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현대차 등 주요 기업, 미국 투자 러시
'관세 리스크' 해소엔 도움…국내 일자리·산업 생태계는 위협

현대자동차 HMGMA 준공식 현장 [사진=현대차]
현대자동차 HMGMA 준공식 현장 [사진=현대차]

[테크월드뉴스=김승훈 기자] 트럼프 2기의 관세 부과가 본격화 되면서 전세계가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이미 미국이 수입하는 철강·알루미늄에 대해서는 25%의 관세를 일괄적으로 발효한 상태며 4월3일(이하 현지시간)부터 수입 자동차도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전세계 모든 나라를 대상으로 상호관세 부과도 예고한 상태다. 외신들은 대미 무역 흑자국이 관세의 타깃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연합(EU)과 멕시코, 일본, 캐나다, 인도, 중국, 그리고 한국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국내 기업들은 관세 대응 카드로 '미국 투자'를 선택하고 있다. 현지 생산을 통해 관세 부과를 피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요 기업들의 미국행은 결국 국내 산업의 공동화(空洞化)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자동차·의약품·가전 등 현지 생산 확대
최근 전세계는 트럼프의 '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무역 불균형을 해소할 방안으로 관세를 선택한 트럼프가 오늘은 어느 국가, 어떤 제품에 관세를 부과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12일 모든 무역 상대국에서 수입되는 철강·알루미늄과 철강·알루미늄으로 만든 파생상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어 지난 3월26일에는 해외에서 만들어진 자동차와 경트럭에 25% 관세를 부과한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앞으로도 반도체와 의약품 등에 대해 관세 부과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관세 부과 품목이 대부분 국내 기업들의 주력 제품이라는 점은 뼈아픈 지점이다. 

이에 국내 기업들은 관세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미국 현지 투자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준공식에 맞춰 올해부터 4년간 자동차, 부품·물류·철강, 미래산업·에너지 등 3개 부분에 210억달러(약 31조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자동차 부문에서는 현재 70만대 수준인 생산능력을 120만대까지 늘리는데 총 86억달러를 투자한다. 

또 현대제철은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270만톤 규모의 전기로 제철소를 건설할 계획이다. 이밖에 자율주행, 로봇, AI, AAM 등 미래산업·에너지 부문에도 63억달러를 집행한다. 

국내 대표적인 철강사인 포스코도 '상공정' 분야 미국 현지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상공정은 고로나 전기로를 통해 철광석을 녹여 반제품을 만드는 공정을 말한다.

셀트리온은 1년치 재고를 미국에 미리 옮겨 당분간 관세에서 자유로운 상태지만 장기적 리스크 관리를 위해 미국에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LG전자도 미국 테네시 공장에 세탁기, 냉장고, 오븐 등 주요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준비를 마친 상태다. 

타이어 업계도 현지 생산을 확대할 계획이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은 미국 테네시 공장의 타이어 생산량을 현재 연 550만개에서 올해 연 1200만개로 대폭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금호타이어 역시 미국 조지아 공장의 생산능력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테일러 공장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의 테일러 공장 [사진=삼성전자]

반도체, 일찌감치 대규모 투자…관세 타격 최소화 기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일찌감치 미국 현지에 거액을 투자해 반도체 생산 시설을 건설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내년 가동 개시를 목표로 텍사스주 테일러에 370억달러(약 54조원)를 투입해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으며 SK하이닉스는 38억7000만달러(약 5조6000억원)를 들여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반도체 패키징 생산기지를 건설 중이다. 

경쟁사들도 최근 미국 투자 계획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파운드리 1위 TSMC는 미국에 1000억달러를 신규 투자해 애리조나주에 생산시설 5개를 짓기로 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도 미국 내 반도체 조달을 위해 향후 4년간 500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의 투자 규모를 감안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추가 투자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주력 제품인 메모리 반도체를 미국 현지에서 생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은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의 AI칩에 HBM을 사실상 독점 공급하고 있지만 엔비디아가 관세 부담을 덜기 위해 미국 현지 기업과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만큼 마이크론 등 다른 기업과 협업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반도체는 다른 품목에 비해 관세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는 메모리 반도체는 다른 국가에서 조립돼 완제품의 형태로 미국 시장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때문에 미국이 수입하는 한국산 반도체는 전체의 7%에 불과하다. 

미국의 메모리 업체인 마이크론이 미국 현지에서 메모리를 생산한다면 한국 메모리 대비 가격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지만 마이크론 역시 생산 공장의 대부분이 일본, 대만 등 해외에 있다.

오히려 최근 메모리 반도체 수요 증가로 가격이 오르면서 전반적인 업황이 좋아지는 추세다. 여기에 관세 부과가 시작되기 전에 반도체를 구매하려는 움직임이 더해지면서 가격 인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LG이노텍, 정면돌파 선택 "관세 영향 미미 할 것"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실제 기업들에게 우려 만큼 큰 충격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먼저 관세 부과로 미국 수입 물가가 상승하면 그만큼 소비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존재한다. 즉, 물가는 상승하고 경기는 침체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과 척을 지고 있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그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파월 의장은 3월 FOMC에서 관세로 인해 물가가 오를 수는 있지만 일회성에 그칠 것이라고 봤다. 또 경제 불안감과 실제 경제의 둔화를 구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즉, 소비자와 기업 대상 설문을 기반으로 하는 지표(소프트데이터)의 경우 불안감이 나타나지만 고용시장, 산업생산 등 실제 경제 지표(하드 데이터)에서 드러나는 경제는 여전히 강하다는 것이다. 

더불어 트럼프 2기가 주요 수입국에 대해 전방위적인 관세 부과를 내릴 가능성이 큰 만큼 수출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미풍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 수출하는 모든 국가가 동일한 조건에 놓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LG이노텍은 멕시코산 제품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25% 관세 부과 방침에도 불구하고 오는 10월부터 멕시코 공장 양산에 돌입한다.

LG이노텍의 행보는 경쟁사들이 멕시코 공장 증설 중단한 것과 대조적이다. 인건비, 물류비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면 멕시코 공장 증설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란 분석이다. 

현대제철 인천 공장 [사진=현대제철]
현대제철 인천 공장 [사진=현대제철]

관세는 핑계?…기업 해외 진출에 국내 산업 '공동화' 우려
국내 주요 기업들이 미국에 생산 시설을 짓는 것은 일차적으로 '관세 리스크' 관리 차원이라 볼 수 있지만 그 내면에는 다른 목적이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현지 생산 기업에 15% 법인세 인하 혜택을 내걸고 '친기업 정책'을 펼치는 것도 영향이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생산 시설을 가동할 경우 생산비나 물류비를 감당해야 하고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노조 리스크도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특히 RE100(재생에너지 100%)을 달성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 재생에너지 인프라가 풍부한 미국에 생산 시설을 짓는 것이 유리한 측면도 있다.

결국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국내 기업들의 '미국 진출'이라는 선택에 명분으로 작용한 셈이다.

문제는 기업들이 잇따라 국내 생산을 해외로 돌릴 경우 국내 산업 공동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일례로 현대차가 HMGMA에서 50만대를 추가로 생산한다면 국내 생산 물량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이는 국내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 연간 30만대를 생산 중인 현대차 아산공장이 문을 닫게 된다면 당장 직원 4000명과 부품업계 종사자 등 2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이는 벌써 현실화되고 있다. 미국에 생산시설을 짓기로 한 현대제철은 최근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 접수를 받기 시작했다. 또 4월에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인천 철근공장을 전면 셧다운 하기로 했다.

현대제철은 미국 투자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지만 국내 생산 시설은 줄이고 해외에 생산 라인을 늘리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현지 공장 설립이 불가피하더라도 정부가 최소한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은 국내에서 조달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내 산업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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