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패권 주도… TSMC·삼성전자는 규제하고 자국기업 GF는 지원
80년대 글로벌 반도체 1위 일본, 미국 견제로 쇠락… 역사 반복되나?
GF, 유럽 생산 기지 확대… 차량용 반도체 점유율 늘린다

글로벌파운드리 팹에서 부품을 생산중인 모습 [사진=GF]
글로벌파운드리 팹에서 부품을 생산중인 모습 [사진=GF]

[테크월드뉴스=김승훈 기자] 현재 파운드리 시장의 절대 강자는 대만의 TSMC이다. 지난 해 연간 매출 760억 달러를 기록하며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도 약 60%에 이른다. 2위인 삼성전자가 약 12%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으니 단순 계산으로 5배 큰 셈이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부문 대규모 투자로 TSMC를 따라잡겠다고 선언한 만큼 양사의 경쟁은 새로운 관전 포인트가 되고 있다. 하지만, 파운드리 시장의 최종 승자는 TSMC나 삼성전자가 아닌 다른 기업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 후보로는 업계 3위인 글로벌파운드리(GlobalFoundries, 이하 GF)가 있다.

GF는 미국의 마지막 파운드리 자존심으로 AMD가 실리콘 웨이퍼 제조 부문을 분리 매각하면서 설립되었다. 지난해 매출 약 81억 달러, 시장 점유율 약 6%로 TSMC에 비해 매출과 시장점유율 모두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지만 미국의 반도체 패권 야욕이 파운드리 업계의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집권 후 미국은 ‘자국 중심주의’의 성향이 강해졌다. 이는 예상보다 빨리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중국의 급성장 때문이다. 글로벌 패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미국은 중국을 향한 견제를 지속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8월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및 강제적 기술이전 요구와 같은 부당무역 관행을 조사하는 ‘슈퍼 301조’를 발동해 미-중 무역 분쟁을 일으켰다. 또, 2018년에는 중국의 전자기업 화웨이에 대한 규제를 실시한다. 화웨이가 자사의 5G 통신 장비를 이용해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의 안보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중국 정부에 제공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반도체 패권 주도… TSMC·삼성전자는 규제하고 글로벌파운드리는 지원?

현재 미국이 생각하고 있는 중국 견제의 핵심은 ‘첨단 기술에서 격차를 벌리는 것’으로 보인다. 그 중심에는 첨단 기술의 가장 기초가 되는 ‘반도체’가 있다.

그런 차원에서 미국은 2022년 통과된 ‘반도체와 과학법(The Chips and Science Act)’을 통해 자국의 기술이 반영됐거나 자국의 장비를 통해 생산된 반도체 제품이 중국으로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고 있다.

또 한국, 대만, 일본 등 반도체 생산 측면에서 강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과의 반도체 기술 연대 ‘CHIP4’를 통해 중국을 고립시키는 전략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미국은 2026년까지 약 390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사용하여 미국 내 생산시설이 없는 10나노 미만 웨이퍼 생산시설을 건설하도록 유인하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는 2021년 11월에 텍사스주 테일시에 웨이퍼를 생산하기 위한 투자 계획을 발표했고, TSMC는 2022년 12월에 애리조나주에 4나노와 2나노 웨이퍼 생산을 위한 투자 계획을 공개했다. 또, 미국 기업 인텔도 애리조나주와 오하이오주에 첨단 웨이퍼 생산을 위한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문제는 ‘반도체과학법’이 한국의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데 있다.

우선 보조금 지급이 2026년까지로 제한되어 있으며,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향후 10년 동안 중국에 신규 투자나 생산 확대를 5% 이상 할 수 없도록 강제하고 있다. 가장 큰 시장인 중국을 사실상 포기하게 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매출이 악화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미국에 공장을 설립하고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그 대가로 현금 흐름, 수익구조 등 민감한 경영상황을 미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 심지어 생산공정의 기밀사항 등이 노출될 수도 있는 공장 내부 접근을 허용해야 한다.

무역협회는 지난 8월 31일 보고서 ‘미국과 EU의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과 시사점’을 통해 “미국이 반도체과학법을 통해 제공하는 보조금 및 세액공제는 단기적 혜택에 그칠 가능성 크다”고 분석했다.

또, 미국의 임금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등 높은 운영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첨단공정일수록 인건비 비중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무협은 “보조금 지급 요건인 ‘대중국 투자 제한’이 특히 한국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평가했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동맹’에서 소외될 가능성도 있어 자유로운 선택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글로벌파운드리 미국 공장 전경 [사진=GF]
글로벌파운드리 미국 공장 전경 [사진=GF]

 

80년대 글로벌 반도체 1위 일본, 미국 견제로 쇠락… 역사 반복되나?

그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미국이 TSMC와 삼성전자를 힘으로 주저 앉히려고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과거 사례도 있다.

1980년대만 해도 글로벌 반도체 시장 1위는 일본 기업이었다. 당시 미국 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일본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달했다. 그 여파로 미국 기업 인텔은 1984년 D램 산업을 포기하고 중앙처리장치인 CPU로 사업을 전환했고, RCA는 1986년 폐업했다.

그러자 미국은 일본을 향한 공세를 시작했다. 1985년 일본 엔화 고평가와 미국 달러 저평가가 이뤄지도록 하는 플라자합의를 체결했고, 1986년에는 일본 반도체 업체에게 생산 원가를 공개하도록 압박했다.

일본 반도체 기업의 수익성을 악화시켜 더 이상 메모리반도체를 생산할 수 없도록 하는 전략이었다. 그 빈틈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지한 것이 지난 40여년간 이어진 메모리반도체의 역사다.

미국이 ‘성공사례’를 파운드리 분야에 적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현재 미국 정부는 국방용 반도체 공급망에 인텔, GF 등 자국 기업만 포함시키며 안정적인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미국 국방 반도체 상당 부분은 대만 TSMC에서 공급 받고 있는데 ‘국가 안보’를 이유로 TSMC의 비중을 줄여가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최근 GF 뉴욕 몰타주 공장을 국방 반도체 공급 업체로 선정하고 항공우주와 방위 응용 분야에서 신뢰성 있는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인증을 부여했다. GF의 가장 미세한 반도체 공정인 12나노 핀펫 등 첨단 반도체를 미 국방부 육군·해군·공군·우주 안보 시스템에 사용한다.

국방용 반도체는 상용 반도체에 비해 수익성이 낮아 TSMC나 삼성전자 입장에서 당장은 손해가 아니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시장 점유율이 조금씩 낮아지는 과정일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이 보유한 반도체 원천 기술 경쟁력도 주목해야 한다. TSMC와 삼성이 3나노, 2나노 반도체 양산 랠리를 펼치고 있지만 사실 2나노 반도체 개발에 가장 먼저 성공한 회사는 미국의 IBM이다. 그리고 이 IBM의 기술 중 일부는 GF 소유로 현재 특허 소송이 진행 중이다.

 

GF, 유럽 생산 기지 확대… 차량용 반도체 점유율 늘린다

미국 정부의 지원과 별개로 GF도 ‘차량용 반도체’에 주력하는 영리한 선택을 하고 있다.

지난 2021년 자동차용 반도체 수급난이 발생하며 자동차 제조사들이 신차를 생산하지 못하는 ‘반도체 대란’이 발생했다.

완성차 업체들이 요구하는 차량용 마이크로 컨트롤러 유닛(MCU)은 16~40나노미터 수준의 고도화한 미세공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이는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어서 반도체 제조사의 진입장벽이 매우 높다.

문제는 차량용 MCU는 IT기기에 들어가는 MCU에 비해 마진율이 낮다는 것이다. 까다롭지만 수익성은 낮은 차량용 반도체를 소수 업체가 만들고 있어서 수요를 충족하지 못했던 것.

이때 GF는 연내 차량용 칩 생산량을 2배로 늘려 공급난 해결사로 나섰다. GF는 2021년과 2022년에 걸쳐 독일과 미국에 있는 공장에 각 10억 달러(약 1조1768억원), 싱가포르 파운드리 공장에 40억 달러(약 4조7072억원) 등 총 60억 달러(약 7조원)를 투자해 반도체 전 생산라인 규모를 대폭 확장하고 제조 프로세스 효율성을 개선했다.

이와 별도로 2021년 한해 동안 반도체 생산능력을 확장하는데 14억 달러(약 1조5700억원)를 투자했으며, 자동차 칩 뿐만 아니라 5G, 사물인터넷(IoT), 이미지센서, 데이터센터향 등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응용처 전반에 걸쳐 공급량을 늘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감한 투자 덕분에 GF의 지난해 자동차 반도체 매출도 30% 늘었으며, 올해는 170%의 성장이 예상된다.

GF는 다수의 자동차 기업이 있는 유럽 시장에 반도체 생산 라인을 확보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 독일 드레스덴에 생산 공장을 가동 중이며, 최근에는 스위스 반도체 회사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STM)와 프랑스 남부 크홀르 지역 인근에 반도체 팹 공장을 짓기로 했다. GF는 이 공장에서 사물인터넷(IoT), 통신용 칩을 생산할 예정이다. 최대 생산능력은 연간 웨이퍼 기준 62만 장이다.

팹 건설에 75억 유로(약 10조원)가 소요되는데 EU의 ‘유럽반도체법’과 프랑스 자체적으로 미래산업에 향후 5년간 300억유로(약 41조원)를 투자하겠다는 ‘프랑스2030계획’으로 재정 지원을 받게 된다.

동시에 TSMC의 유럽 진출도 견제하고 있다. 독일 정부가 TSMC와 보조금 지급 협상에 나서자 GF는 TSMC가 보조금을 바탕으로 독일 자동차업계 반도체 공급 시장을 장악할 경우 공정경쟁이 무너지고 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GF의 토마스 콜필드 최고경영자(CEO)는 영국 경제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시장 지배력이 있는 한 업체가 불균형적으로 보조금 혜택을 누린다면 단일 공급자에 대한 의존과 시장 차단, 공급망 탄력성 부족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모든 정부 투자가 건전한 경쟁을 촉진하고 부주의하게 시장을 왜곡하지 않도록 확실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외신은 "TSMC가 독일에 상륙할 것이라는 소식은 이미 독일에 진출해 있는 경쟁업체, 주로 글로벌파운드리의 걱정을 자아냈다"며 독일의 자동차 산업에 공급되는 반도체 시장을 두고 두 회사가 경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 한국 정부도 정책적 지원 필요

미국이 자국 기업을 제쳐두고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챙겨줄 리는 만무하다.

이에 전문가들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도 정책적 지원과 인력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무역협회 이정아 수석연구원은 "주요국의 반도체 대규모 설비 증설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기업의 핵심 인재 확보와 안정적 인력 공급은 중요한 과제"라며 "정부와 반도체 업계는 인력 양성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반도체 분야 원천기술을 다량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 강점이 있는 만큼 양국 협력이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제작이나 검사 장비와 관련한 공동 연구가 수행되면 이를 바탕으로 상업화까지 더 수월하게 나아갈 수 있다는 기대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이 기술 패권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한국은 미국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표준 제정에서도 협력이 강화되면 우리 기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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