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반도체 인력 부족 호소… 인재 확보가 곧 생존
삼전•하이닉스, 반도체계약학과로 인력 양성… ‘의대쏠림’에 우수 인재 유치 난
반도체 인재 영입 위해 이민법 개정 논의 해야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내부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내부 [사진=삼성전자]

[테크월드뉴스=김승훈 기자] 반도체가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 미래산업의 근간이 되면서 반도체 전문 인력 수요가 점점 커지고 있다. 하지만, 급증하는 수요 대비 공급이 충분치 못하다 보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전문 인력 부족 현상이 심화되는 모습이다. 이에 주요 국가들은 반도체 인력 양성과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업황 부진으로 수 조원의 적자를 냈지만 직원들에게 성과금과 특별 격려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사업을 담당하는 DS부문 직원들에게 기본급의 25% 상당의 성과금을 지급했으며, SK하이닉스도 120만원의 특별 격려금을 지급한다.

업황이 부진하면 성과금이 나오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반도체 인재 유출을 막을 수 있다는 절박함이 엿보인다.

반도체업계는 수년 전부터 꾸준히 인재가 부족하다고 호소해왔다. 국내 반도체 인력 양성 속도가 더딘 것도 문제지만 글로벌 기업들이 우수 인력을 모셔 가면서 공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올해 초 한 심포지엄에서 "마이크론이 인재를 똑똑하게 만들어 놓으면 인텔이 데려가고, 마이크론은 빈자리에 삼성과 SK하이닉스 사람을 뽑아간다"며 반도체 업계의 인재 쟁탈전 실태를 언급하기도 했다.

 

전 세계적인 반도체 인력 부족 현상.. 인재 확보가 곧 생존

반도체 전문 인력이 부족한 것은 시장의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 분야 부족 인력은 지난 2016년 1355명에서 2020년 1621명 등 매년 증가하고 있다. 현재 반도체 산업의 성장 속도를 감안하면 오는 2030년 즈음에는 7만7000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반도체지원법을 통과시키며 반도체 산업 육성에 올인하고 있는 미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미국은 반도체 생산 역량을 키우기 위해 자국내 반도체 공장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TSMC 반도체 팹을 유치해 현재 건설 중이고, 인텔도 미국 내 신규 팹 건설과 증설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건설된 공장을 가동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이 벌써 나오고 있다. 인력 부족 때문이다. 컨설팅업체 옥스퍼드이코노믹스 조사 결과, 2030년 반도체산업에 46만명 정도의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 추세로는 6만7000명이 부족한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우려는 현실화되고 있다. 대만 TSMC는 인력 부족으로 애리조나에 건설 중인 공장의 가동을 2024년 말에서 2025년으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존 뉴퍼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 회장은 “현재 5500억달러의 산업 규모가 1조달러로 확대되면서 더 많은 인재가 필요할 것”이라며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 산업 전반이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SK하이닉스의 웨이퍼 공정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의 웨이퍼 공정 [사진=SK하이닉스]

글로벌 반도체 기업, 대학과 손잡고 인재 확보 총력

반도체 인력 부족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은 인재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대학에 반도체학과를 설치하는 것이 대표적인 방안이다.

반도체 1위 기업인 대만 TSMC는 2025년 가동 예정인 애리조나 공장과 인접한 애리조나 주립대와 최근 반도체 인력 양성과 공동 연구를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TSMC와 애리조나 주립대가 공동으로 반도체 관련 교육 커리큘럼을 만들고, 반도체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다. TSMC는 우수 인재에 장학금도 지원한다.

특히, TSMC는 애리조나 주립대 반도체 인재 양성 후 직접 채용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 졸업생 뿐만 아니라 석사급 이상 고급 인재를 지원해 향후 TSMC 인력으로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인텔도 지난해 초 향후 10년간 1억 달러(약 1천275억 원)를 반도체 대학에 투자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 중 5천만 달러는 오하이오 대학에 투자해 인텔 반도체 교육 및 리서치 프로그램을 설립하고, 나머지 5천만 달러는 미국 국립과학재단과 같은 금액을 공동투자해 미국 전역의 대학에서 반도체 제조 교육을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도 지난해부터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는 텍사스 지역 대학과 협력하고 있다. 텍사스 주립대와 텍사스 A&M대학에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등 향후 인재 채용을 위한 인프라를 조성하고 있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업체 ASML은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공과대학과 향후 10년간 플라즈마 물리학, 인공지능, 메카트로닉스, 반도체 리소그래피 분야를 공동 개발하고 관련 인재를 양성하기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ASML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최대 40명의 박사 학위를 양성할 계획이다.

반도체 공장을 찾은 이재용 회장 [사진=삼성전자]

‘의대쏠림’ 우수 인재 반도체학과 외면… “핵심인력 1000여명은 연봉 2~3억씩 받아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은 국내 대학에 반도체학과를 늘리며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다. 정부도 반도체학과 정원을 늘리고 2031년까지 15만명 이상의 반도체 인재를 양성한다는 계획이지만 우수인력의 의대 쏠림 현상을 해소하는 것이 관건이다. 또, 설계와 공정 기술을 적극 개발할 수 있는 실무형 연구개발(R&D) 인력 육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국내 대학 7곳에 반도체계약학과를 신설하며 반도체 인재를 육성하고 있다. 지난 2006년 성균관대를 시작으로 연세대(2021년), KAIST(2022년), 포항공대(2023년)와 반도체 계약학과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 3월에는 울산, 대구, 광주 지역의 과학기술원과도 학·석사 통합 과정으로 운영되는 반도체 계약학과를 신설하기로 했다.

SK하이닉스도 2020년 고려대학교에 반도체공학과를 신설한 이후, 지난해 한양대, 서강대, 중앙대에 계약학과를 신설했다. 이들 기업이 매년 배출하는 전문 인력은 300명이 넘는다.

문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의 취업이 보장되는 이른바 반도체 계약학과가 우수 학생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올해 수도권 주요 대학의 반도체 계약학과 최초 합격자의 등록 포기율은 155.3%에 달한다.

삼성전자와 연계된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10명 모집에 13명이 등록을 포기했다. 최초 합격자 전원은 등록을 모두 포기했고 추가합격을 통해서도 3명이 등록을 포기한 것이다.

SK하이닉스와 연계된 한양대 반도체공학과는 44명(275.0%)이 등록을 포기했다.

이는 최근 성적 우수자들의 ‘의대쏠림 현상’이 원인으로 꼽힌다. 사회적 지위나 소득 수준에서 차이가 크다 보니 반도체계약학과 보다 의대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에 대해 단순히 반도체학과를 설립해 장학금을 주는 수준이 아니라 반도체 엔지니어들이 사회에서 존경과 부를 함께 누릴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임형규 KAIST동문학술장학재단 이사장은 “엔지니어들이 사회적으로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핵심인력 1000여명은 연봉을 2억~3억원씩 받을 수 있도록 해 우수인력들이 반도체 쪽으로 몰리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한 지원에 힘쓰고 있다. 지난해 7월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방안'을 발표하면서 반도체학과 정원을 오는 2027년까지 현재보다 5700명을 더 늘리겠다는 목표치를 제시했다. 학제별로 대학 학부 2000명, 직업계고 1600명, 대학원 1102명, 전문대 1000명을 각각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기반으로 향후 10년 간 반도체 인재 총 15만명을 양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반도체 기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양적인 성장과 함께 질적인 면에서 인재 양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형준 서울대 명예교수(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는 “논문을 쓰며 자기만의 연구를 해본 경험이 있는 석·박사급 인재가 많이 나와야 우리 기업들이 기술 초격차를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 직원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직원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SK하이닉스]

반도체 인재 영입 위해 이민법 개정 논의 해야

반도체 인재를 양성하는 것만큼이나 우수 인재를 자국에 영입하는 것도 중요해졌다. 이에 주요 국가들은 고급 인력 확보를 위해 이민법까지 개정하고 있다.

독일은 반도체 등 고급 기술을 보유한 인재를 독일에 이주시키기 위해 지난 6월 '이주노동자 유치법'을 통과시켰다. 그동안 독일에서는 자국 고용주가 채용한다는 입증을 해야만 비 EU 국가 국민이 취업비자를 받을 수 있었는데 법안 개정에 따라 비 EU 국가 국민들도 최대 1년간 독일에 살면서 구직할 수 있게 됐다.

일본도 최근 글로벌 상위 100위권 대학 졸업생이 일본에서 2년간 거주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으며, 대만은 세계 500위권 대학 졸업자에게 업무 경력 2년이라는 조건 없이 비자를 내주고 있다.

미국 반도체 업계도 이민법 개정을 논의하고 있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에 따르면, 석사의 80%, 박사의 25%가 자의 또는 미국 체류를 허용하지 않는 이민정책 때문에 미국 밖으로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미국 정재계 인사 49명은 최근 상하원 의원들에게 국가 안보와 국제 경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도체 기술 인재에게 영주권 면제 조항을 활용할 수 있도록 이민법 개정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반면 한국은 대표적인 인재 유출국이다. 지난 10년간 한국을 떠난 이공계 인재는 34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된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말 반도체 등 첨단 인력 확보를 위해 ‘E-7-S’ 비자를 신설했으나 특정 대학 졸업자에게 비자를 즉시 발급하는 것과 달리 가산점만 부여하고 있다보니 인재 유입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삼성 고졸신화’의 대명사 격인 양향자 의원은 기술인재 확보를 위해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양 의원은 “미국과 대만 등으로 유출되고 있는 인재를 국내기업에서 활용하기 위해선 새로운 이민정책과 기업에서 해외인력을 활용하는 등 다양한 제도적 방안을 활용해야 한다”며, “윤석열 정부가 출범시킨 재외동포청을 활용해 'K-diaspora'라는 연대의식을 갖춰 우리 기업들의 인재로 활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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