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국 혼란, 반도체 지원 차일피일
대선 앞둔 공화당, 바이든 정책 노골적 반대
반도체 기업들, 보조금 수급 “내가 먼저”
[테크월드뉴스=서용하 기자]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선언하며 글로벌 반도체 기업을 끌어들였던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을 먼저 챙겨야 한다는 여론에 밀려 자국 내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들에 대한 보조금 집행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이 반도체 기업들이 보조금을 타기 위한 출혈 경쟁에 뛰어들게 할 수 있다며 정상적인 경영 전략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 美, 혼란한 정국··· 반도체 지원 용두사미?
미국 상무부는 지난 2월 반도체 지원법상의 인센티브 프로그램 중 반도체 제조시설에 대한 재정 인센티브 세부 지원계획을 공표했다.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들에 총 527억 달러(약 69조 원)의 보조금과 투자세액공제 25% 등을 규정하는 내용이다.
미국 내 반도체 시설 건립 보조금 390억 달러, 연구 및 노동력 개발 110억 달러, 국방 관련 반도체 칩 제조 20억 달러 등이 담겼다. 즉 미국에 반도체 시설을 지으면 업체당 최대 30억 달러의 보조금을 받게 된다.
미국 내 반도체 투자를 진행 중인 삼성전자를 비롯해 인텔, TSMC 등이 수혜 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미국 정부의 지원을 믿고 텍사스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공장 1라인에 이어 향후 2라인을 건립해 생산 능력을 끌어올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최근 미국 대선을 앞둔 바이든 행정부가 자국 기업 챙기기에 먼저 나서자, 테일러 파운드리 2공장 건설을 앞두고 난처한 입장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이스라엘, 우크라이나 등 지원과 관련해 재정적인 문제가 생겼고,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힘겨루기까지 하고 있어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를 비롯해 다른 기업들에도 약속한 지원금 지급을 미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미국 대선 임박··· 정치공세에 휘말린 ‘반도체 지원법’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치공세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특히 반도체 지원을 두고 서로 간의 이해득실을 따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환경과 관련한 사항을 보더라도 민주당과 공화당은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며 반도체 관련 다국적 기업들은 ‘갈지자’ 행보를 보이는 미국의 정책에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① 공화당, 환경영향 평가 면제 법안 삭제
반도체 지원법 관련 정부 지원을 받는 기업들에 환경평가를 면제해 주는 혜택이 미국 공화당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공장 가동에 허가를 받으려면 최대 수년이 소요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블룸버그는 지난 7일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미국에 건설되는 반도체공장 건설 속도를 앞당기기 위해 추진됐던 면제 혜택이 미국 하원의장과 공화당의 반대로 관련 법안에서 삭제됐다”고 보도했다. 이어 이러한 혜택이 반도체 지원 정책의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며 앞으로 관련 기업들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시기가 크게 늦춰질 수도 있다고 했다. 아울러 환경평가 심사를 마치기까지 수개월 또는 수년의 시간이 걸리게 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해당 내용은 미국 내 반도체 관련 보조금 등 혜택을 받는 기업이 공장 건설과 관련한 연방 환경평가 심사를 받지 않아도 되는 혜택이다.
관련 법안 삭제로 삼성전자와 TSMC 등 다수 기업이 자사의 계획한 시점에 반도체 공장 가동을 시작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게 됐다.
삼성전자와 TSMC는 이미 공사를 대부분 끝마친 상태라 상당한 투자 비용을 쏟은 만큼 반도체 생산라인 가동 시기가 늦어질수록 경제적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밖에 없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하원 공화당 측은 반대의 이유로 특정 산업만을 위한 혜택을 제공하는 일은 적절치 않다는 점을 들었다.
업계 전문가는 반도체 지원법이 지난해 의회를 통과할 당시부터 공화당 측에서 반대하는 의견이 꾸준히 나온 바 있고, 대선을 앞둔 시점에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지원 정책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을 막고 보겠다는 심산인 것 같다고 전했다.
② 선거 앞두고 인텔 먼저 챙기기
선거를 앞두고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 기업이 더 많은 지원을 받아야 한다”며 정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국의 전체 보조금 중 최대 금액이 인텔의 군사용 반도체 생산 지원에 투입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보조금을 신청한 반도체 기업이 130여 곳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미국 기업 우선’으로 정책 방향을 바꾸면 삼성전자 등 다른 반도체 기업들은 보조금 규모가 줄거나 지급 시기가 뒤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삼성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미루고 있다는 이야기가 업계에 확산하고 있다”며 “삼성의 미국 텍사스 테일러 공장 공사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업계 한 전문가는 책정한 예산에 비해 보조금 신청 기업이 많아 모두를 만족시킬 만큼 보조금을 분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부어도 반도체 공급망을 독점하기가 어려운 데다가 경제위기까지 지속되면서 바이든 정부로서는 ‘외국 기업 퍼주기’라는 비판 여론을 계속 외면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③ 美 상무부, 반도체법 보조금 1호 발표…F-35용 칩 설비 공장
미국 상무부는 반도체법 첫 지원 대상으로 전통적인 칩 제조업체 대신 군수업체를 택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11일(현지시간) 영국 방산업체 BAE시스템스의 뉴햄프셔주 공장 현대화를 위해 3천500만 달러(약 462억 원)를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BAE 시스템즈의 공장은 록히드마틴의 제5세대 스텔스기 F-35를 비롯한 전투기 전자 시스템과 상업용 위성 등에 사용되는 반도체 칩을 생산한다.
반도체 지원법이 결국 자국 기업 지원을 핵심 목적으로 두고 있는 정책에 그칠 수 있다는 관측이 확인된 셈이다.
이는 첨단 반도체칩에 의존하는 무기 시스템이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 법이 국가안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고 AP통신은 전했다.
④ 트럼프, ‘보조금 줄게 투자 더···’ 투자 확대 촉구 가능성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국 내 여론은 외국 기업에 특혜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기업들도 로비를 진행하고 있다. 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외국 기업이 혜택을 받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업계 전문가는 미국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지원법에 강한 불만을 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반도체 지원법 자체를 백지화 할 수는 없겠지만 대규모의 추가 투자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 TSMC·마이크론·삼성전자 보조금 물밑 경쟁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보조금을 받기 위한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이고 있다. TSMC와 삼성 등은 애초에 보조금을 보고 공장설립을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받지 않을 수도 없다. 현재 미국 정부에 보조금을 신청한 대부분의 기업들이 보조금을 기다리는 상황에 놓여 있고 대선을 앞둔 미국 정부가 미국 기업 우선 지급 방침을 정한 상황에서 남은 보조금을 타내기 위한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다.
① 근로자 보호로 바이든 행정부 입맛 맞추려는 마이크론·TSMC
TSMC와 미국 마이크론이 정부 지원 심사에서 가점을 받기 위해 노조 설립과 활동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지난 8일 “마이크론이 150억 달러(약 19조 6천억 원)를 들이는 반도체공장 건설과 관련해 노조와 협약을 체결했다”며 “정부 지원금 확보 경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마이크론은 현재 본사가 위치한 미국 아이다호에 메모리반도체 시설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친노조 성향에 따라 미국 상무부는 심사 과정에서 노조와 협약을 맺은 기업을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바 있다.
미국 애리조나에 400억 달러(약 52조 원)를 들여 파운드리공장을 신설하는 TSMC도 최근 이와 비슷한 행보를 보인다.
TSMC는 지난 7일 반도체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 노조와 분쟁을 해소하기 위한 협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이번 협약에는 TSMC가 현지 노조와 정기적으로 소통을 강화하고 노동자 교육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며 일자리와 안전한 업무환경 조성에 힘쓰도록 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② 삼성전자 한·미 신뢰 강조··· 보조금 적기 지급 촉구
지난 12월 5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미국 법인은 지난달 미국 워싱턴DC에서 여야 상·하원의원을 초청해 반도체 산업의 영향을 분석하는 리셉션을 개최했다. 행사에는 민주당 소속의 마크 켈리 상원의원과 마이클 매콜(공화당), 라자 크리슈나무르티(민주당) 하원의원이 참석했다.
업계 관계자는 처음부터 투자 자체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뤄진 경향이 없지 않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그렇다고 투자에서 발을 뺄 수도 없는 곤란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서 가장 큰 문제는 향후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때 기업이 이를 신뢰하고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겠느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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