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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디지털화의 핵심은 ‘디자인’재료부터 제품까지 모든 과정의 진화, 디지털 패브리케이션 ②
정환용 기자 | 승인 2018.11.28 09:30

[EPNC=정환용 기자] 제조업에서 기술과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가 디자인이다. 원재료에서 1차 이상의 가공을 거치는 어떤 제품이든 디자인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단순히 제품의 외적인 모습만을 뜻하는 것을 넘어, 디자인은 한 제품이 어떤 재료를 어떻게 가공해 어떤 완성품으로 나올지를 결정하는 기준을 세운다. 제조업이라는 팀플레이에 있어 디자인이 감독이 돼, 재료와 생김새, 생산 방식을 지시하며 최적의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다.

디지털 제조에 대한 원리와 기술은 이미 20여 년 전에 각종 산업에 적용됐다. 다만 지금까지는 본격적인 제조를 위한 시제품을 저렴하고 빠르게 만들기 위해 주로 사용했다. 3D프린터로 실제 제작할 제품의 외형을 미리 만들어보는 것처럼, 실제 산업에서 사용하는 제품을 디지털 제조로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근래의 일이다. 산업 발전으로 제조 항목이 점점 세분화되면서 제조 과정 역시 디자인과 마더머신, 제조 등의 단계를 각각의 전문 업체에서 담당하게 됐다.

아직 시장에 본격적으로 적용되지 않았을 뿐, 디지털 제조의 개념은 이미 오래 전에 확립됐다. 그러나 산업의 일선에서 디지털 제조를 본격 적용하고 있는 기업은 아직 손에 꼽을 만큼 적고, 그 효과도 기존의 제조 방식에서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디지털 제조가 넘어야 할 5개의 봉우리인 ▲가격 ▲크기 ▲휴대 ▲사용자 친화 ▲소재 등의 요소에서 아직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디지털 제조 솔루션인 3D 프린터를 예로 들어, 디지털 제조가 일반적인 수준까지 확대되기 위해 필요한 과정에 대해 알아보자.

 

PART 1. 디지털화로 인해 격변기 맞이하는 제조업
PART 2. 제조업 디지털화의 핵심은 ‘디자인’
PART 3. 디지털 제조로 진화하는 산업과 사회

 

 

재료의 다양화, 디지털 제조 활성화의 시작
배우 조디 포스터가 오랜만에 주연을 맡은 영화 ‘호텔 아르테미스’에서는, 환자의 손상된 장기를 3D프린터로 뚝딱 만들어낸다. 영화상의 정확한 설정은 알 수 없으나, 같은 프린터로 생체 장기는 물론 작은 권총도 만드는 모습이 그려진다. 아직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소재에 따라 얼마든지 원하는 결과물을 적층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3D프린터로 보인다. 허름한 건물과 달리 첨단 의료기기들이 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영화의 배경인 2028년이 되면 플라스틱과 단백질을 같은 프린터에서 소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될지 궁금해졌다.

현재 3D프린터로 출력할 수 있는 소재는 플라스틱과 석회가루가 대부분이던 산업 초기에서 많이 다양해져, 금속분말이나 고무, 나일론, 세라믹 등을 활용하고 있다. 일부 의학용 제품은 줄기세포와 배양액을 사용해 세포를 출력하기도 하고, 나무 가루와 혼합된 재료로 나무 질감을 낼 수 있는 제품을 출력하는 3D프린터도 있다. 몇 해 전 국내의 한 악기 제조사는 카본을 사용해 3D프린터로 기타를 만들겠다고 공언하기도 했지만, 아직은 소식이 없다.

▲사실 디지털 제조의 활성화는 의학 분야, 특히 재건 분야에서 가장 바라고 있다. 사진은 3D 바이오 프린터로 인체에 접합할 수 있는 소재로 인공 귀 모형을 만든 것이다. 불의의 사고나 선천적 기형으로 정상적인 모습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단비와 같은 기술이다. 아직 대부분의 인공장기는 연구∙개발 중이지만, 외형에서 나아가 뼈, 피부 등을 출력할 수 있게 되면 무엇보다 빠른 의학적인 발전이 함께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세계의 자동차 기업들이 기존의 제조 과정을 3D프린터를 활용한 디지털 제조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독일의 BMW는 미국의 3D프린터 업체에 투자해 자사의 차세대 차량에 도입되는 상당수의 금속 부품을 3D프린터로 제작하고 있고, 일본의 혼다는 전기 콘셉트카의 제작에서 섀시를 제외한 모든 외장 부품을 카부쿠(Kabuku)의 3D프린터로 제작했다.

재료가 다양해지는 것은 3D프린터로 출력할 수 있는 결과물이 다양해진다는 것으로, 3D프린터 자체가 가정이나 사무실에 보급되는 것과는 약간 다른 문제다. 식빵은 밀가루와 버터 등의 재료만 있으면 집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지만, 대부분은 빵집에서 사먹는다. 빵을 만드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 대비 결과물은 개인이 대량생산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부분의 업체들이 시제품의 형태를 만들어보는 용도로 3D프린터를 활용하고 있는데, 이것을 산업 전반, 나아가 사회 전체로 확대되기 위해선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3D프린터로 만들 수 있는 제품의 폭이 지금보다 훨씬 넓어져야 한다.

활용할 수 있는 소재가 다양해지고 이를 원하는 대로 출력하는 기술이 더해졌을 때, 3D프린터 산업이 모바일 산업처럼 급격하게 활성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가능한’ 수준과 ‘구매 가치가 있는’ 수준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여러 식재료를 복합 출력해 한 접시의 음식을 만들 수 있게 됐을 때, 소비자들은 단지 새로운 방법으로 만들어진 음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이것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본질로, 3D프린팅 레스토랑이 장사를 시작했다 해도 결과물인 음식의 맛이 나쁘다면 손님은 발길을 돌리게 된다.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디자인’이다.

 

그리기와 만들기의 일체화
디자인의 사전적 정의는 ‘실용적 목적을 가진 조형 작품의 설계나 도안’이다. 한 벌의 셔츠를 제작할 때 몸통과 소매를 붙이고 단추를 나열하면 끝나는 게 아니듯, 결과물이 소비자에게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의류의 경우 소매가 3개 있으면 안 되고 단추보다 단춧구멍이 작으면 안 되는 등의 기초 설계가 선행된다. 기본을 만족시킨 선에서 제작자의 의견이 적용됐을 때, 이를 선호하는 소비자가 많다면 그 디자인은 성공한 디자인이 된다.

디지털 제조에 있어서의 설계도 패션 디자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디지털 제조의 핵심은 공산화가 아니라 개인화에 있는 만큼,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주문생산(Customization)이 중요하다. 3D프린터로 아이스크림을 출력해 파는 가게에서 다른 사람들이 별 모양의 딸기 아이스크림을 주문할 때, 하트 모양의 민트 초콜릿을 위에 얹어달라고 해도 이는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디지털 제조의 생산자는 기존의 제조 프로세스에서 구분돼 있던 디자인과 생산의 요소를 합병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개인적인 요구에 응할 수 있게 되고 디지털 제조로 인한 소비자의 만족도가 올라갈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로 크게 구분됐던 유통 구조는 그 폭이 조금 바뀌게 된다. 닭과 달걀 중 어느 쪽이 먼저인지를 따지는 것보다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일련의 과정에 얼마나 개입할 수 있는지에 따라 그 범위가 일부 바뀌는 것뿐이다. 가령 가구를 제조∙판매하는 기업이 디지털 제조를 도입했다면, 더 이상 같은 디자인의 제품을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판매하는 방법을 연구하지 않는다. 기업은 소비자가 원하는 디자인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연구하게 된다. 다섯 가지의 기성품 중 하나를 고를 수밖에 없었던 소비자는, 이제 각자가 원하는 수만 가지의 디자인을 기업에 요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가공 방법의 진화, ‘깎기’에서 ‘쌓기’로
붉은 벽돌을 예로 들자. 보통의 담벼락을 쌓는 데 필요한 블록은 예의 직육면체 모양이면 되니, 이를 굳이 3D프린터를 이용해 새로운 방식으로 제조할 필요는 없다(물론 향후 3D프린터로 만드는 비용이 더 저렴해진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하지만 벽돌 자체의 형태를 달리 해 고유의 디자인을 적용하고 싶다면, 다양한 디자인의 벽돌을 소량 제작해야 한다. 현재의 벽돌 제조 과정은 일정한 틀을 이용해 가장 무난한 형태로 대량 생산하는 구조로, 구매자가 원하는 디자인을 적용하기도 어렵고 그에 따른 비용도 수제 제작 수준으로 크게 올라 비효율적이다.

이는 소재에 따른 차이가 아니라 제조 방식에 따른 차이다. 벽돌 뿐 아니라 기존의 기성품 제조 방식은 정해진 형태의 디자인대로 틀을 짜고, 여기에 제작 공정을 맞춰 같은 모양의 제품을 복사하듯 찍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생산 단가를 줄이고 제품 간의 단차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맞춤 주문이 요점인 디지털 제조를 도입하는 시점에서, 소비자의 요구사항과 이로 인한 제작비의 균형이 일치하는 시점이 온다. 3D프린터나 CNC 머신 등의 제작도구들은 더 많은 소재를 사용하고 더 다양한 디자인을 적용할 수 있게 발전하고 있다. 같은 플라스틱 사출 방식의 3D프린터라 해도 사출 노즐은 더 미세해지고 완성된 제품은 더 정교해진다. 또한, 책상 위나 사무실 한쪽에 두고 사용하던 3D프린터는 이제 건물의 외벽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커질 것이다.

건물을 쌓아올리는 3D프린터가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재료의 다양화와 더불어 가공 방법도 진화할 필요가 있다. 단순하게는 기둥을 세우고 벽돌로 외벽과 내벽을 세워 건물을 지었다면, 향후에는 외벽의 재료를 대형 3D프린터로 적층 출력하는 방식으로 건설 방식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 기본적으로 건물의 하드웨어는 철근과 콘크리트 등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출력 시스템의 대형화와 함께 건축물의 형태에 맞춰 재료를 출력하는 방식이 조합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이미 고속도로의 중앙분리대를 콘크리트 소재로 현장 타설, 제작하는 공법이 활용되고 있고, 반죽 형태의 재료를 공간과 높이에 맞춰 출력할 수 있는 3D프린터는 세계 곳곳에서 시범 활용되고 있다. 틀에 맞춰 찍는 기존의 제조 방식의 한계에서 벗어나, 제작할 수 있는 완성품의 크기나 소재에 대한 한계가 사라지는 것이 디지털 제조의 가장 큰 목적이자 도달해야 할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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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환용 기자  hyjeong@epn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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