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얼·TCL·하이센스… '싼 맛에 쓰는 제품'에서 '품질도 좋다'
삼성·LG, 생성형 AI 적용한 '스마트홈'으로 경쟁 우위 확보 나서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도쿄 올림픽 수영 남자 200m 개인혼영 금메달리스트 왕순과 디지털 점화자가 함께 성화를 점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도쿄 올림픽 수영 남자 200m 개인혼영 금메달리스트 왕순과 디지털 점화자가 함께 성화를 점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테크월드뉴스=김승훈 기자] 지난 8일 폐막한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우리 태극 전사들의 뜨거운 투혼과 활약이 가장 큰 감동을 주었으나 화려한 중국의 IT 기술도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행사장에서는 마치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화려한 쇼가 펼쳐졌으며, 개회식과 폐회식에서는 주 경기장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조화를 보여줬다. 압권은 개회식의 성화 점화였다. 가상의 거대한 성화 봉송 주자가 현실의 성화 봉송 주자와 함께 달리고 함께 불을 붙였다.

이처럼 이번 아시안게임은 중국 IT 산업의 요람이라 불리는 항저우, 그리고 중국의 기술력을 세계에 드러낸 대회였다는 평가다.

우리의 오랜 인식과는 상반될 수 있겠으나 중국은 첨단기술 강국이다. 전 세계 첨단기술 연구의 80%를 중국이 주도하고 있다.

호주 싱크탱크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학술 논문을 분석한 결과 중국이 인공지능(AI), 5G, 사물인터넷(IoT), 반도체, 양자컴퓨팅, 바이오메디컬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총 80%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는 미국(13%), 유럽(3%), 일본(2%)을 크게 앞선 수치다.

특히, 중국은 극초음속, 수중 드론, 인공지능 기반 무인 전투기 등 군사 분야에서 빠른 발전을 보이고 있다. ASPI는 중국이 2030년까지 세계 첨단기술 분야의 선두 주자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이얼·TCL·하이센스… '싼 맛에 쓰는 제품'은 옛말, 이젠 '품질도 좋다'

중국의 기술 발전은 글로벌 가전 시장에서는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지난 십수년간 삼성과 LG가 글로벌 가전 시장을 호령해 왔으나 이젠 중국 가전 브랜드가 단순한 추격을 넘어 거의 함께 달려나가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달 초 열린 베를린 국제가전박람회(IFA)에서 중국 가전 기업의 위상이 확인됐다. 유럽의 한복판에서 개최된 IFA 참가사의 절반이 넘는 1200여개사가 중국 기업이었다. 

참가기업의 수만 많은 것이 아니었다. 중국의 가전기업인 하이얼(Haier)은 전시장 입구의 광고판을 점령했고, TCL과 하이센스(Hisence), 미데아(Midea), 콩카, 창홍 등도 대형 부스를 개설하는 등 행사장 내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선보였다. 

기술력 측면에서도 중국의 선전은 눈에 띄었다. 선전즈신이란 국영기업은 유럽 현지 모델을 투입해 영광이란 뜻을 가진 자사 휴대폰 영요(荣耀:Honor) 시리즈를 대대적으로 소개했는데 Honor의 플렉시블 폰 두께는 삼성 제품을 뛰어넘어 세계에서 가장 얇았는가 하면, 중국 선도 디스플레이 기업 TCL은 163형 마이크로 LED 4K를 전시하며 '세계 최대' 디스플레이 타이틀을 가져갔다.

하이얼은 4년전 2019년 브루게리오에 있는 이탈리아 가전업체인 캔디(Candy)를 인수하여 그 계열사인 후버 또는 켈비나토르와 같은 유럽 브랜드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하이얼은 이미 2011년 일본의 산요 인수를 끝냈고, 2016년에는 미국의 GE 어플라이언스까지 인수하며 외연을 확대하고 있다.

TV 분야에서 삼성전자, LG전자, TCL에 이어 세계 4위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하이센스는 세계 최초로 접이식 대형 화면 레이저 TV 'L5K'를 발표했다. L5K는 100인치. 110인치. 120인치 등 3가지 사이즈로 디스플레이의 두께는 2cm에 불과하다. 특히, 플렉서블한 디스플레이를 적용해 말아서도 운반할 수 있을 정도다.

과거 중국 가전은 '싼 맛에 쓰는 제품' 이었으나 이제는 '품질도 좋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가성비를 완성한 것이다. 

LG 시그니처 올레드M [사진=LG전자]
LG 시그니처 올레드M [사진=LG전자]

▶  무섭게 추격하는 중국 가전, 한국과 '격차'가 거의 없다

북미 지역에서는 이미 중국 가전 기업이 국내 가전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미국 소비자만족지수협회(ACSI)는 해마다 생활가전 분야를 비롯해 자동차, 호텔, 항공, 통신 등 400여 업체를 대상으로 소비자 만족도를 평가한다. 특히 연간 약 50만 명에 달하는 소비자를 인터뷰해 만족도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다.

ACSI가 지난 9월 20일(현지시간) 발표한 '2023년 소비자 만족도'에 따르면 LG전자가 TV부문에서 83점으로 전체 1위를 차지했으며, 세탁기·건조기·냉장고 등으로 구성된 생활가전 부문에서도 2년 연속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중국 하이센스와 TCL이 1점 차이로 공동 2위에 올랐다. 특히, 중국 하이얼은 냉장고 부문에서 LG전자와 함께 만족도 공동 1위에 올랐다.

하이얼은 가격경쟁력만 내세우던 과거에서 벗어나 냉장고, 식기세척기, 세탁기, 건조기 등의 프리미엄 제품들을 꾸준히 선보이며 LG전자 등 국내 가전업체들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글로벌 매출로도 중국 업체들의 점유율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올해 옴디아가 발표한 상반기 글로벌 TV 시장 데이터에 따르면, 중국산 TV 점유율은 출하량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포인트 증가한 39.1%에 달했다. 전 세계에서 판매된 TV 10대 중 4대가 중국 브랜드다.

가전 핵심 소재 중 하나인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도 이미 LCD는 중국이 한국을 추월한지 오래다. 현재 속도라면 2025년에는 OLED에서도 중국이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유비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올해 폴더블폰을 포함한 스마트폰용 OLED 출하량은 한국과 중국이 각각 57.6%, 42.4%으로 격차가 좁혀져 2025년에는 한국 45.2%, 중국 54.8%로 순위가 역전된다. 2027년에는 격차가 더 커져 한국이 35.8%, 중국이 64.2%를 기록하고 2028년부터는 한국이 매출에서도 밀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유비리서치는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의 OLED 품질이 우수하나 중국 역시 막대한 내수 시장과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품질을 높이고 있다"면서 "가성비를 무기로 내세워 2028년 이후에는 매출액 부분에서도 한국을 앞지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스마트홈 개념도 [사진=삼성전자]
스마트홈 개념도 [사진=삼성전자]

삼성 LG, 생성형 AI 적용한 '스마트홈'으로 경쟁 우위 확보 나서

이처럼 중국 가전 브랜드의 도전이 거세지면서 국내 가전업계를 대표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스마트홈'으로 전장을 옮기고 있는 모습이다. 중국과 정면승부를 하기보다 새로운 시장을 먼저 개척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글로벌 스마트홈 시장 규모는 2020년 608억 달러(약 82조800억원)였으나 2025년 1785억 달러(약 240조8857억원)까지 확장할 전망이다.

시장 선점을 위해 삼성과 LG는 상호 연동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가전 업체마다 플랫폼이 달라 기기들이 서로 연동되지 못했다. 즉, 삼성전자 냉장고와 LG전자 에어컨은 서로 다른 앱으로 컨트롤해야 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LG전자를 포함한 15개 글로벌 가전 업체를 회원사로 둔 스마트홈 플랫폼 협의체 'HCA(Home Connectivity Alliance)'가 연결 표준을 마련하기로 하면서 삼성전자의 '스마트싱스(SmartThings)'와 LG전자의 '씽큐(ThinQ)'를 통해 두 회사의 제품은 물론 다른 가전 업체 제품까지 제어할 수 있게 된다.

LG전자 H&A사업본부장 류재철 사장은 IFA 2023 현지 브리핑에서 "고객이 원한다면 씽큐에서도 삼성전자 제품을 연결하는 게 맞다고 본다"며 "현재는 단순한 기능 제어 외에 어떻게 할지 계획이 없으나 진화의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디바이스플랫폼센터 스마트싱스 팀장인 정재연 부사장은 "우리가 전 세계적으로 기기 간 연결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며 "삼성전자가 경쟁사보다 스마트홈 기술에서 가장 앞서 있다고 자부합니다"라고 말했다.

정 부사장은 "경쟁사들도 다양한 제품이 있고 기기 간 연결을 추진하고 있다"며 "그러나 삼성전자처럼 알차지 못하고, 스마트홈은 우리가 가장 앞서 있다고 자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스마트홈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입히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IFA 2023에서 스마트홈 기능을 극대화한 소형 모듈러 주택을 선보였다. 이 주택은 태양광 패널과 가정용 배터리로 에너지를 생산하며 스마트홈 플랫폼과 AI를 활용해 에너지의 사용량을 최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설계됐다.

외출 시엔 스마트폰 등 클릭 한 번으로 주택 내 가전 제품과 조명을 끌 수 있으며, 햇볕이 강한 날에는 AI가 이를 감지해 에어컨을 자동으로 작동시키고 블라인드도 자동으로 내려간다.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유미영 부사장은 IFA 2023 현지 브리핑에서 "생성형 AI를 가전제품에 적용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삼성 개발자 콘퍼런스 2023 현장 [사진=삼성전자]
삼성 개발자 콘퍼런스 2023 현장 [사진=삼성전자]

삼성 "가전 넘어 초연결 구현" LG "미디어·엔터테인먼트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

삼성과 LG는 지난 십수년간 확보한 제품과 고객을 기반으로 새로운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나오지 않았으나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을 꾀하는 모습이다.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 센터에서 열린 '삼성 개발자 콘퍼런스(Samsung Developer Conference·SDC) 2023'에서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부회장)은 "연간 판매되는 삼성전자 제품의 개수가 5억대를 넘고 삼성계정을 이용하는 고객은 6억명이 넘는다"며 "삼성전자의 기술 혁신은 수많은 고객과 제품·서비스를 연결하고 있으며 이 혁신의 여정에 글로벌 개발자들과 파트너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삼성전자는 개인별 맞춤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기술 고도화를 강조했다. 음성 AI '빅스비'는 한 공간에 있는 여러 기기가 사용자의 명령을 동시에 들을 경우 맥락과 기기 상태를 판단해 작동하는 방식으로 진화한다. 사용자의 언어를 폭넓게 이해하고 그 의도와 사용 환경에 최적화된다.

가전기기를 넘어 초연결을 모든 사물로 확장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스마트태그2'를 새롭게 공개하고 반려동물의 산책 기록이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모드 등 다양한 실사용 사례를 제안했다.

TV용 클라우드 게임 플랫폼 사업도 강화한다. 삼성전자는 2022~2023년형 삼성 스마트 TV와 스마트 모니터에서만 제공하던 TV용 삼성 게이밍 허브를 더 프리스타일 2세대, 오디세이 OLED G9 등 다양한 스크린 기기에도 서비스할 계획이다.

LG전자는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를 아우르는 '플랫폼 기업'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제품만 파는 전통적인 가전기업을 넘어 웹OS 생태계를 넓혀 미디어·엔터테인먼트 플랫폼 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콘텐츠·서비스 사업에 5년간 1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플랫폼의 중심이 될 웹OS는 현재 2억대에 달하는 LG 스마트TV에 적용됐다. 2026년까지 웹OS 적용 규모를 3억대로 늘린다는 게 LG전자의 목표다.

구형 스마트 TV도 매년 웹OS를 업데이트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제품에 동일한 웹OS가 구축되면 LG전자로서는 각각의 버전에 맞춰 소프트웨어·콘텐츠를 개발하는 불편도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웹OS를 사용하는 고객 만족도도 높아질 전망이다. 웹OS 적용 제품을 TV에서 프로젝터, 모니터, 사이니지, 차량 등으로 넓힌다는 계획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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