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보의 공유와 확산이 상당 부분 위축될 것이 자명하다. 단절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른다. 그런데 이 정보가 안전과 생명에 밀접한 것이라면?

미래창조과학부가 지난 6월30일 발표한 ‘무선통신 서비스 가입자 현황’에 따르면, 5월 기준 이동전화 가입자는 5천9백만 명으로 나타났다. 이중 스마트폰 사용자는 4천497만 명으로 조사됐다.

미래부의 ‘무선데이터 트래픽 통계’는 스마트폰 의존도가 어느 수준인지 가늠할 수 있다. 이동전화 단말기를 가입해 사용하는 1인당 한달 트래픽 사용량은 지난 2012년 12월 938MB에서 올해 9월 기준 3천941MB로 4배 이상 증가했다.

국내 스마트폰 소비자들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브랜드를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갤럽이 전국성인 남녀 1천4명을 대상으로 사용 중인 스마트폰 브랜드를 조사한 결과 7월 둘째 주 기준 ▲삼성전자 56% ▲LG전자 19% ▲애플 아이폰 17% ▲팬택 스카이·베가 2% ▲기타 1% 등의 분포를 보였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용자는 전체의 75%에 달했다.

즉,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는 4천5백만여 명으로 이중 상당수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스마트폰 브랜드를 선호하며 스마트폰에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스마트폰은 언제든지 멈출 수 있다

지난 9월12일 경주에서 최고 5.8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안전을 염려한 이용자들의 휴대전화 사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자 트래픽도 폭주했다. 이로 인해 경주 일대에서 휴대전화 통화 및 문자메시지는 한 시간 이상 먹통이었다.

카카오톡 등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은 지진 발생 직후 2시간여 동안 작동하지 않았다. 국가안전처의 긴급재난문자도 제때 발휘되지 않아 공분을 샀다. 국정감사에서 이와 관련해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지기도 했다.

열흘 후인 23일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제출됐다. 새누리당 배덕광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해당 개정안에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성찬·홍문표·김도읍·김명연·강석진·정태옥·이만희·유재중·권석창 의원 등이 발의자로 참여했다.

지진 등 재난 상황을 대비해 스마트폰에서 라디오 직접 수신 기능을 의무화해야한다는 것이 개정안의 주된 내용이다.

개정안 마련의 필요성에 대해 배덕광 의원은 경주 지진 당시 데이터 통신망의 불완전성이 증명된 만큼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실재로 일본의 경우 잦은 지진과 화산 활동을 감안, 스마트폰에 라디오방송 수신을 의무화하고 있다. 비상시 국민들에게 안전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국내 사정은 정반대다. 국내 이동통신단말장치 제조업자들은 라디오 수신 기능을 제조당시부터 제외하고 있다. 데이터를 통한 인터넷 방송 수신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제조사의 방침은, 데이터망이 결손 됐을 경우를 제외 혹은 무시한 조치라는 게 배덕광 의원의 주장이다.

지난 10월7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배덕광 새누리당 의원은 미래창조과학부 국정감사에서 스마트폰내 라디오칩 비활성화에 대해 최양희 미래부 장관에게 질의했다. 배 의원은 이날 최신 스마트폰은 직접 수신이 안 되고, 라디오 애플리케이션으로만 수신이 가능한 점을 지적했다.

경주 지진 당시 데이터망이 소실돼 라디오 앱으로 재난경보를 들을 수 없던 상황이 있었던 만큼 라디오 직접 수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국감 이후 미래부 관계자는 기자에게 라디오 수신칩과 관련해 “미래부의 공식 입장은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라디오칩 활성화를 포기한건 아냐… 제조사 의견만 청취했을 뿐”

배덕광 의원=지난 12일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하자 전국 카카오톡은 2시간 넘게 먹통이 되고, 경주일대는 휴대전화와 문자가 1시간 이상 지연되고, 국민안전처의 긴급재난문자도 오류가 났습니다. 재난경보 시스템이 실패했다고 봐도 됩니까?

최양희 장관=네.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배덕광 의원=대다수 국민이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재난경보는 적절한 수단입니다만, 이번 경우처럼 트래픽 폭주로 인해 제 기능을 못하면, 데이터망에 의한 재난경보 시스템은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고 봅니다. 이통사의 데이터망은 지진이나 태풍에 의해 파손되거나 침수되어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FM라디오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전파력을 가지고 있어 매우 유용한 재난대응 매체입니다. 이 부분에 동의하십니까?

최양희 장관=통신기술 발달수준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고 봅니다.

배덕광 의원=방송통신발전 기본법 제40조3항은 “전파 수신이 되지 않는 지하 장소에 재난 라디오방송 수신에 필요한 중계설비를 설치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스마트폰에 라디오 기능이 있다면, 재난 발생 시 국민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보는데 장관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양희 장관=네. 이론적으로는 그렇게 볼 수 있다고 봅니다만.

배덕광 의원=시중에 판매되는 스마트폰에 라디오 칩이 들어 있습니까? 안 들어 있습니까?

최양희 장관=단말기마다 다른 걸로 압니다.

배덕광 의원=대부분의 단말기에 들어 있습니다. 화면을 한 번 보시죠. 장관님,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지금 보시는 것은 2년 전에 출시된 삼성 갤럭시S5 내부 회로판입니다. 저렇게 빨간 네모로 표시된 부분이 브로드콤(Broadcom)칩입니다. 저 칩에는 와이파이, 블루투스, FM라디오 모듈 등이 탑재되어 있습니다. 다음은 올해 출시된 엘지G5 회로판입니다. 마찬가지로 빨간 네모 부분이 브로드콤 칩으로 역시 FM라디오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관님, 두 단말기의 회로판을 보면 FM라디오 수신 칩이 내장되어 있고, 노이즈 제거와 증폭기능을 담당하는 엘엔에이(LNA)소자도 탑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스마트폰은 라디오를 직접 수신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최양희 장관=가능하지 않은 걸로 압니다.

배덕광 의원=바로 라디오 청취는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라디오칩이 비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재난이 자주 발생하는 일본 폰은 다릅니다. 지금 보시는 것은 소니폰인데요, 일본 단말기는 저렇게 거의 모든 스마트폰에 라디오 칩이 들어 있고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왜 저렇게 라디오 칩이 스마트폰에 들어가 있는가 하면, 과거 기능별로 흩어져 있던 4개의 칩을 모아 작은 하나의 칩으로 만들면서 스마트폰에서 오히려 라디오 기능만 쏙 빼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 판매되는 스마트폰에는 이 라디오칩 기능이 죽어 있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였지만, 최근 단순한 업데이트로 스마트폰의 라디오칩 기능을 살렸습니다. 저기 보이는 것은 기사 원문인데요, 최신 폰인 갤럭시 S7의 FM라디오 기능이 업데이트로 활성화되었다는 내용입니다. 갤럭시 S7과 LG G5 모두 저렇게 가능합니다.

하지만 삼성과 엘지가 국내에서 파는 스마트폰은 이 기능이 비활성화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4년 전에 출시된 갤럭시S3입니다. 들으시는 것처럼 이렇게 안테나만 꽂으면 라디오가 나옵니다.

하지만 2년 전에 출시된 갤럭시 S5는 라디오칩이 죽어 있어서 바로 라디오를 들을 수 없고 앱을 통해서만 라디오를 들을 수 있습니다. 즉 재난으로 데이터망이 다운되면 최신폰을 가진 사람은 재난경보를 들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장관님, 이 기능이 막혀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최양희 장관=그것은 통신사가 개별적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제품 기능에 대해서 제가...

배덕광 의원=이통사가 데이터로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입니다. 앱으로 하루 2시간씩 라디오를 듣는다면 한 달이면 약 3기가바이트(GB)가 소모됩니다. 이 정도 데이터를 쓰려면 얼마짜리 요금제에 가입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최양희 장관=잘 모르겠습니다.

배덕광 의원=5만원대 요금제에 가입해야 합니다. 여기에 동영상이나 팟 캐스트를 본다면 요금이 더 올라갑니다. 이게 전부 이통사의 수익이 되는 겁니다. 정부가 혹시 이통사의 수익을 위해 라디오칩 비활성화를 묵인하는 것 아닙니까?

최양희 장관=아닙니다. 전혀 그런 거 없습니다.

배덕광 의원=또 여기에는‘소비자 기만’도 있습니다. 스마트폰 가격에는 이미 라디오칩 비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제조사가 이를 막는다면, 소비자를 기만한 걸로 볼 수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양희 장관=그렇게도 볼 수 있지만 그거는 제가 좀 더 검토를 해봐야 할 거 같고 또 이거는 공정거래위원회 소관이 아닌가….

배덕광 의원=라디오칩 활성화는 장점이 많습니다. 앱 사용 때보다 배터리 소모가 최고 1/10로 줄어들기 때문에 사용자 편익이 증가하고 또 라디오는 무료이므로 데이터를 안 써도 됩니다. 가장 큰 장점은 재난망으로서 최고의 안전성을 가진다는 점입니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본 위원은 이 부분을 지적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최양희 장관=네, 기억합니다.

배덕광 의원=그때 장관은 “국민안전처와 협의하겠다”고 했는데 답변서는 이렇게 왔습니다. 작년 10월 27, 28, 29일 국민안전처와 통화했다.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미래부는 이런 식으로 일합니까?

최양희 장관=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배덕광 의원=심지어 이것도 허위입니다. 국민안전처에 확인해보니, 미래부와 연락도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장관님, 어떻게 된 겁니까?

최양희 장관=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배덕광 의원=올초 미래부는 삼성과 엘지가 부정적이라며 ‘스마트폰 라디오칩 활성화를 포기한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정말로 삼성과 엘지 때문에 포기하는 겁니까?

최양희 장관=그렇지 않습니다. 제조사 의견을 청취했을 뿐으로….

- 미래부 국감 질의 중에서 발췌

미국은 되고 한국은 안 돼

과연 최 장관의 말처럼 스마트폰에는 라디오 칩 내장 여부가 천차만별일까? 본지는 배덕광 의원실을 통해 미래부 문건을 입수했다. 문건은 삼성전자(35종)와 LG전자(26종)가 지난 2014년부터 현재까지 출시한 61종의 스마트폰에 FM수신침 내장 여부와 FM기능을 명시돼 있다. 문건은 미래부에서 작성했다.

미래부 문건을 보면 최 장관의 발언은 사실과 다르다. 삼성전자는 35종 중 단 7개 모델을 제외한 전 기종에 FM수신칩이 내장돼 있었고, LG는 전 기종에 장착됐다. 갤노트7의 경우 내수용과 수출용 모두에 FM기능이 있는 퀄컴 스냅드래곤칩과 엑시노스칩이 내장돼 있어 라디오 수신이 가능한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IT매체 엔가젯은 지난 8월30일 ‘Samsung launches first Exynos chip with all radios built in’ 제하의 기사에서 갤노트7이 라디오 직접 수신 기능을 갖고 있다는 내용의 리뷰기사를 보도했다.

미국에서 판매된 갤노트7은 라디오 직접 수신이 가능했던 반면 국내용 라디오 수신칩은 비활성화돼 라디오 직접 수신이 불가능했다. 안전불감증과 소비자 기만이라는 비판이 가능한 지점이다. 배덕광 의원은 이동통신사의 이른바 ‘데이터 장사’ 때문이 아니겠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재난 상황시 라디오는 긴급 채널로 활용된다. 경제적으로도 이득이다. 방송 주파수를 통해 직접 수신하게 되면 통신주파수의 절약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천문학적인 경매 대금을 주고 통신 주파수를 확보할 필요가 없어 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는 제조 단가 인상 등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통3사 입장에서는 별도의 데이터 소비 없이 라디오를 수신하는 것이 달갑지 않다. 이통사는 방송통신의 영역이 겹치는 만큼 이를 대응하고자 스트리밍 서비스를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스트리밍은 이통3사의 각 통신망을 통해 서비스된다.

만약 개정안이 통과돼 자사 단말기의 방송망을 통해 라디오 직접 수신이 가능해지면, 사용자의 데이터 소비는 줄어들게 된다. 이렇듯 제조사와 이통3사가 라디오 직접 수신을 반대하는 속사정은 따로 있지만 대내외적으로는 DMB로 대체 가능하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미래부와 국민안전처 등 다수의 정책당국자들 역시 제조사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모양새다.

“라디오칩 활성화를 위해 증폭칩 등 추가 부품이 필요해 제조사 측에서 난색을 표했다. DMB와 FM라디오를 병행하면 디자인 변화 및 단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해 해외 제조사와의 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다.”

이에 대해 이상운 남서울대학교 멀티미디어학과 교수는 DMB와 라디오는 다르다고 지적한다. 라디오 사업자와 DMB 사업자는 물론, 콘텐츠와 수신구조도 상이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DMB와 라디오수신칩 모두 스마트폰에 내장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택은 이용자가 하도록 자율권을 보장해야한다는 논리다.

이상운 교수는 DMB만을 운용하는 것은 사용자에게 불리한 처사라고 밝혔다. 전력 소모가 많고 DMB 수신기 단가도 훨씬 비싸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 FCC에서 재난 상황을 대비코자 워킹 그룹을 가동해서 진행 중이다. 법으로 강제하진 않지만 권고안은 향후 ICT분야에 있어 적지 않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미래부의 입장은 어떨까. 미래부의 해당 안건 담당자는 “공식 입장은 없다”며 “부처 의견 수렴 중이며 (라디오 수신칩의) 긍정적인 측면은 있지만 이해당사자의 입장을 들어야한다”고 말을 아꼈다. 여기서 이해당사자는 스마트폰 제조사를 의미한다.

관계자는 대형 재난 상황시를 대비해서 스마트폰의 가용 가능한 수단을 발휘토록 장려해야 한다는 여론에 대해서도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미래부가 제조사의 입장을 지나치게 반영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이해당사자가 바로 제조사란 것이다.

“국민 편익 측면에서 (라디오 수신칩 활성화를) 반대할 사람은 없다. (라디오 직접 수신이 이뤄지면) 편리한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장점들은 미래부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정책의 실제 이해당사자는 단말기 제조사다. 만약 법이 (라디오 직접수신을) 의무화하면 국내 모든 제조사가 이를 지켜야한다. 가령 아이폰의 국내 진출 시 한국형을 따로 공급해야함 하는 상황이란 얘기다. 아이폰의 공급 단가가 인상될 수 있다. 이런 부분들을 고려해보면 법 마련이 쉽지만은 않다.”

미국 FCC권고안에 대해서 관계자는 “국내 제조업체에 한해 법을 적용되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친다. (배덕광) 의원 측이 발의한 법안은 미래부 및 이해관계자들간의 의견을 수렴해야한다”면서도 “내부 보고 과정에서 여러 의견이 있다”며 산업통상자원부 등 부처간 미묘하게 엇갈리는 온도차를 내비쳤다.

이상운 교수는 이 같은 미래부의 입장에 대해 “재난 경보는 모든 채널을 가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라면 이같이 말해야한다. 재난 상황에 노출된 국민들은 이동통신망이 무용화되는 상황에서 라디오 수신과 DMB 모두를 통해 긴급 정보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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