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갱 막기 위해 시작된 단통법, 전 국민 호갱화
유통사·제조사는 단통법 폐지 찬성 … 알뜰폰·제4이동통신 사업자에게는 악재
단통법 폐지가 통신비 절감에 도움이 될까? 대안은 공공와이파이 확대

소비자들이 스마트폰을 둘러 보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소비자들이 스마트폰을 둘러 보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테크월드뉴스=김승훈 기자] 윤석열 정부가 최근 가계 통신비 부담 완화 차원에서 단통법(이동통신 단말 장치 유통 구조 개선법) 폐지를 꺼내 들며 총선 핫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고물가와 고금리로 민생 경제가 최악의 국면을 지나는 가운데 가장 부담이 큰 항목인 통신비를 낮춰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은 일견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지난해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가구당(1인 가구 포함) 월평균 통신비 지출액은 2021년 기준 12만3815원에서 2022년 12만8167원으로 늘어나는 등 매년 증가세를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2022년 하반기의 경우 13만4917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12만8467원) 대비 5.02%p가 늘었다.

정부가 단통법 폐지를 선언했지만 당장 시행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엄연히 법으로 존재하고 있는 만큼 국회의 법률 개정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단통법을 둘러싼 이해 당사자들의 찬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단통법 시행 이전에 가입자 유치를 위해 대대적인 마케팅 비용을 썼던 SKT·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사들은 분주히 손익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으며, 제조사나 휴대폰 대리점들은 폐지에 적극적인 찬성 입장을 내고 있다. 반면, 알뜰폰 업계는 거대 이통사들에게 시장을 뺏길 우려 때문인지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핵심은 단통법 폐지가 과연 가계 통신비 부담 완화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이다. 단통법 폐지로 가계 통신비를 줄이는 효과를 내지 못한다면 갈등과 혼란만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갱 막기 위해 시작된 단통법, 오히려 전 국민 호갱화

단통법은 지난 2014년 박근혜 정부 당시 시행됐다. 당시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이동통신 가입자가 급증하자 이통 3사(SKT·KT·LG유플러스)들이 서로 가입자를 빼앗기 위해 보조금을 대거 동원했다.

2012년 출시된 갤럭시S3를 예를들면, 이 폰의 출고가는 99만4000원이었지만 번호이동 조건으로는 10만원 대에 구입을 할 수 있었다.

이통사 입장에서는 8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하더라도 일단 가입자를 뺏어와서 2년간 통신요금을 꾸준히 받으면 수익이 되기 때문이다. 가입자 수를 일정 수준 유지하는 것이 다른 수익모델을 운용하는데도 유리하다.

하지만, 보조금 지원이 대개 음성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나이가 많은 중장년층 중에는 제 값을 그대로 주고 기기를 구입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른바 ‘호갱(호구+고객)’이 대거 양산되면서 소비자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정부는 모든 소비자가 동일한 조건으로 휴대폰 구입이 가능하도록 하는 단통법을 시행하게 된다.

법의 취지는 좋았다. 단통법은 이통사와 대리점이 신규 가입·번호 이동·기기 변경 등 고객 가입유형과 가입 요금제에 따라 보조금을 차별 지급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이통사와 대리점이 단말기 구매 보조금을 지급할 때에는 정부가 정한 지원 상한액에 맞춰 얼마나 지원하는지를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시하도록 했다.

여기에 지난 2017년에는 단통법으로 인해 단말기를 제값 주고 구매한 이용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통사가 요금제 할인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이 추가되기도 했다.

문제는 단통법 시행으로 보조금 경쟁이 사라지자 결국 모두가 단말기를 비싸게 구매하는 호갱이 됐다는 것이다. 

특히, 10년 전에는 단말기 가격이 100만원을 넘지 않았지만 요즘은 플래그십 모델의 경우 100만원을 훌쩍 넘는데다 4G, 5G 요금제 등장으로 전체 요금도 비싸져 소비자들의 부담은 더 커졌다.

반대로 거액의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지 않아도 되는 이통사는 이익이 급증했다. 

단통법이 시행된 첫 해인 2014년 이통3사의 총 마케팅비용은 10조4902억원이었으나 1년 뒤에는 8조4763억원으로 19.2% 감소했다. 법 시행 1년 만에 3사의 마케팅비가 2조원 가량 줄어든 셈이다.

반면, 이통 3사의 합산 영업이익은 2014년 1조6108억원이었지만 2015년 3조1690억원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2021년에는 4조원을 돌파한 이후 3년 연속 4조원 대 영업이익을 기록 중이다. 단통법 폐지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녹색소비자연대가 지난 2016년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단통법 시행 후 가계통신비에 변화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 48.2%가 “이전과 변함이 없다”고 답했다. 10명 중 3명은 “가계통신비가 이전보다 증가했다”고 답했다. 통신사들의 보조금 지급으로 인한 출혈경쟁이 사라지면 통신사들이 그 비용 절감 분을 고객들에게 돌릴 거라던 정부 당국자의 '선의'에 기댄 발언은 보기 좋게 틀린 것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정부는 단통법을 폐지함으로써 지원금 상한과 공시를 없애 시장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들이 보다 저렴하게 휴대전화를 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스마트폰 가입 상담 중인 소비자 [사진=KT]
스마트폰 가입 상담 중인 소비자 [사진=KT]

유통사·제조사는 단통법 폐지 찬성 … 알뜰폰·제4이동통신 사업자에게는 악재

이번 정부의 발표로 통신 업계의 찬반 목소리가 갈리고 있다. 일단 이동통신 유통업계는 단통법 폐지에 반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단말기 가격이 낮아지고 침체된 유통 시장이 활발해질 수 있다는 기대다.

단통법 시행 전에는 국내 스마트폰 판매량은 2200만대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에는 1200만대로 크게 줄었다. 유통 시장이 쪼그라들면서 경영난을 겪은 중소 단말기 유통상 가운데 약 1만5000개가 문을 닫았고, 이동통신 유통에 종사하는 약 4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는 성명서를 통해 “단통법 시행 10년간의 이동통신 유통산업은 붕괴가 됐다”며 “법 폐지로 불법성지가 건전한 이동통신 유통환경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의 단통법 폐지에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밝혔다.

스마트폰 제조사들도 이론적으로는 단말기 매출 증대를 기대할 수 있어 내심 찬성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경우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삼성과 애플의 경쟁이 더 치열해 질 것으로 보이며, 중저가 모델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 삼성전자가 국내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을 좀 더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 스마트폰 판매량이 이전 수준으로 늘어난다면 국내 스마트폰 시장을 접은 LG전자나 모토로라 등이 다시 경쟁에 참여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단통법이 폐지될 경우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입는 곳은 알뜰폰 업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알뜰폰 업체들은 대부분 중저가 요금제만 판매하고 있다. 이에 단말기는 자급제로 구한 뒤 알뜰폰 유심만 쓰는 유심 요금제 가입자가 이들의 주고객이다. 단통법 폐지는 지원금 공시와 추가지원금 상한을 풀어 이통사의 단말기 할인 경쟁을 유도하는 만큼 단말기 판매와 거의 무관한 알뜰폰 가입자에게는 별다른 추가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단통법이 폐지되면 단말기를 저렴하게 구입하기 위해 이통 3사로 소비자들이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한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이통 3사가 중저가 요금제를 본격 출시하는 상황에서 단통법 폐지로 보조금 경쟁이 과열되면 알뜰폰 업계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만약 정부가 단통법을 폐지할 예정이라면 이에 상응하는 알뜰폰 업계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알뜰폰 업계 보다 큰 타격이 예상되는 곳은 제4이동통신이다. 정부는 통신 3사의 과점 구조를 깬다는 이유로 제4이동통신사 사업자를 선정하고 있는데 신규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서는 1000억 원에 달하는 주파수 할당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신규 사업권을 따낸 후에는 향후 3년 간 무선기지국 6000대와 관련 사업 인프라 구축 비용, 또 그동안 기존 3사의 망을 빌려 쓰는 대가도 지불해야 한다. 이것만 하더라도 대략 조 단위의 초기 사업비가 필요한데 이런 상황에서 단통법이 폐지된다면 기존 이통 3사와 지원금 경쟁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수익성 타격 이통3사, 신중 입장… “이통사 부담 없을 것” 전망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통신 3사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일단 이통사들은 10년 전과 상황이 다르다며 이전처럼 보조금을 늘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가입자 1명의 유치가 중요했던 과거와 달리 가입자 정체기가 온 시점에서 보조금 출혈 경쟁을 펼치기는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또, 인구 감소로 가입자가 줄어드는 ‘제로섬’ 시장에서 ‘치킨게임’을 벌일 이유도 없다.

김준섭 KB투자증권 연구원은 10년 전에 비해 시장이 크게 변했다며 단통법 폐지로 통신사가 지원하던 단말기 보조금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김 연구원은 먼저, 스마트폰 시장이 고가의 프리미엄 모델을 중심으로 형성돼 통신사의 보조금 집행 영향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통법 도입 직전인 2014년 출시된 갤럭시 S5의 출고가는 당시 86만8000원이었이었으며 갤럭시 노트4는 95만5000원이었지만, 현재 플래그십 단말기는 이보다 약 42~78% 비싼 수준으로 책정돼 통신사가 예전처럼 공짜 단말기 프로모션 전략을 집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스마트폰 단말기를 구매하는 방식의 변화도 단통법 폐지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안재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에는 소비자들이 휴대전화를 통신사의 대리점이 아닌 삼성스토어, 애플스토어 같은 가두점이나 네이버, 쿠팡, 11번가와 같은 이커머스 사이트에서 구매하는 비중이 늘었다”며 “아울러 스마트폰 사양의 상향 평준화로 단말기 교체 수요가 줄어 통신사의 마케팅 비용이 상당히 안정화됐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실제 단통법 폐지 시 어느 한 통신사가 보조금을 통한 가입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경쟁사도 이를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 이통사는 5G 가입자, 전체 이동통신 가입자 등 브랜드 이미지에 영향을 끼치는 수치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출혈경쟁은 이통사별 마케팅 등 비용 지출로 이어질 수 있다.

공공와이파이 [사진=과기정통부]
공공와이파이 [사진=과기정통부]

단통법 폐지가 통신비 절감에 도움이 될까? 대안으로 공공와이파이 확대도 고려

일각에선 단통법 폐지로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역기능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정보력이 높은 소비자에게만 더 싼 단말기가 판매되고, 노년층 등 정보습득이 비교적 느린 소비자층은 제값을 주거나 불필요하게 비싼 요금제를 선택하는 호갱 사례가 다시 남발될 수 있다는 우려다.

무엇보다 정부가 내건 단통법 폐지의 목적인 가계 통신비 절감 효과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야당 간사인 조승래 민주당 의원은 △극심한 이용자 지원금 차별 △디지털 정보력이 취약한 국민의 호갱화(정보 비대칭) △알뜰폰 사업자와 제4 이통사 고사 우려 △무절제한 지원금 확대로 단말기 출고가 상승과 이용자의 통신비 부담 증가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지난 22일 논평을 통해 “지금 단통법을 폐지하면 이통사의 보편적인 지원금 경쟁을 촉진하기는커녕 보조금을 많이 받은 극소수 소비자만 이득을 보고, 그 부담은 마케팅비 명목으로 국민 대부분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더 크다”며 “공시지원금 거품 해소와 분리공시제 도입을 통해 대다수 국민들이 가계통신비 완화 정책의 수혜를 받을 수 있도록 근본적 대책을 추진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실질적인 가계 통신비 절감을 위해서는 ‘공공와이파이 확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정부 주도로 공공와이파이를 늘리면서 가계통신비 절감액은 2021년 기준으로 1338억원에 달했고, 2022년에는 상반기에만 871억원 절감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올해 공공와이파이 예산을 무려 97% 삭감했다. 지난해 예산은 128억원이었으나 올해 예산은 3억 9500만원에 불과하다. 정부는 공공와이파이 설치 목표치를 96% 달성한 만큼 목표 달성을 위해 충분한 예산이라는 입장이지만, 실질적인 가계 통신비 절감 효과를 내는 공공와이파이를 추가로 확대할 의지는 보이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전문가들은 더불어 공공와이파이가 갖는 보안 이슈에 대한 문제 해결도 주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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