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신약개발 4년·제품 개발과정 70% 단축

[테크월드뉴스=박응서 기자] “산업 현장에서 사람들에게 인공지능(AI)을 이야기하면 모두 활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굳이 AI를 도입해야 하느냐고 되묻는다. 특히 IT 기업이 아닌 전통 산업에 인공지능(AI)이 왜 필요하냐고까지 말한다.”

AI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한 전문가가 기자에게 해 준 이야기다. 

“AI가 좋다는 것은 다 안다. 하지만 오늘을 걱정하는 중소기업에 AI 도입은 현실적이지 않다. 이상론에 불과하다.”

기자가 산업 현장에서 취재하며 만난 일부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1년 매출이 50억 원이고 수익이 3억 원인 중소기업에서 AI 도입을 위해서 3억 원가량을 비용으로 투자해야 한다면 모험에 가까운 도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AI와 같은 신기술은 기업 규모에 따라서 투자 대비 효용성에서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어 모든 기업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다. 

 

“인터넷처럼 AI도 일상 생활의 일부가 될 것”

지난해 6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발표한 ‘AI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한 중장기 로드맵 구축 연구’ 보고서에서도 AI를 활용하고 있는 기업에서 대기업은 91.7%인 반면 중소기업은 8.3%에 불과했다. 산업별로 보면 제조업 36.1%로 서비스업 55.6%보다 AI 도입률이 낮았다. 주요 활용기술도 사물인식과 안면인식 같은 컴퓨터비전이 47.2%로 가장 높았다. 

“과거에 인터넷을 이용하기 시작했을 때, 전화가 있는데 인터넷을 굳이 써야 하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없다. AI가 특별하고 새로운 것으로 보이지만 앞으로 AI는 인터넷처럼 너무나 당연한 대상으로 일상생활에서 한 부분이 될 것이다.”

현장마다 다양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이해함에도 불구하고 기자는 중소기업 관계자들에게 이렇게 말을 건넨다. 현장에서 다양한 기업을 취재하고 많은 AI 전문가와 소통하며 이를 종합한 의견이다. 

인터넷 초기에는 인터넷을 설치하는 기업과 망 사업자가 돈을 버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현재를 보면 인터넷망 사업자는 그다지 성장하지 못했다. 반면 인터넷을 활용한 구글과 메타, 네이버, 카카오, 텐센트, 바이두 같은 온라인 플랫폼 기업, 아마존과 쿠팡 같은 인터넷 쇼핑 기업, 기존 사업을 인터넷을 통해 한층 더 확장한 애플과 MS처럼 새로운 기업과 기존 기업 중에서 인터넷을 적극 활용한 기업이 크게 성장했다. 

이러한 현상은 AI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인터넷을 제대로 활용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 기업이 큰 돈을 번 것처럼 AI를 비즈니스 모델로 제대로 활용하는 기업이 크게 성장한다는 얘기다. 

 

“AI 모델 개발에 해당 기술 전문가가 핵심”

그런데 반도체 소재나 부품, 장비를 만드는 제조기업과 임베디드 기술을 활용하고 있는 기업에서는 AI 기술을 언제 어떻게 도입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도입을 하면 어떤 이득이 발생하는 것일까. 

이 같은 질문에 AI 전문가들은 기업의 본질인 도메인 기술에 답이 있다고 말한다. 해당 기업이 갖고 있는 기술을 데이터로 정량화하고, 이를 AI를 활용해 고객이나 소비자에게 편리함과 이득을 줄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여기에는 AI와 빅데이터 전문가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사람은 해당 기술에 대한 전문가들이다. 

실제로 이를 가장 잘 보여준 사례가 폰테라다. 1871년에 설립된 뉴질랜드 최대의 유제품 생산 단체인 폰테라 협동조합은 생산품 95%를 외국에 수출한다. 이 중 3분의 1이 우유 분말이고, 나머지도 치즈, 버터, 단백질 제품 같은 가공식품이다. 이에 우유 분말 입자 크기와 밀도 같은 물리적 특성과 지방과 단백질 함유량 같은 화학적 특성을 포함한 품질 관리가 핵심 기술이다. 폰테라는 품질 혁신을 위해 우유 분말 품질을 예측하는 AI 프로그램 개발에 나섰다. 

이를 위해 오클랜드 공대 연구진이 참여하며 6년 동안 3개 주요 공장에서 수백만 데이터를 수집했다. 그런데 개발한 AI 모델은 예측 정확도가 50% 수준으로 현업에서 활용할 수 없었다. 이에 경험이 풍부한 실무자들이 나서 공장별 데이터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내 공장마다 AI 예측 모델을 독립적으로 구성했다. 또 연도별로도 데이터가 다르다는 사실도 파악해 연도별 기후 데이터를 추가했다. 마지막으로 실제 데이터보다 저품질 데이터가 적었는데, 공장 품질관리자들이 재생산에 들어간 경우 데이터를 지우는 사례가 많다는 사실을 파악해 데이터 학습 과정에서는 원 데이터를 최대한 확보해 처리하는 방식으로 보완했다. 이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개발된 AI 프로그램은 95% 예측 정확도로 현장에 적용되고 있다. 이렇게 폰테나는 AI를 활용해 품질을 혁신하며 국제경쟁력을 계속 높여가고 있다. 

 

전통 산업에서 AI로 제품 개발 과정 70% 이상 단축

전통 산업에서도 AI가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1889년 미국에서 창업한 맥코믹은 후추 같은 향신료 관련 기업이다. AI가 그다지 필요할 것 같지 않은 기업이다. 이런 맥코믹이 최근 130년간 향신료 사업으로 축적한 식품의 맛과 향에 대한 기존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이 같은 향신료 관련 지식과 AI 기술을 활용해 개인별 식습관과 선호하는 맛을 결합해 식품과 레시피를 추천하는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었다. 식품 전문가와 향신료 전문가, 데이터 분석가, AI 전문가가 협업해 완성한 결과물이다. 

소비자가 서비스 사이트에 접속해 자신의 입맛에 관한 퀴즈를 20개 정도 풀면 AI가 소비자에게 적합한 메뉴와 레시피를 추천한다. 또 소비자 스스로가 즐기는 요리 레시피를 플랫폼에 올려 주변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해, 플랫폼이 새로운 요리 레시피를 개발할 수도 있게 만들었다. 맥코믹은 이 AI를 활용해 기존 향신료 개발 과정도 최대 70% 이상 단축하는 효과도 얻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피자 회사인 도미노 피자도 AI를 활용하고 있다. 1960년에 창업해 30분 배달 서비스를 주 무기로 급성장한 도미노 피자는 2000년 후반 전화 주문으로 피자를 배달하는 사업 모델에 한계에 이르며 위기에 처했다. 이에 2007년 온라인 주문 사이트를 개설하고, 모바일로 주문 수단을 확장했다. 이후 이를 20가지가 넘는 방법으로 주문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발전시켰다. 특히 매장별 작업자와 주문 수, 현재 교통 상황 등을 활용해 배달 예상 시간을 예측하는 AI 모델을 만들어 주문 시간 예측 정확도를 75%에서 95%로 높였다. 

이 같은 특성에 도미노는 미국 증권 시장에서 2010년대 주가 상승률이 가장 높은 주식 중 하나로 변모했다. 2020년 매출액이 41억 달러(약 5조 원)로 2019년보다 14% 늘었고, 2010년보다 2.5배로 증가했다. 

 

AI로 신약개발 4년 단축

국내에서는 주로 대기업을 중심으로 AI 도입과 기술 활용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중소기업에서도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GS리테일은 AI 기술을 활용해 최적의 운송 경로와 운행 일정을 자동 수립해주는 물류 최적화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기존 운송 데이터와 실시간 교통 상황, 화물량, 영업점별 인수 시간에 화물차 높이·길이·무게와 좁은 길, 유턴, 회피 옵션 같은 외부 환경까지 반영해 최적 경로를 안내해 운전 편의성을 높이고 이동 거리 단축을 돕는다. GS리테일은 이 같은 AI 물류 운송 플랫폼을 통해 배차 스케줄, 운송 루트를 효율적으로 수립하면 비용에서 20% 절감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제약기업들도 AI 활용에 적극적이다. GC녹십자는 메신저 리보핵산(mRNA)을 활용한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에 AI 플랫폼을 활용한다. 이를 위해 최근 서울대 AI연구원 산학협력 프로그램인 ‘AIIS 멤버십’에 가입하고 신약개발 공동연구를 시작한다. 동화약품은 벤처기업 온코크로스와 AI 기반 항암제 신규 적응증 발굴을 위한 공동연구 업무협약을 최근 체결했다. 

제약회사가 신약 개발에 AI를 활용하는 이유는 개발 기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어서다. 업계에 따르면 AI를 활용하면 신약을 하나 개발하는데 드는 평균 시간이 13년에서 9년으로, 후보물질발굴에서 임상까지는 통상 4.5년에서 12개월로 대폭 단축할 수 있다.

AI 스타트업이 대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자문과 강연도 늘고 있다. 지난해 말 LG유플러스는 창업 3년 차인 AI 스타트업 업스테이지와 자문 계약을 맺었다. 대기업인 LG유플러스가 김성훈 업스테이지 대표로부터 AI 서비스 개발과 AI 인재 양성 등에 관해 도움을 받는다. 소상공인 경영관리 서비스 스타트업 한국신용데이터(KCD)는 최근 GS그룹 최고위 임원진을 상대로 강연했다.

제조기업에서는 AI가 실제 성과를 내고 있다. 동양다이캐스팅은 AI를 활용해 3%가 넘던 주조 불량률을 1.5% 이하로 줄이면서 1년에 생산비용을 7200만 원 절약했다. 또 한국서부발전은 화순풍력단지에 AI를 활용해 기계 수명을 예측하는 기술을 적용해 메인베어링과 기어박스, 발전기 고장 등을 최대 6개월 앞서 예측하는 효과를 거둬, 풍력발전기 1호기당 매년 5억 원가량 비용을 절감했다.

 

AI는 목표가 아닌 단순한 도구

지난해 3월 미국의 전문지 포브스는 AI 전문가 15명에게 기업들이 사업 전략을 세울 때 AI 전략을 어떻게 세우고 반영하는 것이 좋을지 물어 이를 소개했는데, 이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비즈니스 로드맵에 AI를 포함해야 한다. 데이터 중심의 의사결정 문화를 정착시키며 AI가 없는 비즈니스 전략은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다. 다음으로 현실적인 기대치를 설정해야 한다. AI가 만능은 아니므로 AI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기업에서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대수준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그리고 업무 효율성 제고에 집중해야 한다. 기존 IT 인프라를 활용하며 AI를 적용하면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의견이다. 아울러 고객 관리에 우선 적용해야 한다. 기업이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AI 영역이 고객 이탈을 방지하고 수익을 늘릴 수 있는 고객 경험 분야로 이를 우선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마지막으로 AI로 인력 대체하지 말고 직원 혜택을 추가해야 한다. AI는 사람을 위한 도구로 단순 작업을 지원해 사람이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AI는 어떤 점에서는 긍정적이고 어떤 점에서는 부정적이다. 하지만 미래에 AI가 생활의 일부가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현재 국내를 비롯해 세계의 주요 기업들이 AI를 도입해 혁신을 만들어가고 있다. 또 수많은 스타트업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서비스를 제시하며 소비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AI는 목표가 아니라 인터넷과 같은 단순한 도구라고 말한다. 이 도구를 쓰느냐 마느냐, AI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은 결국 기업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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