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분야 제외, 주요국 비해 10년 뒤처져

[테크월드뉴스=서용하 기자]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속에서 유럽 등 주요국들은 양자컴퓨팅 기술 선점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우리 정부도 발을 딛었다. 특정 연산을 기존 컴퓨터보다 압도적인 연산속도로 처리해 신약 개발, 암호해독, 금융, 교통 등 모든 영역에서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까닭이다.

다만 통신분야를 제외하고는 다른 나라에 비해 10년 이상 뒤처진 기술격차 해소는 시급한 과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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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퍼컴퓨터 1만 년 연산, 200초 만에 해결

양자컴퓨터란 기존의 컴퓨터가 반도체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원자를 기억소자로 활용한다.

개인용컴퓨터나 슈퍼컴퓨터가 사용하는 모든 데이터는 0 혹은 1의 값만 갖는 이진법을 따른다. 반면 양자컴퓨터는 비트가 아닌 양자 정보의 기본 단위인 큐비트를 정보의 단위로 사용한다.

큐비트는 비트와 달리 0과 1이 공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0과 1이 있다고 가정하면 이진법을 사용하는 비트는 2개의 정보 (0,1)를 처리할 수 있지만 큐비트는 0과 1이 공존해 4개의 정보(00, 01, 10, 11)로 처리하는 게 가능하다.

더 많은 큐비트가 얽힐수록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은 2의 제곱수로 늘어나게 돼 양자 컴퓨터는 빠른 속도로 연산 처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순차적으로 계산을 하는 이전 컴퓨터와 달리, 중첩 상태를 활용한 병렬계산이 가능해 속도가 지수함수에 따라 대폭 증가한다.

구글이 2019년 10월 개발한 50큐비트급 양자 컴퓨터 ‘시커모어’는 슈퍼컴퓨터로 1만 년 걸린다는 복잡한 연산 문제를 단 200초 만에 풀어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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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자 컴퓨터 왜 ‘게임체인저’ 인가

양자컴퓨터의 초고속 연산 능력을 활용하면 모든 영역에서 혁신적인 해법을 찾아낼 수 있다. 양자컴퓨터를 두고 4차 산업의 종결자이자 꿈의 컴퓨터라고 말하는 까닭이다.

맥킨지에 따르면 양자컴퓨터가 산업 분야에 접목되면 약 359조 1000억 원(3000억 달러)~837조9000억원(7000억 달러)의 가치 창출을 해낼 것이란 분석이다.

의약 분야 산업에서 분자 구조의 연구개발(R&D)의 속도를 앞당길 수 있다. 예컨대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선 약 10년 이상의 시간과 약 2조 4000억 원(20억 달러)의 비용이 소요되지만 표적 식별, 약물 설계 및 부작용 테스트의 시행착오를 획기적으로 줄여 이를 감축할 수 있다.

화학 분야에선 촉매 설계에 양자컴퓨터를 도입, 화학 물질의 R&D, 공급망 최적화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효율적인 제조 프로세스를 도입해 자동차의 R&D, 제품 설계, 공급망 관리, 생산 등의 분야에서 성과를 낼 수 있다.

금융 분야에선 자본의 포트폴리오 및 위험 관리에 활용될 수 있다. 대출 기관의 경우 담보에 초점을 맞춘 최적화된 대출 포트폴리오를 통해 대출 상품을 개선해 이자율을 낮추고 자본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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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 굴기’ 중국, 미국에 도전장 내밀다

IBM과 구글이 2019년 양자컴퓨터를 상용화한 뒤 전 세계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양자 기술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특히 중국이 반도체에 이어 양자컴퓨터 기술에도 미국을 턱밑까지 쫒아오는 상황에서 미·중 패권전쟁이 양자컴퓨터 분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중국은 2012년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기술 굴기’라 불리는 강력한 과학기술 지원 정책을 펼쳐오고 있다. 그 결과 다양한 보고서를 통해 중국이 양자 기술 분야에서 미국 수준에 매우 가까이 접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지난 2016년 100억 위안(약 1조 8915억 원)을 투자하는 이른바 ‘10개년 양자 연구개발 계획’을 세웠다. 2018년에는 5년간 총 1000억 위안(약 18조 9150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추가 계획도 내놓았다.

중국은 논문 발표나 특허 출원에서도 미국을 앞섰다. 스탠퍼드대의 ‘AI 인덱스 2022’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AI 논문 인용률은 27.84%(2021년 기준)로 미국(17.45%)이나 유럽(21.13%)을 압도한다. 특허 출원도 전 세계의 절반 이상(51.69%)을 중국이 차지한다.

양자정보과학도 상황이 비슷하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 따르면 2016~2021년 중국이 내놓은 양자컴퓨터 관련 논문은 7,030건으로 미국(5,230건)을 앞섰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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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중국 굴기’에 양자(量子)동맹으로 대항

중국이 정부 주도하에 양자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구글, IBM, 아마존, 엔비디아 등 빅테크 기업 중심으로 양자컴퓨터 시장에 뛰어들었다.

미국 정부도 2020년부터 5년에 걸쳐 인공지능(AI) 및 양자컴퓨팅 연구센터 설립과 지원에 10억 달러(약 1조3,000억 원)를 쏟아붓고는 있지만, 최근 양자컴퓨터 기술이 경제·산업 및 군사·안보 영역에서 중국이 미국의 국가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대중 민간 투자를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중국의 ‘굴기’를 막기 위해 반도체에 이어 자국과 동맹국 간의 양자(量子)동맹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국도 중국 등 적성국에 대한 첨단 기술 투자 규제에 동참하도록 하는 방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행정부는 주요 동맹국과 양자 기술 개발 협력을 위한 기구도 잇따라 설치하고 있다. 이미 일본과 지난 2019년 양자 기술 개발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미국은 유럽연합(EU)과도 양자 정보과학 연구 및 개발 협력 장벽을 낮추기 위한 전문가 태스크포스(TF)를 만들기로 했다.

특히 주요 7개국(G7)과 한국 등 동맹국에도 투자 제한 동참을 요청할 것으로 보여 한국 기업의 중국 투자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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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중 패권 경쟁 속에 영국, 일본도 추격

양자컴퓨터에서 미국과 중국, 유럽 등에 밀린 일본이 추격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민간기업인 후지쯔와 일본 국책 연구기관인 이화학연구소가 공동 개발한 양자컴퓨터 기술을 활용해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양자컴퓨터 범용제품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후지쯔와 이화학연구소는 21년 4월에 사이타마현 와코시에 제휴 센터를 설치, 약 20명의 연구자가 양자컴퓨터를 개발해왔다. 그 성과를 23년에 실제 범용제품의 형태로 내놓고, 이를 일반 기업에 제공할 예정이다.

후지쯔는 범용형 양자 계산기 64 양자비트를 올해 내놓는 것을 시작으로 2026년 이후에 1000 양자비트의 실현을 목표로 삼았다.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 정부도 독자적인 ‘브릿GPT(BritGPT)’구축을 위한 인공지능(AI) 전략을 세우고 있다. 슈퍼컴퓨터 구축에 9억 파운드 정도를 투자해 엑사스케일 컴퓨터를 구축하는 한편 10년 동안 양자 컴퓨팅 기술에도 25억 파운드를 투자하기로 했다.

아울러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 등에서는 양자 컴퓨팅 분야에 대한 학술 연구 및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영국의 기업 중에는 양자 컴퓨팅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도 나타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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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발주자 한국, 양자컴퓨터 개발 시급

IT 강국이라 불려 온 한국의 양자 기술 수준은 통신 분야를 제외하곤 미국과 중국, EU(유럽연합) 등에 비해 최대 10년가량 뒤처져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국의 양자 기술은 대략 미국·유럽연합(EU)의 60~80% 수준이고, 전문 인력과 시장 규모 면에서도 열세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2016년부터 5년간 발행한 관련 논문을 분석한 결과, 한국의 양자컴퓨터 전문 인력은 총 264명에 그쳐 ▲ 미국 3,526명 ▲ EU 3,720명 ▲ 중국 3,282명 등 경쟁국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국내 양자컴퓨터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34억 9,000만 원으로 세계 시장(4억7,160만 달러)의 불과 0.56%정도밖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들어 정부가 양자 분야 지원에 뒤늦게 나서고 있다. 지난달 27일 양자기술이 반도체·디스플레이, 2차전지 등과 함께 국가전략 기술 12개에 포함되는 내용을 담은 ‘국가전략기술육성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에는 ‘국가 양자 비전 및 발전 전략’도 발표할 계획이다.

또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큐비트 양자컴퓨터 시연 시점을 당 초 내년에서 올해 하반기로 앞당겨 50큐비트 양자컴퓨터 구축 및 관련 클라우드 서비스를 2026년 말까지 추진하기로 했다. 아울러 이달 초 약 1조 원 규모의 ‘양자 과학기술 플래그쉽 프로젝트’ 예비타당성 조사(예타)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내년부터 2031년까지 8년간 총 9960억 원이 투입되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양자컴퓨터·통신·센서 분야 핵심 기술들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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