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움직임 구현에 쓰였지만 그래픽·물리엔진 기술 발전하며 폭넓게 활용

[테크월드뉴스=이혜진 기자] 지난해 12월 세계 1위 게임엔진 개발사인 유니티소프트웨어는 같은 해 처음 열린 ‘2021 강화학습(RL) 코리아 드론 딜리버리 챌린지’를 후원했다고 밝혔다. 해당 행사는 게임엔진 ‘유니티’로 구현된 시뮬레이션 환경에서 RL 알고리즘을 학습해 드론이 물류창고의 물품들을 목적지로 빠르고 안전하게 배송하도록 하기 위해 열렸다. 민규식 RL 코리아 연구원은 “유니티를 활용해 비교적 간단하게 멋진 시뮬레이션 환경을 개발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과거 게임 개발용으로만 활용됐던 ‘게임엔진’이 산업계 전반에서 이용도가 증가하고 있다. 게임엔진은 캐릭터의 움직임을 구현하는 데 활용하는 개발자용 제작 도구를 말한다. 화면에 3차원(3D)으로 입체감을 부여하고 광원(光源·백라이트)의 위치에 따라 색상·명암 변화를 실시간으로 처리한다. 

하지만 최근 이 기술이 게임을 넘어 증강현실(AR)·가상현실(VR)·영화·자동차 같은 전통 산업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인터넷·통신 기술 발달로 디지털 전환기에 들어선 산업계의 업무 스마트화에 게임엔진의 용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자동차 기업들이 게임엔진에 대한 관심이 많다. 28일 업계 관계자는 “게임 엔진 안에선 도로의 굴곡과 날씨 등 다양한 변수를 자세하게 설정하고 가상으로 차량을 운행해 도로별·계절별 차량의 주행 기능 변화를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게임 엔진 시장의 규모는 꾸준히 확대될 전망이다. 시장조사 업체인 모도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게임 엔진 시장 규모는 지난해 1737억 달러(약 210조 원) 수준에서 2027년엔 3144억 달러(약 379조 원)로 커질 전망이다.

유니티 엔진은 네이버의 메타버스(가상세계) 플랫폼인 제페토와 영화 라이온킹 실사판 제작에 활용됐다. 사진=네이버 제페토
유니티 엔진은 네이버의 메타버스(가상세계) 플랫폼인 제페토와 영화 라이온킹 실사판 제작에 활용됐다. 사진=네이버 제페토

세상 모든 곳에 존재하는 엔진, 유니티

이에 유니티는 3D 콘텐츠가 필요한 모든 곳에서 게임엔진을 쓰게 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에만 관련 소프트웨어(SW) 개발 업체 4곳을 인수했다. 특히 같은 해 3분기(7~9월) 말 현금 자산 규모가 7억 6000만 달러(약 9169억 원)였음에도 시각효과 기업인 웨타 디지털을 16억 2500만 달러(1조 9606억 원)에 인수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유니티는 그러나 지난 3일(현지 시간) 전년 대비 43% 급증한 3억 1590만 달러(약 3811억 원)의 4분기 매출을 발표하며 투자자들을 안심시켰다. 같은 기간 1억 4480만 달러(약 1747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여전히 고전했지만 알짜 기업들을 인수합병(M&A)하면서도 적자 폭을 줄이는데 성공했다. 

일각에선 지난해 애플이 ‘앱 추적 투명성(ATT∙App Tracking Transparency)’ 정책을 도입하고 개인 맞춤형 광고를 이용자가 거부할 수 있게 하며 매출의 20%를 모바일게임 인앱(In-app) 광고에 의존하던 유니티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유니티는 메타(옛 페이스북)와 같은 소셜미디어 기업과는 달리 플랫폼 안에 이용자의 게임 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맞춤형 광고를 하는 방식이라 피해가 적었다. 업계에선 경쟁 업체들이 ATT 정책으로 맞춤형 광고가 어려워져 반사 이익을 봤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유니티 주요 실적. 사진=유니티 공식 홈페이지 캡처
지난해 유니티 주요 실적. 사진=유니티 공식 홈페이지 캡처

네이버∙현대차∙삼성중공업도 유니티 사용…매출 71%는 게임서 발생

그래픽·물리엔진(중력·관성·반작용 등 물리 법칙이 작용하는 가상 세계) 등의 기술이 발전하며 3D 콘텐츠 제작이 필요한 다양한 분야에서 유니티가 적용되는 사례는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유니티는 네이버의 메타버스(가상세계) 플랫폼인 제페토와 영화 라이온킹 실사판 제작에 활용됐다. 자동차(현대차·BMW)와 조선(삼성중공업) 등의 업계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유니티 입장에선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처럼 게임엔진을 산업별 수요에 맞춰 제작∙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유니티는 장기적으로는 게임 외 다른 산업 분야의 성장성을 크게 내다보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는 게임엔진 구독서비스·모바일게임 광고 등 기존 캐시카우(현금 창출원)가 매출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비중이 높은 이유는 게임 개발사들이 매월 구독료 내고 유니티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발사가 만든 모바일게임에 광고를 삽입하려면 유니티의 광고 플랫폼인 유니티 애즈를 거쳐야 해서이기도 하다. 

특히 휴대전화가 콘솔(TV에 연결해 쓰는 게임기)과 PC보다 인기있는 게임 플랫폼에 등극하며 다른 엔진보다 모바일 게임 개발에 최적화된 유니티가 수혜를 받았다. 이와 관련해 유니티는 지난 8일 보도자료를 내고 세계 매출 상위 1000개 모바일 게임 중 71%가 유니티 게임 엔진을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표작은 추리 게임인 ‘어몽어스’와 AR게임 ‘포켓몬고’ 등이다. 

업계에선 유니티의 경쟁사를 인기 총 쏘기 게임(FPS) ‘포트나이트’를 개발한 에픽게임즈로 꼽는다. 게임엔진에 집중하는 유니티와 달리 에픽게임즈는 게임과 엔진(언리얼)을 모두 개발하고 있다. 유니티는 모바일·캐주얼 게임에 특화된 반면 언리얼은 고사양 게임에 주로 쓰여 경쟁사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에픽게임즈의 언리얼 엔진은 영화 ‘스타워즈’의 시각효과에 사용됐다. 사진=에픽게임즈 공식 홈페이지
에픽게임즈의 언리얼 엔진은 영화 ‘스타워즈’의 시각효과에 사용됐다. 사진=에픽게임즈 공식 홈페이지

에픽게임즈 ‘언리얼’, 리비안∙도요타 등에 적용

이처럼 언리얼은 고품질 콘텐츠에 강점이 있지만 그만큼 제작의 난이도가 더 높다. 게다가 화려한 그래픽이 몰입을 위한 필수 조건도 아니어서 현재 메타버스의 대표 사례들로 손꼽히는 로블록스 등은 유니티처럼 적절한 수준의 그래픽에 편의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은 추세에 최근 에픽게임즈는 언리얼을 모바일 게임 개발에 적합한 엔진으로도 개발하며 관련 회사에서 채택되게 함으로써 유니티를 위협하고 있다. 게임 외 다른 산업에서 엔진이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는 면에서도 두 회사의 성격은 비슷하다. 실제로 언리얼은 영화 ‘스타워즈’의 시각효과와 리비안과 도요타의 차량 설계 시뮬레이션에 사용됐다. 

5년 전까지만 해도 고성능 실시간 레이트레이싱(실감나는 그래픽)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미국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가 최근 게임용 그래픽카드인 지포스(RTX3050 Ti)를 개발함에 따라 해당 기능의 구현이 가능해졌다. 그러면서 스타워즈에도 이 기능이 적용됐다. 유니티에 따르면 엔비디아 그래픽카드를 기반으로 한 실시간 레이트레이싱은 디자인과 엔지니어링, 마케팅 등 시각적으로 높은 정확도가 요구되는 다양한 분야의 작업에 오프라인 렌더링(빛 반사 등을 반영해 사실감을 불어넣는 기술)을 포함한 다른 기술보다 실물에 가까운 이미지를 빠르게 제공한다.

게임엔진, 방송계까지 접수하다 

메타버스 분야에서도 언리얼을 찾는 기업이 늘고 있다. 28일 에픽게임즈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가상인간 기술 기업인 자이언트스텝은 언리얼의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실감나는 그래픽) 기능을 활용해 빛의 움직임에 따른 세밀한 그림자 표현 기능을 고도화했다. 

자이언트스텝 관계자는 “프로젝트를 통해 높은 품질을 요구하는 상업 광고와 영화, 드라마 시각특수효과 공정의 일부를 리얼타임 엔진 솔루션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자동차 산업 분야를 위한 콘텐츠 제작에 있어서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혁신적인 작업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차세대 엔진인 언리얼5 출시하기 전 메타버스를 준비하는 업체와 협업 사례를 만들고 있기도 하다. 에픽게임즈 코리아는 TV조선, 갤럭시코퍼레이션과 실감형 혼합현실(XR) 방송 콘텐츠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지난달 28일 밝혔다. 

3사 협업의 첫 프로젝트는 같은 달 30일 TV조선에서 방송된 메타버스 아바타 쇼 ‘부캐전성시대’에서 공개됐다. 갤럭시코퍼레이션의 메타버스 지식재산권(IP)인 마미손과 원슈타인 등이 언리얼로 만든 버추얼 아바타로 분해 노래 경연을 펼친 것이다. 

에픽게임즈코리아 관계자는 “협약를 계기로 3사는 버추얼 프로덕션 스튜디오를 도입하는 등 긴밀하게 협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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