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대량생산 시스템의 기반을 마련한 자동차왕

[테크월드=이건한 기자] “5%가 아닌 95%를 위한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 왕년의 자동차왕 헨리 포드(Henry Ford)의 말이다. 자동차 대중화와 현대적 제조 시스템 확립에 공헌한 그는 한평생 더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한 고민 속에서 살아간 인물로 기억된다.

헨리 포드

마차보다 뛰어난 기관을 만들겠다는 일념

1863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헨리 포드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손재주를 보이던 소년이었다. 10살 남짓한 나이에도 이미 동네의 고장 난 모든 시계는 포드의 손을 거쳐 고쳐졌다고 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어떡하면 더 편해질 수 있을까?’란 고민에 집중하곤 했다. 매일같이 우물에서 물 긷는 일이 귀찮아 수도관 연결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13살엔 난생처음 본 증기기관차에 흠뻑 매료되기도 했다. 고작 마차를 타고 다니던 포드의 눈에 스스로 움직이는 증기기관은 매우 매력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언젠가 증기기관처럼 마차보다 뛰어난 걸 만들겠다고 결심한 포드. 그는 결국 15살에 학업을 그만두고 기계공으로의 삶을 시작한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그가 이 시기 취직한 회사는 다름 아닌 발명왕 에디슨의 기계 공장이었다.

포드는 이곳에서 자동차 내연기관 개발에 대한 에디슨의 뜻하지 않은 격려를 받고 감동한 나머지, 무려 13년 동안이나 해당 연구에 매달린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자동차 제작에 필요한 충분한 기술적 배경을 쌓은 그가 1903년에 설립한 회사가 바로 자신의 이름을 딴 자동차 회사 ‘포드(Ford)’다.

포드 자동차의 엠블럼

효율! 효율! 효율! 모델 T형의 탄생 배경

포드는 노동에 있어 무엇보다 효율을 중시하던 인물이다. 효율에 대한 그의 집념은 사실 집착에 가까운 수준이었는데, 덕분에 세상 빛을 본 자동차가 바로 그 유명한 ‘포드 모델 T형’이다. 2900cc 20마력 직렬 4기통 엔진, 네모나고 투박한 외형, 검은색 일색. 포드 모델 T의 외형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지만, 이 자동차의 진가는 바로 미친듯한 생산성과 낮은 가격에 있다.

1908년부터 1927년까지 20여 년 동안 판매된 포드 T형은 무려 1500만 대다. 그야말로 '많이 만들고, 많이 판 것'. 이는 헨리 포드가 창안한 컨베이어 벨트 기반의 자동화 생산 시스템 덕분이다.

포드 모델 T

포드의 자동화 생산 시스템은 크게 ▲표준화 ▲분업화 ▲전문화 단계로 구성된다. 먼저 전체 생산 공정을 여러 파트로 구분해 작업 내용을 통일한다(표준화). 이어 각 파트에 해당 업무만을 전담할 인력을 배치한다(분업화). 이후 반복된 업무를 통해 노동자는 기술적으로 점차 전문화되며, 이것이 곧 생산성 증대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바로 포드 생산 시스템의 골자다. 포디즘(Fordism)이란 말로도 알려져 있다.

포드가 창안한 이 시스템은 자동차 1대를 조립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평균 750분에서 93분으로 단축시켰으며, 1908년에는 60분에 1대, 1914년에는 무려 24초에 1대가 만들어질 정도로 개선됐다. 

이처럼 대규모 차량 생산이 가능해지자, 시장 내 자동차 평균 가격도 2000달러에서 825달러, 종국엔 255달러까지 인하됐다. 이런 현상은 ‘값싸게 만들어 값싸게 팔아야 한다’는 포드의 신념과도 일치하며, 이 시기 많은 서민들이 포드를 통해 자가용을 갖게 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5배 일당을 주는 포드의 자동화 공장

포드가 단순히 많이 팔기만 한 것이 아니다. 많이 파는 것은 곧 매출로 연결된다. 헨리 포드는 모델 T를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공장을 세우고 숙련공들에게 파격적인 근무 조건을 제시했다. '1일 8시간 노동에 주 5일 근무, 최저 임금 5달러'

당시 하루에 10~12시간을 근무하고 약 1달러를 받던 노동자들에게 이는 눈이 번쩍이는 조건이었다.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면 지금 하는 일과 같은 일을 하는 곳인데 5배의 연봉을 주는 곳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포드의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

이에 실력 있는 기계공들이 속속 포드의 공장으로 몰려들면서 포드 자동차의 생산성과 품질은 더욱 높아졌다. 또 충분한 돈을 벌게 된 직원들이 다시 지역 소비 경제에 이바지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새로운 중산층 계급으로 성장해 나갔다.

결국 포드 자동차에 인력을 뺏기지 않기 위해 경쟁사들도 하나둘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곧 전반적인 사회성장에 기여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돌이켜 보면, 포드 이전에도 기계와 산업혁명은 존재했다. 하지만 포드는 여기에 품질과 인간만족이란 기술인문학적 가치를 동시에 달성해내며 사업가이자 발명가로서 포드가 오늘날까지 존경받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반유대주의자, 냉혈한으로서 포드가 남긴 오점

그러나 완벽한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포드에게도 오점은 있다. 그는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자였으며, 자신만의 철학이 너무나도 완고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치즘을 창시한 히틀러에게 공개적으로 호감을 표현하곤 했고, 자신의 반유대주의를 담은 ‘국제 유대인(The International Jew)’이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동시에 자신이 노동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만큼, 그 노동자들이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것에 대해 결코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1500만 번째 모델 T를 운전 중인 헨리 포드

또한 수익만을 중시한 나머지 인명을 경시했던 결정도 여러차례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포드 핀토’라는 결함 차량을 시장에 내놓은 사건이다. 포드는 해당 모델이 후방 충돌 발생 시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설계 단계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개선하거나 리콜하기 위한 막대한 비용이 아까워 이를 무시한 채 시장에 핀토를 출시하는 엄청난 일을 벌이고 만다. 결국 도로에 나간 포드 핀토는 여러 큰 사고를 일으키며 포드의 명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다. 

경영에서도 그가 마냥 성공만 했던 건 아니다. 말년에는 초기 포드식 방식을 버리지 못해 회사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단순하고 싸게, 많이 생산하는 포드 모델은 자동차가 귀했던 시절엔 많은 이에게 각광 받았다. 그러나 이후 GM 등의 경쟁사들이 높아진 소비자 기준과 다양한 취향을 저격하는 모델을 내놓기 시작하는 동안 이에 대응하지 못한 포드는 업계 선도업체 자리를 경쟁사들에 내어주고 오랜 부침의 시기를 겪게 된다.

 

혁신을 위한 불변의 지침

포드는 자동차를 비롯한 여러 제조산업이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발명가이자 뛰어난 사업가로 평가된다. 그리고 그의 단순하고 효과적인 사업 철학은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비록 포드가 드러낸 인간적 오점들에 대해선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미래에 대한 공포와 과거에 대한 존경을 버릴 것 ▲경쟁 중심으로 일하지 말 것  ▲값싸게 만들어서 값싸게 팔 것과 같은 그의 생전 철학들은 지금도 많은 혁신 사업가들이 참고할 만한 기본 지침이 아닐까?

테크월드 - 월간<EMBEDDED> 4월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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