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는 OK, 전체는 기대하기 어려워

[테크월드=이건한 기자] 사물인터넷(IoT)은 일상에 많은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스마트홈이란 개념도 이젠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수작동이 필요했던 옛 가전들과 달리 요즘 스마트 가전은 앱 하나면, 혹은 말 한마디면 원거리에서도 제어할 수 있어 편리하다. 인공지능(AI)과 결합된 가전은 사용자의 일상 패턴을 분석한 맞춤형 동작 환경을 구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편리함 속에도 아직 문제가 남아있다. 아니, 불편일지도 모르겠다. 소비자가 집에 들이고 싶은 스마트 가전은 점점 늘어나는 반면, 이들에 적용된 플랫폼은 여전히 제각각인 점 말이다.

플랫폼 춘추전국시대

지금의 스마트홈은 동일 브랜드 제품이 아닌 이상 제어를 위해 각기 다른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다. 스마트 가전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인 삼성, LG전자도 ‘스마트씽스(SmartThings)’, ‘씽큐(ThinQ)’란 독자 플랫폼을 운영 중이며, 구글과 아마존도 ‘구글 어시스턴트(Google Assistant)’와 ‘알렉사(Alexa)’ 같은 AI 가상비서 플랫폼을 기반으로 스마트홈 시장에 진출해 있다.

참조 - IoT 도입의 필수 요소 'IoT 플랫폼'

삼성 스마트씽스 테마 이미지 (출처=삼성전자)

그런데 만약 스마트폰 커넥터 규격이 USB-C Type으로 통일된 것처럼, 스마트 가전 제어를 위한 사물인터넷 플랫폼 규격이 하나로 통일된다면 브랜드에 관계없이 사용자 기호대로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는 스마트홈 구현도 가능하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해, 불가능하진 않지만 어려운 일이다.

IoT 표준화에 대한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일반적으로 특정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고객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용자는 제품 구매에 있어 실리성과 합리성을 우선순위에 둔다. 가령 같은 가전이라도 TV는 A 기업이, 로봇 청소기는 B 기업이 더 예쁘고 가성비 뛰어난 제품을 만들고 있다면 그에 따른 개별 구매를 하는 것이 더 보편적인 선택이다.

그만큼 현실적으로 기업이 말하는 ‘사용자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쾌적한 스마트홈’ 구현을 위해선 각 스마트 가전 제조기업 간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IoT 표준화와 관련된 움직임

기업들 역시 IoT 기술, 플랫폼 표준화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다. 그와 관련해 지금껏 의미 있는 시도도 여럿 이어져 왔다. ‘오픈 커넥티비티 파운데이션(OCF)’과 ‘커넥티드 홈 오버 IP 프로젝트(CHIP)’가 대표적인데, 특히 OCF의 경우 2016년 2월 설립된 이래 전 세계 450여 기업이 모여 IoT 표준화를 위한 기술을 개발 중이다.

실제 OCF는 올해 1월 개최된 CES 2020에서 세계 첫 IoT 국제 표준 발표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이뤄낸 바 있다. 또한 그보다 앞선 2019년 12월에 발족한 구글, 애플, 아마존 주도의 스마트홈 표준 개발 연합인 CHIP의 등장도 ‘적들의 동침’이란 평가와 함께 업계를 놀라게 한 사건이다.

이들 표준화 단체가 지향하는 목표는 한결같다. 모든 기업이 공유하는 공통의 IoT 플랫폼을 만드는 것. 이는 분명 소비자들도 바라는 바다. 또, 브랜드 경쟁력에서 떨어지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도 스마트홈 시장에 원활히 진출하기 위한 발판으로 플랫폼 표준화는 꼭 필요한 일이다.

CHIP 파트너 기업들 (출처=CHIP)

이상에는 공감, 현실은 이해관계 계산

이렇게만 말하면 곧 대단위 IoT 플랫폼 통합이 일어날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그런 일은 아마 훨씬 나중 일일 것으로 보인다. 기업 간 이해관계에 따른 이상과 현실의 괴리 때문이다. 현재 IoT 표준화에 대한 중요성은 다들 공감하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물밑 경쟁은 지금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기자와 통화한 모 대기업 관계자는 “오직 소비자를 위해 모든 기업이 플랫폼 경쟁에서 손을 뗀다는 생각 자체가 현실적이지 못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표준화를 해도, 결국 속으론 모두 자기 플랫폼 위주로 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각 기업에서 스마트홈용 자체 플랫폼을 개발해온 이유는 확실한 표준이 없던 탓도 있지만, 동시에 스스로가 표준이 되겠단 목표를 함께 가졌기 때문이다. IoT는 안드로이드, iOS로 정리된 모바일 전국시대 이후, 아직까지 누구도 확실히 군림하지 못한 기회의 땅이다. 당연히 기업 입장에서는 이 영역의 주도권을 쉽게 놓치거나 나누고 싶지 않다.

게다가 일찍이 자사 브랜드에 대한 충성 사용자 양성 전략을 펼치던 기업이라면, 플랫폼 표준화가 더더욱 달가운 일만은 아니다. 그만큼 표준화에 따른 경쟁 원점화, 독자 브랜드 경쟁력 희석에 따른 손실을 함께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표준화, 독자 플랫폼 둘 다 잡는다

결국 OCF에서 유의미한 IoT 표준을 발표하고, 이미 몇몇 브랜드 간 시험적 융합도 이뤄졌다지만, 단기간에 이들 브랜드가 모두 통합되는 모습은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보단 현실적으로 당분간 표준화 플랫폼 공동개발과 독자 플랫폼 강화란 투트랙 전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또 표준화로 가는 지금의 과도기에서는 키플레이어들 간의 합종연횡도 산발적으로 이어지는 중이다. 그와 관련해 본격적인 움직임은 2017년부터 있어왔다. 삼성은 그해 9월 카카오와 손잡고 자사의 AI 플랫폼 ‘빅스비’와 카카오의 AI 플랫폼 ‘카카오i(아이)’를 연동하는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당시 이 협력을 통해 카카오톡 메시지나 카카오미니(스피커) 음성명령을 통해서도 삼성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같은 가전들을 직접 제어할 수 있게 됐다. 빅스비를 통해선 카카오의 배달하기 서비스 등을 호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는 삼성 입장에서 전 국민을 고객으로 둔 카카오와의 협력을 통해 자사 가전에 대한 저변 확대가 기대되는 선택이었고, 카카오는 플랫폼이 있어도 그를 적용할 하드웨어가 빈약했던 상황인 만큼, 삼성의 검증된 가전제품을 통해 자사 플랫폼의 적용처를 확대한다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동맹이었다.

LG전자와 네이버도 2017년 11월 대대적인 협력을 발표했다. 모양새는 삼성-카카오와 비슷하다. LG 스마트 스피커에 네이버가 자체 개발한 음성인식 AI 플랫폼 ‘클로바’를 연동함으로써 클로바를 통한 가전 연동이 가능하게 한 것이다.

특히 LG전자의 경우 외부 협력에 더욱 적극적인 편이다. 일찍이 오픈 플랫폼, 오픈 커넥티비티 같은 개방형 전략을 발표한 바 있으며, 구글과 아마존 같은 해외 기업들과의 협력 구도를 강화해왔다. 가깝게는 앞서 설명한 구글, 애플, 아마존의 CHIP 결성도 시장 내 핵심 사업자 간 합종연횡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스마트홈 표준화 과정과 전망 (테크월드)

결국 실리를 따르는 기업들

기업의 이런 선택들이 전체 플랫폼 통합 속도를 더디게 할 순 있지만, 각 플랫폼의 핵심 기능이나 콘셉이 모두 다른 만큼, 서로가 이를 보완할 경우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차별화된 사용자경험(UX)를 제공하는 측면에서 전격 통합보단 부분적 합이 자사 플랫폼 영향력을 강화하고, 이를 점차 표준화 영역까지 확대해 간다는 측면에서 보다 실리적인 판단일 것이다.

결국 앞으로도 스마트홈 플랫폼의 완전한 통합은 요원한 일일지 모르겠다. 다만 소비자 불편을 언제까지 외면할 순 없기에, 표준화 단체를 통한 통합 노력은 지속해서 함께 이뤄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아마 언젠간 ‘TV 통합 리모컨’이 등장한 것처럼 브랜드와 관계없이 기본적인 연동과 제어 정도는 가능한 환경이 만들어지진 않을까?

테크월드 - 월간 <EMBEDDED> 2020년 5월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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