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충전속도의 현재의 400V 배터리 시스템
400V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800V
900V와 1000V를 향해 진화 중인 전기차

[테크월드뉴스=김준혁 기자] 전기차의 최대 화두는 단연 배터리 충전과 주행거리다. 이 문제는 전기차가 등장한 이래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었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배터리 충전 시간은 전기차 보급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지고 있다. 

다행히도 최근 들어 급속한 기술 발전 덕분에 전기차의 배터리 충전 시간은 빨라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기차의 배터리를 80%까지 급속 충전하는데 30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18분 이내면 배터리 충전이 가능해졌다. 여기에는 전기차 배터리 시스템의 고전압화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배터리 시스템의 고전압화는 충전 시간 단축이라는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사진=포르쉐]
배터리 시스템의 고전압화는 충전 시간 단축이라는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사진=포르쉐]

 

▶ 충전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는 오늘날의 전기차 배터리

배터리를 기반으로 하는 지금의 전기차는 구조상 충전 시간이 오래 소요될 수밖에 없다. [사진=셔터스톡]
배터리를 기반으로 하는 지금의 전기차는 구조상 충전 시간이 오래 소요될 수밖에 없다. [사진=셔터스톡]

전기차는 말 그대로 전기를 동력원으로 삼아 달리는 자동차다. 때문에 외부로부터 전기 에너지를 공급받은 뒤 배터리에 저장해야 한다. 반면, 내연기관 자동차는 외부에서 휘발유, 경유 등을 주유해 이를 연소시킨 뒤 동력을 얻는다. 내연기관 자동차의 에너지 공급 과정은 연료탱크에 화석 연료를 물리적으로 주입하면 끝이 난다. 

그러나 전기차의 에너지 공급 과정은 간단하지 않다. 전기차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리튬 이온 배터리를 기준으로, 배터리를 충전하기 위해서는 리튬 이온이 양극재에서 음극재로 이동해야만 한다. 이론적으로는 리튬 이온의 이동 속도를 높이면 충전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리튬 이온이 이동하는 동안 발생하는 열, 분리막의 절연 파괴, 저항 등으로 충전 속도가 제한된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배터리 내부 구조를 개선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인 결과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충전이 가능해졌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외부에서 전기 에너지를 공급하는 충전 출력을 높이는 기술까지 추가됐다. 즉, 동일한 시간 내 더 많은 전기 에너지를 배터리에 주입함으로써 충전 속도를 높이는 원리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전기차 내부에서 충전 출력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다. 

 

대세가 됐지만 충전 속도의 한계가 분명한 400V 배터리 시스템

오늘날 대다수의 전기차는 400V 배터리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배터리 충전 속도에서 한계를 보인다. [사진=메르세데스-벤츠]
오늘날 대다수의 전기차는 400V 배터리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배터리 충전 속도에서 한계를 보인다. [사진=메르세데스-벤츠]

현재 대한민국 가정에서 쓰이는 전압은 220V다. 따라서 전기차를 가정집이나 외부 충전소 등에서 ‘완속 충전’ 할 때의 전압은 220V로 제한된다. 이 때의 충전 출력 또한 최대 22kW로 낮은 편이다. 결정적으로 이 같은 낮은 전압과 출력으로 완속 충전을 할 경우, 최소 4시간에서 최대 10시간 이상의 긴 시간이 소요된다.

‘급속 충전’의 원리는 배터리에 전기 에너지를 충전할 때의 전압을 높이는 데서 시작한다. 현재 판매 중인 대다수 전기차의 배터리 전압 시스템은 220V보다 약 2배 높은 400V를 기반으로 한다. 고속 충전 출력은 최대 200kW 안팎을 자랑하며, 이를 바탕으로 대다수의 전기차는 30분 내외로 10% 남은 배터리를 80%까지 충전할 수 있다.

테슬라 모델 S의 대성공 이후 400V 배터리 시스템은 업계 표준처럼 자리 잡았다. [사진=테슬라]
테슬라 모델 S의 대성공 이후 400V 배터리 시스템은 업계 표준처럼 자리 잡았다. [사진=테슬라]

급속 충전의 기준이 400V로 굳어진 것에 대해서는 확실한 기원은 없다. 다만,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 테슬라가 선보인 400V 배터리 시스템 기반의 모델 S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자연스럽게 업계 표준으로 자리잡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결과, 현재 대다수의 전기차는 400V 배터리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다. 테슬라는 물론이고 독일의 BMW,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그룹, 스웨덴의 볼보와 폴스타, 미국의 포드, 일본 토요타 등이 400V 방식을 사용 중이다. 

400V 전압 기반의 고속 충전 속도는 완속 충전에 비하면 분명 괄목할 만하다. 그러나 5분 안팎이면 주유를 마칠 수 있는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해 여전히 충전 속도가 더디다는 한계가 남아 있다.

 

400V 배터리 시스템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800V 시스템

현대차그룹 등이 내세우는 800V 배터리 시스템은 기존 400V 대비 충전 속도 면에서 큰 장점을 보여준다. [사진=현대자동차그룹]
현대차그룹 등이 내세우는 800V 배터리 시스템은 기존 400V 대비 충전 속도 면에서 큰 장점을 보여준다. [사진=현대자동차그룹]

800V 기반의 배터리 시스템은 400V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개발됐다. 전기차의 배터리 충전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전기 에너지를 전달하는 출력을 높여야 한다. 이 출력을 높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전류 또는 전압을 높이는 것이다. 

전류를 높이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충전기부터 전기차 내부의 배터리까지 이어지는 모든 장비의 전류 용량이 확대되어야 한다. 따라서 전체적인 부피, 무게는 물론 가격까지 증가한다. 물론, 전압을 높이는 것도 만만치 않다. 전기차의 모든 시스템이 고전압을 견디기 위한 설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전기차 배터리 충전 시스템의 발전 방향은 전류 향상이 아닌 전압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압을 높이는 방식이 효율성과 확장성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현재 현대자동차그룹과 포르쉐 등의 제조사는 기존 400V보다 두 배의 전압을 지닌 800V 배터리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포르쉐 또한 800V 배터리 시스템을 채택해 대용량 배터리를 빠르게 충전할 수 있게 됐다. [사진=포르쉐]
포르쉐 또한 800V 배터리 시스템을 채택해 대용량 배터리를 빠르게 충전할 수 있게 됐다. [사진=포르쉐]

800V 시스템의 적용 결과는 탁월하다. 배터리 최대 충전 출력이 350kW에 달해 비약적인 충전 속도 향상이 이뤄졌다. 800V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차의 아이오닉 5와 아이오닉 6의 경우, 10% 남은 77.4kWh 용량의 배터리를 80%까지 충전하는 데 400V 충전 대비 절반 수준인 18분이면 충분하다. 

800V 기반의 또 다른 전기차인 포르쉐 타이칸의 충전 속도도 빠른 편이다. 93.4kWh의 대용량 배터리를 5%에서 80%까지 충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22분 30초에 불과하다. 또한, 두 제조사의 800V 기반 전기차 모두 5분 충전만으로 100km를 주행할 수 있는 전력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현 시점에서 800V 전압을 지원하는 초고속 충전기가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제조사에서 구축 중인 전용 충전기를 이용하면 기존 전기차와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800V를 넘어서 900V와 1000V를 향해 진화 중인 전기차

차세대 테슬라로 주목을 받는 루시드는 800V를 넘어서는 900V 배터리 시스템을 개발했다. [사진=루시드]
차세대 테슬라로 주목을 받는 루시드는 800V를 넘어서는 900V 배터리 시스템을 개발했다. [사진=루시드]

현재 전기차 중에서 800V 배터리 시스템을 탑재한 곳은 앞서 언급한 현대차그룹과 포르쉐 외에도 GM이 있으며 폴스타도 차세대 모델에 해당 시스템을 탑재할 예정이다. 이처럼 전기차가 대세가 되어가는 시점에서도 800V 시스템을 탑재한 곳이 많지 않은 이유는 기술 구현의 어려움 때문이다. 

초고속 충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저항과 열을 관리해야 하고, 이 때문에 기존에 없던 기술과 부품을 적용해야만 한다. 결정적으로 아직까지 800V 기반의 초고속 충전 설비가 안정적으로 확보되지 않은 점이 제조사들의 기술 개발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일부 제조사는 900V 기반의 새로운 배터리 시스템을 개발했다. 바로 차세대 테슬라로 불리는 미국의 루시드다. 루시드는 지난 2020년 자사의 전기차 에어(Air)가 900V 배터리 시스템과 전용 충전 설비를 바탕으로, 20분 충전 시 악 483km를 주행하고 최대 800km 이상 주행할 수 있다 발표한 바 있다. 루시드 에어의 배터리 용량이 113.0kWh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주목할 만한 결과다. 

전기차 혁신의 아이콘 테슬라는 대형 전기 트럭 세미에 1000V 전압을 바탕으로 1000kW의 충전 전력을 제공할 예정이다. [사진=테슬라]
전기차 혁신의 아이콘 테슬라는 대형 전기 트럭 세미에 1000V 전압을 바탕으로 1000kW의 충전 전력을 제공할 예정이다. [사진=테슬라]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전기차 기술 개발과 보급의 선두 주자인 테슬라는 전기 트럭인 세미(Semi)에 1000V 배터리 시스템을 적용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대형 트럭에 탑재되는 배터리의 특성상 용량이 클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대용량 배터리의 충전 시간 문제를 전에 없던 1000V 배터리 시스템으로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특히, 테슬라는 1000V 시스템을 바탕으로 기존 800V 기반의 초고속 충전 출력인 350kW를 뛰어넘는 1000kW 수준의 차세대 충전 시스템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전기차의 완성도를 높이고 보급율을 높이려는 기술 개발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전기차 업계 전문가는 “현재 내연기관 관련 기술 개발은 사실상 멈춘 상태이지만, 전기차 관련 기술 개발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라며 “지금과 같은 기술 개발 속도로 볼 때 멀지 않은 시일 내 지금의 단점을 해결한 완성도 높은 전기차가 나올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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