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인물열전] 반도체 혁신을 끌어올린 ‘무어의 법칙’ 주인공, 고든 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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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인물열전] 반도체 혁신을 끌어올린 ‘무어의 법칙’ 주인공, 고든 무어
  • 김경한 기자
  • 승인 2020.03.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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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을 좋아했던 반도체 연구가, 인텔의 CEO가 되다

[테크월드=김경한 기자]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은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

고든 무어

반도체 업계의 가장 유명한 공식인 ‘무어의 법칙(Moore’s Law)’이다. 최근에는 무어의 법칙이 폐기됐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1965년에 발표된 이 법칙은 수십 년간 그 명성을 이어오며 반도체 산업의 발전과 맥을 같이 했다. 

무어의 법칙은 인텔(Intel)의 공동창업자인 고든 무어(Gordon Earle Moore)가 일렉트로닉스(Electronics) 매거진에 게재한 논문에 근거를 두고 있다. 

 

꿈 많던 화학 마니아의 성장기

고든 무어는 1929년 1월 3일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지만, 자란 곳은 샌프란시스코의 남쪽 샌 마테오 카운티의 작은 마을인 페스카데로(Pescadero)였다. 그의 아버지는 페스카데로의 지역 보안관이었고, 나중엔 샌 마테오 카운티의 수석 보안관이 됐다. 그의 가족이 레드우드로 이사했을 때, 무어는 이웃이 건네준 화학 세트를 통해 처음 화학을 접했다. 

고든 무어는 어린 시절에 이웃이 건네준 화학 세트로 노는 걸 좋아했다

무어는 이 순간부터 화학에 매료됐다. 먼 훗날 그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화학물질, 심지어 소형 폭발성 혼합물에도 흥미를 느꼈다”며, “화학책의 각종 물질 제조법을 따르고 결과를 지켜보는 일은 매혹적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때부터 화학에 흥미를 느껴 1946년 산호세 주립대학에서 화학전공으로 2년을 공부하다가 1948년에 버클리대학 화학전공으로 편입해 1949년에 학사학위를 마쳤다. 그리고 곧장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했고 1954년에 화학과 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동부 메릴랜드 주의 존스홉킨스 대학 응용물리학 연구소에서 첫 직장생활을 했으나, 자신의 첫 결과물에 실망하고 다시 서부로 돌아가길 희망했다. 

1956년에 그는 벨연구소에서 독립한 윌리엄 쇼클리(William Bradford Sockley)가 세운 벡맨인스트루먼트(Beckman Instruments)의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에 입사했다. 쇼클리는 1956년 말에 벨연구소에서 근무할 당시 접합형 트랜지스터를 발명(1951년)한 공로로 노벨상 수상이 결정됐다. 하지만 무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쇼클리의 명성만 믿고 그의 연구소에 취직한 것을 후회했다. 무어가 쇼클리 사단에 합류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엔지니어 그룹은 쇼클리의 강압적인 경영방식과 전략적 결정에 반기를 들었다. 쇼클리는 당초 저렴한 실리콘 트랜지스터를 만들 예정이었으나, 갑자기 4층의 pnpn 다이오드라는 다소 모호한 장치를 만들겠다고 개발 계획을 바꿨다. 그의 밑에 있던 젊은 과학자들은 투자자 벡맨이 쇼클리를 내쫓기 원했지만, 벡맨은 노벨상 수상자에게 그러기보다는 그의 부하직원을 몰아내기로 결정했다. 

 

8인의 배신자, 실리콘밸리의 신화를 열다

1957년 9월 18일,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Robert Noyce)를 비롯한 8명의 젊은 과학자들이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쇼클리는 이들이 퇴사하자 공개 비난하며 이들을 ‘8명의 배신자’라고 불렀다. 반면, 업계에서는 당시 사건을 실리콘밸리의 신화가 시작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고 회자한다. 8인의 배신자들은 쇼클리를 떠난 후 페어차일드 반도체(Fairchild Semiconductor)를 설립하고 실리콘 반도체를 개발했다. 나중에 이들이 페어차일드를 퇴사하면서 벤처기업이나 벤처캐피털을 설립했는데, 이는 오늘날 벤처기업을 창업하는 실리콘 밸리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8인의 배신자’과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 동료들(자료: www.sciencehistory.org)

8인의 배신자는 처음엔 받아주는 회사가 없어 고민했지만 뉴욕 투자자의 권유로 창업을 하기로 생각을 바꿨다. 페어차일드 카메라(Fairchild Camera & Instrument)로부터 130만 달러의 투자금을 확보해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설립했다. 

무어는 페어차일드 반도체에서 핵심 기술자와 관리자로 승승장구했다. 처음에는 확산 공정(Diffusion process)을 개발했고, 그것의 확산로(Diffusion furnace)를 구축했다. 더불어 트랜지스터의 접점을 만들기 위한 제조 공정에 힘썼고, 알루미늄에 정착했고, 실리콘 장치의 접점을 위한 금속을 선별했다. 이후 엔지니어링 관리자에서 연구개발 책임자로 승진했다. 그의 주목할만한 실적은 플래너 공정(Planar Process)에 있다. 이 과정은 집적 회로의 회로가 인쇄될 수 있는 매끄러운 이산화 규소 표면을 제공했다. 

집적회로는 실리콘이나 다른 반도체 물질의 얇은 조각으로, 작은 전기 회로가 표면에 화학적으로 식각되도록 특수 처리된 것이다. 이 회로에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전기적으로 연결된 수백만 개의 미세한 트랜지스터와 다른 구성 요소가 포함될 수 있다. 무어의 주도 하에 페어차일드는 오늘날 칩의 구성품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트랜지스터의 일종인 금속 산화물 반도체(MOS) 전계효과 트랜지스터의 공정 개발에 기여했다.

 

의도치 않았던 ‘무어의 법칙’ 발상자

고든 무어가 ‘무어의 법칙’을 발표한 시기는 1965년이다. 법칙에 따르면,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은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 실제 이 법칙은 무어가 그해 4월 19일에 출판된 일렉트로닉스 매거진 35주년 특별호에 논문 형식으로 게재한 글에 지나지 않았다.

일렉트로닉스(Electronics) 지에 게재된 고든 무어의 사진과 소개글
일렉트로닉스(Electronics) 지에 게재된 고든 무어의 사진과 소개글
(출처: www.sciencehistory.org)

그는 반도체 개발 실무경험을 토대로 “부품 제조 비용이 최소가 되는 복잡함은 해마다 대략 2배의 비율로 증가해 왔다. (중략) 1975년까지는 최소 비용으로 얻을 수 있는 집적회로의 부품 수는 6만 5000개에 이를 것이다”라는 글을 게재했다. 이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무어는 ‘법칙’이라는 말이나 18개월이라는 기간을 넣지 않았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 교수와 파이오니아 실업가의 카버 미드에 언급되면서 ‘법칙’으로 굳어졌다. 무어는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75년에 기술향상 기간인 18개월을 2년으로 수정했다. 그동안 반도체 업체들은 ‘무어의 법칙’을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설정해 반도체의 집적도를 향상시켜왔다. 혹자는 ‘공돌이를 갈아서 증명한’ 법칙이라고도 한다.

’무어의 법칙’을 실제로 검증한 그래프(출처: 위키피디아)

 하지만 이제 ‘무어의 법칙’이 폐기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최근 반도체가 미세화되면서 터널링 효과와 발열문제 등의 문제로 인해 이 법칙이 정확하게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터널링 효과는 고전물리학에서 자신이 갖는 에너지보다 준위가 높은 에너지 장벽을 넘을 수 없지만, 예외적으로 낮은 에너지 상태에서도 원자 밖으로 튀어나가는 현상을 뜻한다. 반도체 칩의 회로 선폭이 미세해지면서 반도체 내의 전자가 회로를 넘나들게 됐고 칩의 미세화를 점점 어렵게 하고 있다. 발열문제는 한정된 크기 내에 고밀도의 기판을 배치함에 따라 열이 발생하는 것으로, 이 또한 칩의 집적도 향상을 힘들게 한다. 

 

개발자 정신을 잊지 않았던 인텔 CEO 

페어차일드 반도체는 1960년대 중반 텍사스인스트루먼트와 함께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1, 2위를 다툴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1968년까지 다른 반도체 기업들은 MOS 기술에 기반한 반도체를 출시하는 데 성공한 반면, 페어차일드는 연구소에서 제조시설로 MOS 기술을 이전하는 공정을 실현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모회사인 페어차일드 카메라가 연구개발팀과 생산팀을 분리하면서 부서간 갈등이 생겨 사내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 

’인텔’ 첫 삽을 뜨다
’인텔’ 첫 삽을 뜨다

결국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는 1968년 페어차일드 반도체 퇴사 후 ‘NM 일렉트로닉스’를 설립했다.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의 이름 앞글자를 따온 것이다. 그 후엔 사명을 인텔(Integrated Electronics)로 변경했다. 

무어는 1975년부터 인텔의 2대 CEO로 활동했으며, 1979년 4월부터는 이사회 회장도 병행했다. 그는 CEO로 활동하면서도 항상 직원들과 동일한 공간에서 일하며 개발자로서의 소신과 자세도 잊지 않은 겸손한 리더였다. 무어는 한 기고문에서 “우리는 관료주의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엔지니어에게 구매를 요청하는 대신 구매 주문서를 쥐어주고 그들이 직접 장비 공급업체와 협력해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은 몇몇 판매업자에게 충격을 줬지만, 매우 효과적이고 관료적이지 않은 방식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1987년 앤드루 그로브에게 CEO 자리를 물려주고, 1997년에는 이사회 회장에서도 물러난 후 명예회장이 됐다. 1994년부터 2000년까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 이사회의 회장을 맡기도 했으며, 지금은 이사 중 한 명이다. 

무어는 반도체 개발자와 CEO로 활동하며 많은 명예도 누렸다. 2001년에는 화학유산재단(The Chemical Heritage Foundation)으로부터 2001년 무어를 집적회로와 마이크로프로세서 창설에 기여하고 무어의 법칙을 개발한 점을 근거로 오메르 금상(Othmer Gold Medal)을 받았다. 2002년에는 미국의 최고 민간인 명예인 대통령 자유 훈장(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받았다. 2008년에는 IEEE로부터 집적회로 처리에 있어 기술적 역할을 개척하고 MOS 메모리, 마이크로 프로세서 컴퓨터 개발에 선도적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IEEE 명예 훈장(IEEE Medal of Honor)을 받았다. 2009년에는 국립발명가 명예의 전당(National Inventors Hall of Fame)에 헌액됐다. 

 

노블레스 오블리제

고든 무어는 자산사업가로도 유명하다. 고든 무어와 그의 아내 베티 무어는 2000년에 50억 달러의 기금을 조성해 ‘고든 & 베티 무어 재단(Gordon and Betty Moore Foundation)’을 설립했다. 두 사람은 2000년대 들면서 점점 박애주의에 주목했으며, 이 재단을 통해 과학 교육, 환경 보전, 환자보호 분야를 지원했다. 재단의 설립 목적은 미래 세대를 위한 삶의 질 향상이며, 출자 분야는 천문학, 생물학, 데이터 과학을 아우르는 것이다. 

’고든 & 베티 무어 재단’ 홈페이지
’고든 & 베티 무어 재단’ 홈페이지

2001년에는 두 사람이 6억 달러를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에 기부했다. 이는 당시 이 대학이 받은 기부금 중에서 가장 큰 액수였다. 2007년에는 동 대학에 구경 30m 망원경의 건설을 위해 2억 달러를 기부했다.

고든 무어는 2019년 10월 현재 119억 달러의 순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시작한 ‘억만장자들이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자’는 캠페인에 2012년 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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