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청소기로 드러난 중국 가전 위상… 대규모 R&D로 삼성·LG 위협
LG전자, 백색 가전 '불안한' 세계 1위… 중국 시장 대체할 곳 찾아야
저가 LCD TV 장악한 中, AI 프로세서 주도권 경쟁

로보락 올인원 로봇청소기 [사진=로보락]
로보락 올인원 로봇청소기 [사진=로보락]

[테크월드뉴스=김승훈 기자] 올해 초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4에서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제품은 세계에서 가장 큰 115인치 QD-미니 LED TV였다. 압도적인 크기에 시선을 빼앗긴 관람객들은 인공지능(AI)이 선사한 선명한 화질과 실시간 프로그램 추천 등 첨단 기능에 환호성을 보냈다.

해당 TV는 삼성전자나 LG전자가 아닌 중국 가전기업 TCL의 제품이었다. '값싼 제품', '베끼기' 등으로 인식되던 중국 가전기업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기술을 선보인 것이다.

예상보다 빠른 중국의 추격을 받게 된 국내 가전 기업들은 브랜드 파워를 앞세워 프리미엄 시장에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로봇청소기로 드러난 중국 가전 위상… 대규모 R&D로 삼성·LG 위협

'싼 맛에 쓰는 가전'으로 인식되던 중국 브랜드가 어느새 '품질이 좋은 가전'으로 변했다. 달라진 중국 가전의 위상은 로봇청소기만 놓고 봐도 확실히 알 수 있다.

중국 로봇청소기 브랜드 로보락은 국내 출시 2년 만에 한국시장 1위를 차지했다. 시장조사업체 GfK에 따르면 2022년 국내 로봇청소기 시장 규모는 2900억 원(매출 기준)인데 당시 로보락의 매출이 1000억 원인 점을 고려하면 시장의 30% 이상을 차지한 셈이다. 지난해에는 연매출 2000억 원을 기록하며 1년 만에 2배 성장했다.

이처럼 로보락이 국내 시장을 점령한 이유는 가격이 단순히 저렴해서가 아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최상위 라인보다 오히려 가격이 비싸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다. 150만대의 하이엔드(최고급) 시장에서는 80.5%로 압도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

로보락의 로봇청소기는 먼지 흡입 기능과 물걸레 청소 기능이 함께 장착돼 있고 청소를 마치면 걸레를 세척·건조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국내 브랜드 제품보다 청소 기능이 뛰어난데다 관리 방법도 간편하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구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올해 먼지 및 물걸레 청소 기능을 갖춘 '올인원 로봇청소기'를 출시하며 경쟁을 본격화한다는 계획이지만 추격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로보락의 성공에 힘입어 에코백스, 드리미와 같은 중국산 로봇청소기가 이미 안방 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국내 진공청소기 수입에서 중국은 최대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다. 지난해 수입된 전체 진공청소기의 63%, 로봇청소기의 91%가 중국산으로 집계됐다.

중국 가전의 성장 비결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통한 기술개발, 중국 국민의 애국 소비를 꼽을 수 있다.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던 중국은 2000년대 들어 기술 자립을 꿈꾸며 대대적인 R&D 투자를 시작했다. 2000년에 896억 위안(약 16조5700억원)을 투입했으며, 이후 2010년 7063억 위안(약 130조원) 2020년에는 2조5천억 위안(약 462조)으로 늘었다.

또, 중국 가전 기업들은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단기간에 기술 개발의 토대를 마련했다.

하이얼은 제너럴일렉트릭(GE) 가전사업부, 뉴질랜드 피셔&파이클, 이탈리아 캔디를 인수합병했고, 하이센스는 도시바 TV사업부와 유럽 가전업체 고렌예, 자동차용 에어컨업체 샌든홀딩스를 사들였다.

여기에 14억이라는 세계 최대 내수시장은 중국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최근 들어서는 글로벌 패권 다툼이 오히려 중국 가전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고 있다.

가전 강국인 한국이 미국과 일본 위주의 외교 정책을 펴면서 생긴 빈틈을 파고 든 것이다. 대표적으로 러시아 시장의 경우 그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시장 선두 자리를 지켜왔으나 지금은 중국 하이얼이 시장을 평정했다.

러시아 에프플러스 그룹에 따르면 온·오프라인을 합친 지난해 연간 판매 집계에서 하이얼은 냉장고(15.1%)와 세탁기(16.1%) 부문 1위를 기록했다. 하이얼이 인수한 이탈리아 캔디(Candy)도 세탁기 부문 4위(9.6%)에 올랐다.

러시아 TV 시장에서도 삼성·LG는 1위 자리를 빼앗겼다. 에프플러스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TV 시장 1~3위는 하이얼(11.5%), 샤오미(8.3%), 하이센스(6.6%) 등 중국 기업이 휩쓸었다.

삼성전자는 현지 TV 시장서 9년간 약 25% 점유율로 1위를 기록했지만, 이 기간 5.1%로 줄었다. LG전자 역시 19.1% 점유율에서 지난해 1월 기준 4.2%까지 감소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전체 매출에서 러시아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3%에 불과 하지만 '중국 기업에게 밀렸다'는 것은 적지 않은 타격이다. 다시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가 되더라도 과거의 지위를 되찾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LG전자 생활가전 라인업 [사진=LG전자]
LG전자 생활가전 라인업 [사진=LG전자]

LG전자, 백색 가전 '불안한' 세계 1위… 중국 시장 대체할 곳 찾아야

LG전자는 지난 2019년 미국의 월풀을 꺾고 생활 가전 세계 1위에 오른 이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생활 가전은 TV를 제외한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가스레인지, 오븐 등을 통칭하는 말로 흔히 '백색 가전'이라 부른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가전 1위를 목표로 모터와 인버터 등 핵심 부품을 독자 개발한 것이 주효했다. 또, 기존의 백색 가전은 한번 사면 기본 10년은 사용하기 때문에 재구매가 원활치 않았으나 LG전자는 소비자의 생활 패턴 변화에 주목해 건조기·공기청정기·의류관리기·무선청소기 등 신제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면서 라인업을 다양화했다.

하지만, 어느새 중국 가전 기업의 추격이 턱밑까지 이르렀다. 이미 일부 제품의 경우에는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63개 분야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조사해 발표한 '2022년 주요상품·서비스 점유율 조사'에서 세탁기와 가정용 에어컨은 중국 기업이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LG전자는 물론 삼성전자도 해당 제품에선 3위에도 들지 못했다.

LG전자나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이 세탁기와 가정용 에어컨과 같은 백색 가전 시장에서 점유율이 줄어든 것은 중국 시장에서 성적이 예전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 가전 기업들의 저가 정책 영향이 크다. 중국 가전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2~4선 도시 소비자들은 대부분 실질 구매력이 낮아 수백만원을 웃도는 삼성전자나 LG전자의 냉장고·에어컨을 구매할 여력이 없다. 가격이 저렴한 자국 브랜드 제품이 유일한 대안이다.

여기에 '궈차오'(애국 소비)도 장애물이다. 중국 소비자들은 같은 가격이면 해외보다 자국 브랜드를 선호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덕분에 하이얼과 하이센스, 그리전기 등 3대 가전업체는 현지 가전 시장의 70~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특히 하이얼은 '까싸떼'라는 브랜드로 고급 냉장고(40%)·세탁기(86%) 시장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현지 업계에서는 중국 소비자들도 한국 가전제품의 성능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높은 가격이 걸림돌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중국과 저가 경쟁을 펼치기 보다는 프리미엄 라인업을 강화하고, 동시에 중국을 대체할 새로운 시장 발굴도 필요해 보인다.

삼성전자 모델이 '3세대 AI 8K 프로세서'를 탑재한 Neo QLED 8K TV 신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모델이 '3세대 AI 8K 프로세서'를 탑재한 Neo QLED 8K TV 신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저가 LCD TV 장악한 中, 고급 TV 시장도 위협한다

가전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TV 시장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삼성전자는 전 세계 TV 시장에서 18년 연속 1위를 달리고 있으며, LG전자는 올레드(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시장에서 11년 연속 정상을 지키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매출 기준으로 시장점유율 30.1%를 차지하면서 1위를 기록했다. 이는 2500달러(약 334만원) 이상 TV 시장과 75형 이상 등 프리미엄 시장 점유율이 크게 증가한 덕분이다. 지난해 2500달러 TV시장 점유율은 48.3%에서 60.5%로 12.2%p나 상승했다.

LG 올레드 TV는 지난해 약 300만대 출하되면서 약 53%의 점유율(출하량 기준)로 확고한 1위를 유지했다. 비용 기준 점유율은 48.0%를 기록하며 전년(54.3%) 대비 소폭 하락했지만 역시 1위였다.

특히, LG전자는 지난해 75형 이상 초대형 OLED TV 시장에서는 출하량 기준 60%에 육박하는 압도적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처럼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글로벌 TV시장에서 호성적을 냈지만 조만간 2위 자리를 중국 기업에게 뺏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글로벌 TV 시장 매출 기준 점유율 1위는 삼성전자(30.1%)이며 LG전자가 16.3%로 2위를 기록했다. 이어 TCL 10.7%, 하이센스 9.5%, 소니 6.3% 순이다. 점유율 3위와 4위를 차지한 TCL과 하이센스의 합산 점유율이 20.2%로 2위 LG전자를 넘어선 것이다.

출하량을 기준으로 하면 격차가 더 줄어든다. 1위 삼성전자(18.6%)와 2위 LG전자(11.2%)가 29.8%를 점유했는데 TCL(12.5%), 하이센스(11.4%)와는 5.9%p차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TV는 중국 브랜드가 될 수도 있다.

최근 중국 TV의 성장은 가격이 저렴한 LCD TV 덕분이다. LCD TV는 LG전자의 OLED TV나 삼성전자의 QLED TV보다 화질이 떨어지지만 이를 감안해도 가격차이가 크다.

LG전자의 97인치 OLED TV는 2만4999달러인데 중국 TCL은 98인치 LCD TV를 1999달러에 판매하고 있다. LG전자 TV가 무려 2만3000달러(약 3000만원) 비싼 셈이다.

고가의 대형 TV를 구매하기 부담스러운 1인 가구나 게임, OTT, 홈트 등의 용도로 세컨드 TV를 구매하려는 고객층에게는 중국 브랜드 LCD TV가 가장 훌륭한 선택지가 된다.

▶ AI 프로세서 중심의 가전 주도권 경쟁

향후 TV 시장 패권은 AI 기술력에 의해 좌우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롯해 중국 TV 회사들은 올해 잇따라 AI 기능이 대폭 강화된 새 프로세서를 공개했다.

TCL은 지난 1월 CES 2024에서 AI 프로세서 'AIPQ'를 선보였다. AI가 TV 이미지를 분석해 밝기와 선명도, 시각 효과 등을 개선한다.

하이센스 역시 직접 개발한 AI 프로세서 '하이뷰 엔진 X'를 전시했다. 하이뷰 엔진 X는 원본 영상을 8K급 초고해상도로 보정하고, 색상과 대비를 향상시켜 각 장면에 최적화된 고화질을 구현한다.

국내 기업들도 AI 프로세서 탑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가 새로 공개한 'NQ8 AI 3세대' 프로세서는 2세대 제품보다 8배 많은 512개의 신경망 네트워크와 2배 빠른 AI 반도체를 탑재했다. AI 딥러닝 기술로 영상 왜곡을 줄이고 이를 통해 저화질 콘텐츠를 8K로 선명하게 바꿔준다.

LG전자도 AI 성능을 기존보다 4배 강화한 '알파 11' 프로세서를 내놨다. 올해 LG OLED TV에 탑재되는 알파 11은 흐릿한 사물과 배경을 AI가 스스로 판단해 선명하게 보여주고, 많이 사용된 색상을 기반으로 제작자가 의도한 분위기와 감정까지 고려해 색을 보정해준다.

AI 음향 기술은 영상 목소리를 주변 소리와 구분해 또렷하게 보정하고, 화면 아래쪽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는 TV 중앙에서 나오는 것처럼 바꿔준다. 이전 세대인 '알파 9'에 비해 그래픽 성능은 70% 향상됐고, 프로세싱 속도는 30% 빨라졌다.

나아가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프리미엄 시장에서 격차를 벌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 1월 CES 2024에 참석한 백선필 LG전자 HE(홈 엔터테인먼트) 상품기획담당 상무는 장기 성장이 기대되는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한국TV와 중국TV간 격차가 크다고 강조하면서 특히 TV 플랫폼 시장에서 국내 업체들이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업계에서는 TV 하드웨어 시장이 구조적 정체기에 진입해 플랫폼을 통한 수익 창출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운영체계(OS)를 각각 티젠(Tizen)과 웹OS(WebOS) 등 개방형 플랫폼으로 바꿔 플랫폼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3년 4분기 컨퍼런스콜을 통해 “2024년에 개인 취향 맞춤형 콘텐츠와 게이밍 경험을 강화하고 채널형 무료 비디오 서비스 '삼성 TV 플러스' 등 고유 서비스를 펼쳐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선사하고 사업 매출과 손익 수익 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사업구조를 지속 발전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LG전자도 “2024년 가전시장은 TV 수요가 점진적으로 회복하는 모습”이라며 “프리미엄 제품 중심 운영과 소프트웨어 플랫폼 사업 확대를 병행해 매출 성장세 지속과 견조한 수익성 확보 등 두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설명했다.

심우중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생산량이나 규모 면에서는 중국 기업들이 이미 우리 기업보다 커졌고 전자제품은 원천 기술을 통한 산업이 아니기 때문에 하드웨어적 측면에서는 우리나라가 크게 우위를 가지기 어렵다”면서도 “그러나 전자제품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이 가진 브랜드 파워가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중국 업체를 앞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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