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보다 더 커질 배터리 시장, 글로벌 업체들 각축전
토요타, 전고체 배터리에 승부수 던져
K-배터리 3사, 다양한 제품군 보유 전략
중국, LFP 배터리 시장 장악

[테크월드뉴스=이재민 기자] 전기차(EV)의 전성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전기차=친환경차’라는 공식이 성립되면서 전기차의 인기는 고공행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블룸버그NEF는 “2020년에 판매된 승용차 중 4%만이 전기차였으나, 2030년에는 그 비중이 34%로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전기차 판매량은 2025년 1070만 대, 2030년 2820만 대로 늘어날 것이며 2036년에는 신차 판매 점유율에서 전기차가 내연기관차(휘발유차, 경유차 등)를 앞설 것으로 전망했다.

전기차 시장 전망이 밝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전기차의 ‘심장’ 배터리를 둘러싼 관심이 뜨겁다. 지금 전 세계가 전기차 배터리 전쟁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기차는 배터리와 함께 달린다. 일반적으로 전기차 배터리는 셀(Cell), 모듈(Module), 팩(Pack)으로 구성된다. 셀은 배터리의 가장 작은 단위로, 전기차의 전반적인 성능에 중심적 역할을 한다. 모듈은 배터리 셀을 외부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일정한 개수로 묶어 프레임에 넣은 것이다. 이 모듈 여러 개를 모아 배터리의 온도나 전압 등을 관리하는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과 냉각장치 등을 추가한 것이 팩이다. 최종적으로 배터리는 전기차에 하나의 팩으로 들어가게 된다.

현재 전기차에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배터리는 이차전지의 일종인 리튬이온 배터리다. 이차전지는 계속 충전해 사용할 수 있는 배터리로, 방전되면 재사용이 불가능한 일차전지와 다르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4대 구성요소는 양극, 음극, 전해액, 분리막이다. 양극과 음극이 배터리의 기본 성능을, 전해액과 분리막은 배터리의 안정성을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장점은 기존 이차전지의 단점이었던 메모리 현상이 없다는 것이다. 메모리 현상이란 완전히 방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충전 시 배터리 수명이 줄어들게 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리튬이온 배터리는 온도에 민감해 폭발이나 화재 위험성이 크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화재로 인해 리콜을 실시하고 있는 ‘GM 쉐보레 볼트EV’, ‘현대자동차 코나EV’에 리튬이온 배터리가 탑재된 것으로 알려져 화재 위험성에 대한 우려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를 대체할 차세대 배터리로 주목받는 건 전고체 배터리다. 전해질이 고체 상태인 전고체 배터리는 구조적으로 단단해 안정적이며, 전해질이 훼손되더라도 형태를 유지할 수 있어 폭발이나 화재 위험에서 자유롭다. 또한 1회 충전으로 최대 800km 이상을 주행할 수 있고, 배터리를 80%까지 충전하는 데 약 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한국 vs 중국 배터리 전쟁에 끼어드는 일본

시장조사업체인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 순위’에서 상위권 경쟁 구도는 한국(2위 LG에너지솔루션, 5위 SK이노베이션, 6위 삼성SDI) 대 중국(1위 CATL, 4위 BYD)으로 형성됐다. 상위권에서 일본 업체는 파나소닉(3위)뿐이라서 일본이 배터리 분야에서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토요타가 9월 7일 공개한 전고차 배터리 전기차(출처: 토요타자동차 공식 유튜브 채널)
▲ 토요타가 9월 7일 공개한 전고차 배터리 전기차(출처: 토요타자동차 공식 유튜브 채널)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일본 토요타자동차가 완벽한 ‘한 방’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요타는 2000년대 초반부터 전고체 배터리를 연구해 왔으며, 보유한 관련 특허는 약 1000개로 전 세계 전고체 배터리 특허의 40% 규모다. 기업별로 살펴봐도 토요타가 전고체 배터리 특허 출원 건수가 가장 많다.

오랜 연구개발 끝에 토요타는 지난 9월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세계 최초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공개했다. 이와 함께 2025년까지 전기차 15개 차종을 발표하며, 전고체 배터리를 포함한 전기차 배터리 개발에 16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파나소닉과 배터리 합작사인 프라임 플래닛 에너지&솔루션(PPES)을 통해서는 2022년까지 배터리 생산 비용을 절반으로 줄일 계획이다. 배터리 제조 원가는 팩 기준으로 Wh(와트시)당 100달러 정도다. 이를 50달러 수준까지 낮춰 ‘반값 배터리’를 생산하겠다는 것이다.

PPES의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아직 5%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토요타가 오랫동안 축적한 기술력으로 전고체 배터리와 반값 배터리가 본격화된다면, 배터리 시장에서 PPES 점유율이 급상승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K-배터리 3사 “전고체·하이니켈 배터리 둘 다 놓치지 않을 것”

중국 업체들을 상대하기 바쁜 국내 배터리 3사에 토요타의 소식은 반가울 리 없다. 배터리 3사는 전고체 배터리를 비롯한 차세대 배터리 개발과 함께, 늘어나는 배터리 수요에 당장 대응하기 위해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 성능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샌디에이고대학교(UCSD)와 공동 연구를 통해 상온(통상 25℃)에서도 급속 충전이 가능한 전고체 배터리 기술을 개발했다. 이는 60℃ 이상에서만 충전이 가능했던 기존 전고체 배터리의 기술적 한계를 넘은 것이다. 또한 500번 이상의 충·방전 이후에도 80% 이상 잔존 용량을 유지하고, 에너지 밀도를 리튬이온 배터리에 비해 약 40% 높일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뿐만 아니라 항공기, 드론, UAM(도심 항공 모빌리티) 등 항공우주 분야도 공략하고 있다. 이 분야에 공급하기 위해 황탄소 복합체, 리튬 메탈 등 경량 재료를 사용해 가벼운 리튬황 배터리를 개발했다. 리튬황 배터리는 저렴한 황을 양극재로 활용한 배터리로, 에너지 밀도가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1.5배 이상 높다. LG에너지솔루션이 개발한 4.5Ah(암페어시), 18.7g의 리튬황 배터리는 최근 국내 태양광 무인기에 탑재돼 상용화 가능성을 입증했다.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법인으로 공식 출범된 SK온은 전고체 배터리 연구개발 인력 충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또한 리튬이온 배터리 시대를 연 인물이자 2019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존 굿이너프 미국 텍사스대 교수와 리튬메탈 배터리를 연구하고 있다. 리튬메탈 배터리는 음극재에 금속을 사용하며, 리튬이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 한계치인 800Wh/L을 1000Wh/L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삼성SDI는 국내 배터리 3사 중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서 가장 앞서 있다. 전고체 배터리 양산 시점 목표도 2027년으로 가장 빠르다. 삼성SDI는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일본 연구소 등과 전고체 배터리 기술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은 지난해 3월 1회 충전으로 800㎞ 이상 주행할 수 있고, 1000회 이상 충·방전이 가능한 전고체 배터리 연구결과를 공개했다. 연구결과에는 전고체 배터리 기술 난제로 꼽히는 덴드라이트(수지상결정) 현상을 해결한 ‘석출형 리튬음극 기술’도 포함됐다. 덴드라이트는 배터리 충전 시 리튬이 음극 표면에 쌓이며 분리막을 훼손하는 현상이다.

배터리 3사는 공통적으로 하이니켈 배터리 양산 시점을 앞당기고 있다. 기존 배터리보다 니켈 함량을 늘린 하이니켈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높아져 전기차 1회 충전 시 주행거리가 증가한다. 3사의 하이니켈 배터리는 니켈 함량을 60~70%에서 80~90%까지 크게 높였다.

LG에너지솔루션은 니켈 함량 85%의 ‘NCMA(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 배터리’ 양산을 연내에 시작한다. SK온 역시 니켈 함량을 90%까지 높인 ‘NCM9 배터리’를 올해 안에 양산할 예정이다. 삼성SDI는 지난 9월부터 니켈 함량 88%의 ‘젠(Gen)5 배터리’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하이니켈 배터리도 리튬이온 배터리처럼 안전성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배터리 3사는 이를 각자의 기술력으로 보완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알루미늄을 추가해 안전성을 높였고, SK온은 배터리 내부 분리막을 쌓을 때 양극과 음극을 지그재그 형태로 감싸 두 극을 분리했다. 삼성SDI는 알루미늄 소재와 특수코팅 기술을 더해 배터리 열화를 최소화했다.

 

‘저가 배터리’로 밀고 나가는 중국

CATL과 BYD는 중국 배터리 업체의 양대 산맥이다. 이들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내세우며 성장하고 있다. LFP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한 종류로, 양극재에 인산과 철을 사용한다. 가격이 급상승한 니켈과 코발트를 쓰지 않아 저렴하며, 안정성도 높다. 다만 무겁고 에너지밀도가 낮아 주행거리가 짧다는 단점이 있으나, 저렴한 가격 때문에 완성차 업체에서 사용 확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테슬라는 앞으로 스탠다드 레인지 전기차에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대신 LFP 배터리를 탑재할 계획이다. 지난 2분기 실적발표에서는 자사 전기차 배터리의 3분의 2 정도를 LFP 배터리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테슬라는 CATL로부터 LFP 배터리를 공급받고 있어 CATL 시장 점유율은 더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CATL은 최근 미국 전기차 업체인 ELMS(Electric Last Mile Solutions)와도 LFP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BYD는 CTP 기술을 사용한 LFP 배터리 ‘블레이드 배터리’를 양산하고 있다. CTP란 배터리 팩에서 모듈을 생략하는 기술로, 에너지 밀도를 최대 20%까지 향상시킬 수 있다. BYD는 블레이드 배터리 적용을 자사 전기차 전체로 확대했고, 테슬라와 공급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폭스바겐과 포드 역시 주행거리가 짧은 엔트리급 모델에 LFP 배터리를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저가·보급형 전기차 시장 확대와 맞물리면서 LFP 배터리 수요는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따라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도 다양한 제품군을 보유하기 위해 LFP 배터리 개발에 뛰어들었다.

 

메모리 반도체보다 더 커질 배터리 시장

미래에셋증권의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규모는 2020년 330억 달러를 상회하며 전년 대비 약 57% 증가했다. 2023년에는 804억 달러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2025년에는 전기차 배터리가 메모리 반도체보다 더 큰 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기차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배터리 수요는 2030년 2333GWh(기가와트시)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한·중·일 3국이 주도하고 있으나, 미국과 유럽 업체가 진입 기회를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를 자체 생산하겠다는 뜻을 보이고 있어 경쟁 구도는 더 심화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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