정비례해서 단순간에 오르지 않는 구조다. 아니 오히려, 반도체 수급 상황에 따라 가격은 쉼 없이 출렁이다 보니, 업체 입장에서는 무조건적 집적도 향상에만 목숨을 걸 수 없게 된 것이다.

 

ㅇ 데이터 믹스 변화에 주목하라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여겨지던 성장 공식이 무너지면서 업계는 그 나름의 방법으로 대응을 고민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베인앤컴퍼니(Bain & Co, 이하 베인)는 최근 발간한 ‘무어의 법칙을 넘어: 데이터에서 가치를 창출하라’(Beyond Moore’s Law: Capture Value Fron Data) 보고서를 통해 데이터 집적이 아닌 데이터 믹스(Data Mix)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라고 제언한다.

 

글로벌 IT 컨설팅 업체인 IDC의 분석에 따르면, 향후 3년간 생성될 데이터의 양은 지난 30년 간 생성된 데이터의 총합보다 많을 것으로 예측됐다.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급증하는 데이터의 양도 양이지만, 우리가 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생성되는 데이터의 속성과 그 믹스다.

 

베인과 IDC가 수행한 1990년부터 2025년까지의 글로벌 데이터 유형별 비중 분석에 따르면, [그림3]과 같이 데이터 유형의 확연한 입지 변화와 시대 구분이 가능하다.

 

[그림 3] ▲ 글로벌 데이터 믹스 변화 추이. 데이터 생산량의 폭증도 중요하지만, 사용되는 데이터의 목적별 비중도 이에 못지 않게 급변하고 있다.  (자료=베인, IDC, 테크월드뉴스 분석 및 재가공)
[그림 3] ▲ 글로벌 데이터 믹스 변화 추이. 데이터 생산량의 폭증도 중요하지만, 사용되는 데이터의 목적별 비중도 이에 못지 않게 급변하고 있다.  (자료=베인, IDC, 테크월드뉴스 분석 및 재가공)

 

 

1단계] 정형화 – 생산성 데이터 중심의 시대

1990년대까지는 테이블 형태로 정형화된 관리가 가능한 상업용, 웹 데이터와 같은 생산성 데이터가 70~90%의 비중을 차지했다. 해당 시기는 사무용 그리고 가정용 PC의 급속한 보급이 이뤄지던 시기로, 각 개별 디바이스 즉 PC의 저장 공간과 처리 속도가 중요했다. 그리고 이런 사용 환경은 반도체의 집적화 즉 무어의 법칙을 달성하는 것이 중요한 경쟁력이 됐다.

 

2단계] 비정형화 – 미디어 데이터 중심의 시대

 

이후, 2000년대 초반 이후 인터넷의 광범위한 보급과 함께 모바일 기기의 대중화는 데이터 믹스에 현저한 변화를 불러 일으키기 시작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통해 통신망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용자들이 급증하면서 데이터 믹스의 주도권은 비정형화 된 방송·미디어 데이터가 주를 이루기 시작했고 이런 추세는 모바일 기기의 성장률이 정점에 도달하는 2010년 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해당 시기에는 새롭게 도입되는 모바일 디바이스들의 혁신과 신제품 출시가 줄을 이었다. PC 보다도 더 적은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부피 제한 속에서 PC 못지 않은 처리 속도를 달성해야 했고, 이를 위해 반도체는 다시 작아져야만 했다. 무어의 법칙이 여전히 소비자들에게 중요했고 유효했던 것이다.

 

3단계] 현장 생성 데이터의 시대

 

그러나 2015년 이후, 데이터를 사용하는 소비자들은 더 이상 반도체의 빠른 속도를 ‘물리적’으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데이터 처리 속도에 대한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통신망의 보급과 함께 클라우드 기반의 디바이스 사용이 광범위하게 보급되면서, 반도체의 집적화 필요성은 더욱 낮아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보다 근본적으로 데이터의 속성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기존과 같이 중앙에서 생성되는 데이터가 아니라, 각 디바이스 즉 에지 단위에서 생성되는 ‘현장 생성’형 데이터의 비중이 현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베인의 분석에 따르면 인스타 혹은 유튜브와 같은 SNS 채널을 사용하기 위해 소비자들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영상과 비디오 파일, 그리고 인공지능 CCTV의 영상 자료와 같은 클라이언트 미디어 데이터들이 2017년에서 2025년까지 20% 이상의 성장을 거듭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최근 SNS, 다양한 웹문서 등에서 쉽게 활용하고 볼 수 있는 해시태그와 같은, 데이터를 관리하기 위한 목적의 데이터, 즉 메타데이터도 같은 기간 동안 약 45%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데이터가 폭증함에 따라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데이터의 중요성 역시 증대되고 있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변화는 데이터를 생산하고 활용하는 주체가 변화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2017년부터 2025년까지 가장 높은 데이터 성장률이 예상되는 영역은 바로 M2M (Machine to Machine)이다. 산업용 그리고 가정용 IoT의 확대와 보급, 자율 주행차 구현을 위한 V2X(Vehicle to Everything)의 기술 보급과 도입에 따라 해당 데이터는 무려 60%의 연 평균 성장률을 달성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런 데이터 사용 패턴의 변화로, 베인과 IDC의 분석에 따르면 2025년에는 과거 20여 년 전에는 주류를 이루던 생산성 데이터의 비중은 10% 대로 하락하고, 클라이언트 미디어/메타데이터/M2M데이터의 비중이 60%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와 같이 무어의 법칙은 앞서 언급한 집적화에 따른 비용/수익 문제 외에도 보다 근본적으로 이런 데이터를 생산, 소비하는 생태계의 근본적 변화에 따라 그 유효성을 도전 받게 된 것이다.

 

ㅇ 진짜 데이터 기술에 집중해야 한다

 

더 많은 데이터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데이터의 특성은 그 수량보다 더 중요하다. 앞서 분석한 바와 같이 최근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데이터 분야는 클라이언트 미디어, 메타데이터, M2M 데이터다. 그리고 이런 정보들은 규격화되거나 제한된 환경에서 생성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데이터처럼 구조화해 관리하기 힘들고 지연 시간에 민감한 특성을 보이는 등 기존 데이터 처리 방식과는 다른 접근을 요구한다.

 

기업들은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단순한 데이터 집적의 문제를 넘어 네트워크와 데이터센터 아키텍처를 대단위로 혁신하고 있다. 특히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들은 컴퓨팅 기능이 네트워크 망 전체에 내장돼 엣지 단계로까지 확장됨에 따라 데이터 축적·관리 기술을 네트워크에 혼합하는 기술을 가속화하고 있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기타 거대 기술 회사(Tech Giant)들은 첨단 컴퓨팅,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기술과 사물 인터넷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더욱 확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날이 갈수록 더 많은 기업들이 보다 높은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급증하고 있는 비정형 데이터를 관리하는 인공지능과 고급 분석 기술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 50년 간 반도체 업계는 무어의 법칙에 기반해서 데이터의 집적과 더 빠른 처리 역량을 달성하기 위해 집중해 왔다. 그러나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하물며 급변하는 IT 업계에서 50년의 의미는 어떠할까? 이제 데이터는 차고도 넘친다. 데이터 구축과 처리라는 1차원적 경쟁력이 아니라, 데이터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역량으로의 전환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 해당 기사는 <월간 전자부품(EPNC)> 2021년 2월호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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