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빅테크 본격 압박 시작
공정위 표류하는 ‘플랫폼법’ 국내기업만 잡아

[테크월드뉴스=서용하 기자] 빅테크를 견제하기 위한 유럽연합의 ‘디지털시장법(DMA)’이 지난 7일 본격 시행됐다. DMA가 적용되는 6개 빅테크 업체는 위반 시 글로벌 매출의 최대 20%를 과징금으로 내야 한다. 업계 전문가는 각국 정부가 자국 내 글로벌 IT업체의 독주를 막기 위해 규제를 무기화하고 있다며, 우리나라 정부도 이 같은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티에리 브레튼 EU집행위원은 게이트키퍼로 지정된 대형플랫폼은 정확한 의무를 준수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강력한 제재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사진=티에리 브레튼 X계정]
[티에리 브레튼 EU집행위원은 게이트키퍼로 지정된 대형플랫폼은 정확한 의무를 준수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강력한 제재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사진=티에리 브레튼 X계정]

▶ EU 명분은 ‘독점’ 견제, 속셈은 자국 기업 보호?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7일부터 소속 27개국에서 DMA를 시행한다면서 대상 기업으로부터 규제 준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를 구체적으로 보고받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DMA 준수를 위한 준비가 부족했다면 즉각 조사에 착수하고 과징금을 매길 방침이다.

DMA 대상 기업인 ‘게이트키퍼’는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메타, 아마존, 바이트댄스 등 총 6 개사다. 게이트키퍼 지정 기준은 EU 내 월간활성이용자수(MAU) 4500만 명, 시가총액 750억 유로(약 108조 7600억 원), 연 매출 75억 유로(약 10조 8000억 원) 등이다.

규제 영역은 총 22개 서비스로 광범위하다. 운영체제(OS)인 윈도·iOS·안드로이드, 소셜미디어인 인스타그램·페이스북과 틱톡, 검색엔진 구글 등이 들어간다.

iOS와 안드로이드는 앱스토어·구글스토어 외에 타 수단을 통한 앱 설치를 허용해야 한다. 외부 서비스 이용을 막을 수도 없다. 서비스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함부로 이전해 광고에 활용하거나, 자사 앱이나 서비스를 우대해도 안 된다. 구글 안드로이드 OS에서 얻은 정보를 검색엔진의 광고에 활용하거나, 앱스토어에 애플 앱을 먼저 노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위반 시 과징금은 연간 글로벌 매출의 10%에 이른다. 반복적으로 위반할 경우 20%까지 늘어날 수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대 과징금을 부과하기는 쉽지 않겠으나 DMA를 따르지 않겠다면 EU 내 사업을 중단하라는 경고가 담긴 것”이라고 평가했다.

업계에선 게이트키퍼 중 5개 사는 미국, 1개 사는 중국에 본사를 둬 유럽 기업이 전혀 없다면서 IT 경쟁에서 밀린 EU가 강력한 규제로 해외 빅테크를 압박하려 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업계 전문가는 한국은 물론 일본·영국·인도 등 세계 각국에서 DMA와 유사한 규제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며 이번 DMA 시행이 혁신 경쟁에서 규제 전쟁으로 돌입하는 신호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정부가 ‘독과점 규제’라는 키워드에 매몰되어 현실적인 애로사항을 무시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우선 플랫폼법이 통과된다고 해도 해외 플랫폼들을 규제할 방도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 꼽힌다/사진=대통령실]
일각에선 정부가 ‘독과점 규제’라는 키워드에 매몰되어 현실적인 애로사항을 무시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우선 플랫폼법이 통과된다고 해도 해외 플랫폼들을 규제할 방도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 꼽힌다/사진=대통령실]

▶ 공정위 헛발질··· 망 사용료 등 우왕좌왕

DMA를 계기로 각국에서 유사한 법 도입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국내에선 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법’ 입법을 추진했다가 국내 플랫폼만 고사 시킬 수 있다는 비판에 직면, ‘전면 재검토’로 선회한 바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DMA 법은 철저한 자국 기업 보호를 전제로 만들어졌다며 한국 정부도 이러한 글로벌 규제의 본질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유튜브 뮤직 관련 조사와 관련해 “조사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답변이 불가능하다”며 “플랫폼 조사에는 통상적으로 4~5년이 걸린다”고 밝혔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공정위 관계자는 유튜브 뮤직 관련 조사와 관련해 “조사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답변이 불가능하다”며 “플랫폼 조사에는 통상적으로 4~5년이 걸린다”고 밝혔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① 공정위, 표류하는 ‘플랫폼 법’ 국내 기업만 옥좨

공정거래위원회는 그동안 플랫폼법 입법을 강력히 추진했다. 특히 EU 법안을 모방했지만, 애매모호한 기준으로 국내 플랫폼 사업자들만 위축시킬 수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공정위는 정량 요건과 정성 요건을 함께 고려해 지배적 사업자 지정 기준을 마련했다. 정량 요건은 2022년 기준 연 매출 1조 4700억 원, 이용자 수 750만 명 이상이다. 이를 기준으로 개별 기업의 지배적 사업자 심사 여부를 판단한 뒤 복합적인 요건을 감안해 결정한다.

문제는 정량·정성 요건이 빠르게 변하는 플랫폼 시장을 반영하지 못하고, 산업에 따라 임의로 적용될 위험이 높다는 점이다. 쿠팡은 2022년 연간 매출액 26조 5917억 원을 기록했지만, 플랫폼법 규제 대상에서 빠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온라인 쇼핑 시장 점유율이 24.5%이기 때문이다.

배달의민족은 국내 배달앱 시장 점유율 60% 이상을 차지하지만, 2022년 연간 매출액은 2조 9471억 원으로 비교적 적어 제외될 것으로 예상되고, 국내에서 급부상하는 중국계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은 해당 사항이 아예 없다.

업계에 따르면 토종 음원 플랫폼들은 공정위의 유튜브 뮤직 관련 조사가 1년 넘게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는 데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한 음원 플랫폼 관계자는 “공정위는 토종기업을 압박하는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을 밀어붙이면서도 정작 미국 빅테크의 횡포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현재 유튜브는 광고 없이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유튜브 프리미엄(월 1만 4900원) 가입자에게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유튜브 뮤직(월 1만 1990원)을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정위는 이 같은 유튜브의 판매 방식이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에 해당하는지 조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1년 넘게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국내 대형 콘텐츠 사업자(CP)인 네이버와 카카오는 도합 3.3%만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음에도 망 사용료를 납부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내 대형 콘텐츠 사업자(CP)인 네이버와 카카오는 도합 3.3%만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음에도 망 사용료를 납부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② 망 사용료 구글만 예외?

통상 인터넷 기업은 통신회사에 망 사용료를 지급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전체 트래픽에서 회사별 비중은 구글이 8.6%로 가장 높고, 이어 넷플릭스 5.5%, 메타 4.3%, 네이버 1.7%, 카카오 1.1% 순이다.

국내 기업들은 인터넷 기업에 망사용료를 지급하고 있지만, 해외 기업은 “이중 과금이다”라고 맞섰다.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와 합의해 소송을 종결했지만, 구글은 반발하는 상황이다. 미국 통신사에 접속료 명목 비용을 내고 있고 데이터 송출 서버에도 투자하고 있어 사실상 망 사용료를 내고 있다는 주장이다.

[선거의 해를 맞아 전세계 각국은 가짜뉴스 차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빅테크는 이에 대한 책임을 미루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선거의 해를 맞아 전세계 각국은 가짜뉴스 차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빅테크는 이에 대한 책임을 미루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③ 글로벌 빅테크 자율기구에서도 제외

글로벌 빅테크는 자율기구에서도 벗어나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에 가입했지만, 검색 시장 점유율 약 30% 대인 구글은 가입하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구글에서 성인 인증을 하면 불법 음란물이 난무하는 것을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면서 반면 네이버나 다음은 실시간으로 송출되는 영상물에 대해서도 필터링이 이뤄지는 등 규제 강도가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저작권 징수 규정에서도 국내 사업자와 해외사업자간 차별이 존재한다. 국내 플랫폼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음악저작물 사용료 징수 규정’에 따라 무료·할인 프로모션 기간에 발생한 저작권료를 포함해 총 매출 기준으로 정산하는 반면, 해외 플랫폼은 운영 비용 등을 제외한 순 매출 기준으로 정산해 국내외 음원 플랫폼별 수익성에 차이가 발생한다.

IT업계 전문가는 EU가 애플에 엄청난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한 배경엔 이용자 보호라는 측면에 더해 EU 내 ‘토종기업’ 스포티파이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며 우리 정부도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과감히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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