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성장성 중시하는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 조성돼야

[테크월드뉴스=이재민 기자] 전기차가 전 세계 증시에서 투자자들의 자금을 빨아들이며 블랙홀이 되고 있다. 미국 전기차 기업인 테슬라 주가는 10월 25일(현지시간) 처음으로 1000달러(약 118만 원)를 넘기면서 ‘천슬라’로 등극했다. 최근 미국 블룸버그가 2025년에 애플카가 출시될 수 있다고 보도하면서 애플카 관련주가 요동쳤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혜성처럼 등장해 세계 시가 총액 순위를 뒤흔드는 새로운 기업이 있다. 바로 ‘제2의 테슬라’ 리비안이다.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인 리비안은 11월 10일(현지시간) 나스닥 상장 이후 하루 만에 주가가 30% 가까이 급등했다. 이날 리비안 주가는 공모가 78달러(약 9만 원)에서 100.73달러(약 12만 원)로 장을 마감했다. 시가 총액은 860억 달러(약 102조 원)를 기록했다. 리비안은 상장일 시가 총액 기준으로 미국 1위 완성차 기업인 GM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매출 ‘0원’인데 시가 총액은 100조 원?

리비안은 2009년 매사추세츠공대(MIT) 박사 출신인 로버트 RJ 스카린지 CEO(최고경영자)가 설립했다. 아마존과 포드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은 리비안은 2019년 105억 달러(약 12조 원)를 투자 받았다. 아마존과 포드의 리비안 지분율은 각각 20%, 12%다. 이런 투자와 함께 아마존이 향후 배송 차량을 리비안 전기차로 전환할 계획을 밝혀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기업 가치가 더 높아지고 있다.

▲ 리비안의 전기 픽업트럭 ‘R1T’.
▲ 리비안의 전기 픽업트럭 ‘R1T’.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리비안은 공식적인 매출이 없다. 설립 이후 지금까지 전기차 출고 실적은 150여 대에 불과하다. 리비안은 지난 9월 세계 최초로 전기 픽업트럭 ‘R1T’를 출시했으나 양산 일정을 수차례 미뤄 R1T 사전 예약자들은 내년 3월부터 차량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전기 SUV ‘R1S’의 출시일은 내년 여름으로 연기됐다. 소비자와 기업이 선주문한 리비안 차량은 15만 대에 육박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라면 리비안은 2024년까지 뚜렷한 수익을 내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리비안의 연간 손실 규모가 수십억 달러로 추정되는 가운데 월스트리트의 한 증권사는 리비안에 투자의견 ‘매수(BUY)’를 제시했다. 당장 수익은 없으나 성장 잠재력과 아마존의 투자 지원, 전기 픽업트럭과 전기 SUV에만 집중하는 차별화 전략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테슬라 출신이 세운 루시드, ‘현존 최대 주행 거리’ 전기차 출시

리비안처럼 전기차 부문에서 실적과 시가 총액의 괴리가 큰 기업이 또 있다. 지난 7월 나스닥에 상장한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인 루시드 모터스 3분기 매출은 23만 2000달러(약 3억 원)를 기록했다. 반면 시가 총액은 700억 달러(약 82조 원)를 넘겼다. 이런 현상에는 테슬라 투자 기회를 놓쳤던 투자자들의 리비안과 루시드 모터스가 ‘제2의 테슬라’가 될 수 있다는 기대 심리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루시드 모터스는 테슬라와 인연이 깊다. 피터 롤린슨 루시드 모터스 CEO는 테슬라 수석엔지니어 출신으로 ‘모델S’ 개발에 참여했고, 루시드 모터스 임원 중 절반 이상은 테슬라 출신이다.

▲ 루시드 모터스가 최근 출시한 첫 전기차 ‘루시드 에어’.
▲ 루시드 모터스가 최근 출시한 첫 전기차 ‘루시드 에어’.

루시드 모터스의 첫 전기차 ‘루시드 에어’는 1회 충전으로 837㎞를 달릴 수 있다. 이는 지금까지 출시된 전기차 중 한번 충전으로 가장 오래 달릴 수 있는 차다. 최근 출시한 루시드 에어는 사전예약이 1만 7000건에 달한다. 피터 롤린슨 CEO는 “내년에는 전기차 2만 대를, 10년 안에는 50만 대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조 강국’ 한국, 전기차 스타트업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전기차를 생산하는 기업은 현대·기아차뿐이다. 전기차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로 언급되는 배터리 부문에서 국내 배터리 3사인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가 세계 시장에서 각각 점유율 2위, 5위, 6위를 차지하는 것과 대비된다. 초소형 전기차를 생산하는 국내 중소기업들은 있다. 초소용 전기차는 대부분 소형 화물 운송과 배달 같은 상업 목적으로 사용되거나 우정사업본부 우편 배달용 차량으로 공급되고 있다. 그러나 최고 속도가 80㎞에 도심만 다닐 수 있어 일반 소비자 수요는 거의 없다.

▲ 마스터전기차의 2인승 초소형 전기차 ‘마스터 미니’.
▲ 마스터전기차의 2인승 초소형 전기차 ‘마스터 미니’.

한국에서 전기차 스타트업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누적 벤처 투자금액은 5조 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벤처 투자금액이 가장 많았던 업종은 ICT(정보통신기술) 서비스와 바이오·의료, 유통·서비스에 국한됐다. 자동차 시장이 전기차로 재편되고 있는 이 시점에 전기차 제조 스타트업에는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런 현상에 대해 “10년 후 미래 시장을 보지 않고 당장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업종에만 투자하는 우리나라 투자 생태계의 단면”이라고 지적했다.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정부 정책도 개선이 요구된다. 설립 후 7년이 지나면 정부 지원 대상에서 멀어져 이 시기에 매출이 아예 없거나 저조하다면 성장하는 데 한계가 생긴다. 기술력은 있으나 시장이 열리지 않은 경우도 있어 이를 고려해 업종과 주기별로 맞춤화한 정책이 필요하다.

▲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블룸버그의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머스크의 자산은 3350억 달러(약 394조 원)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다.
▲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블룸버그의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머스크의 자산은 3350억 달러(약 394조 원)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다.

전기차 업계에서 거대 공룡이 된 테슬라도 스타트업으로 시작했다. 전기차 스타트업이 꿈을 펼칠 수 있는 무대가 조성된다면 한국에도 리비안과 루시드 모터스처럼 ‘제2의 테슬라’가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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