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힐 권리를 위한 정부의 첫발

[테크월드=선연수 기자] 

“SNS에 올린 우리 집 강아지 사진이 가입한 적 없는 사이트에 올라가 있어요”

인터넷에는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고, 공개된 게시글이라면 누구든지 그 글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공개된 글이라고 해서 타인의 글을 저장하고 재유포해도 되는 것일까? 이는 SNS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공시하는 코로나19 확진자 이동 동선만으로 개인을 판단하고, 인격 모독을 일삼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방역단, 적극적인 정부의 원조

‘SNS 계정을 삭제하고 싶을 땐 구글링부터’라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내 과거의 흔적을 지우고 싶어서 SNS 계정을 삭제하더라도 구글(Google)에 SNS 아이디를 검색하면 내가 올린 사진과 글이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오래된 콘텐츠 삭제’ 서비스를 통해 지워지지 않은 게시물의 링크를 접수하면 삭제해주지만, 픽쿠키(Picuki)와 같이 인스타그램 해시태그에 대한 게시물을 모아 보여주는 사이트에선 삭제된 게시물까지 보여준다.

개인의 기록이 나도 모르는 곳에 전시되는 것을 막는 건 개인의 선택처럼 여겨졌으나, 코로나19로 인해 개인 데이터 보호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지난 4월 12일부터 코로나19 확진자가 마지막 접촉자와 접촉한 날로부터 14일이 경과할 경우 이동경로 등의 상세한 정보를 비공개하도록 조치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 시청·구청 사이트에서 지워진다고 한들 각종 포털 사이트로 옮겨간 정보들이 자동으로 삭제되지는 않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송파구청은 한국인터넷진흥원과 함께 ‘인터넷방역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인터넷방역단은 송파구 인터넷방역 신고센터로 접수된 내용을 기반으로 공개 기한이 지났음에도 카페,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 남아있는 코로나19 확진자 동선 정보를 삭제한다.

 

송파구청이 운영하는 인터넷방역단의 활동 모습

이는 해당 카페나 블로그, SNS 계정 주인에게 삭제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자발적인 삭제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한국인터넷진흥원이 포털사이트 측에 권고해 내용을 삭제하는 방식이다. 지난 5월 21일부터 26일까지 6일간 삭제 요청한 송파구청 확진자 동선 관련 글만 404건에 달했다. 본 사업은 행정안전부의 정식 사업으로 선정돼 전국에 확대 시행된다.

 

내 동의 없는 ‘퍼가기’ 처벌 가능할까?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콘텐츠 창작자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복제, 다른 채널에 송신, 원작자 표시 삭제 등을 하는 경우 형사처벌과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작권 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각종 사이트는 캡처 금지, 스크롤 금지, 사진 저장 금지 기능 등을 지원하고 있으며, SNS에서도 하루가 지나면 볼 수 없는 게시물, 쪽지와 같은 기능이 인기다.

그러나 그림이나 음악과 같은 저작권이 담긴 것과 달리, 개인의 일상적인 글은 형법 처벌이 어렵고, 민사 집행 정도만 가능하다. BBC와의 인터뷰에서 김세라 변호사는 유명인의 경우 천만 원대의 위자료를 받아내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인들의 초상권은 아직 판례상 가치를 높게 치지 않아 대부분 500만 원 미만의 배상 판결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개인 데이터에 대해 전 사회적 존중 필요한 때

코로나19와 같이 동선 공개가 불가피하고, 이로 인한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정부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SNS와 같이 일상의 영역에서는 개인의 데이터가 보호받고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특히 텔레그램을 통한 성착취물 제작·유포 사건인 N번방과 함께 다시 수면위로 떠오른 ‘지인 능욕’ 범죄는 지극히 일상적인 개인의 SNS 사진을 나체 사진과 합성해 유포하는 방식으로, 이에 대한 사전 조치가 어려우며 실제 처벌 또한 최대 징역 3년 정도인 것으로 조사됐다. 디지털 장의사들은 이 같은 사진에 대한 완전한 삭제는 어렵다고 입 모아 말한다.

인터넷에 게시된 것은 지울 수 있지만, 유포자가 원본을 가지고 있는 한 피해자를 향한 위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개인의 데이터가 무분별하거나 악의적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정부 차원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으며, 개인 또한 타인의 데이터에 대한 존중 의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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