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메모리는 반도체 공급난과 무관, 인위적 시장 개입 시 혼란”
온세미·퀄컴, “반도체 인센티브 법안 통과, 불필요한 규제 정비 필요”

[테크월드뉴스=서유덕 기자] 지난 9월 23일(미국 현지시간) 열린 3번째 반도체 공급망 점검 회의에서 상무부가 주요 반도체 수요·공급기업들에게 요구한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 관련 정보의 제출 기한이 8일 자정에 마감됐다. 10월까지만 해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포함한 전 세계 주요 기업들은 영업 비밀 유출 우려를 이유로 미국의 요구가 지나치다며 그 부당함을 토로했고, 일부 기업과 정부기관은 정보를 제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마감 시한이 다가오자, 미국 정부는 고객사 정보 대신 응용처별 자료를 제출할 수 있도록 허용해 기업의 부담을 경감했다. 이에 기업들은 고객사 정보 등 민감한 내용을 제외한 정보를 제출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상무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마감 전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상무부는 연방규정전자포털(Regulations.gov)에 반도체 수요 공급 기업들이 제출한 답변을 게시한다. 해당 포털에 따르면, 지금까지 총 216개의 답변이 접수됐으며, 접수된 답변은 순차적으로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기업들은 IR행사나 공식 발표를 통해 공개된 정보 외 민감한 내용는 대부분 기밀자료로 분류해 제출했다. 따라서, 일반에 공개된 자료에도 열람 불가능한 부분이 많다.

 

반도체 기업들, “공급난 원인은 수요 폭증”

일부 기업들은 상무부 지정 양식 외 별도의 의견서를 공개 또는 기밀자료로 분류해 제출했다. SK하이닉스는 공개자료 2개와 기밀자료 2개를 제출했는데, 공개 의견서를 통해 “메모리는 차량용 반도체 위주의 최근 공급망 이슈와 거리가 멀다”, “SK하이닉스는 가능한 한 모든 생산 능력을 활용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금까지 공급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 등의 입장을 담아 냈다. 또 “미국 시장이 자사에 많은 도움이 됐으며 회사도 미국 반도체 생태계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고, “현 공급망 이슈와 거리가 먼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인위적인 개입이 이뤄질 경우 또 다른 혼란이 초래될 것”이라고 언급하며 미국 정부의 메모리 시장 개입을 우려했다.

DB하이텍은 공개자료 1개와 기밀자료 1개를 제출했는데, 공개자료에 담긴 내용은 정보를 비공개하는 이유가 대부분이었으며, 공급 병목 현상도 겪지 않았다고 전했다. 삼성전자가 제출한 자료는 기밀자료 2개로, 열람 가능한 자료는 없다. 반도체 수요기업인 현대·기아차도 공개자료 1개, 기밀자료 1개씩을 제출했으나 특별히 공개자료의 기업 개요 외 항목은 전부 공란이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해외 팹리스, IDM 등 반도체 제조 업체들과 빅테크 및 완성차 기업들도 자료를 제출했다. 공급망 문제의 중심에 있는 차량용 반도체의 설계·공급 기업인 NXP 반도체와 온세미는 수요 급증과 코로나19로 인한 동남아시아지역 공장들의 셧다운으로 인해 자체 보유 팹과 패키징·테스트 라인은 물론 파운드리와 외부 패키징·테스트 업체의 용량까지 부족한 상황이라고 현재 업계 동향을 전했다. 온세미는 의견서를 통해 “일부 제품에 대해서는 2021년 4분기와 2022년에 더 높은 할당량을 협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제한적”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반도체 공급난을 해소하기 위해 “정확한 수요 예측을 방해하는 이중 주문 관행을 철폐하고 장기 공급 계약을 장려해야 하며, 의회가 반도체 인센티브 법안(CHIPS for America Act)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바일용 AP와 통신 모듈을 설계하는 퀄컴도 의견서를 통해 현 반도체 공급망 문제와 그 해결 방법을 공개 제안했다. 퀄컴은 “과거와 달리 모든 노드에서 생산 차질을 경험했다”고 밝혔고, 공급망 문제의 원인에 대해서는 “반도체 산업은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을 특징으로 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수요가 폭증했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반도체 인센티브 법안 승인, 미국과 동맹국의 기술 보호를 위한 특허법 강화, 일방적인 수출 규제 지양, 외국 인재 유치를 위한 이민법 개정’ 등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특히 우리 정부의 ‘K-반도체 전략’을 언급하면서 “미국도 정부 차원의 지원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한편, 반도체 장비 기업인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ASML, 도쿄일렉트론 등도 자료를 제출했다. 이들은 반도체 공급망 문제가 반도체 칩 제조와 수요 사이의 문제라며 공급망 문제와 거리가 멀다고 입장을 냈다. 그러면서도 ‘반도체 장비 기업으로서, 제조사들의 생산력 향상을 위해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약 58%를 점유하는 TSMC는 노드, 재료, 제품 종류, 생산 능력, 생산량 등 이미 알려진 정보만을 공개하는 데 그쳤다.

 

이번이 끝이 아닐지도…

방미 중인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현지시간 9일 16시에 지나 레이몬도 상무부 장관과 회담을 갖고 “금번 정보제공 요청이 1회성으로 그쳐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지나 레이몬도 장관은 “이번 자료 제출 요청은 이례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진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레이몬도 장관은 “한국 내 우려를 잘 알고 있고, 한국기업의 협조에 감사한다”며 “제출한 영업비밀을 엄격히 관리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문승욱 산업부 장관(오른쪽)과 지나 레이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왼쪽)이 미국 현지시간 9일 16시 미국 워싱턴 D.C. 상무부 회의실에서 회담을 갖고 반도체 공급망 관련 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다
문승욱 산업부 장관(오른쪽)과 지나 레이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왼쪽)이 미국 현지시간 9일 16시 미국 워싱턴 D.C. 상무부 회의실에서 회담을 갖고 반도체 공급망 관련 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다

다만 레이몬도 장관이 8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2주 동안 삼성, TSMC, SK 등 공급망의 모든 CEO와 접촉해 강력하고 완벽한 데이터를 제출하겠다고 약속했다”면서 “(자료가) 충분하지 않으면 추가 조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언급한 만큼, 미국이 재차 자료 제출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 외 다른 나라가 자료 제출을 요구할지도 모른다는 관측도 나온다. 상무부는 학연기관과 협회로부터도 의견을 수렴했는데, 미국정보기술산업위원회(ITIC)는 “일부 기업들은 미국 정부의 시장 개입을 우려하고 있다”면서 “이는 이러한 문제들을 더욱 악화시키고 시장에 훨씬 더 많은 불확실성을 주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정부도 미국처럼 반도체 공급에 관한 정보를 경쟁적으로 요구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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