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로봇’, 영화에서 현실로

[그림 1]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변형 2족 보행 로봇 '핸들'이 장애물을 점프해 넘어가는 장면.(자료=유튜브)

[테크월드=정환용 기자] 지난 2월 27일, 유튜브에 로봇 영상 하나가 공개됐다. 로봇 엔지니어링 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업로드한 영상 속의 로봇 ‘핸들’(Handle)은, 바퀴가 달린 두 다리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무척 부드럽게 다양한 액션을 소화했다. 지난해 공개된 로봇 ‘아틀라스’는 인간처럼 두 발로 걷는 형태였고, 그 움직임이 지금까지 공개됐던 것 중에서 가장 인간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올해 공개된 새로운 로봇은 발 대신 바퀴를 장착해 개발 방향이 바뀐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100초 정도의 영상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사진처럼 핸들이 장애물을 뛰어넘는 장면이었다. 사람처럼 한 쪽 발로 도움닫기를 하는 형태는 아니었지만, 무릎과 발목에 해당하는 부분을 굽혀 장애물에 접근하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전개하며 도약 추진력을 얻는 장면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비록 착지 후에 관절 부분의 원상복귀가 약간 늦긴 했지만,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부드러운 움직임이란 점을 생각하면 굉장한 수준의 진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일본 혼다의 2족 보행 로봇인 ‘아시모’, 과학기술원이 개발한 ‘휴보’도 발전과 개선을 거듭하고 있으며, 많은 기업들이 인간처럼 두 발로 걷고 뛰는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한국미래기술이 세계 최초의 1인 탑승형 2족 보행 로봇 ‘METHOD-2’을 공개한 것은 놀라웠다. SF영화나 만화에서 보던, 두 발로 걷는 로봇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걷는 행위’, 과학보다 경험
일반적으로 사람이 현재의 위치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는 다리를 이용해 걸어가거나 뛰어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걷는다는 행위 자체에 의문을 갖지는 않는다. 하지만 알고 보면 상당히 많은 요소가 걷는 행위에 포함돼 있다. 서 있는 사람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딛는 것에 어떤 요소들이 필요한지 알아보자.

① 행위 인지: ‘앞으로 걸어가야 한다’는 목적과 근거 부여(의식적 행위)
② 명령 전달: 보행에 필요한 명령을 각 신체 기관들에 전달(비의식적 행위)
③ 동작: 발을 떼고 신체를 앞으로 옮겨 전진 및 신체 기관 복합 작용(의식적 행위)
④ 판단: 걷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수를 처리하기 위한 다각적 판단(의식/비의식적 행위)

단지 두 개의 발을 앞으로 내딛는 행위만으로는 2족 보행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인간은 2족 보행을 위해 206개의 뼈, 650여 개의 근육, 100여 개의 관절을 무척 정교한 조합으로 사용하는데, 이 모든 행위가 개별적으로 동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행위로 통합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걸음에 대한 의식이 없어도 장애물이 없는 한 넘어지지 않고 걷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두어 살이 될 무렵 기어 다니던 아기들이 조금씩 걷기 시작할 때는 부모의 마음을 졸이게 하지만, 성인이 되면 걷고 뛰는 것이 별달리 의식조차 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행동이 된다.

인간은 많은 경험을 쌓으며 보행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사용하지만, 이 과정을 로봇에 적용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족(多足) 보행 로봇을 만들려는 시도는 1960년대부터 꾸준히 진행돼 왔지만, 아직도 로봇의 2족 보행은 어린아이 수준이다. 로봇을 걷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기술이 굉장히 많은데, 원하는 동작을 구현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제어 공학(Control Engineering)을 기반으로 기계·전기·전자 공학이 복합 적용되는 메카트로닉스(Mechatronics), 로봇 구동을 위한 임베디드 시스템(Hardware, Software)까지 다양한 기술이 동시 적용돼야 한다.

두 다리로 보행하는 로봇을 만들기 위해선 먼저 2족 보행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2족 보행은 ‘리버스 펜듈럼’이라는 수학적 모델 기반의 동작인데, 손바닥 위에 수직으로 세운 막대를 진자 운동을 하며 균형을 잡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그림 2] 한국미래기술에서 개발하고 있는 세계 최초의 1인 탑승형 2족 보행 로봇 ‘METHOD-1’의 시연 영상이다.(영화 ‘퍼시픽 림’의 집시 데인저를 실물로 볼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유튜브에서 ‘method-1’로 검색하면 여러 작동 영상을 볼 수 있다.

천천히 걸어가는 로봇의 다리를 보면 굉장히 많은 관절이 구현돼 있는데, 인간의 다리에는 로봇처럼 많은 관절이 있지는 않다. 발가락 관절을 제외하면 척추, 고관절(엉덩이), 슬관절(무릎), 족관절(발목) 등이 보행에 직접 관여하는 부분이다. [그림 2]의 로봇 다리를 사람의 다리와 비교해 보면, 사람의 경우 관절을 지지하고 움직이는 근육이 금속과 달리 유연하기 때문에 하나의 관절로 여러 방향의 움직임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로봇의 경우 발목에 해당하는 부분의 회전부가 X축으로 회전하는 roll, Y축으로 회전하는 pitch 2개로 구성된다. 이것이  METHOD-1에도 적용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허리 부분의 구현을 위해선 Z축으로 회전하는 yaw까지 3개의 운동부가 필요하다. 금속은 근육처럼 팽창·수축 운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한 방향으로밖에 움직일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선택이다.

2족 보행 로봇 제작의 어려움은 구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 학습하면서 점차 행동을 수정해 나가지만, 로봇은 주어진 명령에만 따르는 수동적인 개체다. 인간의 보행은 끊임없는 반복 학습을 통해 왼발을 내딛을 때 오른팔이 함께 나가야 이동 중 자연스럽게 균형이 잡힌다는 것을 깨닫는다. 제자리에서 점프를 할 때는 온몸을 아래로 굽혀 추진력을 얻어 더 높이 뛰고, 착지할 때는 무릎을 굽혀 충격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것도 경험을 통해 자연스레 깨닫는 이치다. 하지만 로봇이 같은 동작을 수행하게 하려면 전용 임베디드 소프트웨어를 통해 로봇에게 수많은 정보를 동시에 입력·실행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림 3]과 같이 인간의 다리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완성형 2족 보행 로봇이 오른발 한 걸음을 내딛는다고 가정해 보자. 최대한 간단한 설정으로 명령을 내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가정했을 때, 한 걸음을 내딛는 행위에 필요한 최소한의 명령은 다음과 같다.

 

▶ 목표설정 : 앞으로 걸어서 전진한다.
전제조건: 모든 구동부에 명령어가 제대로 전달되는지 확인한다.

① 왼다리를 들어 앞으로 내민다.
    명령 1 : 허리 3개 축, 무릎 1개 축, 발목 2개의 축을 운동 방향과 타이밍에 맞춰 회전
    명령 2 : 왼다리가 들려 있는 동안 균형을 잃지 않도록 오른다리 축의 회전으로 조정

② 들린 왼다리의 발을 1m 앞의 바닥에 착지시킨다.
   명령 1 : 1m의 보폭만큼 전진하기 위한 오른다리 축의 회전
   명령 2 : 본체 전체가 넘어지지 않는 범위에서 1m 나아가는 만큼 무게중심 이동
   명령 3 : 왼다리의 발이 예정된 범위에 착지하기 위한 왼다리 축의 회전
   명령 4 : 왼발 착지 후 무게중심 이동으로 인한 충격 분산을 위해 모든 하체 축의 회전

잠시 자리에서 일어서서 자연스럽게 한 걸음만 앞으로 걸어 보자. 난이도를 따질 필요도 없는 쉬운 동작이다. 그러나 로봇이 한 걸음을 걷는다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명령들이 오차 없이 성공적으로 실행됐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한 걸음을 내딛은 직후 멈춰서거나 다른 쪽 발을 내딛으며 계속 걸어갈 때, 로봇이 수행해야 하는 명령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2족 보행 로봇의 움직임을 볼 때, 어쩌면 로봇의 보행을 가능케 하는 것은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한 요소일지 모른다. 물론 원하는 동작을 구현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동작 파트에 적절한 명령을 손실 없이, 그것도 굉장히 빠른 반응속도에 맞춰 전달해야 하는 것은 전용 소프트웨어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2족 보행 로봇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로봇의 구조는 대략적으로나마 관객에게 보여주지만 그 과정은 거의 보여주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현실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 영화 ‘아이, 로봇’의 NS5가 어찌보면 현재의 기술로 구현할 가능성이 높은 가장 현실적인 구조의 2족 보행 로봇이다. NS5의 하체를 보면, 뼈에 해당하는 지지대 대신 강성과 유연성을 함께 가진 강철 근육 더미를 사용한다. 각 더미의 끝부분이 ‘볼나사’처럼 움직인다기보다는, 각 근육부가 하나의 코어를 중심으로 메시 타입으로 제작돼 그 자체로 유연성을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구조의 운동부를 제작할 수 있다면, XY축 관절을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더 유연한 만큼 여기에 적용해야 하는 명령 역시 훨씬 복잡해진다. 실시간으로 이 로봇을 제어하는 시스템의 성능은, 현재로선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어마어마할지도 모른다. 세계적으로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머신 러닝과의 융합으로 기계가 보행을 ‘학습’한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아직은 SF 영화만큼이나 먼 미래의 얘기다.

[그림 4] 일본 혼다가 개발한 2족 보행 휴머노이드 로봇 '아시모'(Asimo)
[그림 5] KAIST에서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DRC 휴보'(Hubo)

보행 로봇, 효율은 아직 먼 미래
사실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로봇이 굳이 인간처럼 두 발로 걸을 필요는 없다. 효율이나 효용성을 따지면 바퀴나 궤도를 이용하는 것이 다족 보행보다 빠르고 효과적일뿐더러, 제작하기도 훨씬 쉽다. 심지어 ‘보행 로봇’ 자체의 효율도 현재로선 상당히 떨어져, 제작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단지 보행 로봇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로봇의 활용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작은 브라운관 TV 크기였던 화성탐사 로봇 소저너가 보행이 가능했다면, 우리가 화성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직접 수행하기 어려운 일을 대신 수행하는 로봇도 조금씩이나마 발전하고 있다.

사실, ‘왜’ 보행 로봇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과학자들과 공학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지는 그리 궁금하지 않다. 기술 산업의 모든 결과물이 단지 필요에 의해서만 개발되고 공급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두 발로 걷는 로봇이 가능해지고 그것이 지금의 스마트폰처럼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이 올 수도 있고, 손바닥만한 크기의 스마트폰을 너무 크다며 비웃게 될 수도 있다. 우리는, 혹은 우리의 다음 세대 사람들은 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 어떻게 하면 인간의 삶이 더욱 편안해질지를 고민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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