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원자재법(CRMA) 내년 초 입법화
CRMA, 유럽판 IRA로 평가
전기차 관련 업계, 위기 속 공급망 다변화 기회

[테크월드뉴스=서용하 기자] 유럽에 진출한 한국 수출 기업이 위기에 몰렸다. 소위 유럽판 '인플레 감축법(IRA)'이라 불리는 ‘핵심원자재법(Critical Raw Materials Act·CRMA)’이 내년 초 입법화될 전망이다. 법안은 유럽 내 안정적인 보급망 구축을 위해 해외 자원 및 부품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방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미래 신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국내 전기차 관련 업계는 비상이 걸렸지만, 공급망 다변화 계기로 만들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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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U, 핵심원자재 2011년부터 지정 발표

유럽 집행위원회(집행위)는 이전부터 유럽 산업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원료들을 '핵심원자재(Critical Raw Materials·CRM)'로 지정해 왔다. 집행위는 지난 2011년 14개 광물을 첫 'CRM 목록'에 넣어 발표한 이후 3년마다 목록을 갱신해 현재는 30여 개에 이른다.

집행위는 세 가지 기준에 따라 CRM을 지정한다. 첫 번째는 ‘산업 연관성(Link to industry)’이다. 즉 일반 제조업에 핵심적으로 쓰이는 원료다.

두 번째는 ‘현대 기술(Modern technology)’로 스마트폰, 로봇 등 전자·자동화 산업과 연관된 희토류다.

세 번째는 ‘환경(Environment)’으로 2차 전지나 재생에너지 설비 등과 관련된 광물이다. 반도체부터 무선통신기기, 전기차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주요 EU 수출품에 들어가는 원료가 언제든 CRM에 포함될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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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U 핵심원자재법(CRMA), 유럽판 IRA로 평가

EU는 ‘핵심원자재’ 공급망을 다각화하기 위해 지난 3월 16일 ’핵심원자재법(CRMA; Critical Raw Materials Act)’ 초안을 발표했다. 핵심 원자재 34종, 전략 원자재 16종에 우선 적용될 전망이다.

이 법안은 EU 역내 친환경 산업에 보조금 등을 제공하는 ‘그린딜 산업계획(Green Deal Industrial Plan)’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

동 법안의 입법 과정은 향후 1~2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동 법안은 중국 등 특정국에 대한 공급망 의존도를 줄이고, 역내 투자 확대 등을 통한 EU 역내 원자재 공급 안정성 확보를 목적으로 한다. ‘유럽판 IRA(인플레이션감축법)’로 평가되는 까닭이다.

미국의 IRA는 미국 내 생산을 유도하기 위해 보조금 혜택을 제공하지만, EU ‘핵심원자재법’에는 역외기업 차별조항이나 현지조달 요구 조건 등은 없다.

다만 KOTRA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마르그레트 베스타게르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이 ‘매칭 보조금’을 도입하기로 발표했다.

매칭 보조금은 ‘EU 역외로 투자를 전환할 위험이 있는 기업’에 대해 예외적으로 해당 기업이 제3국에서 받을 수 있는 것과 동일한 금액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EU는 각 회원국이 자국에 진출한 기업에 보조금을 주기 전에 반드시 EU 승인을 받도록 하는데, 매칭 보조금의 경우 심사가 완화된다.

동 법안의 주요 내용을 보면 첫째, 2030년까지 EU 역내에서 ‘핵심원자재’의 연간 소비량 대비 역내 채굴 10%, 가공 40%, 재활용 15% 이상을 역내에서 생산하고 또한 2030년까지 EU 연간 소비량의 65% 이상을 단일 생산국에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

구체적 내용을 보면 첫째, 원자재 공급망을 강화하고,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역내 외 전략 프로젝트를 선정해, 환경 영향평가 기간을 단축하고 민간 투자 촉진 등 이행을 지원한다.

둘째, 전략원자재를 사용하는 대기업에 공급망 자체 감사 의무를 부과한다. 구체적으로 해당 대기업은 매년 2년마다 공급망에 대한 자체 감사 및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해 기업 내부 이사회에 보고해야 한다.

셋째, EU는 회원국에 회수율을 고려해 재활용 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련 제품의 ‘공공 조달 기준’에 재활용 및 재사용 원자재 함량을 고려하는 등의 입법을 이행하게 함으로써 지속가능성을 확보한다는 내용이다.

동 법안은 전기차용 배터리 셀 및 소재·부품 제조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EU는 우리나라 전기차용 배터리 전체 수출의 38.2%(EU 시장 점유율 63.5%)를 차지하는 주요 수출 시장이다.

현재 국내 배터리 셀 및 소재·부품 기업들의 EU 역내 생산시설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으나, 우리 배터리 기업들은 전구체(니켈·코발트·망간 배합물), 흑연, 코발트 등 배터리 핵심광물에 대한 중국산 비율이 높아 공급망 다각화가 시급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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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RMA, 국내 전기차 관련 업계 위기 속 공급망 다변화 기회···

2022년 기준 우리 기업의 대중국 수입 의존도는 수산화리튬과 산화리튬 87.9%, 코발트 72.8%, 천연 흑연 93.9%이다.

관련 업계는 법안의 세부 사항을 면밀히 파악해 유럽공장 증설 등을 검토해야 하며, ‘탈중국’보다는 ‘리스크 제거’ 관점으로 원자재 수입선 다변화 및 재활용 원자재 사용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특히 전기차가 차세대 모빌리티의 대세가 되는 가운데 배터리 소재 공급망 다각화가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배터리 소재 가운데 ▲산화코발트·수산화 코발트 ▲황산망간·황산코발트 △산화리튬·수산화리튬 ▲천연흑연▲이상화망간 ▲산화니켈·수산화니켈 등 5개 품목은 중국 의존도가 80% 내외이다. 코발트와 니켈·천연흑연·망간은 EU가 선정한 16개 전략원자재 부문에 모두 포함된다.

특히, 핵심 소재인 전구체의 경우 수입액 기준 90% 이상이 중국산이다.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국내 완성차 업계와 배터리 업계는 대책 마련에 몰두하고 있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CRMA가 국내 완성차 업계에는 호재가 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우선 유럽 판매용 코나 전기차(EV)에만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를 탑재하기로 했다. 국내와 북미 모델에는 중국 CATL 배터리를 사용하고 있다.

코나는 유럽 내 수요가 높은 모델이다. 지난해 코나EV는 유럽 시장에서 총 3만 6455대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아이오닉5(3만 96대)보다 많이 팔렸다. 폴란드에서 생산되는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를 적용하면 CRMA의 칼날을 피해 갈 수 있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LG화학이 최근 유럽에 양극재 공장 신설 계획을 내비쳤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지난 28일 정기 주주총회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유럽의 CRMA 때문에 양극재 공장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번 기회에 선제 대응을 통해 유럽 내 배터리 밸류체인을 완성하겠다는 복안이다. 유럽의 양극재 공장 신설이 확정되면 한국과 중국·미국에 이어 4각 생산 체제를 완성하게 된다.

한국무역협회(KITA)는 “EU는 핵심원자재법 등을 통해 기업 정보 공개와 서류 제출을 의무화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면서도 “미국에 이어 EU의 이런 움직임은 배터리 소재, 희토류 등 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겐 장기적으로 공급망 다변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미국에선 테슬라, 중국에선 BYD가 50% 이상 점유율을 기록하며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과 달리,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는 폴크스바겐(VW) 시장 점유율이 20% 수준으로 4위 현대차·기아(10%)와 큰 차이가 없다”면서 “CRMA가 중국을 견제하면 현대차그룹이 ‘톱(Top) 3’ 업체로 충분히 치고 올라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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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EU에 의견 전달···지속적인 모니터링 필요

정부가 유럽연합(EU)이 추진 중인 핵심원자재법(CRMA)에 대해 기업에 과도한 부담이 돼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2일 서울에서 열린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상품위원회 회의(대면+화상)에서 이 같은 정부 입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한·EU는 하반기 한-EU FTA 무역위원회 등을 통해서도 전반적인 FTA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경제협력 확대 방안에 대해서 논의할 계획이다. 한·EU는 매년 한-EU FTA 상품무역위를 열고 FTA 이행평가와 교역·투자 애로사항을 점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CRMA 초안이 개별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겠지만, 향후 입법 과정에서 세부 내용이 변경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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