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시장 노릴 것”…소규모·빠른 생산
미·EU·대만·한국 등 기술 협력 강화

[테크월드뉴스=박규찬 기자] 최근 일본이 2나노급 최첨단 반도체 양산 계획 발표와 더불어 일본 내 반도체 기업과 외국 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등 일본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행보가 심상치 않다. 이런 가운데 라피더스가 초기 반도체 전략을 수정하며 기존의 삼성·TSMC 등 TOP 2와의 직접적 충돌은 지양하며 ‘코피티션(Coopetition : 경쟁과 협력 동시 추진)’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공격적 계획의 수정…불안해진 반도체 업황

올해 초 일본 반도체제조장치협회 우시다 가즈오 회장은 “일본에서 지금처럼 반도체의 중요성이 대두된 적은 없었다”며 “2023년은 지속적인 반도체 부족으로 공급망 혼란을 야기했던 생산능력을 정비하고 부품을 포함한 공급망 재건과 강화를 도모해 기술개발 속도를 높여 나가기 위한 중요한 해가 될 것”이라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일본 반도체제조장치협회(SEAJ)가 지난 1월 12일에 발표한 수요 예측 조사에 따르면 2022년 반도체 제조장치 판매액은 3조 6840억 엔(전년 대비 7.0% 증가)이다. 2021년부터 2022년에는 반도체 수요가 급속히 확대되면서 실적은 최고조였다.

일본의 반도체 제조장치 및 FPD 제조장치 판매액 추이(2012~2024년) [사진=일본 반도체제조장치협회(SEAJ)]
일본의 반도체 제조장치 및 FPD 제조장치 판매액 추이(2012~2024년) [사진=일본 반도체제조장치협회(SEAJ)]

그러나 미국의 대중 수출규제와 D램을 중심으로 한 메모리 가격 하락에 따른 설비투자 억제 영향과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따른 고물가, 러·우 사태 장기화,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봉쇄 등이 겹치면서 스마트폰과 PC 등 민생기기 수요가 부진한 결과 하반기에는 급격한 메모리 가격 하락으로 하향 조정됐다.

2023년 전반 또한 메모리 투자가 불투명해 3조 4988억 엔(전년 대비 5.0% 감소)으로 예상하는 반면 2024년에는 메모리 투자가 본격적으로 회복돼 로직용 대형 투자를 전망할 수 있어 4조1997억 엔(전년대비 20% 증가)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처럼 일본은 2022년을 반도체 산업 성장의 원년으로 삼고 정부와 민간 기업의 지속적인 협력을 하고 있으며 2024년부터는 반도체 산업에 대한 실적이 본격적으로 회복세가 이뤄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일본은 향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 대만, 한국을 이어 옛 명성을 되찾겠다는 전략이다.

일본 반도체 부활의 최선봉, 라피더스

지난 2021년 6월 일본은 반도체 산업을 부활시키기 위해 경제산업성이 ‘반도체 디지털산업전략’을 내놓으면서 총 2조 엔을 반도체 산업에 투자해 2030년까지 일본의 반도체 관련 매출을 현재 3배인 15조 엔(142조 원)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일본 내 반도체 생산시설을 새로 짓는 기업에 최대 절반까지 건설비를 지원하는 대책도 마련됐다. 이 시기에 TSMC를 구마모토현에 유치하는 성과를 낸 바 있으며 지난 2월에는 경제안전보장 추진법에 반도체를 특정 중요 물자로 지정하면서 범용 반도체는 물론 반도체 소재·제조 장비 기업도 지원할 수 있게 했다.

특히 지난해 8월 정부 주도로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 일본 정부와 도요타자동차, 소니그룹 소프트뱅크, NTT, NEC, 기오시아홀딩스, 덴소, 미쓰비시UHJ은행 등 일본 대표 기업 8곳이 총 73억엔을 투자해 라피더스 회사를 설랩했다.

부족한 역량 갭, ‘코피티션’으로 푼다.

이 라피더스의 계획이 야심차다. 라피더스는 2025년 2나노급 반도체 시제품 생산을 시작으로 2027년에는 2나노급 반도체를 양산, 2030년에는 1나노급 반도체를 양산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 기준 일본의 반도체 생산능력은 10나노 중후반급으로 알려지고 있다. 라피더스가 2027년 삼성전자, TSMC와 같은 수준인 2나노급 최첨단 반도체를 양산하려면 20년 벌어진 격차를 5년 만에 메워야 한다.

하지만 최근 라피더스는 초기 공격적인 반도체 사업 전략을 선회하고 삼성전자, TSMC와 정면대결을 피한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와 TSMC를 상대로 아직 양산도 하지 않은 2나노 반도체에서 경쟁을 벌이기는 어렵다고 판단해 틈새시장을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와 TSMC는 주로 대규모 생산을 상대하기 때문에 라피더스는 이 점을 활용해 소규모 생산이 필요한, 혹은 빠른 납기일을 필요로 하는 반도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목표다.

라피더스 테츠로 히가시 회장은 “TSMC가 대응하지 않는 소규모 발주도 대응하며 단시간에 반도체를 제조하는 것이 회사 목표”라고 강조했다.

일본은 자국의 부족한 기술력을 미국과 유럽연합뿐만 아니라 대만, 한국과도 적극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라피더스는 미국 IBM과 2나노 노드 반도체의 공동 개발 파트너십을 체결했으며 벨기에 imec과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 관한 협력각서(MOC : Memorandum of Collaboration)를 각각 체결했다. 또한 자국 반도체 기업인 키옥시아가 미국의 웨스턴디지털과 함께 이와테현에 짓고 있는 낸드 플래시 반도체 공장 건설과 미국 마이크론의 히로시마 D램 공장 증설에도 지원키로 했다.

일본 구마모토현에 있는 대만 TSMC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 모습 [사진=닛케이]
일본 구마모토현에 있는 대만 TSMC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 모습 [사진=닛케이]

아울러 대만 TSMC의 일본 내 첫 번째 생산시설인 이 공장 건설에 4760억 엔(4조 5000억 원)을 지원키로 했으며 현재 구마모토현 기쿠요마치에 반도체 생산공장을 짓고 있다. TSMC는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는 대신 구마모토 공장에서 생산되는 반도체를 도요타 등 일본 제조기업들에게 우선 공급하기로 약속했다.

한국과의 협력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3000억 원을 투자해 일본에 첨단 반도체 개발 거점을 만든다고 발표했다. 올해 안에 건설을 시작해 2025년 가동한다는 목표다. 가전제품 연구소를 운영 중인 요코하마시에 입체 구조의 반도체 디바이스 조립·시제품 생산라인 신설을 계획하는 등 일본 반도체 소재·장비 업체와 공동연구 및 재료의 개발·검증 등에서도 일본 공급업체와 협력한다는 계획이다.

우리가 나아갈 방향

이런 일본의 움직임에 우리도 긴장감을 늦춰선 안된다. 현재 삼성전자가 세계 최첨단 반도체 생산 부문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반도체 장비 제조 분야에서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이 기존 기술력을 바탕으로 추격하게 된다면 단기간에는 힘들겠지만 장기적으로 현 우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게 업계 의견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우리도 기존의 레거시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얽매이지 말고 차세대 메모리, 차세대 소자 등 공정 쪽으로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앞서 정부도 AI반도체 개발에 집중 투자를 하고 있는 만큼 이 같은 새로운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과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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