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기업 앞다퉈 칩렛 개발.. AMD·인텔이 한발 앞서
미국·중국, 대규모 투자로 반도체 패권 다툼.. “정부 역할 필요해”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23'에서 파운드리사업부 최시영 사장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23'에서 파운드리사업부 최시영 사장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테크월드뉴스=김승훈 기자] 20세기에는 ‘석유’가 글로벌 패권의 중심에 있었다면 21세기에는 ‘반도체’가 그 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과거에는 반도체가 PC나 스마트폰, 태블릿에 주로 사용됐으나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자율주행차, 데이터센터, 서버 등에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를 두고 힘겨루기를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현재 반도체 업계의 가장 큰 관심사는 ‘칩렛(Chiplet)’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 반도체 관련 기업들이 ‘칩렛’ 생태계를 선점하기 위해 기술 개발에 뛰어드는 모습이다.

지난 2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삼성 파운드리 포럼'에는 '반도체 전설'로 불리는 짐 켈러 텐스토렌트 최고경영자(CEO)가 등장했다.

켈러 CEO는 이날 포럼에서 '리스크 파이브(RISC-V), 인공지능(AI)과 차세대 컴퓨팅'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이날 행사에서 "기회가 많을수록 더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며 "우리는 '리스크 파이브'를 활용해 AI 반도체를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칩렛 기술을 적용해 다양한 고성능 반도체 개발에 나설 것"이라며 이를 통해 "세계적인 성능 수준의 반도체 설계와 생산에 드는 비용을 줄여 업계 판도를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국제반도체협회(SEMI)가 주최하는 연례 반도체 행사 세미콘코리아(SEMICON KOREA) 2023에서도 칩렛(Chiplet) 생태계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행사 기조연설에서 조세프 마크리(Joseph Macri) AMD 부사장은 “반도체 성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반도체 회로를 얇게 만드는 데 필요한 광학 기술과 칩렛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데, 원가 절감까지 고려하면 칩렛이 유일한 솔루션이라 할 수 있다”며 “칩렛의 경우 초기 회로 디자인이 어렵지만 한 번 디자인을 완성하면 비용 효율적으로 칩을 생산할 수 있고, 수요 측면에서 좋다”고 강조했다.

벨기에 국제연구기관인 IMEC 에릭 베인(Eric Beyne) 선임연구원도 “다수의 글로벌 주요 반도체 업체가 칩렛 표준 제정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그만큼 칩렛 생태계가 중요하다는 의미인 것 같다”며 “일반 칩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칩렛, 혹은 칩 구조를 3차원으로 만든 3D 적층구조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세계적 반도체 전문가들이 ‘칩렛’을 강조하는 이유는 고성능, 저전력 반도체 생산이 가능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인텔의 칩렛 구조와 UCIe 활용 구조도 [사진=인텔]
인텔의 칩렛 구조와 UCIe 활용 구조도 [사진=인텔]

글로벌 반도체 전문가 “칩렛이 반도체 업계 판도 바꿀 것”

반도체 시장의 변화는 AI의 등장이 계기가 됐다. 초대규모 데이터를 학습해 결과를 도출하는 챗GPT 열풍으로 데이터센터·서버 기업들의 반도체 수요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또한, 보다 성능이 뛰어나면서 전력 소모도 적은 반도체의 필요성도 커지기 시작했다.

그간 반도체 산업은 집적회로 선폭을 줄여 칩을 작게 만들고 전력 소모를 줄이는 초미세화의 길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선폭 크기를 줄일 수 있는 물리적 한계에 도달하면서 더 이상 작게 만들기가 어려워진 데다 회로 간 거리가 가까워지며 누설전류가 흐르고 공정 난도가 상승하는 등 수율 문제도 증가해 대안이 필요했다.

이에 반도체 업체들은 여러 개의 칩을 하나로 연결해 비용을 줄이는 후공정 칩렛(Chiplet)에 주목하게 됐다.

칩렛은 여러 기능을 갖춘 칩을 결합해 하나의 칩으로 만드는 기술이다. 기존 시스템온칩(SoC) 구조가 하나의 칩에 여러 기능을 담은 반도체를 결합해 만든 것이라면 칩렛은 서로 다른 기능을 하는 반도체를 하나의 패키지로 만드는 기술이다.

칩렛의 가장 큰 장점은 동일한 성능을 가진 반도체를 훨씬 낮은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칩렛 기술을 이용하면 작은 다이에 분할 생산 후 다이를 이어 붙이는 방식을 통해 수율 개선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개발이 효율적이라는 점도 강점이다. 칩을 기능별로 쪼개 놓았으니 핵심 기술이 들어간 칩 외의 다른 칩들은 구매해서 사용하면 된다. 즉, 개별 업체는 핵심 기술 개발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셈이다.

AMD·인텔, 칩렛 제품 개발 하며 시장 선점.. 삼전·하이닉스도 개발 박차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칩렛 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인텔은 최근 강력한 슈퍼컴퓨터에 사용될 47개의 칩세트를 갖춘 ‘폰테 베키오’(Ponte Vecchio)라 불리는 프로세서를 선보였고, AMD도 지난 13일(미국 현지시간) 거대언어모델(LLM) 등 생성형 AI와 고성능 컴퓨팅(HPC) 가속을 위한 서버용 칩인 '인스팅트 MI300X' GPU를 공개했다. 해당 제품은 TSMC 5나노급(N5) 공정에서 생산된 칩렛 12개를 결합했다.

최근 TSMC도 대만 내 첨단 칩렛 후공정을 담당하는 공장 가동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장에서는 고성능컴퓨팅(HPC), AI,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 첨단 시스템반도체에 특화된 제조라인이 가동된다.

국내 기업들도 칩렛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2월 SK하이닉스는 특허청에 ‘모자이크(MOSAIC)’의 상표권을 출원했다. 모자이크는 칩렛 제조 방식 중심으로 전환하는 반도체 솔루션 개발 과정에 대한 방법을 브랜드화한 것이다. 상표권을 선점하면서 개발 의지를 보인 것이라는 평가다.

삼성전자는 PCIe 6.0, DDR5·LPDDR5X 등 고속 데이터 입출력을 가능하게 하는 인터페이스 IP와 칩렛(여러 반도체를 하나의 패키지에 넣는 기술) 등 최첨단 패키지용 UCIe 등을 글로벌 IP 파트너와 함께 개발할 계획이다.

삼성전자, TSMC, 인텔, AMD, ARM 등 반도체 공룡 기업들은 지난해 개방형 칩렛 생태계 구축을 위해 UCle 컨소시엄을 출범했다. 업체들은 컨소시엄을 통해 반도체 상호 연결 기술 표준화해 서로 다른 공급업체가 서로 다른 공정 기술로 만든 칩렛을 함께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입장이다.

한진만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전략마케팅 실장(부사장)은 “삼성전자는 칩렛이 (반도체의) 미래라고 보고 있으며 칩렛 생태계를 통해 이종 컴퓨팅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도 칩렛 개발 의사를 드러냈다. 29일 LG전자는 제주 서귀포시 롯데호텔 제주에서 열린 ‘대한전자공학회(IEIE) 2023년도 하계종합학술대회’에서 ‘LG전자 시스템반도체 현황’ 등을 공개했다.

이 자리에서 김진경 LG전자 시스템반도체(SIC)센터 센터장은 “LG전자는 1992년부터 30여년 이상 자체 시스템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다”라며 “자체 팹리스는 반도체를 팔기 위해서가 아닌 완성품의 차별화와 비용 절감 측면에서 필수”라고 말했다.

이어 “완성품 제조사 팹리스의 장점은 보안 우려 없이 완성품이 추구하는 방향을 읽고 제품을 개발하고 상용화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향후 완성품 제조사 팹리스는 개발 효율을 높이기 위해 레고 블록처럼 기능을 구성할 수 있는 ‘칩렛’ 기술 활용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AMD가 '인스팅트 MI300' 시리즈를 공개했다 [사진=AMD]
AMD가 '인스팅트 MI300' 시리즈를 공개했다 [사진=AMD]

미국·중국, 정부 차원에서 칩렛 투자.. 한국은 기업이 알아서?

국가별로 보면 미국과 중국이 칩렛 개발에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11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시장 조사 업체 욜그룹은 2027년까지 마이크로프로세서의 80%에 칩렛 스타일의 디자인이 사용될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미국의 경우 패키징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 이에 미국은 지난해 여름 통과된 반도체법(CHIPS Act)에 첨단 패키징 공장에 대한 지원 내용을 포함시키며 국가 차원에서 칩렛 투자에 힘쓰고 있다.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은 지난 2월 “칩들이 작아질수록 칩들을 배열하는 패키징이 더 중요해진다”면서 “우리는 그것을 미국에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도 반도체 공정 미세화가 미국 견제로 가로막히자 칩렛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중국 1위 반도체 IP 기업 베리실리콘은 최근 자국 AI 반도체 스타트업 ‘블루오션’에 반도체 설계자산(IP)을 대거 공급했다. 공급한 IP는 범용 중앙처리장치(GPGPU)와 신경망처리장치(NPU)가 주축으로 모두 ‘칩렛’ 구조를 채택한 것이 특징이다.

블루오션은 칩렛 구조로 고성능 AI 반도체 칩을 개발할 방침이다. 블루오션이 개발하는 AI 반도체는 단순 공정으로 따지면 10나노 안팎으로 추정된다.

중국 팹리스 룽손도 칩렛 기반으로 중앙처리장치(CPU)를 개발하고 있으며, 중국 스타트업 바이렌테크놀로지도 칩렛 기반으로 GPU를 개발했다.

강사윤 한국마이크로전자및패키징학회장은 “칩렛은 설계와 후공정 기술이 결합된 것으로 첨단 제조 공정 규제를 받는 중국의 선택지는 칩렛 밖에 없을 것”이라며 “중국이 칩렛에 집중 투자하게 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 칩렛 분야 투자는 전무한 상황이다.

지난 5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반도체 분야와 관련해 연구개발(R&D) 투자의 중장기 방향을 담은 '반도체 미래기술 로드맵'을 발표했다.

로드맵에는 선도공정 기술 개발을 위한 차세대 공정 기술로 원자층 증착, 이종집적(칩렛), 3D패키징을 설정하고 기술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이 전부이다.

지난해 코엑스에서 열린 ‘반도체대전(SEDEX) 2022’ 기조강연에서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은 후공정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국산화, 전문 인재 육성 등을 통해 패키징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술별 한계 돌파형 R&D 추진 ▲산학연 상생협력 생태계 조성 ▲반도체 패키지 특화 전문인력 확보 등을 과제로 꼽았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김 단장은 “반도체 설계(팹리스) - 파운드리 – OSAT를 잇는 인프라를 활성화하고 기업별 맞춤형 프로그램을 지원해야 한다”며 “일련의 과정을 위해 인증 평가 기관도 있어야 한다. 결국에는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가능한 일”이라고 역설했다.

회원가입 후 이용바랍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저작권자 © 테크월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