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시장 9000억달러 시대온다"…2026년, ‘질적 성장’ 원년 기대

메모리 반도체 33.8% 초고속 성장 예고…AI 인프라 투자가 견인 2025 반도체 수출, 사상 최고치 경신…하반기 30% 급등세 지속

2025-11-25     박규찬 기자

[테크월드뉴스=박규찬 기자] 한국 반도체 산업이 2025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다시 한 번 비상의 날개를 폈다. 인공지능(AI) 혁명이 촉발한 거대한 파도가 전 세계 IT 인프라 투자를 가속화하면서 대한민국 수출의 버팀목인 반도체 산업이 전례 없는 호황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사진=삼성전자]

한국무역협회(KITA)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반도체 전방산업 업황 진단 및 2026년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하반기 반도체 수출은 30% 내외의 가파른 증가세를 기록 중이며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경우 2024년 기록했던 사상 최고치(1419억 달러)를 1년 만에 다시 경신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호황은 단순한 수요 회복이 아닌 ‘PC·모바일’에서 ‘데이터센터’로의 반도체 수요 권력 이동이라는 구조적 변화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이에 해당 보고서를 심층 분석해 현재 반도체 시장의 지형 변화와 2026년 전망을 상세히 짚어본다.

“중국 의존도 줄고, AI 벨트(대만·베트남) 떴다”
2025년 한국 반도체 수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수출 대상국의 다변화와 고도화다. 그동안 한국 반도체의 최대 수요처였던 대중국 수출 비중이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는 반면 AI 및 첨단 패키징 수요가 집중된 대만과 신흥 제조 거점인 베트남으로의 수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24~2025년 국가별 반도체 수출 동향 [자료=한국무역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대중국 반도체 수출 비중은 5.4%포인트 하락하며 오랜 숙제였던 중국 의존도가 완화되는 추세를 보였다. 이는 중국 내 자체 공급망 강화 움직임과 미국의 제재 등 지정학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반면 대만으로의 수출은 2024년 127.2%라는 경이적인 성장률을 기록한 데 이어 2025년 1~9월에도 84.7% 급증하며 전체 수출 호조를 견인하고 있다. 이는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AI 가속기 주문이 대만 TSMC의 첨단 파운드리 공정으로 몰리면서 이에 필요한 한국산 고성능 메모리(HBM 등)의 동반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지역이 글로벌 IT 기업들의 신흥 제조 거점으로 부상하면서 이들 지역으로의 범용 반도체 수출 또한 견조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품목별로는 ‘메모리 편중’ 현상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2025년 1~9월 메모리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5.4% 증가하며 전체 반도체 수출 증가율(16.8%)을 크게 상회했다. 반면 시스템 반도체를 포함한 비메모리 부문은 같은 기간 3.0% 성장에 그치며 뚜렷한 온도 차를 보였다. 이는 현재의 반도체 붐이 AI 연산에 필수적인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고용량 서버용 D램에 의해 주도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슈퍼 사이클의 원동력: 공급 축소와 AI 수요 폭발의 ‘이중주’
현재의 반도체 가격 상승과 수출 호조는 공급 측면의 제약과 수요 측면의 폭발이 맞물린 결과다. 보고서는 이를 ‘공급 부족에 의한 단가 상승’과 ‘빅테크의 투자 경쟁’이라는 두 가지 축으로 설명한다.

우선 공급 측면에서 글로벌 메모리 제조사들의 생산 라인 재편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들이 수익성이 월등히 높은 HBM과 DDR5 등 첨단 제품 생산에 라인을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DDR4와 같은 레거시(구형) 제품의 공급이 줄어들었다.

실제로 SK하이닉스의 경우 HBM이 전체 D램 출하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에 불과하지만 매출의 44%, 영업이익의 54%를 차지할 만큼 수익 구조가 고도화됐다. 이런 생산 라인 전환으로 인해 범용 D램 시장에서는 일시적인 ‘공급 절벽’ 현상이 발생했고 이는 즉각적인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다. 2024년 12월 1.37달러로 저점을 찍었던 DDR4 가격은 2025년 9월 5.15달러까지 치솟으며 약 276%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당초 2025년 말로 예정되었던 주요 제조사들의 DDR4 생산 종료(EOL) 시점이 가격 급등으로 인해 2026년 이후로 연기되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수요 측면에서는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알파벳),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 4사’의 AI 투자 전쟁이 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들 4개 사의 2025년 AI 관련 투자 규모는 총 3640억 달러(약 48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며 이는 전년 대비 58%나 증가한 수치다. AI 거품론에 대한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빅테크 기업들은 인프라 선점을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고 있으며 이는 고스란히 고성능 서버용 반도체 주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시장 상황을 반영하여 모건스탠리 등 주요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당초 ‘반도체 겨울’을 예고했던 비관적 전망을 철회하고, 메모리 시장의 ‘슈퍼 사이클’ 도래를 인정하며 전망치를 급격히 상향 조정했다.

수요 패러다임의 대전환: "모바일·PC 지고, 데이터센터 뜬다"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반도체 수요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다. 지난 수십 년간 반도체 시장을 지탱해 온 양대 축은 단연 PC와 스마트폰이었다. 그러나 2025년을 기점으로 ‘데이터센터’가 이들을 제치고 최대 수요처로 부상하는 역사적인 골든 크로스가 일어날 전망이다.

2020~2030년 전방산업별 반도체 매출 [자료=Statista]

2024년까지는 스마트폰과 PC가 반도체 매출의 1~2위를 다퉜으나 2025년에는 데이터센터 부문이 1560억 달러의 매출을 유발하며 스마트폰(1490억 달러)과 PC(920억 달러)를 모두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단순한 순위 변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과거 PC와 스마트폰 시장이 범용 메모리 중심의 ‘박리다매’ 시장이었다면, 데이터센터 시장은 HBM, DDR5 고용량 모듈 등 ‘초고성능·고부가’ 제품이 주력이기 때문이다.

데이터센터 시장은 2025~2026년 연간 8~9%대의 고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보이며 특히 2030년에는 전체 반도체 수요의 36%를 차지하는 압도적인 1위 시장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반면 스마트폰과 PC 시장은 AI 기능 탑재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기기 보급률 포화와 교체 주기 연장 등으로 인해 연 2~3%대의 낮은 성장률에 머물 것으로 예측된다. 바야흐로 반도체 산업의 심장이 ‘개인용 기기’에서 ‘서버실’로 옮겨가는 것이다.

주요 전방산업별 심층 진단
스마트폰: 프리미엄 폰과 중저가 폰의 ‘AI 동행’= 스마트폰 시장은 ‘온디바이스 AI(On-device AI)’가 새로운 활력소로 작용하고 있다. 생성형 AI 기능을 원활히 구동하기 위해 NPU(신경망처리장치) 탑재가 필수가 되면서 관련 칩 수요가 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런 고사양화가 플래그십 모델을 넘어 중저가 라인업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트너는 2025년 말까지 기본형 스마트폰의 NPU 탑재율이 41%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전체 스마트폰 출하량 자체는 중국 시장의 구조적 수요 둔화와 전 세계적인 교체 주기 연장(2024년 기준 약 50개월) 탓에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PC: ‘AI PC’가 여는 새로운 메모리 시장= PC 시장 역시 ‘AI PC’가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2025년 AI PC 출하량은 약 7780만 대로 전체 PC 시장의 31%를 차지하고 2026년에는 55%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AI PC는 거대언어모델(LLM)을 로컬 환경에서 구동해야 하므로 기존 PC 대비 월등히 높은 메모리 용량을 요구한다.

이는 DDR5와 같은 고성능 메모리 수요를 견인하는 확실한 호재다. 다만 미국(96%), 독일(92%) 등 주요 선진국의 가구당 PC 보급률이 이미 포화 상태에 달해 신규 수요 창출에는 한계가 있어 전체 PC 시장의 성장률은 2~3% 수준의 완만한 회복세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센터: 멈추지 않는 성장 엔진= 데이터센터 시장은 그야말로 파죽지세다. 2024년 28.9%라는 기록적인 매출 성장을 기록한 데 이어 2025년 이후에도 연평균 15% 이상의 고속 성장이 예고된다. 특히 서버 시장 내에서도 AI 연산에 특화된 ‘AI 서버’ 수요가 폭발하면서 고성능 CPU와 이를 보조하는 대규모 메모리(D램, SSD)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부문·지역별 데이터센터 매출 [자료=Statista]

서버 시장 매출은 2023년 1051억 달러에서 2026년 2523억 달러로 3년 만에 2.5배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며 이는 반도체 산업 전체의 성장을 견인하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

이런 추세로 2026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전년 대비 17.8% 성장한 9098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 분야는 33.8%라는 압도적인 성장률을 기록하며 시장 확대를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24년의 성장이 기저효과에 따른 반등 성격이 강했다면 2026년의 성장은 AI 인프라 확충이라는 확실한 실수요에 기반한 ‘구조적 성장’임을 의미한다.

이런 긍정적인 전망은 현장의 목소리와도 일치한다. 무역협회가 지난 9월 독일에서 열린 ‘IFA 2025’ 참가 국내 반도체 전방산업 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 기업의 95.7%가 2025~2026년 투자를 유지하거나 확대하겠다고 답했다. 특히 응답 기업의 60% 이상이 2025년 하반기 업황 개선을 예상하고 있어, 산업 현장에서 체감하는 온기 또한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 전문가에 따르면 "2025~2026년 반도체 시장은 데이터센터 중심의 수요 재편과 고부가 메모리 중심의 공급망 변화가 맞물려 ‘양적 성장’과 ‘질적 도약’을 동시에 이뤄낼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