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데 낯선 키오스크

[테크월드뉴스=이재민 기자] 2000년대 중반, 한 통신사의 ‘사람을 향합니다’라는 캠페인 광고는 시청자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이 광고는 모든 기술은 사람을 중심으로, 사람을 향해 발전하고, 사람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기업의 철학을 전달하며 결국 기술의 지향점은 사람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전달했다.

세상은 코로나19라는 변수를 만나 4차 산업혁명을 거쳐 5차 산업혁명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과연 기술은 사람을 향해 발전하고 있을까?

지난 3월 초 한 네티즌이 트위터에 올린 글이 많은 이들의 공감과 안타까움을 불러일으켰다.

“엄마가 햄버거 먹고 싶어서 집 앞 ○○○에 가서 주문하려는데 키오스크를 잘 못다뤄 20분 동안 헤매다 그냥 집에 돌아왔다고, 화난다고 전화했다. 말하시다가 엄마가 울었다. 엄마 이제 끝났다고 울었다”

이 네티즌은 댓글을 통해 “직원에 대한 원망이 아니다. 엄마도 당시 직원들이 너무 바빠 보여 말을 못 걸었다고 하셨다”며 “저는 다만 키오스크의 접근성 폭이 너무 좁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글은 현재 게시자에 의해 비공개로 전환됐으나 1만 4000회 넘게 공유되면서 비슷한 경험과 사연, 반성, 지적 등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키오스크 설치의 명과 암
최근 인건비 절감과 편리성 등으로 키오스크(무인주문·판매기)를 운영하는 매장이 증가하고 있다. 키오스크는 햄버거, 치킨 등을 파는 패스트푸드 매장를 비롯해 카페, 편의점, 기차역, 공항 등에서까지 널리 활용되고 있다.

키오스크 사용은 디지털 소외계층으로 꼽히는 노년층뿐만 아니라 청년층도 아직까지 낯설어하는 추세다. 트위터의 댓글에는 어린 자녀와 동행한 30대 엄마가 키오스크 앞에서 쩔쩔매던 모습, 현금 주문이 안돼 당황하며 결국 카운터에서 주문한 10대 학생,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면 슬그머니 물러난다는 개인 경험까지 담겼다.

키오스크는 디지털 발달에 따라 편리함을 위해 등장했다. 특히, 코로나19와 겹치면서 접촉에 대한 불안감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안전함까지 더해졌다. 기업이나 업주 입장에서는 인건비 절감이 가장 큰 장점이다. 현재 키오스크 설비 평균 비용은 약 400만 원이며 향후 관리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다.

키오스크를 사용하면 이른바 ‘진상’ 손님을 직접 응대하지 않을 수 있어 매장 종사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또한, 청각장애인은 대면일 때보다 비교적 빠르고 정확하게 주문할 수 있다.

높은 디지털의 ‘벽’
사실, 키오스크 도입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키오스크를 개발할 때 사용자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소비자원은 2020년 키오스크 이용 경험이 없는 65세 이상 고령 소비자 10명을 대상으로 버스터미널과 패스트푸드점에서 키오스크 이용 모습을 관찰한 결과를 발표했다. 버스터미널에서 키오스크를 이용한 70세 이상 소비자 5명 중 3명은 이용하던 중간에 더 이상 발권을 진행하지 못했다. 특히, 패스트푸드점에서는 70세 이상 고령 소비자 5명 전원이 주문을 완료하지 못했다.

▲낯선 용어와 영문 표기 ▲복잡한 절차 ▲이용 중 시간지연으로 인한 화면 전환 ▲느린 터치스크린 반응 등이 고령층의 키오스크 접근성 저하에 영향을 줬다.

더욱이 키오스크의 스크린창 높이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나 아동은 손조차 닿지 않는다. 도움을 청할 직원 호출 버튼이나 안내음, 언어 번역 서비스도 포함되지 않아 시각장애인과 외국인이 사용하기에는 접근성이 턱없이 높다.

 

개발 단계부터 배려 필요
키오스크 사용의 어려움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개발 단계에서 사용법을 ‘자판기 커피를 뽑는 것처럼’ 단순화해야 한다. 아울러 디지털 소외 계층을 위한 화면 내용을 읽어주는 음성 안내, 터치스크린 대신 버튼으로 접근할 수 있는 설비 등도 이뤄져야 한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국내 키오스크 시장 규모는 20년 전인 1999년 100억 원에서 2009년 1000억 원, 2018년 3000억 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20년간 약 30배나 늘어난 수치다.

정부는 사용이 불편한 키오스크 설치가 더 확산되기 전에 키오스크 소프트웨어 표준 모듈을 완성해야 한다. 이를 민간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보급해야 불필요한 교체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에만 몰입해 기술이 ‘똑똑함’만이 전부가 돼서는 안 된다. 기술을 사용하는 데 소외되는 이가 없도록 다양한 사용자를 배려하는 설계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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