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간 IT 스타트업에 100조 원 가까운 돈 쏟아부어

[테크월드뉴스=이혜진 기자] 소프트뱅크는 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대의 투자자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지난 4년 동안 소프트뱅크는 관련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들에게 840억 달러(약 97조 원) 이상을 쏟아 부었다. 이는 지난 6월 기준으로 986억 달러를 운용 중인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세계 최대 벤처 투자 펀드)'와 '비전펀드2'를 합산하지 않은 수치다.

앞서 5월 재팬타임즈는 3월 말 기준으로 소프트뱅크가 224개사의 관련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당 기업들의 면면을 보면 스타트업에서부터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의 시간을 잡아먹고 있는 틱톡의 소유주 바이트댄스까지 다양하다. 국내에선 대표적으로 쿠팡(포워드벤처스)이 이름을 올렸다. 

시장조사 업체인 피치북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를 비롯한 벤처캐피탈(VC) 펀드들이 사용한 가치평가를 기준으로 판단할 때, 그들이 지원한 기업들은 총 1조 1000억 달러의 기업 가치를 갖는다. 이 가운데 소프트뱅크는 쿠팡에 3조 원이 넘는 금액을 투자해 쿠팡의 최근 뉴욕 증시 상장으로 28조 원에 이르는 수익을 벌었다. 다른 기업들도 추가로 기업공개(IPO) 시장에 진출하면서 소프트뱅크에 막대한 수익을 안겼다. 

손정의가 기술 분야 선지자 된 이유

이 같은 성과에 지난 5월 소프트뱅크는 460억 달러의 연간 순이익을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일본 기업 가운데 역대 최고 기록이다. 소프트뱅크의 기업 가치는 1260억 달러로 지난해 3월 저점을 기록했을 때보다 600억 달러, 한화로 약 70조 원 가까이 급증했다. 

사실 소프트뱅크는 1981년 오늘날의 벤처캐피탈이 아닌 컴퓨터 프로그램 배포사로 설립됐다. 그러다 1990년대에 처음으로 인터넷 서비스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통신 기업으로 변신, 2006년에 영국의 이동 통신 기업인 보다폰의 일본 사업부문을 인수했다. 2013년에는 미국의 이동 통신사인 스프린트를 집어삼켰다. 

이처럼 각국의 통신 회사를 인수할 수 있었던 데는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그의 ‘천재적인 도박’이 있었다. 지난 2000년 손 회장은 2000만 달러의 비용으로 당시 중국의 전자상거래 스타트업이었던 알리바바의 지분을 상당 비율 확보했다. 알리바바는 현재 약 6000억 달러의 기업 가치를 지닌 기업이 됐으니 수천 배의 수익률을 기록한 것이다. 현재 소프트뱅크는 알리바바의 지분 24.85%를 확보 중이며 그 규모는 1440억 달러에 이른다.

이 때문에 손 회장은 오늘날까지 기술 분야의 선지자로서 명성을 얻고 있다. 그리고 소프트뱅크를 통신 기업에서 투자사로 바꾸는 데 영향을 미쳤다. 

소프트뱅크의 IT 기업 투자에서 나타나는 2가지 공통점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소프트뱅크의 정보기술(IT) 기업 투자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는 기술 투자와 금융 공학(financial engineering)의 결합이다. 투자 기업들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소프트뱅크는 기존의 VC를 활용해 레버리지(leverage∙대출)를 급격히 늘리고 구조를 복잡하게 설계했다. 

두 번째는 소프트뱅크를 중심으로 기술 생태계를 만들려 한다는 점이다. 소프트뱅크는 투자한 기업들이 소프트뱅크의 일부처럼 작동하길 원한다. 이를 위해 소프트뱅크는 투자 기업의 모든 설립자가 모이는 자리를 정기적으로 연다. 그럼으로써 기업들이 생태계 내 다른 회사를 우호적으로 대하게끔 만든다. 설령 관심 없는 분야의 기업이더라도 말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 같은 모델이 미쓰비시그룹과 같은 일본 대기업이 여러 분야에 촉수를 뻗고 계열사끼리 사업을 몰아주게 하는 방식인 ‘게이레츠(系列)’를 연상시킨다고 분석했다. 이는 국내 재벌 기업에서 볼 수 있는 경영 방식이기도 하다. 

소프트뱅크 기술 생태계, 늘 성공했던 것만은 아냐

다만 소프트뱅크의 이 같은 기술 생태계는 원활하게만 돌아가지 않았다. 손 회장이 지난 5월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투자 실패 사례로 언급한 영국 금융회사 그린실캐피털이 대표적인 예다. 

손 회장은 그린실캐피털의 창업자인 렉스 그린실을 ‘돈을 아는 친구(money guy)’라고 부르며 각별히 여겼다. 그러면서 2019년 5월 비전 펀드를 통해 그린실에 14억 달러의 자금을 투자했다. 현재는 삭제됐지만 과거 그린실은 비전펀드 홈페이지에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 패밀리로 참여함으로써 네트워크라는 자산을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린실은 소프트뱅크에서 스타트업이 많은 담보를 설정하지 않아도 낮은 이자의 융자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를 위해 그린실은 매출 채권(외상 판매대금 증서)을 담보로 단기 융자를 제공했다. 하지만 소프트뱅크가 출자한 기업에 대한 일부 융자는 이 같은 매출 채권이 아니라 향후 매출 예측에 근거한 것이었다.

대출은 대부분 스위스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의 공급망 펀드를 통해 진행됐다. 소프트뱅크는 대출을 해준 회사(그린실)와 대출을 받은 회사(카레라 및 오요 등) 그리고 이 은행의 펀드에도 투자하고 있었기 때문에 잠재적으로 이해가 상충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린실에서 대출을 받은 회사들이 채무 불이행 상태에 이르자 소프트뱅크는 그린실의 재정 보강용으로 수억 달러를 추가 투입했다. 그러나 그린실은 지난 3월 결국 파산하며 소프트뱅크에 막대한 손실을 안겼다. 

나쁜 관행의 사례가 된 소프트뱅크의 AI 기업 투자

다른 VC에선 보기 힘든 투자 관행이 이뤄지는 것도 회사가 비판받는 지점 중 하나다. 이코노미스트는 소프트뱅크의 비전 펀드를 잘 아는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며, 회사의 임원이 개인적으로 비상장 회사에 투자한 뒤 소프트뱅크가 해당 기업에 지원해서 가치 평가액이 급증한 사례들이 있다고 보도했다. 

일례로 2017년에 비전 펀드가 9300만 달러를 투자한 인공지능(AI) 스타트업 페튬은 창업자이자 소프트뱅크투자자문의 선임 경영 파트너인 디프 니샤르가 전년에 개인적으로 투자했던 기업이다. 다른 VC에서라면 니샤르는 소프트뱅크에 해당 주식을 원가로 팔아야 했다. 하지만 소프트뱅크의 규정에 따르면 니샤르는 당시 투자한 개인 지분을 유지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소프트뱅크 측은 이코노미스트에 “페튬에 대한 투자는 비전 펀드의 출자자들에게도 공개됐다”며 “비교적 흔한 관행”이라고 밝혔다. 

소프트뱅크, IT 스타트업에 전 분기보다 투자액 늘려

최근 소프트뱅크의 IT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금액은 전 분기 대비 더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11일(현지 시간)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해 2분기(4~6월) 소프트뱅크의 투자액은 약 130억 달러에 이른다고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의 투자는 IT 스타트업에 집행됐다. 지난 1분기 소프트뱅크의 투자액이 20개사를 대상으로 20억 달러 미만의 규모에 그친 것과 대비해 6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이 같은 투자 확대는 타이거글로벌운용 등 다른 VC의 활발한 투자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코노미스트는 “타이거글로벌운용은 올해 1~5월 무려 118개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다”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배나 급증한 것”이라고 정보제공업체 크런치베이스의 자료를 인용해 보도했다. 

지금까지 해당 VC가 투자한 기업은 400개가 넘는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IT 기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프트뱅크가 최근 투자를 집행한 국내 기업 중엔 국내 숙박·여행 플랫폼 야놀자가 있다. 야놀자는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로부터 17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7월 15일 밝혔다. 소프트뱅크가 국내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투자 중 쿠팡(총 30억달러)에 이어 역대 두번째로 큰 금액이다.

야놀자는 이번 투자에서 10조 원이 넘는 규모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소프트뱅크가 20%가 넘는 지분을 확보하며 야놀자에 투자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클라우드에 기반한 객실 예약 관리 시스템으로 수익을 다각화한 점을 꼽고 있다. 

중국 기술 업체로의 투자가 위험해졌기 때문에 한국 기업에 눈을 돌린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소프트뱅크가 2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한 중국 최대 차량공유업체인 디디(DiDi)글로벌은 지난 6월 미국 증시에 상장했다가 중국 당국의 제재를 받은 바 있다. 

지난 7월 10일 한 시장전문가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자국 기업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면서 비전 펀드가 다른 투자처를 찾을 이유가 커졌다”며 “이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이 가장 큰 반사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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