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더뎠던 전기차 성장, 가격 경쟁의 시대로 진입
트렌드로 자리잡은 LFP 배터리와 다원화되는 광물 공급망

[테크월드뉴스=박예송 기자] 이차전지 관련주 열풍 및 배터리 아저씨 등 올해는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에 큰 관심이 쏟아진 한 해였다.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왔던 전기차 시장은 올해 수요 둔화라는 어려움에 부딪혔고 완성차 업체는 현재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투자 계획을 접거나 차량 가격을 조정하는 등 대책을 취하고 있다.

한편 중국 완성차 업체는 유일하게 성장 속도를 높이고 있으며 이는 저렴한 가격 정책의 영향으로 보인다. 이런 가격 경쟁력의 요인으로 LFP 배터리가 주목을 받으며 국내 배터리 기업도 LFP 개발에 들어갔다.

배터리 생산에 필수적인 핵심 광물 확보의 문제도 제기됐다. 핵심광물 공급망 구축은 장기적인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고려할 때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생각보다 더뎠던 전기차 성장

올해 전기차 시장은 예상보다 둔화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대비 올해 전기차 시장 성장률은 36.4%에서 30.6%로 하향 조정됐다. 또한 내년에는 성장률이 20% 전후로 이전보다 더딘 성장을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그 원인을 경기침체로 인해 소비자들이 비싼 전기차 가격에 부담이 커졌고 보조금 감축과 충전 인프라 부족 문제 등이 맞물리면서 소비 심리가 위축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완성차 업체들은 전동화 투자 속도 조절에 나서고 있다. 미국 GM은 최근 일본 혼다와 추진하던 50억 달러(약 6조 5000억 원) 규모의 새 전기차 공동 개발 계획을 철회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합작한 테네시주 배터리 공장과 미시간주의 전기트럭 공장 가동 일정도 연기했다. 포드는 전기차 투자 계획 중 120억 달러(약 15조 5000억 원)를 줄이고 이 결정에 따라 SK온과의 합작법인 블루오벌SK의 켄터키 2공장 가동 일정을 연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테슬라는 이번 년도 3분기 ‘어닝쇼크’를 알리기도 했다. 테슬라의 3분기 영업이익은 17억 6400만 달러(약 2조 3700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52% 감소한 규모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콕스오토모티브에 따르면 1월에 5만 8725달러(약 7600만 원)에 달하던 전기차 평균 판매 가격은 9월에 5만 683달러(약 6500만 원)까지 하락했다. 고금리 장기화 여파로 경기둔화 징후가 나타나면서 소비자들이 고가형 전기차 구매를 피한 탓이다. 지난해 9월 전기차 평균 판매 가격이 6만 5000달러(약 8400만 원)임을 고려할 때 1년 사이 전기차 평균 판매 가격은 22% 하락했다.

한편 업계에서는 이를 단기적인 현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전보다 성장률이 줄어들었을 뿐 수요는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변화의 폭이 그리 넓지 않다는 설명이다.

전기차 경쟁력이 가격 중심으로 가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전기차 경쟁력이 가격 중심으로 가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가격 경쟁력 더 중요해진 전기차

성장세 둔화 속 경쟁전략 변화도 눈에 띄었다. 중국 기업들의 가격 중심 파상공세가 변수가 된 것이다. 전기차 가격이 내려가고 내연기관차와의 가격 격차가 줄어들면서 전기차 진입장벽 중 하나였던 가격 문제가 완화되면서 전기차 가격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중형 SUV 기준 전기차가 내연기관차 대비 1000만 원 이상 가격이 높아 지금까지 각 국에서는 소비자에게 보조금을 지원해 전기차 구매를 독려했다. 그동안 전기차 구매 보조금은 전기차를 대중화시키는 데 큰 힘을 보탰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배터리, 모터, 인버터 등의 전장부품 가격이 하락할 것을 예상하면서 보조금의 필요성도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만큼 전기차 가격이 내연기관차와 경쟁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인하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미 중국과 영국은 올해부터 보조금을 폐지했고 다른 나라에서도 보조금을 줄이는 추세다.

특히 가격 인하의 요인에는 중국이 있다. 중국은 대량 생산 및 기업 간 기술 협력을 통해 전기차를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 내수 시장에서 3000~4000만 대 자체 매출을 바탕으로 규모의 경제를 통한 원가절감이 가능했다. 중국 전기차의 가격은 일반 전기차에 비해 최소 1000만 원에서 2500만 원까지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글로벌 시장 확대에서도 유리한 요소가 될 수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 대경지역본부 손영욱 본부장은 “중국이 해외 수출을 할 경우에도 동일하게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게 될 것”이라며 “이제 전기차는 성능이 아니라 가격으로 승부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전기차 가격 경쟁이 중요해지면서 LFP 배터리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사진=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인사이드]
전기차 가격 경쟁이 중요해지면서 LFP 배터리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사진=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인사이드]

 

▶LFP 배터리 영역 확장

중국이 저렴한 전기차를 만들 수 있는 대표적 요인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탑재다. LFP 배터리는 가격이 저렴하고 안정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값비싼 코발트보다 저렴한 인산철을 사용하기 때문에 배터리 제조에 투입되는 원자재 가격을 낮출 수 있다. 과충전, 과방전으로 인한 사고 가능성도 낮고 배터리셀이 열화되는 현상도 적어 배터리 수명이 길다.

다만 에너지 밀도가 낮고 전기차에 탑재했을 때 주행거리가 짧다는 단점이 있어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낮았다. 중국 내수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해 온 LFP 배터리가 크게 주목받은 데는 테슬라의 영향이 크다. 테슬라는 미국에서 중국으로 생산지를 옮기면서 가격 경쟁력을 위해 LFP 배터리를 탑재하기 시작했다. LFP 배터리의 성능이 이전보다 좋아지고 전기차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어 전기차 및 배터리 업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전 세계 전기차에 탑재되는 LFP 배터리의 비중이 2020년 17%에서 2022년 36%까지 증가했다.

그동안 삼원계(NCM) 배터리에만 집중해 온 국내 기업도 이런 시장의 변화에 맞춰 LFP 배터리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애리조나에 총 3조 원을 투자해 16GWh급 ESS 전용 배터리 생산 공장을 건설하고 향후 전기차용 LFP 배터리를 개발할 계획이다. SK온은 지난 3월 인터배터리 전시회에서 자동차용 LFP 배터리 시제품을 공개하기도 했다.

완성차 업체도 전기차에 LFP 배터리 탑재를 시작하고 있다. KG모빌리티의 토레스 EVX에는 중국 BYD의 LFP 배터리가 탑재됐다. 기아도 레이 전기차에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했다. 현대차그룹 전기차 중에선 최초로 LFP 배터리를 탑재하는 사례다.

정부에서는 민관과 함께 향후 4년간 233억 원을 투자해 LFP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국내의 경우 배터리 핵심광물 공급망 위기에 대응할 컨트롤 타워가 부족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내의 경우 배터리 핵심광물 공급망 위기에 대응할 컨트롤 타워가 부족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부족한 광물 자원 포트폴리오

배터리 핵심광물 공급망 확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소재는 리튬이다. 리튬 가공 설비는 대부분 중국에 있어 핵심광물 확보를 위해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컸다. 그러나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시행되고 새 공급망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배터리 공급망 구축에 있어 유럽과 미국은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국내에서는 여전히 공급망 구축에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EU는 전략 원자재 공급 안정화와 관련 전략 프로젝트에 대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핵심원자재법(CRMA)의 입법을 추진했다. 이런 전략의 중심에는 EU핵심원자재이사회가 존재한다. CRMA 상에 명시돼 있는 의사결정기구로 광물 채굴, 모니터링, 전략적 비축, 제3국과의 전략 프로젝트, 자금 지원 등을 조율한다.

미국의 거버넌스는 백악관을 중심으로 각 부처가 유기적으로 임무를 수행한다. 최근에는 핵심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모든 부처가 협력해야 한다는 골자를 담은 ‘범부처 핵심광물 신속대응법’을 의회에 발의하기도 했다.

반면 한국은 EU의 원자재전문위원회나 미국과 같은 강력한 거버넌스 체계가 부족하다. 공급망 위기가 닥쳤을 때 대응하기 위한 의사결정기관이 존재해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수행할 컨트롤 타워가 없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자원탐사개발연구센터 박준혁 박사는 “미국의 범부처 핵심광물 신속대응법 및 EU의 핵심원자재위원회 등에 대한 벤치마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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